길거리에서 죽어가는 거지노인을 위한 양로원 설립자 정남규 John 천사 - 마더 데레사성녀의 롤모델 - 로마 교황청에 시복 추진중 > John 엔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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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 엔젤


 

길거리에서 죽어가는 거지노인을 위한 양로원 설립자 정남규 John 천사 - 마더 데레사성녀의 롤모델 - 로마 교황청에 시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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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Angel 댓글 0건 조회 1,993회 작성일 09-08-09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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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천사는 Alex의 외할아버지시다. 성인(SAINT)반열에 오르기 위해 로마교황청에서 추진중에 있으며 전세계인들이 그의 선행을 기념 할 것이다.

1923년부터 1950년까지 한국 천주교회 종현성당(현재 명동성당) 총회장이셨던 정남규할아버지의 "거리에서 죽어가는 노인들을 위한  구제사업" 애긍회의 기록을 소개한다.  애긍회 사업은 몇십년 후 마더 데레사 수녀의 미션으로 더욱 자선사업의 결실을 맺게된다. 
 
1950년 6월 25일, 서울을 점령한 북한인민군은 천주교 회장이라는 죄명으로 정남규회장외 4명의 종교인을 9월 16일 밤에 납치하였고 60여년이 지난 현재까지 생사를 확인 할수 없는 상태이다.  
 
정넘규 할아버지의 1924년 - 1950년까지의 자선사업 기록에서 일지 몇개만 이칼럼에서는 발췌하였다. 전 25년간 일지는 원본으로 게재될 것이다. 정남규 할아버지는 한국 천주교회사에 복음의 증인으로 기록되어 있고 순교자로 기억 되어지고 있음을 후손들은 가문의 영광으로 생각한다.

정남규 할아버지의 숭고한 어렵고 힘든 구제사업을 큰손자 김스테파노신부가 50년간 (1959년  -  현재) 이어가고 있고  그의 유지를 받들어 많은 후손들도 힘 자라는데 까지 애긍정신을 일상생활에서 실천하려 노력중에있다.
 
자선일지 몇편을 소개하면,

1928년 5월7일 입원, 이마리아요안나(50세)씨는 본적 진천군 우변면 금곡리82번지에두고 십여년전 상경하야
            진명여학교 기숙사에 식모로 있다가 불행히 득병하여 치료할곳이 없기 본원에 드러와 세례밧고 금월 
            17일에 선종하엿기 교회묘지에 매장하다.

1928년 6월24일, 신당동부근산중 행려병자 안명지(72세)는 병이위중하여 노중에 졸도한것을 수녀2인이 발견하야
            제성권면 하얏드니 진실히 통회하야 대세주기를 청하며 즉시 대세를준후 그익일 12시에 입원 시켰드니
            오후6시에 선종함에 장비12원67전으로 애긍지24호에 매장하다.
1929년 5월14일, 김아가다(20세)는 파주은골에서 부모형제와 동거하다가 경성도구동에 상경하여 거주타가
           13세에 불행히 모친상을 당하엿고 가사를 돌보더니 17세에 부 김성서(요안)가 신정유곽에 딸을 팔았다.
            어찌할수없이 마굴에 빠져 속신할 도리없어 한탄하나 악마같은 아비는 또 인천으로 딸을 4백원에
            팔았다. 계약이 성립되어 아가다가 악마의손에 있을때에 형 요셉천홍(22세)이가 문밖으로 불러내어
            곧바로 성당으로 도망하여와서 본당신부에 전후사연을 알외니 신부께서 시급함을아시고 수녀원에
            피신시키셧으나 속량할 도리가 없던중 본회에서 즉시 속량하여 수녀원에서 완전한 인간될때까지
            맏껴두다.  
1931년 3월29일, 평원군 숙천면 관동리에 거주하든 조봉문(22세, 부친 윤관, 모친 김씨)은 3세때 모친을 여의고
            9세때 부친을 여의고 형에게 의지하던중 우연히 눈에 병이나서 치료하였으나 불행이 장님이되어 형에게
            의지하다가 설상가상으로 19세에 형이 사망하여 의지할곳이없어 방황중 동네에서 1년간 걸식하나
            동네에서도 걸식할 도리없어 타지로 나가라하기 할수없이 평안북도 강계, 후창, 함경도방면 심산궁곡
            으로 전전하니 소경의 몸으로 그고생이 어떠하였겠는가. 산곡에서 실족하여 오십길에 떨어져
            구사일생으로 다시 살게된때도 있으며 물에빠저 죽을뻔한적도 있고 최종에는 압록강물에 빠져  이
            세상을  하직하려고 결심중 우연히 생각하니 부모와 형이 다 돌아가고 혈육은 자기뿐이라 생각으로
            마음을 돌이켜가지고 천신만고로 강원도 지방으로가 걸식하니 다행히 사람들이 불상이 여기어 후대
            하더라. 한곳에 다다르니 이곳은 질그릇만드는 뎜촌이더라. 그곳사람의 말이 세상에서 앞못볼뿐아니라
            말할수없는 고생을하니 우리같이 천주교를 봉행하자하고 말하더라.  그러면 나를 가르쳐달라 했다.
            그사람말이 우리는 매일 일을하니 가르칠 여가가없다 만일 천주교를 할생각이거든 서울 성당에
            가면 도리를 가르쳐 줄터이니 그리로가라 하기에 십여일만에 도착하였더라. (3월29일성지주일) 
            그 이튼날부터 여관에 유숙시켜 경문을 가르치다. 40일후 성심강림전일에 영세를 받고 양로원에
            수용되어 노인들에 경문을 가르치고 지내다.     

애긍회 설립 목적

1. 무의무탁한 남녀교우의 질병을 치료하고 노인들의 생활을 보조함
   단 필요할시에는 교인이 아닌 노인도 도와줌

2. 사망후 교회 예절대로 장례함

3. 신앙인의 애긍정신을 기회있는대로 실천함

애긍회 보조

1. 일반 교우 유지자의 기부금으로 실행함

실행임원

종현교구 회장은 필히 실행 임원이됨

경성부내에 양로원 설립하기로 정함

대정 14년 1월1일
발기인 일동 외 정남규
1. 1923년 종현성당 회장임명
2. 1924년 발기인 정남규 할아버지외 5명이 한국 천주교 자선단체 애긍회 설립
    1950년까지 26년간의 매달 활동사항, 구제금 지출사항을  일목요연하게 애긍사업록에 기록
3. 1925년 천주교회 양로원 설립 현재 수녀원에서 운영

자료:
a. 정남규 할아버지 사진
b. 본인이 직접 작성한 교회 양력
    1949년 2월 2일 돌아가신 날짜만 빈칸으로 남겨두시고 본인 양력서를 만들어 놓으셨음

 
 

1950년 9월 16일 서울을 점령한  북한 인민군에게 천주교 회장이라는 명목으로 종교인 숙청 
                           제 일순위로 서울 중구 입정동 자택 에서 체포되시어 순교하신것으로 후손들은 
                           믿고 있고 언제 어디서 선종하셨는지는 아무도 모름. 
                           한국천주교회사에 복음의 증인 순교자로 등재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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