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한 기업인의 죽음’은 미술의 근대적 탄생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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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타라곤 댓글 0건 조회 1,288회 작성일 12-06-04 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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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가 사망한 후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드라마 같은 그의 생애에 대한 이야기가 떠돌고 있다. 이 중에서 그가 자신의 죽음을 미리 언급한 2005년 스탠포드대 졸업축하 강연에 관심이 간다. 그는 당시 “누구도 죽기를 원하지 않는다. 천국에 가길 원하는 사람들도 그곳에 가기 위해 죽기를 원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스티브 잡스는 애플사의 창업주이자 ‘IT 세계의 교주’로까지 불리는 강력한 지도력의 화신이었지만, 임박한 죽음 앞에서는 나약한 인간의 면모를 솔직하게 드러냈다.
‘죽음’, 특히 ‘성공한 기업인의 죽음’은 미술의 근대적 탄생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준다. 스티브 잡스 같은 현대 기업가들의 원조라고 부를 만한 사람들이 지금으로부터 700여년 전 유럽 땅에 속속 등장했다. 중세 상업혁명을 배경으로 성장한 벼락부자들 중에는 오늘날의 기업인에 뒤지지 않는 엄청난 부와 명예를 누린 이들도 있었다. 중세의 기업인들도 생의 마지막 순간에는 잡스와 마찬가지로 화려한 삶과 대비되는 차가운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인간적인 모습을 보이곤 했다.
잡스가 죽음을 눈앞에 두고 일에 더욱 매진했다면 중세 기업인들은 죽음을 준비하면서 자기 나름대로 영원히 살 수 있는 법을 궁리했다. 흥미롭게도 이들이 영생의 메커니즘으로 주목한 것이 바로 미술이었다. 미술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영원히 세상에 각인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인데, 이 덕분에 자본과 미술이 결합할 수 있는 길이 새롭게 열린 것이다. 예컨대 서양 근대 미술의 서막을 알리는 ‘아레나 예배당’도 정확하게 그 같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탄생했다고 볼 수 있다.
화가의 성전 된 아레나 예배당
서양 근대 미술의 첫 번째 기념작으로 손꼽히는 아레나 예배당은 철저히 중세 사업가를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그림 ➊). 1305년께 당시 최고의 화가로 알려진 조토(Giotto)가 벽화를 그렸는데 700여년이 지난 지금도 기적적이라고 할 만큼 완벽하게 살아남아 있다. 가히 ‘중세 미술의 석굴암’이라고 부를 만큼 대단한 곳이다.
아레나 예배당 벽화를 그린 화가가 원체 유명하다 보니 이 예배당을 ‘화가의 성전’으로 기억하는 이가 많다. 그러나 이 예배당의 주인공은 바로 엔리코 스크로베니(Enrico Scrovegni)라는, 당시 고리대금업으로 돈을 번 중세 사업가였다.
스크로베니는 이 엄청난 예배당을 기획하면서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었다. 화가는 사실 그가 고용한 업자에 불과하다고 말할 수 있다. 엄청난 이미지들로 꽉 짜인 아레나 예배당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이 프로젝트의 기획자를 이해해야 한다. 그래야 왜 이 예배당 그림에 금화 몇 닢에 예수를 판 유다와 돈주머니를 들고 고통 받는 자들이 많이 그려져 있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스크로베니가 이 예배당의 건립과 장식에 매달린 첫 번째 이유는 이 성전이 바로 그의 무덤이었고, 나아가 자신과 집안 식구들이 남긴 죄에 대한 대속이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이 예배당의 제대 중앙에는 그의 무덤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는 곳곳에 자신이 열망하던 세계를 새겨 놓았다. 예배당 안에서 그의 모습을 조각이나 그림으로 수차례 만나게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엔리코 스크로베니는 지금으로 치면 재벌 2세로 볼 수 있다. 아버지 레지날도(Reginaldo)가 억척스럽게 돈을 모았고 엔리코도 가업을 이어받아 성공한 사업가로 성장했다. 원래 집안은 미천했지만 부가 쌓이자 신분 상승을 위해 귀족집안과 혼인관계를 맺었으며 결국 기사 작위까지 얻어낸다.
단테 신곡에 지옥 갈 인물로 묘사될 만큼 돈 밝혀
그의 집안은 정말 돈을 좋아했던 것 같다. 가문의 문장이 돼지였다. 정확하게 말하면 새끼를 밴 암퇘지가 집안의 문장이었다. 다소 속되게 보이는 암퇘지 문장은 지금도 아레나 예배당에 안치돼 있는 엔리코 스크로베니의 조각상 머리 바로 위에서 확인할 수 있다(그림 ➋).
이 집안의 주된 소득원은 은행업이었다. 좋게 말하면 은행업이고 나쁘게 말하면 고리대금업이 가업이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이 집안은 주로 정부가 시행하는 대규모 사업에 돈을 투자해 20~30%의 이윤을 얻었기 때문에 그리 가혹한 고리대금업자는 아니었다고 한다. 하지만 중세 기독교의 윤리에서 돈으로 돈을 버는 것은 ‘수소가 수소를 낳는 것’만큼 부당한 것이었다. 노동 없는 금융 이득은 죄악으로 판시한 교회법에 따라 스크로베니 집안은 천국과는 거리가 멀게 됐다.
예수 오른쪽에 자신 그리게 해 천당행 기원
금융 소득을 당연시하는 오늘날과 달리 중세인들은 돈놀이를 결코 곱지 않은 눈으로 바라봤다. 스크로베니 집안을 일으킨 레지날도의 경우 특히 고리대금업자로서 악명이 높아서 당대 문학의 소재로까지 쓰였다. 중세 문학의 금자탑으로 일컬어지는 단테의 ‘신곡’에서 레지날도는 지옥불 속에서 고통 받는 모습으로 등장한다(신곡 지옥편 17곡). 단테는 지옥을 여행하던 중 암퇘지가 그려진 돈주머니를 맨 고리대금업자를 만났다고 말한다. 이 고리대금업자가 누구를 말하는지 당시 사람들은 아마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결국 아레나 예배당은 엄청난 부를 쌓은 만큼 죄도 많이 지었다고 생각한 엔리코가 자신과 아버지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지은 것이다. ‘최후의 심판’ 장면에서 그는 아레나 예배당의 모형을 들어 성모에게 봉헌하고 있다(그림 ➌). 물론 그가 자리 잡은 위치는 천당행을 의미하는 예수의 오른쪽이다. 그는 유언장에 “아버지와 형, 그리고 나의 재산을 모두 교회에 헌납한다”고 적었다. 그는 정치적인 이유로 1326년부터 베네치아에 살았지만, 자신이 죽으면 반드시 아레나 예배당에 묻히게 해달라고 주문했다. 그의 뜻대로 그는 아레나 예배당에 묻혔고, 지금도 중앙 제대 뒤에 그의 무덤이 자리하고 있다.
오늘날의 성공한 사업가들도 생의 마지막 문턱에서는 엔리코와 같은 생각을 하지 않을까? IT계의 황제 스티브 잡스는 아레나 예배당같이 자신을 기리는 기념관을 꿈꾸지 않았을까? 냉철한 현실주의자 잡스에게 기념관이나 조형물은 허세처럼 보였을 것이다. 잡스는 아마도 애플 스토어를 자신의 성전으로 생각하고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자신을 기억하게 하는 조형물로 생각했을 것 같기도 하다. 검정 터틀넥 상의와 청바지를 단출히 입고 신제품을 열정적으로 시연하는 잡스의 모습은 IT 종교계의 사제와 같은 모습이었으니, 그는 이것으로 족하다고 생각했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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