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다’는 초기엔 가방과 트렁크 등 가죽제품을 생산하던 공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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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타라곤 댓글 0건 조회 3,174회 작성일 12-06-05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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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데이를 앞두고 한 온라인 쇼핑몰이 흥미로운 설문 결과를 발표했다. 남성이 가장 많이 구매하는 여성 브랜드는 스와로브스키, 프라다, 코치. 여성이 원하는 브랜드는 프라다, 페라가모, 마이클코어스. 절대적인 기준일 순 없지만 남녀 모두 선호하는 브랜드가 눈에 띈다.
프라다를 이야기할 때 흔히(때론 공식처럼) 등장하는 화제 중 하나는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가 아닐까. 2006년 개봉한 이 할리우드 영화에선 럭셔리한 뉴요커의 대명사 미란다 프리슬리를 ‘프라다를 입는 악마’로 표현했다. 가장 대중적인 문화를 통한 럭셔리 브랜드의 전파는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영화의 성공과 함께 브랜드에 대중성을 부여했다. 그 덕분에 프라다는 누구나 들어봤지만 쉽게 가질 수 없는, 하지만 갖고 싶은 브랜드로 다시금 각인됐다.
극장 개봉 이후 공중파와 케이블TV를 통해 수십, 수백번은 방영됐을 악마와 프라다의 상관관계가 최근 다시 도마에 올랐다. 칼날의 중심은 매번 반복되는 럭셔리 브랜드의 가격 인상. 지난해 한·EU FTA가 발효되면서 가방과 구두에 대한 관세 8%가 철폐됐지만 명품 브랜드의 가격이 오히려 인상된 게 문제의 초점이었다. 오죽하면 럭셔리 브랜드들 이 한국 고객을 봉으로 보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다. 하지만 시장의 반응은 오히려 우려를 뒤집었다. 실제로 지난 2월23일 가격 인상을 발표한 프라다는 인상 전날까지 줄을 서야 백화점 매장에 들어설 수 있었다.
줄 선 이들은 마음에 둔 제품이 팔릴까봐 노심초사, 구경하는 이들은 “어디서 하는 세일이냐?”며 웅성거렸으니 진풍경도 이런 진풍경이 또 있을까. 그래서 서울 시내 주요 백화점의 프라다 매장 매출은 평일 평균 많게는 150% 이상 늘었다. 프라다의 지난해 4분기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33.1% 성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럭셔리 브랜드를 대표하는 프라다의 저력(?)은 비슷한 시기 모바일 제품의 매출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지난해 12월 말 출시된 LG전자의 스마트폰 ‘프라다폰3.0’이 그 주인공이다. 출시 초기 90만원에 육박하던 프라다폰3.0은 한 달 후 통신사 변경 시 할부 원가가 뚝 떨어질 만큼 판매율이 저조했다. 출시 당시 모바일 전문가들은 “1.2~1.5㎓ 프로세서를 탑재한 경쟁 제품과 달리 1㎓프로세서를 탑재했고 LTE 지원도 없다”며 “단지 명품 이미지로 약점을 극복하려 한다”고 저평가했다. 하지만 할부 원가가 30만원대(온라인 판매점)로 떨어진 후 프라다폰3.0은 2월 첫째 주 모바일 포털 세티즌의 휴대폰 랭킹에서 LTE 신제품을 물리치고 1위에 올랐다. “같은 값이면 기능보다 프라다”란 욕구가 20대 고객들을 끌어들인 것이다.
이쯤 되면 이른바 프라다 효과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과연 그 효과의 근원은 무엇일까.
Effect 1. 미우치아 프라다 & 파트리지오 베르텔리
1913년 마리오 프라다가 이탈리아 밀라노의 갤러리아 비토리오 엠마누엘레II(Galleria Vittorio EmanueleⅡ·현재까지도 이 첫 매장은 프라다 가문이 소유하고 있다)에 설립한 ‘프라다’는 초기엔 가방과 트렁크 등 가죽제품을 생산하던 공방에 가까웠다. 개인사업체일수록 사업자의 열정이 성패를 좌우하는 법. 마리오 프라다는 세계 각지를 여행하며 희귀한 소재를 수집해 제품에 적용, 밀라노 부유층의 워너비 상점으로 부상한다. 하지만 두 번에 걸친 세계대전에 프라다의 명성도 서서히 사그라지고 설립자 마리오 프라다가 세상을 떠난 후 2세들이 운영에 나섰지만 불씨를 살리기엔 역부족이었다. 1970년 가업을 물려받은 이는 설립자 마리오 프라다의 손녀 미우치아 프라다. 밀라노 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한 그녀는 어머니가 운영하던 가업이 어려워지자 갤러리아 매장 운영과 제품 생산에 관여하기 시작했다.
프라다의 본격적인 전환점은 1970년대 말 현 프라다그룹 회장이자 프라다·미우미우의 디자이너로 활동 중인 미우치아 프라다와 프라다그룹의 CEO 파트리지오 베르텔리의 만남에서 시작된다. 파트리지오 베르텔리는 당시 이탈리아와 유럽 시장에서 활동하던 가죽 제품 생산업자들과 거래하며 가죽 제품 소매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베르텔리는 1978년 자신의 생산라인을 통합해 ‘I pellettieri d’Italia S.p.A.’를 설립하고 미우치아 프라다와 프라다 브랜드 가죽 제품 컬렉션에 대한 독점 계약을 한다. 이 계약으로 프라다는 글로벌 유통에 기반을 마련하게 된다.
1980년대와 1990년대 프라다의 급부상은 두 사람이 의기투합해 완성한 포코노(Pocono) 소재의 핸드백과 액세서리가 주도했다. 설립자인 할아버지와 전혀 다른 소재를 찾던 미우치아 프라다의 눈에 천막과 낙하산 등 주로 군수용품 원단으로 쓰이던 포코노가 눈에 들어온 것. 1978년 선보인 일명 ‘나일론백’은 당시엔 외면 받았지만 1980년대 중반 같은 소재의 토드백이 완성되며 사랑받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프라다는 기존 가죽제품라인(핸드백, 여행용 가방, 액세서리 등) 외에 의류와 제화 라인을 추가했고 1993년엔 젊은 고객을 위한 ‘미우 미우(MIU MIU)’를, 1997년에는 레드 스트라이프(Red Stripe) 로고로 알려진 ‘프라다 스포츠 라인’을 론칭했다. 1987년 결혼한 두 사람에게 1990년대는 비약적인 발전의 시기이자 프라다의 시대였다. 한때 구찌, 질 샌더, 처치그룹, 펜디 등 럭셔리 브랜드의 지분을 인수하며 성장을 거듭한다. 하지만 공격적인 인수 전략과 마케팅은 2000년대 미국의 경제 불황 등 전 세계 경기침체와 맞물리며 위기를 맞기도 했다. 결국 앞서 언급한 럭셔리 브랜드의 지분을 매각하고 경영 혁신과 합리화를 통해 2000년대 중반부터 성장세로 돌아섰다. 프라다그룹의 미우치아 프라다 회장은 ‘입었을 때 편하고 스스로 아끼게 만들어 주는 옷’을, 파트리지오 베르텔리 CEO는 ‘30~40대가 선택하면서 나는 여전히 20대라고 느끼는 상품’을 베스트셀러라고 꼽는다. 눈에 띄진 않지만 편하고 트렌디해 오래도록 입을 수 있는 옷, 아이러니하지만 프라다가 눈에 띄는 이유다.
Effect 2. 프라다 에피센터
프라다의 성공 요인 중 하나는 새로운 개념의 매장인 콘셉트 스토어 에피센터(Epicenter)다. 렘 쿨하스, 헤르조그 & 드 뮈론 등 세계적인 건축가들과의 작업을 통해 선구적인 공간을 만들어 브랜드 가치를 높였다. 2001년 뉴욕 구겐하임 박물관 앞에 자리한 첫 번째 에피센터는 네덜란드의 건축가 렘 쿨하스가 디자인했다. ‘프라다의 쇼핑 콘셉트를 재정립했다’는 평가와 함께 ‘실험적인 테크놀로지, 디자인, 시청각적 경험의 다양함과 결합한 새로운 매장이자 창조적인 실험실’로 주목받고 있다. 2003년 도쿄에 오픈한 두 번째 에피센터 파사드는 스위스 건축가 헤르조그와 드 뮈론이 디자인했다. 도쿄 도시 풍경에 영향을 받아 수천 개의 유리 패널로 채워진 다이아몬드 모양의 격자판으로 구성돼 있다. LA 베벌리힐스의 세 번째 에피센터는 2004년 렘 쿨하스가 디자인했다. 층계 밑의 거울로 된 벽감 안에 블랙&화이트 대리석 바닥과 쇼케이스는 밀라노의 프라다 첫 매장을 참고해 제작됐다.
Effect 3. The Fondazione Prada·Milan
프라다의 문화예술 지원은 독보적이고 독창적이다. 평소 현대 예술에 관심이 많았던 미우치아 프라다와 파트리지오 베르텔리는 1993년 밀라노에 ‘프라다 밀라노 아르떼(PRADA Milano Arte)’재단을 설립해 컨템퍼러리 조각을 위한 전시 공간을 마련했다. 이후 1995년 ‘폰다지오네 프라다(The Fondazione Prada)’로 이름을 바꿔 미술, 사진, 영화, 디자인, 건축 등 폭 넓은 현대 예술 장르로 범위를 넓힌 두 사람은 모든 예술가들이 꿈꾸는 사이트 스페시픽 프로젝트를 추진하게 된다.
애니시 카푸어(1995), 마이클 하이저(1996)의 개인전을 이탈리아에서 처음 전시하고 루이스 브루주아(1997), 댄 플레빈(1997)의 이탈리아 첫 개인전과 월터 드 마리아(1999) 등 이제는 너무 잘 알려진 작가들을 발굴해 전시회를 개최했다.
1997년부터 재단은 도시 환경과 문화에 관련해 프로젝트를 확대했다. 신인 작가인 샘 테일러-우드(1998)와 마리코 모리(1999)의 영화, 비디오, 사진 작업 등 현대 미술의 중요한 트렌드 작업들을 지속적으로 후원했다. 2002년 봄 베리 맥기의 솔로 쇼를 연출했고 그 해 가을에는 톰 프리드먼의 가장 포괄적인 전시를 이탈리아에서는 처음으로 주관했다.
2003년 지올리오 파올리니(2003)의 1960년도부터 1972년도 작품 50점을 전시했다. 2004년 10월에는 영화배우 로버트 드니로, 감독 제인 로젠탈 그리고 크레이그 핸코프가 설립한 트라이베카 영화제의 가장 재미있는 영화 부분을 재단에서 후원했고, 같은 해 베니스 비엔날레와 협력해 베니스 영화제에서 재 복원되고 잊어진 또는 미공개된 영화들의 복원 작업에도 참여한다. 2009년 여름, ‘턴 인투 미’라는 새로운 프라다 트랜스포머 전시를 서울에서 개최하며 쉼없이 달려온 폰다지오네 프라다 재단은 20세기 초 밀라노의 남쪽 산업 현장에 메트로폴리탄 건축 사무소(OMA)가 설계하고 렘 쿨하스가 디자인한 새로운 재단 건물을 세운다. 또한 밀라노 남부의 라르고 이사르코에 대형 창고 부지를 매입해 2013년 완공을 목표로 건축가 렘 쿨하스와 미술관, 영화관, 아트숍, 카페 등으로 가득 찬 ‘문화예술 복합공간’을 만들어 밀라노의 새로운 명물을 창조하고 있다.
Hides & The fabrics
의류와 백, 액세서리 등 제품 개발을 위해 프라다는 연간 약 200만 스퀘어미터(GSM· Gram Per Square Meter)의 다양한 가죽을 사용한다. 특정 제품을 위한 가죽이 각기 다른 생산 센터에 제공되며 모든 조건에 적합한 테스트를 받는다. 이후 90%의 이탈리아 장인과 10%의 유럽 장인이 수작업으로 무두질을 진행해 최대한 자연스러운 외형을 유지한다.
프라다는 또한 시즌과 컬렉션에 따라 다양한 형태(실크, 울, 면, 리넨, 테크니컬 패브릭 등)의 패브릭 약 400만m를 사용하고 있다. 프린트된 실크와 직물은 각각의 컬렉션에서 요구되는 요소를 독점적으로 반영한다.
History
1913년
마리오 프라다가 밀라노에 프라다의 첫 번째 매장 오픈. 핸드백, 여행가방, 트렁크, 가죽제품, 고급스러운 액세서리와 특별히 수공업으로 제작된 아이템 판매.
마리오 프라다가 밀라노에 프라다의 첫 번째 매장 오픈. 핸드백, 여행가방, 트렁크, 가죽제품, 고급스러운 액세서리와 특별히 수공업으로 제작된 아이템 판매.
1919년
프라다, 프라다 로고가 포함된 이탈리아 왕실의 군대 코트와 사보이가의 노끈을 제작하는 공식 공급업자로 임명.
프라다, 프라다 로고가 포함된 이탈리아 왕실의 군대 코트와 사보이가의 노끈을 제작하는 공식 공급업자로 임명.
1968년
파트리지오 베르텔리가 최고급 가죽제품을 제작하는 첫 번째 회사 창립.
파트리지오 베르텔리가 최고급 가죽제품을 제작하는 첫 번째 회사 창립.
1979년
프라다 여성 슈즈 컬렉션 론칭.
프라다 여성 슈즈 컬렉션 론칭.
1983년
프라다의 스피가 스토어 오픈.
프라다의 스피가 스토어 오픈.
1989년
첫 프라다 RTW(Ready-To-Wear) 컬렉션 론칭.
첫 프라다 RTW(Ready-To-Wear) 컬렉션 론칭.
1993년
미우미우 RTW, 핸드백, 슈즈 론칭 / 프라다 남성 RTW, 슈즈, 액세서리 컬렉션 론칭.
미우미우 RTW, 핸드백, 슈즈 론칭 / 프라다 남성 RTW, 슈즈, 액세서리 컬렉션 론칭.
2000년
프라다와 미우미우 아이웨어 컬렉션 론칭.
프라다와 미우미우 아이웨어 컬렉션 론칭.
2003년
도쿄 아오야마에 두 번째 에피센터 오픈.
도쿄 아오야마에 두 번째 에피센터 오픈.
2004년
LA의 로데오 드라이브에 세 번째 에피센터 오픈.
LA의 로데오 드라이브에 세 번째 에피센터 오픈.
2004년
첫 프라다 향수 론칭.
첫 프라다 향수 론칭.
2006년
첫 파리 미우미우 패션쇼 개최.
첫 파리 미우미우 패션쇼 개최.
2007년
LG와 함께 프라다 폰 론칭.
LG와 함께 프라다 폰 론칭.
2008년
프라다의 단편 애니메이션 필름 과 공개 / 새로운 향수 를 위한 단편 영화 프로젝트 론칭.
프라다의 단편 애니메이션 필름 과 공개 / 새로운 향수 를 위한 단편 영화 프로젝트 론칭.
2009년
서울에서 프라다 트랜스포머 프로젝트 론칭 / 밀라노 코르소 베네치아 3가에 새로운 콘셉트의 매장 오픈.
서울에서 프라다 트랜스포머 프로젝트 론칭 / 밀라노 코르소 베네치아 3가에 새로운 콘셉트의 매장 오픈.
2010년
중국 예술가 양푸동이 제작한 영화 공개.
중국 예술가 양푸동이 제작한 영화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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