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경계속에서 고요하고 소박하게 있는 곳, 산마르코 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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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angelica 댓글 0건 조회 1,059회 작성일 14-02-11 2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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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마르코 광장은 종교 중심지인 두오모의 북쪽, 카보우르 거리 끝에 있다. '넓다'는 의미로 한때 라르가 거리로 불렀던 카보우르 거리는 메디치 가문의 저택과 산 마르코 성당을 연결한다. 장식이라고는 조각상 몇개와 얕은 양각 부조, 그밖의 세부장식이 전부인 절제된 바로크 양식의 성당 파사드는 이곳 수도원의 수수한 분위기와 무척 잘 어울린다. 수도원은 벽을 장식한 안젤리코 수도사의 온화한 손길과 금욕적인 수도원장 지롤라모 사보나롤라의 열정을 고스란히 간직한 곳이다.
수수하면서도 아름다운 도미니코회 성당은 그늘이 드리워진 광장 한쪽에 묵묵히 서 있고, 광장 안은 대학생과 통근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늘 시끌벅적하다. 중앙에는 이탈리아 독립전쟁에서 혁혁한 겅을 세운 판티장군의 상이 우뚝 서있고, 광장 모퉁이를 에워싼 산울타리와 나무 앞에는 벤치들이 보인다. 직사각형의 반듯한 건물들이 광장 가장자리를 둘러싼 가운데, 여섯개의 도로가 광장으로 이어진다.

이 지역은 예전에는 피렌체시가 아니라 카파조라는 별개의 행정구역으로 간주되었고, 이에 따라 광장도 '카파조의 산 마르코 광장'이라고 불렸다. 산 로렌초 광장에서 5분 거리지만 여기까지 오는 관광객은 별로 없다. 최초의 자치도시 성벽이 지금까지도 보이지 않는 경계선 구실을 하는 모양이다.
300여년간 세월동안 피렌체를 통치한 메디치 가문은 61명의 프리오리, 35명의 곤팔로니에레, 7명의 대공, 두명의 교황을 배출했다. 하지만 1492년 로렌초 일 마그니피코가 정치적으로 무능했던 그의 아들 피에로 알 파투오에게 통치권을 넘겨주고 죽자, 피렌체는 이후 몇년 동안 열광적인 수도사 사보나롤라의 정신적 지배아래 놓이게 된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메디치가문이 몰락하는 모습은 이곳 산 마르코 광장에서 펼쳐지게 된다.
수수하면서도 아름다운 도미니코회 성당은 그늘이 드리워진 광장 한쪽에 묵묵히 서 있고, 광장 안은 대학생과 통근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늘 시끌벅적하다. 중앙에는 이탈리아 독립전쟁에서 혁혁한 겅을 세운 판티장군의 상이 우뚝 서있고, 광장 모퉁이를 에워싼 산울타리와 나무 앞에는 벤치들이 보인다. 직사각형의 반듯한 건물들이 광장 가장자리를 둘러싼 가운데, 여섯개의 도로가 광장으로 이어진다.
이 지역은 예전에는 피렌체시가 아니라 카파조라는 별개의 행정구역으로 간주되었고, 이에 따라 광장도 '카파조의 산 마르코 광장'이라고 불렸다. 산 로렌초 광장에서 5분 거리지만 여기까지 오는 관광객은 별로 없다. 최초의 자치도시 성벽이 지금까지도 보이지 않는 경계선 구실을 하는 모양이다.
300여년간 세월동안 피렌체를 통치한 메디치 가문은 61명의 프리오리, 35명의 곤팔로니에레, 7명의 대공, 두명의 교황을 배출했다. 하지만 1492년 로렌초 일 마그니피코가 정치적으로 무능했던 그의 아들 피에로 알 파투오에게 통치권을 넘겨주고 죽자, 피렌체는 이후 몇년 동안 열광적인 수도사 사보나롤라의 정신적 지배아래 놓이게 된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메디치가문이 몰락하는 모습은 이곳 산 마르코 광장에서 펼쳐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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