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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급 정장의 대명사 아르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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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inceton 댓글 0건 조회 1,345회 작성일 10-08-11 1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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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마니가 추구하는 편안함과 단순함. 다른 옷의 반밖에 되지 않는 무게. 몸을 따라 부드럽게 흐르는 느낌이 아르마니만의 특징이다. 실제로 아르마니는 일반 옷의 2분의 1 무게로 한 벌에 200∼250g을 넘지 않는다. 아르마니의 모든 상품이 무접착 심지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패드 또한 얇거나 아예 없다. 이 때문에 옷이 뚝뚝 떨어지는 듯한 느낌 대신 인체의 곡선에 따라 같이 흘러내리는 듯한 편안함을 준다. 아르마니는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색상이 화려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레이 색상 안에 또 다른 그레이, 블랙 안에 오묘하게 섞여 있는 컬러의 조화는 아르마니만의 특성이다.
그런데도 정상의 스타나 성공한 비즈니스맨들이 아르마니를 즐겨 찾는 것은 가볍고, 입어서 편할 뿐만 아니라 평범한 듯하면서도 극히 절제된 우아함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불필요한 장식을 모두 없앤 기능성과 세련된 도시적 우아함이 아르마니를 세계 정상의 브랜드로 올려놓은 비결이다. 유행이 급변하는 패션계에서 차분한 색상과 단순한 디자인으로 일관하면서 세계를 제패했다.
아르마니는 디자이너로서는 늦은 나이에 패션계에 데뷔해 단시간에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1934년 이탈리아 북부 피아첸차에서 운송회사 간부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청년기에 이를 때까지는 패션 분야와 무관한 환경 속에서 성장했다. 어린 시절에는 의학에 관심이 많아 가족들은 그에게 의사가 되기를 권했다. 이러한 분위기에 힘입어 그는 밀라노대학 의학부에 입학했다. 2년후 군에 입대할 때도 의무병에 배속되었다. 제대후 남는 시간을 이용해 짧은 시간 동안 한 대형 백화점에 취직한 것이 그의 진로를 바꿔 놓았다. 남성복 디자이너로서 성가를 올리던 ‘니노 체루티’ 매장이었다. 여기서 디자인의 세계에 몰입하게 된 아르마니는 결국 의사의 꿈을 접고 디자이너가 되기로 결심한다. 이때의 경험은 그의 작품 세계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1961년의 일이었다.
유명 디자이너 중 신사복으로 출발한 경우는 매우 드물다. 1975년 당시 마흔 살이었던 아르마니는 자신의 이름으로 첫 컬렉션을 내놓았다. 그는 이 컬렉션에서 패드를 없애 부드러운 어깨선을 살린 것. 흐르는 듯 부드러운 소재로 넉넉하면서도 우아한 재킷을 탄생시켰던 것이다.
1975년 마흔살의 늦은 나이에 자신의 첫 컬렉션을 발표한 아르마니는 단기간에 패션계의 제왕으로 등극했다. 이렇듯 그는 데뷔 무렵부터 지금까지 ‘재킷의 변화’를 고집스럽게 추구하고 있다.
워렌 비티·더스틴 호프먼·티나 터너·잭 니콜슨·에릭 클랩튼 등의 스타들이 애용하지만 아르마니는 이들을 ‘일하는 사람들 중에 스타들이 포함되어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그는 자신의 패션에 대해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모델 아닌 움직이는 사람이 입는 옷을 만든다” 즉, 부드러우면서 다소 느슨한 듯한 실루엣, 과장이나 기교가 절제된 단아한 아름다움…. 이것이 아르마니의 생명이다.”
창의성, 품질, 시장의 완벽한 균형을 브랜드 성공 비결로 꼽는 그는 아르마니 고유의 컨셉트를 유지하면서 제품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제품 스타일이나 회사 경영에서도 단순히 유행을 쫓는 일은 결코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절제 속의 우아함을 추구하는 아르마니는 마케팅 전략에서도 단연 돋보인다. 우선 전 세계 150개가 넘는 매장은 스트리트 매장만 고집한다. 고가, 고품질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 백화점 매장을 가능한 한 배제하고 독자적인 이미지를 전개한다. 아르마니가 마케팅 전략에서 가장 신경 쓰는 것은 희소성의 이미지를 제고하는 것이다.
한 마디로 고품격 이미지 형성을 위한 희소성이다. 때문에 아르마니는 모든 사람이 고객이 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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