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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로 승화한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격정 탱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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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진저 댓글 0건 조회 2,864회 작성일 12-02-22 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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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한 그림자가 드리운 반도네온(bandoneon)의 어둡고 무거운 음색. 강렬한 악센트가 귀와 가슴을 두드리는 격정적인 음악에 맞춰 굽 높은 구두를 신은 남자가 옆이 터진 치마를 입은 여인을 내려다보며 관능적인 동작으로 춤을 이어가는 무대. 전문적인 공연을 보지 못했더라도 여러 영화 속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이 장면은 바로 ‘네 다리 사이의 예술’이라 불리는 탱고(tango-현지 발음대로 표기하자면 ‘땅고’가 정확하나 세계적으로 일반화되어 있는 발음대로 ‘탱고’로 표기함. 아래 나오는 단어는 외래어 표기법에 따랐음.)의 무대 모습이다. 남미의 유럽으로 불리며 지난 세기의 초엽, 화려한 전성기를 구가한 아르헨티나의 대표적인 음악 탱고는, 지금은 ‘춤추기 위한 음악’이 아닌 ‘감상을 위한 음악’으로서 클래식과 재즈에서도 중요한 음악적 소재로 연주되는 ‘세계의 음악’이 되어 있다. 그리고 이 탱고를 예술적 경지로 끌어올린 장본인이 바로 20세기 최고의 작곡가 중 한 사람으로 손꼽히는 ‘아스토르 피아졸라(Astor Piazzolla)’이다. 태생적으로 지닐 수밖에 없는 격정적인 감성과 강렬한 리듬으로 인해 ‘치명적인 유혹’이라는 표현이 쓰일 정도로 듣는 사람을 사로잡는 탱고, 그 거부하기 힘든 매력의 세계는 장르를 뛰어넘어 다양한 취향의 음악 애호가들을 유혹한다.
항구의 빈민촌에서 태어난 탱고 때로 문화는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역류하기도 한다. 브라질의 삼바나 포르투갈의 파두가 그랬듯, 탱고 역시 같은 역사를 밟아 지금의 예술적 경지에 이른 음악이다. 아르헨티나를 상징하는 가장 대표적인 이미지 중 하나인 탱고는 아르헨티나의 음악이라기보다는 부에노스아이레스라는 도시의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파고들면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보카(Boca)’라는 지역이 탱고가 태어난 곳이라고 보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부에노스아이레스는 1880년 아르헨티나의 수도가 되어 1930년대까지 급속한 팽창을 이루며 ‘남미의 파리’로 불릴 만큼 유럽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았다. 또한 제1차 세계대전까지 유럽으로부터 엄청난 수의 이민자가 몰려와 1920년대에는 부에노스아이레스 시민의 70% 이상이 유럽 이민자와 그 자손이었다고 한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공업지구와 접해 있던 지저분한 항구지역 보카에는 주로 이탈리아 출신의 극빈층 이민자들이 모여 살았다. 이들은 대부분이 항구의 노동자였고, 돌아갈 수 없는 고향에 대한 향수를 가슴 깊이 품고 있었다. 탱고는 바로 헤어나기 힘든 가난과 체념에 빠져 살던 이들 하층민의 정서를 담고 시작된 음악이다. 탱고가 지닌 강한 호소력은 향수와 고독에 찌든 이들의 격정적인 감정에서 비롯되었다.
음악적으로 탱고의 모체가 되는 것은 19세기 초 쿠바에서 유행하던 ‘하바네라(habanera)’이다. 4분의 2박자의 우아한 춤곡 하바네라는 19세기 중엽 아르헨티나 선원들에 의해 부에노스아이레스로 건너갔고, 강한 템포감과 아르헨티나 민요 형식의 춤곡인 ‘밀롱가(milonga)’와 만나게 된다. 여기에 1875년경 독특한 싱커페이션을 지닌 아프리카 흑인 노예들의 음악 ‘칸돔블레(candomble)’가 큰 영향을 주면서 탱고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이와 함께 당시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유입되어 있던 유럽 무곡의 크고 작은 영향을 받았다는 설도 있다.
이처럼 탱고는 라틴아메리카와 아프리카의 리듬, 그리고 유럽의 무곡이 혼용된 복합적인 음악이다. 이는 당시 부에노스아이레스를 중심으로 아르헨티나가 가지고 있던 유럽과 남미, 아프리카의 복합적인 문화적 배경과 무관하지 않은 것이다.
탱고의 황제 ‘카를로스 가르델’ 1

977년 아르헨티나 정부는 해마다 12월 11일을 ‘탱고의 날’로 제정했다. 이날은 세기의 명가수 카를로스 가르델(Carlos Gardel)이 태어난 날이다. 1887년 프랑스에서 태어난 가르델은 네 살 때 어머니와 함께 부에노스아이레스로 이주해 왔다. 생계를 꾸려 가기가 힘들던 그는 갖가지 직업을 전전했다. 열렬한 오페라 팬이기도 한 그가 1917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엠파이어 극장에서 ‘Mi Noche Triste(나의 슬픈 밤)’를 노래하면서부터 탱고는 새로운 형식의 발전을 이루었다. 가사가 있는 탱고 음악, 바로 ‘탱고 칸시온(Tango Cancion)’이다. 이전에도 탱고에 가사가 붙여진 곡이 더러 있었지만, 그 깊은 서글픔과 한을 가르델만큼 청중에게 전달할 수 있는 가수가 없었기 때문에 탱고가 노래로 발전하지 못했다. 타고난 아름다운 음색과 수려한 외모가 성공의 발판이 되긴 했지만 가르델은 자신의 노래와 작곡기법을 향상시키려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가수였고, 1935년 갑작스런 비행기 사고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수백 곡의 주옥같은 명곡을 남겼다. 영화 <여인의 향기>에 사용되면서 더욱 유명해진 명곡 ‘Por una Cabeza(간발의 차이로)’는 1935년 가르델이 주연을 맡은 영화 <Tango Bar>에 처음 등장한 노래로 그가 직접 만들었다. 가수로서뿐만 아니라 영화배우로서도 많은 활약을 한 그는 성공의 정점에서 48세의 짧은 생을 마감했지만 지금도 무덤에는 날마다 새 꽃다발이 놓일 정도로 아르헨티나 사람들의 기억 속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 그는 ‘Don't Cry for me Argentina’의 주인공인 에바 페론, 축구 황제 디에고 마라도나와 함께 아르헨티나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3인의 인물로 알려져 있다.

탱고의 꽃 ‘반도네온(bandoneon)’

탱고 연주의 전형적인 편성은 반도네온 2대, 바이올린 2대, 피아노 1대, 베이스 1대의 편성이 표준이다. 여기에 반도네온과 바이올린 연주자가 줄거나 늘면서 변화를 주기도 하고 비올라나 첼로 등이 추가되기도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탱고를 탱고답게 하는 악기는 바로 반도네온이다. ‘콘체르티나’라는 악기를 원형으로 하는 반도네온은 독일에서 만들어진 악기로 19세기 후반 독일의 선원과 이주민에 의해 전해졌다. 늘 아코디온과 비교되기도 하지만 반도 네온은 겉모양에서부터 연주방법까지 완전히 다르다. 아코디언이 건반으로 선율을 연주하고 반대쪽 단추로 화음을 내는 것과 달리, 양쪽 모두 단추로 구성된 반도네온은 각각 단음을 내는 단추 여러 개를 사용하면서 연주하게 되어 있다. 또한 각 단추는 음계의 높낮이에 따라 순차적으로 배열되어 있는 것이 아니어서 반도네온 연주는 더욱 어렵다고 한다. 양쪽의 사각형 상자를 연결하고 있는 주름 부분을 여닫으면서 공기를 불어넣어 소리를 내는 것은 아코디언과 같지만 연주의 난이도는 일반적인 건반 악기들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어렵다. 음색 또한 다르다. 아코디언보다 좀 더 어둡고 무거운 소리를 낸다. 강렬한 인상을 던지는 탱고의 리듬과 함께 반도네온의 음색은 탱고 음악의 특징 자체를 나타내는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부에노스아이레스 거리의 우울과 고독, 그리고 발생의 배경부터 지니고 있던 탱고의 격정적인 비애감을 표현하는 탱고를 위한 악기이다.
탱고에 예술성을 부여한 ‘아스토르 피아졸라(Astor Piazzolla)’

탱고의 역사를 바꾼 아르헨티나의 거장 아스토르 피아졸라는 클래식과 재즈를 탱고에 도입하여 일대 혁명을 가져온 인물이다. 또한 그의 이름으로 탱고를 대변할 수 있을 만큼 탱고가 하나의 예술로 자리 잡는 데 커다란 공헌을 했다. 세 살 때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주한 그는 뉴욕의 뒷골목에서 거친 어린 시절을 보내다 열렬한 탱고 팬이던 아버지에게 반도네온을 생일 선물로 받고 연주를 시작했다. 어린 시절부터 라디오 연주회 등에서 반도네온을 연주하던 피아졸라는 가르델의 마지막 시절에 만남을 갖게 된다. 가르델은 사망하기 전 자신이 출연했던 마지막 영화인 <당신이 나를 사랑하게 되는 날(El Dia Que Me Quieras)>에 어린 피아졸라를 출연시켰고, 뉴욕 영어를 구사하는 피아졸라를 한동안 데리고 다니기도 했다고 한다. 파리 음악원 유학 시절 피아졸라는 ‘나디아 블랑제’를 스승으로 모시면서 음악적으로 커다란 전환점을 맞이했다. 올드 탱고에 재즈와 클래식 기법을 도입한 그의 음악은 춤추기에 적합한 음악이 아니라는 이유로 전통적인 탱고 애호가들에게 심한 반발을 사기도 했지만 아르헨티나의 탱고 음악계에 일대 변혁을 일으키며 젊은 세대의 환호를 받았다. 새로운 기법의 음악이었으나 항상 부에노스아이레스만의 감성을 담아내었던 그는 자신의 음악을 ‘누에보 탱고(nuevo tango)’, 즉 ‘새로운 탱고’라고 말했다. 이후 유럽을 비롯한 전 세계에 탱고가 가진 예술성을 전하며 수많은 명곡을 남긴 그는 1992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생을 마감했다. 카를로스 가르델 이후 세계적인 춤곡으로 발돋움했던 탱고에 차원 높은 예술성을 부여한 그의 음악은 클래식 바이올리니스트 ‘기돈 크레머’를 비롯한 다양한 장르의 음악가들에 의해 연주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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