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를 담은 예쁜 통, 그리고 경험의 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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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미 댓글 0건 조회 1,587회 작성일 15-07-20 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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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문화 운동을 능가하는 스타파워
일본의 전통 건축물 중에는 손님에게 차를 대접하거나 조용히 차를 마시면서 명상을 하는 방이 있다. 스키야(數寄屋)라는 이 건축양식은 16세기 중반경에 센리큐(千利休)라는 사람에 의해 창안되었는데, 그가 일본의 다조(茶祖)로 추앙받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보면 차를 마시는 공간을 만든 것 자체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건축가 구로카와 마사유키(黑川雅之)에 따르면, 센리큐가 당시의 권력자인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에게 반항의 메시지로서 이 건축양식을 만들어냈다고 한다.
무사 계급의 전형적인 주거양식은 쇼인조(書院造)라고 하여 스케일이 크고 화려하게 장식된 좌우대칭의 건물이었는데, 센리큐는 그것에 반항하여 철저히 대조적으로 작고 비대칭이며 보잘것없이 보이는 건물을 지었고,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다도를 배우는 곳이라고 안내한 것이다. 결국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음으로서 저항의 생을 마감했다.
승려이자 문학평론가인 김운학은 한국의 차문화를 다룬 책에서 원래 센리큐가 히데요시의 총애를 받았고, 불평을 가진 장군들의 마음을 풀기 위한 방편으로 다도를 이용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권력의 안정을 꾀하는 제의(祭儀)로서, 또 한편으로는 권력에 저항감을 표현하기 위한 공간 조성으로서 차에 얽힌 이 흥미로운 이야기는 차를 마시는 것 하나가 정치성과 비장함으로 확장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서 차는 단순한 필요를 위해 존재하는 사물도 아니고, 차를 마시는 행위도 개별적인 취향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물을 끓이고 따르는 기구와 격식, 공간에 이르기까지 차를 둘러싼 많은 것들은 이제 티백과 알루미늄 캔으로 가볍게 대체되었다. 센리큐와 같은 다성(茶聖)의 반열에 드는 이들은 물론이고, 우수한 차와 차문화를 갖고 있으면서도 커피에 자리를 내준 것을 개탄하면서 우리 차문화 부흥을 부르짖는 분들은 이 현상을 탐탁잖게 여길 것이다. 사실 이 분들의 주장은 우리 차를 마시자는 것보다는 우리 차를 바로 알고 그 문화를 회복하자는 것이다. 김운학은 고결하고 예의 바른 정신을 찾기 위해서 차 운동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는데, 생전에 전지현이 섹시한 몸짓으로 차를 마시고 비가 러닝셔츠 바람으로 차와 선문답하는 광고를 보았다면 심려가 컸을 것 같다. 한때 보성 차밭을 보여주던 방식의 광고는 이제 유명 연예인들을 앞세운 대대적인 광고 전략으로 전환되고 있다.
미모와 늘씬함, 건강을 상징하는 스타가 동원된 이런 광고의 효과는 몇십 년간 벌여온 차문화 운동을 능가했다. 이왕 마시는 것인데 몸에 좋은 것―사실은 몸에 좋다고 알려지고, 또 그렇게 믿고 싶은 것―을 마시자는 논리를 만들어내고 그 덕분에 차 음료가 소비된다. 이제 선택의 문제로 우리 차가 다시 관심을 얻게 된 것이다. 여기서 차를 둘러싼 질서와 이야기는 모두 걷어지고 차의 ‘효능’ 자체만 상품가치로 치환되므로 부정적인 시각도 있겠지만, 결과적으로 보자면 이것이 우리 차를 알리는 지름길이었다.
일본의 전통 건축물 중에는 손님에게 차를 대접하거나 조용히 차를 마시면서 명상을 하는 방이 있다. 스키야(數寄屋)라는 이 건축양식은 16세기 중반경에 센리큐(千利休)라는 사람에 의해 창안되었는데, 그가 일본의 다조(茶祖)로 추앙받는 인물이라는 점에서 보면 차를 마시는 공간을 만든 것 자체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건축가 구로카와 마사유키(黑川雅之)에 따르면, 센리큐가 당시의 권력자인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에게 반항의 메시지로서 이 건축양식을 만들어냈다고 한다.
무사 계급의 전형적인 주거양식은 쇼인조(書院造)라고 하여 스케일이 크고 화려하게 장식된 좌우대칭의 건물이었는데, 센리큐는 그것에 반항하여 철저히 대조적으로 작고 비대칭이며 보잘것없이 보이는 건물을 지었고,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다도를 배우는 곳이라고 안내한 것이다. 결국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음으로서 저항의 생을 마감했다.
승려이자 문학평론가인 김운학은 한국의 차문화를 다룬 책에서 원래 센리큐가 히데요시의 총애를 받았고, 불평을 가진 장군들의 마음을 풀기 위한 방편으로 다도를 이용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권력의 안정을 꾀하는 제의(祭儀)로서, 또 한편으로는 권력에 저항감을 표현하기 위한 공간 조성으로서 차에 얽힌 이 흥미로운 이야기는 차를 마시는 것 하나가 정치성과 비장함으로 확장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서 차는 단순한 필요를 위해 존재하는 사물도 아니고, 차를 마시는 행위도 개별적인 취향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물을 끓이고 따르는 기구와 격식, 공간에 이르기까지 차를 둘러싼 많은 것들은 이제 티백과 알루미늄 캔으로 가볍게 대체되었다. 센리큐와 같은 다성(茶聖)의 반열에 드는 이들은 물론이고, 우수한 차와 차문화를 갖고 있으면서도 커피에 자리를 내준 것을 개탄하면서 우리 차문화 부흥을 부르짖는 분들은 이 현상을 탐탁잖게 여길 것이다. 사실 이 분들의 주장은 우리 차를 마시자는 것보다는 우리 차를 바로 알고 그 문화를 회복하자는 것이다. 김운학은 고결하고 예의 바른 정신을 찾기 위해서 차 운동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는데, 생전에 전지현이 섹시한 몸짓으로 차를 마시고 비가 러닝셔츠 바람으로 차와 선문답하는 광고를 보았다면 심려가 컸을 것 같다. 한때 보성 차밭을 보여주던 방식의 광고는 이제 유명 연예인들을 앞세운 대대적인 광고 전략으로 전환되고 있다.
미모와 늘씬함, 건강을 상징하는 스타가 동원된 이런 광고의 효과는 몇십 년간 벌여온 차문화 운동을 능가했다. 이왕 마시는 것인데 몸에 좋은 것―사실은 몸에 좋다고 알려지고, 또 그렇게 믿고 싶은 것―을 마시자는 논리를 만들어내고 그 덕분에 차 음료가 소비된다. 이제 선택의 문제로 우리 차가 다시 관심을 얻게 된 것이다. 여기서 차를 둘러싼 질서와 이야기는 모두 걷어지고 차의 ‘효능’ 자체만 상품가치로 치환되므로 부정적인 시각도 있겠지만, 결과적으로 보자면 이것이 우리 차를 알리는 지름길이었다.
차의 대중화, 세련된 용기가 한몫

차 음료의 유행은 어떤 가치를 알리고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는 효과적인 방법이 디자인과 광고라는 점을 다시금 확인시켜주었다. 그 핵심은 아마도 ‘세련됨’일 것이다. 한때 환경이 사회적 쟁점으로 부각되면서 백화점 한쪽에 환경친화제품이 등장했던 것도 비슷한 과정을 거쳤다. 환경과 친할는지 몰라도 사람들과 영 친하지 않아 보이는 모양새를 한 물건들이 팔릴 리가 없었다. 결국 대대적인 성형 과정을 통해 (노래만 잘 부르는) ‘한나’가 (외모까지 출중한) ‘제니’로 새롭게 탄생하고서야 소비재로서 당당하게 경쟁하게 된 것이다. 이 과정은 유럽도 예외가 아니어서, 금욕주의적인 황갈색 재생지 포장에 어수룩하게 제품명을 표기한 초기 포장들은 외면당했다. 겉포장만이 아니라 티백도 종이 티백에서 이른바 ‘삼각 티백’으로 대세가 바뀌었고, 차를 우려내는 동안에도 시각적으로 고급스러움을 보여준다.
이런 시각적인 세련됨 이외에도 근본적으로 사람들이 간편함을 선호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가 될 것 같다. 다른 사람을 볼 것 없이, 나만 하더라도 원두커피보다 가루로 만든 인스턴트커피를 타서 마시는 것에 익숙해졌고, 그마저도 귀찮아서 세 가지 요소가 절대 비율에 맞추어 들어 있는 커피믹스를 선호하게 되었다. 자판기커피나 커피믹스가 없는 해외에 가서는 간혹 금단현상을 느끼면서 자괴감에 빠지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한편에서는 바리스타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커피를 직접 만드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이들은 원산지와 브랜드를 살펴서 원두를 구입하고, 직접 갈아서 족보 있는 커피메이커에서 커피를 뽑아낸다. 커피 한 잔을 마시기 위해 이렇게 공을 들이는 것은 단지 향이 더 좋거나 몸에 더 좋은 커피를 마시기 위해서라기보다는 그 과정을 즐기는 것이다.
지금 우리 차가 간편한 포장에 담겨 편의점에 놓여 있는 것이 이상적인 차문화와는 거리가 멀지 몰라도,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 깊은 관심을 갖게 되면 자연스레 다구를 비롯해서 차에 대한 격식을 갖추려는 이들이 늘어날 것이다.
이런 시각적인 세련됨 이외에도 근본적으로 사람들이 간편함을 선호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가 될 것 같다. 다른 사람을 볼 것 없이, 나만 하더라도 원두커피보다 가루로 만든 인스턴트커피를 타서 마시는 것에 익숙해졌고, 그마저도 귀찮아서 세 가지 요소가 절대 비율에 맞추어 들어 있는 커피믹스를 선호하게 되었다. 자판기커피나 커피믹스가 없는 해외에 가서는 간혹 금단현상을 느끼면서 자괴감에 빠지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한편에서는 바리스타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커피를 직접 만드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이들은 원산지와 브랜드를 살펴서 원두를 구입하고, 직접 갈아서 족보 있는 커피메이커에서 커피를 뽑아낸다. 커피 한 잔을 마시기 위해 이렇게 공을 들이는 것은 단지 향이 더 좋거나 몸에 더 좋은 커피를 마시기 위해서라기보다는 그 과정을 즐기는 것이다.
지금 우리 차가 간편한 포장에 담겨 편의점에 놓여 있는 것이 이상적인 차문화와는 거리가 멀지 몰라도,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 깊은 관심을 갖게 되면 자연스레 다구를 비롯해서 차에 대한 격식을 갖추려는 이들이 늘어날 것이다.
과정과 경험을 디자인해보자
사실 우리 차를 대중에게 알리는 가장 빠른 방법은 드라마를 활용하는 것이다. <내 이름은 김삼순> 덕분에 빵 만드는 사람이 ‘파티세(patissier)’라는 전문가로 인식되게 되었고, <목욕탕집 남자들>이라는 드라마가 한창일 때는 다방에서 ‘십전대보탕’이 인기였다고 한다. <대장금>에 버금가는 드라마에서 어떤 잎을 따서 차를 만드는 과정을 보여준다면 차에 대한 관심이 순식간에 높아질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다. 아마도 차를 간편한 음료로 보급하기 위해 용기를 디자인한 다음에는, 차를 직접 만드는 데 필요한 것을 디자인하는 일이 남은 것 같다. 차를 우려내고 따르고, 대접하는 데 쓰이는 것 등이다. 자판기에서 커피를 마시다가도 간혹 시간을 들여서 원두커피를 만들어 친한 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마시고 싶은 것은 차의 성분보다도 차를 마시는 행위에 대한 가치를 인식하고 있음을 뜻한다.
몇백 년 전에 기계장치를 이용하여 자동인형(‘카라쿠리’라고 불리는 이 차 나르는 인형은 주인이 인형 손에 차를 올려놓으면 손님 앞에서 멈추었다가 손님이 찻잔을 들면 다시 주인에게로 돌아오는 메커니즘으로, 일본에는 대를 이어 이것을 만드는 장인들이 아직 남아 있다. 뛰어난 로봇을 만들어내는 일본의 전통기술로 설명되기도 한다)으로 차를 손님에게 전했던 것을 생각하면 예부터 전해 내려오는 근엄한 격식에 매이지 않고 다른 형식을 창조해낼 수도 있을 것 같다. 말하자면 용기나 티백의 패키지를 디자인하는 것에서 나아가 차를 만들고 나누는 독특한 ‘과정’과 ‘경험’을 디자인해내는 것을 기대해봄직하다. 아직도 다방커피가 지닌 달짝지근한 맛의 중독에서 헤어나지 못한 내게 신선한 자극이 될 새로운 형식(분명히 이것은 내 몸의 카페인 해독제가 될 것이다)의 등장을 바란다.
사실 우리 차를 대중에게 알리는 가장 빠른 방법은 드라마를 활용하는 것이다. <내 이름은 김삼순> 덕분에 빵 만드는 사람이 ‘파티세(patissier)’라는 전문가로 인식되게 되었고, <목욕탕집 남자들>이라는 드라마가 한창일 때는 다방에서 ‘십전대보탕’이 인기였다고 한다. <대장금>에 버금가는 드라마에서 어떤 잎을 따서 차를 만드는 과정을 보여준다면 차에 대한 관심이 순식간에 높아질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다. 아마도 차를 간편한 음료로 보급하기 위해 용기를 디자인한 다음에는, 차를 직접 만드는 데 필요한 것을 디자인하는 일이 남은 것 같다. 차를 우려내고 따르고, 대접하는 데 쓰이는 것 등이다. 자판기에서 커피를 마시다가도 간혹 시간을 들여서 원두커피를 만들어 친한 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마시고 싶은 것은 차의 성분보다도 차를 마시는 행위에 대한 가치를 인식하고 있음을 뜻한다.
몇백 년 전에 기계장치를 이용하여 자동인형(‘카라쿠리’라고 불리는 이 차 나르는 인형은 주인이 인형 손에 차를 올려놓으면 손님 앞에서 멈추었다가 손님이 찻잔을 들면 다시 주인에게로 돌아오는 메커니즘으로, 일본에는 대를 이어 이것을 만드는 장인들이 아직 남아 있다. 뛰어난 로봇을 만들어내는 일본의 전통기술로 설명되기도 한다)으로 차를 손님에게 전했던 것을 생각하면 예부터 전해 내려오는 근엄한 격식에 매이지 않고 다른 형식을 창조해낼 수도 있을 것 같다. 말하자면 용기나 티백의 패키지를 디자인하는 것에서 나아가 차를 만들고 나누는 독특한 ‘과정’과 ‘경험’을 디자인해내는 것을 기대해봄직하다. 아직도 다방커피가 지닌 달짝지근한 맛의 중독에서 헤어나지 못한 내게 신선한 자극이 될 새로운 형식(분명히 이것은 내 몸의 카페인 해독제가 될 것이다)의 등장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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