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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에서 와인이 만들어 진 것은 200 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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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yale 댓글 0건 조회 1,909회 작성일 11-01-25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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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에서 처음 와인이 만들어 진 것은 지금으로부터 약 200 년 전의 일입니다 . 1769 년 , 프란체스카 수도원의 주니페로 세라 (Junipero Serra) 신부는 멕시코로부터 현재의 샌디에고 지역으로 한 무리의 이주자들을 데리고 왔습니다 . 그는 그곳에 Mission San Juan Capistrano 라는 수도원을 세우고 1779 년 현재까지 알려진 최초의 포도밭을 일구었습니다 . 그 후 , 그는 오늘날 El Camino Real( 현재의 1 번 고속도로 및 101 번 고속도로의 일부분 ) 로 알려진 길을 따라 북쪽으로 이동하였는데 , 그와 그가 이끈 무리들은 남쪽으로는 샌디에고에서 시작하여 북쪽으로는 소노마를 연결하는 21 개의 수도원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 물론 그는 각각의 수도원에 포도나무를 재배하였습니다 . 캘리포니아 최초의 와인은 이 수도원 들에서 사용할 미사주와 식사용으로 만들어졌습니다 . 이들 수도원에서 심어진 포도품종은 멕시코로부터 들여온 것이며 “Mission” 품종으로 불려지고 있습니다 .

 
수도원에서 잠재력에 대한 통찰로
약 1830 년경 , 캘리포니아 와인은 Jean Louis Vignes 라는 프랑스인의 노력에 의해 상업화의 길로 접어들게 됩니다 . 보르도 지방에서 온 그는 이 땅의 잠재력을 알아차리고 유럽 토종의 Vitis vinifera 의 다양한 품종의 묘목을 수입했습니다 . 그의 포도밭은 지금의 로스엔젤레스 시내의 중심부 지역에 위치하였습니다 . 곧 이어 독일계 이주민들이 오늘날 디즈니랜드로 유명한 에너하임 지역에 대규모의 포도밭을 일구었습니다 . 한편 , 1848 년 금광의 발견으로 캘리포니아의 북부는 큰 변화를 맞게 되었습니다 . 인구는 폭발적으로 증가하였고 많은 이주민 주거지역이 형성되고 부가 축적되었습니다 . 특히 금을 찾아 프랑스 , 이태리 , 독일 , 영국 등지에서 많은 이민자가 캘리포니아로 오게 되었습니다 . 몇몇은 많은 돈을 만지게 되었지만 그렇지 못한 대다수의 이민자들 중 와인제조기술을 가진 사람들은 와인의 잠재력을 깨닫고 포도를 심기 시작하였습니다 . 또한 1848 년은 캘리포니아가 미합중국의 주로 편입된 해이기도 합니다 .
 
좋은 와인이 더 낳아지다
1860 년에서 1880 년 사이 , 와인산업은 급속히 성장하여 많은 수의 와인공장이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 이 시기에 캘리포니아 와인의 품질향상에 크게 기여한 인물은 헝가리 이민자였던 Agoston Haraszthy 경입니다 . 그는 유럽을 왕래하며 많은 포도묘목을 캘리포니아로 들여왔습니다 . 1880 년 , 캘리포니아 주립대학은 버클리에 주요 연구시설을 세우고 주의 여러 지역에 연구용 포도밭을 조성하여 캘리포니아 와인의 품질향상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 이들 연구시설은 현재 세계적으로 유명한 데이비스의 캘리포니아 주립대학의 포도재배학 / 양조학과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
 
와인산업의 공황기

1869 년 미대륙횡단철도의 완공과 더불어 캘리포니아 와인은 미국 동부의 여러 주에서 재연되었고 많은 와인공장 들은 심지어 유럽에 수출까지 시작하였습니다 . 1890 년에 이르러 와인산업은 연간 1 억 리터의 와인을 생산하게 되었습니다 . 같은 해 파리에서 열린 파리박람회에서 경쟁부문에 출품된 캘리포니아 와인의 절반 이상이 황금메달을 수상하였습니다 . 이때까지만 해도 캘리포니아 와인은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었습니다만 그 호황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필록셀라 (Phylloxera) 라는 포도나무 최악의 전염병이 캘리포니아에 창궐하였고 세기가 바뀔 때까지 많은 포도밭을 파괴하였습니다 . 오래된 포도나무는 모두 제거되고 필록셀라에 내성을 가진 미국야생종 포도나무의 뿌리에 유럽 포도의 줄기를 접붙여 다시 심게 되었습니다 . 하지만 캘리포니아 와인산업을 이보다 더 황폐화 시킨 사건은 1919 년 발효된 금주법이었습니다 . 이 법안은 미국 내에서 술의 생산과 소비를 일체 금지시켰습니다 . 교회의 미사용으로 소규모의 와인 생산은 유지되었지만 대부분의 포도밭은 제거되거나 일반포도 재배용으로 전락하였습니다 . 다만 두꺼운 껍질을 가져 멀리 운송되어 가정에서 포도주를 담을 수 있는 양조용 포도품종은 재배가 허락되었습니다 .

 
새로운 시작
1933 년 금주법이 폐지된 이후 와인 산업은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매우 힘든 여정을 눈앞에 두고 있었습니다 . 와인산업의 부흥은 1940 년대 후반에 이를 때 까지도 묘연하게만 보였습니다 . 대공황과 2 차 세계대전이라는 악재가 와인산업의 재기를 힘들게 했습니다 . 와인산업은 1950 년대 초에 이르러서야 어느 정도 다시 일어설수 있게 되었고 이즈음 연간 5 억 리터의 와인을 생산하게 되었습니다 .
 
일등의 탄생
1960 년대를 통해 캘리포니아 와인 산업은 다가올 1970 대의 와인 부흥기를 준비하였습니다 . 소비자의 기호가 변하기 시작하였고 단일 품종으로 만든 드라이한 와인이 단맛이 강한 와인을 제치고 더 많은 인기를 끌게 되었습니다 . 또한 많은 수의 새로운 와인 공장들이 소노마 및 나파밸리 지역을 중심으로 문을 열기 시작하였습니다 . 1976 년 파리에서 열린 프랑스와 캘리포니아의 최고 와인 비교시음회에서 캘리포니아 와인은 화이트와 레드와인 모두에서 프랑스 최고와인을 누르고 일등상을 타게 되었으며 , 이로 인해 캘리포니아 와인은 하룻밤 사이에 국제와인비평가 들에 의해 세계 최고의 와인생산지역의 하나로 인정 받게 되었습니다 .
 
확장의 시대
1970 년 후반에 이르러 캘리포니아 와인은 생산량과 판매량에 있어 연일 최고치를 경신하게 되었으며 국제적으로도 그 이름을 드높이게 되었습니다 . 증가하는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새로운 포도밭들이 조성되었고 1960 년에서 1995 년 사이 총 포도밭의 면적은 40,000 헥타르에서 135,000 헥타르 이상으로 증가하였습니다 . 포도주양조장의 수도 227 개에서 800 개 이상으로 급증하였습니다 .
 
다시 찾아온 시련 - 그러나 더 큰 수확
역사는 되풀이 된다는 격언처럼 1980 년대 후반 캘리포니아에 필록셀라가 다시 창궐하였습니다 . 그러나 이번엔 지식과 자본을 바탕으로 손상된 포도밭을 효과적으로 복구 시킬 수 있었습니다 . 비록 와인업계는 포도밭을 다시 일구기 위해 엄청난 투자를 해야 했지만 이를 통해 단위 면적 당 와인생산량을 증가시키는 방법을 터득하게 되었고 , 무엇보다도 기존의 포도 품종을 해당지역의 기후와 토양에 가장 적합한 포도 품종으로 교체하여 재배하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
 
새로운 플레이어들

캘리포니아의 대규모 와인생산업체들은 주 전역에 걸쳐 추가적인 포도밭과 양조시설을 건설하여 그 규모를 점차 증대 시켰습니다 . 반면에 소규모의 와인생산업체들 및 새로이 사업을 시작한 업체들은 적은 규모이지만 높은 품질의 와인을 생산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꾸었습니다 . 유럽의 와인업체 및 기술자 들은 캘리포니아에 포도밭을 사고 와인을 생산하여 캘리포니아 와인에 대한 자신들의 칭찬을 간접적으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

현재 캘리포니아에는 900 개 이상의 와인양조장과 4,400 명 이상의 포도 재배업자가 224,000 헥타르 이상의 포도밭을 경작하고 있습니다 . 1998 년의 와인 생산량은 1,855,000,000 리터 였으며 , 이는 세계적으로 프랑스 , 이태리 , 스페인에 이어 4 위의 규모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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