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 톡톡 영화만담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톡톡 영화만담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페이지 정보

작성자 엘렌공주 댓글 0건 조회 2,636회 작성일 10-10-14 10:33

본문


 '꽃'이라는 수식어는 여자 배우의 전유물이었다. 그러나 14년전, 스크린에 비친 이 남자의 얼굴을 보고 수많은 여성팬들은 '한떨기 꽃'을 떠올렸다. 투명한 피부와 오똑한 콧날 산호색의 깊은 눈동자까지. 그의 얼굴은 동명의 화가 레오나르도(다빈치)가 빚은 조각같았다.

지금으로부터 7년전, 2003년 스티븐 스필버그의 '캐치 미 이프 유캔'을 보면서 많은 여성 관객들은 두 눈을 의심했다. 예전 꽃미남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었기 때문이다. 7년의 세월동안 그의 외모는 '미소년'에서 '아저씨'로 변신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외모가 변해도 디카프리오는 디카프리오 였다는 것이다.

데뷔 20년, 2000년대 할리우드에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만큼 화려한 전성기를 보낸 청춘스타가 있을까. 24살에 그는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관객을 흥분시켰던 영화의 얼굴이 됐고 30살에는 미국을 대표하는 거장 감독의 페르소냐가 됐다. 그리고 전세계의 내노라 하는 수퍼모델들과 염물을 뿌린 작업의 제왕이기도 했다.


100326_4bac50c2bc4aa.jpg

◆ 미완의 연기천재…"로버트 드니로도 알아봤다"

디카프리오는 어려서부터 남다른 끼를 자랑했다. 어린 시절 엄마 손을 잡고 따라간 CF촬영장에서 모델로 발탁돼 할리우드에 발을 디뎠다. 영화 데뷔작은1991년 제작된 B급 무비 '크리터스3'였다. 2년 후 디카프리오는 '디스 보이즈 라이프'라는 작품을 통해 '연기의 신'이라 불리는 로버트 드니로 함께 출연하는 기회를 잡았다.

이 당시 드니로는 디카프리오의 남다른 재능을 알아보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두 사람의 인연은 '마틴 스콜세지'라는 명감독 키워드로도 연결되기도 했다. 드니로는 스콜세지 감독의 첫번째 페르소냐였고 디카프리오는 두번째 페르소냐가 된 배우다.

1993년에 출연한 영화 '길버트 그레이프'는 디카프리오의 천재성을 할리우드에 알리게 된 계기가 된 작품이다. 이 영화에서 디카프리오는 정신지체아 어니 역을 맡아 열연했다. 실제인지 연기인지 분간이 안될 정도로 캐릭터와 혼연일체된 디카프리오는 이 작품을 통해 오스카 남우조연상에 노미네이트 되기도 했다.

10대 후반부터 20대 중반까지 디카프리오는 또래의 배우들이 경험하기 힘든 극단의 캐릭터를 연기하며 다양한 연기 실험을 했다. 비록 영화는 흥행에 성공하기 못했지만 그의 연기력만큼은 빛을 발했다. '토탈 이클립스'에서는 천재 시인 랭보 역을 맡아 음울한 분위기를 재연해냈고 '바스켓볼 다이어리'에서는 마약에 찌든 10대 청소년의 불안한 심리를 탁월하게 해석해냈다.

100326_4baccae127e8e.jpg

◆ 꽃미남 아이콘…"전세계가 레오 신드롬"

비주류 영화, 작가주의 영화에 출연하며 연기력을 확장한 디카프리오는 90년대 중반부터 할리우드의 중심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1996년 출연했던 바즈 루어만 감독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그 출발점이 된 작품이다. 절정에 오른 외모를 과시한 디카프리오는 이 작품을 통해 청춘 스타로 급부상했다.

1997년에는 제임스 카메론의 대작 '타이타닉'을 통해 미국을 넘어 전세계의 꽃미남 아이콘으로 등극했다. 20대 중반의 디카프리오는 조각같은 외모와 전형적이지 않은 매력으로 10~20대 여성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 당시 전세계가 '레오 신드롬'에 빠졌다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디카프리오의 인기를 뜨거웠다.

이후 디카프리오의 행보는 승승장구였다. '타이타닉' 출연 당시 100만 달러 수준이었던 그의 몸값은 20배 수직 상승해 영화 '비치'에서는 2000만 달러의 게런티를 받으며 톰 크루즈, 짐 캐리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상위 1%의 특급 스타 반열에 올라섰다.

◆ 스캔들 메이커…"모델 킬러, 가십맨으로"

디카프리오는 부와 인기, 명성을 얻은 동시에 크고 작은 가십들도 달고 다녔다. 특히 화려한 여성편력으로 타블로이드 신문을 떠들썩하게 장식했다. 디카프리오는 '모델 킬러'로 불렸다. 유독 모델 출신의 스타들과 교제를 해왔기 때문이다.

20대 초반부터 디카프리오는 브리지트 홀, 나오미 킴벨, 엠버 발레타, 래티시아 카스 등과 끊임없는 염문을 뿌려왔다. 그중 가장 떠들썩 했던 연애는 브라질 출신의 톱모델 지젤 번천과의 교제였다. 두 사람은 2001년 한 파티에서 만나 사귀기 시작했고 4년간 만남과 이별을 거듭하며 긴 열애를 했다. 그러나 두 사람은 2005년 결별했다.

그 후 1년만에 이스라엘 출신의 모델 바 라파엘리와 다시 사랑에 빠졌다. 스포츠 일러스트레이드 지의 커버모델이었던 라파엘리는 디카프리오의 사랑까지 얻으며 수많은 여성팬들의 시샘 어린 시선을 받고 있다. 두 사람은 최근 결혼설까지 흘러나올 정도로 뜨거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100326_4baccb74a2d49.jpg

◆ 다카프리오는 진화중…"명배우의 길을 열다"

디카프리오는 2000년 영화 '비치' 촬영을 마친 후 약 3년의 휴식기를 가졌다. 이때 파파라치에 의해 포착된 그의 모습은 팬들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쳐진 뱃살과 늘어난 주름 등으로 옛날의 미모는 찾아보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연기력은 무르익어 있었다. 2003년 스티븐 스필버그와 함께 한 영화 '캐치 미 이프 유캔'에서 디카프리오는 팔색조 연기를 선보이며 한단계 성숙해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연기 활동에서 가장 큰 전환점은 거장 마틴 스콜세지를 만난 2003년부터다. '갱스 오브 뉴욕'을 통해 환상의 호흡을 과시한 두 사람은 '에비에이터', '디파티드'에 이어 최근작인 '셔터 아일랜드'까지 총 4편의 영화를 찍었다. 디카프리오는 스콜세지 감독을 만나면서 배우로 평단의 인정을 받기 시작했고 번번히 자신을 외면했던 아카데미 시상식에도 2차례나 남우주연상에 노미네이트 됐다.

2005년부터는 매년 2편 이상의 영화를 작업하며 일에 대한 왕성한 열정을 보이고 있다. 물론 작품수만 많은 것은 아니었다. 매 작품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연기 그 이상의 것을 보여주고 있으며 배우를 넘어 제작자로서의 역량도 발휘하고 있다.

그는 데뷔 19년동안 24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짧지 않은 시간동안 많은 변화와 진화가 이뤄졌다. 한때는 시대를 대표하는 미남 스타였지만 이제는 할리우드를 이끌 차세대 명배우로 거론되고 있다. 디카프리오의 제2의 전성기는 이제부터다. 그가 연기로 세상을 놀라게 하는 일은 머지 않아 보인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