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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공장 할리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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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inceton 댓글 0건 조회 1,152회 작성일 10-08-12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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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이 꿈의 공장이 할리우드에서 시작되어 완성된 것은 아니다. 사실 초기 영화제작의 본거지는 뉴저지와 뉴욕이었다. 하지만, 뉴욕에는 영화 업자의 담합 형태가 결성되어 있어서 회원이 아니면 영화의 제작, 배급, 상영에 어려움이 많았다. 독립 제작사에 대한 집요한 방해 공작이 이루어졌고, 뉴저지와 뉴욕 주는 영화사에 대해 높은 세금을 매겼다. 이러한 상황에서 찾아낸 하나의 해결책이 아름다운 산과 계곡, 그리고 뜨거운 자연광을 자랑하는 할리우드의 발견으로 이어졌고, 곧 많은 사람들이 꿈을 가지고 남부 캘리포니아로 몰려들었다. 그이들은 금을 발견하지는 못했지만 무궁 무진한 영화라는 자원을 캐낸 것이다.
할리우드 공장은 이후 제작, 배급, 상영이 가능한 여덟 개의 소수 기업에 의해 시작되었다. 이른바 메이저 컴퍼니라 불리는 다섯 개 영화사인 파라마운트, 로스, 이십 세기 폭스, 워너 브러더스, 아르케이오와 그보다 작지만 다른 독립 영화사들과 견주어 큰 영향력을 행사했던 세 개 영화사인 유니버설, 컬럼비아, 그리고 독립 제작사인 유나이티드 아티스트가 독과점 형식으로 서로 견제하면서 영화 시장을 장악했다. 이러한 형태는 할리우드의 문화사 속에서 복합적으로 발전과 후퇴를 거듭한다.
그 가운데에는 독특한 사람들도 있었다. 1904년  최초의 영화관을 만들었던 헝가리 이민자인 아돌프 주커는 그이의 제작과 극장 사업을 파라마운트 영화사로 성장시켰다. 오퍼상이었던 마커스 로는 1924년 "메트로 영화사"와 새뮤얼 골드피시의 "골드윈 영화사"를 매입하여 루이스 메이어에게 제작을 책임지도록 하였다. 이 영화사는 이후 로스(엠지엠으로 유명한)로 발전하게 된다. 1912년 영화 배급업자인 월리엄 폭스는 조셉 쉔크와 대릴 자누크의 이십 세기사와 합병하여 이십 세기 폭스사가 되었다.
이들 회사는 대체적으로 오늘날에도 전세계에 영향력을 펼치며, 영화 산업을 좌지우지하고 있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할리우드의 발달은 두 가지 격변을 겪으면서 가능했다.
1930년대의 할리우드가 대공황 속에서 지친 미국 대중들에게 도피처와 오락을 제공하며 경쟁자 없는 연예 산업의 왕좌를 굳힐 수 있었다면, 제이차 세계 대전은 할리우드가 전세계적 규모로 패권을 장악할 수 있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자본주의 종주국의 위치를 차지한 미국은 그네의 세계 지배 전략을 "팍스 아메리카"라는 말로 미화하였고, 할리우드 영화는 단순한 경제적 이익을 위한 상품이 아닌 "미국의 꿈"을 전세계로 수출하는 수단이 되었다. 옛날에 단지 신기한 구경거리였던 영화는 산업으로 변화한 지 반세기도 되지 않아 이데올로기 전쟁의 가장 강력한 무기 가운데 하나가 된 것이다.
그러나 할리우드가 순탄한 고속 도로를 탄 것은 아니다. 텔레비전의 등장은 할리우드가 본격적으로 맞이한 가장 큰 위협이었다. 이에 할리우드는 대형 화면, 입체 음향, 입체 영화뿐만 아니라 심지어 향기가 나는 "아로마라마"라는 영화 기법까지 도입하였다. 여하튼 이러한 제작의 투자는 결국 거물들의 손을 떠나 은행가와 전문 경영인들과 투자자들이 영화 제작을 맡는 시대로 옮아 가도록 하였다. 발 빠른 독립 영화 제작자들은 일찍이 텔레비전과 손을 잡고 하청 방식으로 작업을 시작했는데, 이들은 훗날 새로운 세력으로 득세를 하며 할리우드와 텔레비전과의 유대감을 강화하는 데 큰 구실을 한다.
영화 산업은 텔레비전, 비디오 들의 뉴미디어로 인해 제이의 황금기로 들어서게 되었다. 세대를 넘어 전세계인들의 사랑을 받고...  당연히 제작비 상승은 천문학적인 숫자를 넘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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