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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세계적인 오페라, 연극 연출의 거장 아힘 프라이어(Achim Freyer)는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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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istory 댓글 0건 조회 2,088회 작성일 14-03-01 0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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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Jung Me(독일 거주 큐레이터)

지난 2011년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에서 <수궁가>의 연출과 무대, 의상 등을 맡았던 아힘 프라이어는 한국에도 잘 알려진 오페라ㆍ연극 연출가, 무대예술가이다. 하지만 그가 화가로서도 왕성히 활동을 한다는 사실은 아마도 다른 분야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을 것이다. 평생 한 번 초대되기도 어렵다는 카셀 도큐멘타에 작가로서 1977년과 1987년에 초대되기도 하였다. <수궁가> 무대디자인과 의상에 깊은 인상을 받았던 필자는 3월 25일 만하임 국립극장(Nationaltheater Mannheim)에서 <발퀴레(Die Walküre)> 초연을 바로 끝낸 프라이어와 인터뷰를 가졌다.

▲ 아힘 프라이어전철역에서 집까지 걷기에는 좀 먼 거리라며 그의 아내가 고맙게도 역까지 마중을 나와 주었다. 베를린의 유명한 빌라지역답게 곳곳에 관광엽서에서나 볼 것 같은 집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 외형이 독특한 자택에 도착하니 지하실에서 프라이어 씨가 액자에 쓸 매트를 든 채 반갑게 맞아 주었다. 인터뷰에 들어가기 전까지 집안 곳곳을 안내해주며 벽과 심지어는 문지방 전체에 빼곡히 걸린 소장품에 대하여 간단히 설명해 주었다. 시그마 폴케, 네오 라우흐, 피카소 외에 정신장애자의 작품까지 눈이 닿는 곳마다 작품 천지이다. 현재 약 2천여 점을 전시해 놓고 있으며 수장고에 약 5백여 점의 작품이 보관돼 있다고 한다. 이 많은 작품을 어떻게 관리할거냐는 질문에 재단을 설립하고 자택 일부를 사립미술관으로 사용할 예정이라고 한다.

Q. 작품명 중에 번호가 많이 있다. 가령 2437, €697, 2438.

- 대부분은 제작 날짜이다. 일종의 일기 형식이다.

Q. 회화 작품 중 시간과 공간적인 요소가 보인다.

- 그런 이야기 많이 들었다. 아무래도 무대예술가로서 더 알려져 있어 그런 것 같다. 사실 연극에는 시간과 공간적 개념이 큰 요소를 차지한다. 1960년도부터 시간을 수평선으로 표현했으며 이 수평선의 상대적인 도구로서 수직선을 많이 이용했다. 이 외에 인간의 외형적인 모습에서 볼 수 있는 원형, 나선 등을 첨가했다.

Q. 회화란?

- 거울을 통해 자신을 왜곡해서 볼 때가 대부분이다. 우리 대부분은 사실과는 다른 스스로 상상하는 모습만 보고자 한다. 거울에서 보는 것은 미세한 차이이지만, 과거이며 반사된 형상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인식된 모습과 진실에는 괴리가 있다. 회화는 이 왜곡된 현상을 바로 잡을 수 있게 하는 가능성을 열어준다. 그래서 나는 그림을 그릴 때 무념의 경지에 도달하고자 하는 노력을 한다. 이와 같은 행위를 통해 몰랐던 또 다른 나를 알게 되고 표출하게 된다. 아마도 이와 같은 실험적인 행위와 노력이 창작의 원동력이지 않나 생각한다. 그래서 물감을 덧칠하고 구성하는 작업보다 순간적으로 그려진 건축 유토피아 같은 작업을 종종 한다. 회화적 움직임의 필요성 때문에 시작했지만, 이에 그려진 원형, 사각형 등 모든 것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정확하게 표현이 된다. 어찌 되었든 인간은 인생에 벌어지는 일을 어떠한 방식으로든지 기록에 남기고자 하는 것 같다.


▲ <Hubschrauber> 2007, Acrylic on canvas, 170x105cm / ▲ <S 06> 2009, Acrylic on paper, 150x135cm

Q. 연극, 오페라에서 그리고 회화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것이 다른가?

- 물론 그림을 그리는 행위와 연극은 같지 않다. 연극, 오페라에는 대본, 가수, 배우, 오케스트라 등등 여러 가지 주어진 요소가 있다. 하지만 무슨 매체이든 결국에는 나, 아힘 프라이어가 녹아 들어가 있다.

Q. 놀랍게도 일 년에 3~4번 정도 연출을 하며 그 바쁜 와중에도 그림을 그린다.

- 3~4번은 좀 과장인 것 같은데... (잠시 생각 후) 그러고 보니 올해는 세 번 연출을 한다.
연출할 때는 여러 사람과 함께 작업하므로 많은 실질적인 문제와 부딪히게 되며 해결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러한 상황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고 때로는 도망가고도 싶다. 그림을 그리는 행위를 통해 나만의 시간을 가진다. 연출 도중에도 그리지만, 이탈리아에서 머무를 때도 그린다. 그림을 그리든 연출을 하든, 이 모든 창작활동은 삶의 두려움과 문제에 대한 반사작용인 것 같다. 마치 낭만주의자들처럼 말이다. 산업화와 자본주의 시대에 낭만주의자들은 고독과 문제를 멀리서 바라보려고 노력했다. 낭만주의자들은 산업화에서 탈출하여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어 했다. 하지만 원래 자연의 의미는 없다.

Q. 올해 4월 말에 개인전 또한 있지 않은가?

- 아, 너무 빨리 온다. ‘길과 변경’(Wege und Wandlungen)이라는 주제로 전시회를 만들려고 한다. 시간, 형상과 추상적인 공간이 주를 이룰 것이다.

Q. 정신장애인들의 작품들도 수집을 하는데.

- 정신적 장애는 예술가들에게는 신이 주신 선물과 같은 것이다. 이들은 아이와도 같은 순수한 상태를 유지한다. 보통 성인으로서 이와 같은 상태를 경험하거나 유지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피카소, 장 드뷔페 같은 작가들이 이 원시적인 상태를 추구했지만 다들 실패하고 말았다. 애석하게도 지식의 습득은 예술의 순수함을 잃어버리게 한다. 연극도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나누어지는데 한 방향은 이 순수, 원형을 추구하고 다른 한 방향은 줄기차게 이성과 일상을 추구한다. 두 방향 다 중요하다. 예를 들어 로버트 윌슨은 명료함, 속도의 지연, 인간과의 거리, 공간을 추구한다. 나는 추구하는 것은 유사하지만, 방법적인 부분에서는 다르다. 가령 조형적인 것보다는 감성적이며 지저분하다. 그리고 완성되지 않은 것과 파괴된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공통점도 있다. 가령 외로움이다.

Q. 화가로 시작했지만, 점차 연출 쪽에서 더 많은 활동을 했다. 이유는?

- 설득을 당했다. 연극계 지인들이 내 의견을 물었고 그때마다 여러 가지 아이디어가 생각이 났으며 이 때문에 일이 점차 많아졌다. 때로는 연극계에서 떠나고도 싶었지만 결국은 계속 하게 되었다. 마당에서 인형을 가지고 연극놀이를 하거나, 배우놀이 등등 5~6살 때부터 연극을 했다. 부모님께서는 나가서 뛰어놀라고 하셨지만 난 그때부터 연극에 빠져있었다.

인터뷰 중 그의 아내가 프렌치 프레스로 내린 커피를 주었는데 필자는 필자의 잔에만 커피를 붓는 우를 범했다. 커피가 거의 동이 날 무렵 프라이어 씨가 남은 커피를 마셔도 되느냐고 물었다. 이 말을 건네는 올해 만 78세인 그가 마치 5살짜리 아이 같은 수줍은 모습으로 말이다. 이 순간 필자는 전문 지식과 풍부한 경험으로 똘똘 뭉친 노장 연출가의 눈이라기보다는 5살짜리 아이의 눈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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