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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의 어느 특별한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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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istory 댓글 0건 조회 2,553회 작성일 14-03-01 0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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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은이(런던 트리니티 라반 댄스 리서치 석사과정)

런던에는 수많은 방이 있다. 런던의 방들은 유난히 사연들이 많다. 비싼 집세나 숙박비 때문에 집이나 호텔이 아닌 방으로 꾸역꾸역 몰리는 관광객들, 유학생들, 이민자들, 그리고 난민들 때문이다. 이 방들은 집 안의 방이라기보다는 집 안의 집 개념에 가깝다. 런던의 방들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집이자 안식처, 작업실, 삶의 터전인 경우가 많다. 희로애락의 삶의 이벤트가 끊임없이 벌어지는 런던의 방들. 이런 런던에 아주 특별하고 새로운 개념의 방이 마련됐다. 창의적이고 예술적 영감으로 가득한 ‘어 룸 포 런던’(A Room for London). 사우스뱅크센터(Southbank Centre) 퀸엘리자베스홀(Queen Elizabeth Hall) 지붕에 설치된 이 방은 2012년 한 해 동안 예술가들과 일반인들이 작업을 하거나 머물 수 있도록 기획된 것으로, 리빙아키텍쳐(Living Architecture), 아트앤젤(Artangel), 사우스뱅크센터가 협업해 완성했다. 작업실, 공연장, 호텔, 방송국으로 변신하는 이 방은 예술가와 우리를 특별한 세계로 초대한다.

| 정박된 방 ‘어 룸 포 런던’
퀸엘리자베스홀 지붕에 올려진 런던의 이 특별한 방은 배 모양으로 디자인됐다. 건물 위에 올려진 배는 마치 노아의 방주나 홍수 뒤 건물에 걸쳐진 배를 연상시킨다. 항해의 기능을 상실한 배는 이제 예술가와 시민을 위한 방으로 기능하며 전혀 다른 종류의 항해를 시작한다. 이 방에는 갑판, 두 개의 침대, 화장실, 부엌, 도서관, 책상 등이 설치돼 있어 숙식은 물론 연구와 작업이 가능하다. 작은 도서관에는 런던 시와 관련된 다양한 책들이 꽂혀 있고, 항해일지에는 머문 손님들이 그날의 날씨, 구름의 변화, 주변 경관 등 보고 듣고 경험한 것과 느낀 점들을 꼼꼼히 기록한다. 매달 예술가들이 초대되어 퍼포먼스를 펼치고, 작가들이 머물면서 새 책을 구상하며, 시민들이 템즈 강변의 수려한 경관을 내려다보며 하루 밤을 머물 수 있는 방, ‘어 룸 포 런던’.

▲ ‘어 룸 포 런던’(A Room for London), 2012(사진 : Charles Hosea, Courtesy Artangel)

‘어 룸 포 런던’은 전세계 건축사무소와 예술가들을 대상으로 런던의 템즈 강에서 하루 밤을 근사하게 보낼 수 있는 아이디어를 공모했고, 500곳이 넘는 건축사무소와 예술가들이 참여했다. 500대 1이라는 어마어마한 경쟁률을 뚫고 선정된 아이디어가 바로 ‘어 룸 포 런던’이다. 이 아이디어는 데이비드콘건축사무소(David Kohn Architects)와 작가 피오나 배너(Fiona Banner)가 협업한 것으로, 갤러리와 아트센터를 전문으로 하는 데이비드콘건축사무소와 역사적 사건을 재구성하는 작가 피오나 배너의 색깔이 그대로 드러난다.

이 방은 호텔 겸, 공연장과 아트스튜디오의 기능을 하며, 역사적인 소설가 조셉 콘라드(Joseph Conrad)의 경험에서 출발한다. 배에 대한 아이디어는 1890년 조셉 콘라드가 콩고 강을 항해했던 배 ‘벨기에의 왕’(Roi des Belges)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다. 콘라드의 항해 경험이 그의 대표작품 중 하나인 <하트 오브 다크니스(Heart of Darkness)>의 배경이 됐던 것처럼, 이 배 혹은 방으로 초대받는 예술가들은 자신의 작품을 대중에게 선보일 뿐 아니라, 일종의 항해를 통해 새로운 작품을 탄생시키도록 고무된다.

| 방을 운항하는 예술가들
이 방에서 벌어지는 예술활동들은 네 개 섹션으로 구분된다. 음악인들을 위한 ‘사운드 프롬 어 룸’(Sounds from a Room), 저술가들을 위한 ‘어 런던 어드레스’(A London Address), 미술인들을 위한 ‘하트 오브 다크니스’(Hearts of Darkness), 시민들을 위한 ‘아이디어 포 런던’(Ideas for London)이다. 전세계로부터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을 초대해 방에 머물며 작품을 발표하고 구상할 수 있는 시간을 준다. 또 시민들을 초대해 런던을 색다르게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주며, 런던 시에 대한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공유한다. 이들이 이 방에서 펼치는 공연이나 퍼포먼스는 ‘어 룸 포 런던’ 웹사이트를 통해 전세계로 생중계되고, 사우스뱅크센터에 설치된 스크린을 통해서 감상할 수 있다. 현재 6월까지 머물 예술가들이 확정된 상태며, 일반인을 상대로 받은 예약은 몇 분 안에 종료될 만큼 폭발적인 관심을 끌어 모았다.

▲ 1월 28일에 진행된 앤드류 버드의 퍼포먼스 / ▲ 2월 26일에 진행된 하이너 쾨벨스의 퍼포먼스 / ▲ 3월 24~25일에 진행된 로리 앤더슨의 퍼포먼스(위로부터)현재까지 ‘사운드 프롬 어 룸’을 위해 시카고 출신의 음악가 앤드류 버드(Andrew Bird), 독일 출신 작곡가 하이너 괴벨스(Heiner Goebbels), 미국의 전위예술가 로리 앤더슨(Laurie Anderson)이 퍼포먼스를 펼쳤고, 4월 26일 밤 9시 45분에 스웨덴 출신의 그룹 와일드버드 앤 피스드럼(Wildbirds & Peacedrums)의 퍼포먼스가 웹사이트와 사우스뱅크센터 스크린을 통해 생중계될 예정이다. ‘어 런던 어드레스’(A London Address)를 위해 콜롬비아 출신의 후안 가브리엘 바스케스(Juan Gabriel Vásquez), 영국의 대표적인 소설가 재닛 윈터슨(Jeanette Winterson), 스웨덴 작가 스벤 린드크비스트(Sven Lindqvist)가 초대되어 4일 동안 머물며 작품을 구상했고, 그들의 작품 낭송 역시 웹사이트에서 들을 수 있다. ‘하트 오브 다크니스’(Hearts of Darkness)를 위해 제임스 브라이들(James Bridle), 데이비드 번(David Byrne), 제레미 델러(Jeremy Deller), 피오나 배너가 초대되어 작품을 선보였다. ‘아이디어 포 런던’은 특별히 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공모전 형식으로 진행되고 있는데, 매달 런던 시를 위한 뛰어난 아이디어를 공모해 선정된 시민에게 방에 머물 수 있는 혜택을 주는 것은 물론, 만찬에 초대해 런던 시의 비전에 대해서 의견을 피력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다.

‘어 룸 포 런던’은 하나의 작은 방, 더 나아가 하나의 도시, 더 나아가 이 세상이 예술작품과 서로 다름으로 인해서 얼마나 다채롭고 창의적인 곳이 될 수 있는 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프로젝트다. 런던의 작은 방들에서 수많은 인생 이야기가 펼쳐지는 것처럼, 하나의 공간은 우리의 창의적인 사고를 통해 수많은 다채로운 항해를 만들어낼 수 있는 잠재력으로 가득하다. 퀸엘리자베스홀에 설치된 이 방은 내년부터 런던의 다른 곳으로 새로운 항해를 시작할 예정이다.

※ 어 룸 포 런던 웹사이트 http://aroomforlondon.co.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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