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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드리드, 봄날의 가을축제(the Festival de Otoño en Primav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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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istory 댓글 0건 조회 2,651회 작성일 14-03-01 0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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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전수현(포르투대학 석사과정)

▲ 마드리드 제29회 봄날의 가을축제 포스터마드리드가 ‘페스티발 데 오토뇨 엔 프리마베라’(the Festival de Otoño en Primavera)로 한동안 들썩거렸다. 봄에 열리는 가을축제라. 여러가지를 떠올리게 하는 이 형용모순의 이름은 눈길을 사로잡기에 충분할 뿐만 아니라, 스페인에서도 봄날이 한창인 때를 뜻하고 있어서 그 중의(重義)를 따져도 축제 이름으로 손색이 없다.
본디 가을축제(the Festival de Otoño)는 매년 11월에 열리던 국제 연극제였다. 대상이 연극, 뮤지컬, 무용, 서커스, 음악 등을 망라한 공연예술분야 전체로 확장되어 그 규모가 커지자 세부적인 조율만으로는 풀기 어려운 문제들에 부딪히기 시작했는데, 여러 조건상 축제시기를 옮기는 것이 합리적이겠다는 판단을 조심스럽게 내리면서 2010년부터는 5월로 옮겨 축제를 열게 되었다. 더 이상 가을에 열리는 축제가 아니지만 25년이 넘도록 쌓아온 역사를 존중하여 가을축제라는 이름을 그대로 두고 그 앞에 ‘봄’을 더했는데 덕분에 훨씬 더 고유한 이름으로 태어난 셈이다.

| 개막공연 - 피터 브룩의 양복(The Suit)
올해 개막공연으로는 영국의 노장, 피터 브룩(Peter Brook)이 연출한 <양복>이 초청되었다. 브룩은 이미 1999년에 프랑스어 번역판인 <Le Costume>을 무대에 올린 바 있다. 12년만에 원작대로 영어로 돌아온 새로운 <양복>은 초연에서와 마찬가지로 그의 오랜 파트너인 파리 뷔페뒤노르(Bouffes du Nord)극단이 함께 했다.
▲ <양복> 공연 장면<양복>은 남아프리카 작가인 칸 템바(Can Themba)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는데, 아파르트헤이드 게토(apartheid ghett, 인종분리구역)에서 벌어지는 사랑과 증오의 삼각관계를 다루고 있다. 어느 날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남자는 자신의 아내가 바람을 피우고 있었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남편의 등장에 아내의 애인은 옷을 남겨둔 채로 줄행랑을 치고, 남편은 아내의 죄를 증명하고 있는 그 옷을 귀한 손님으로 대접하라고 아내를 들볶기 시작한다. 피아노와 기타, 트럼펫의 아름다운 선율 속에서 전개되는 이 우스꽝스럽고 모순적이며 잔인한 이야기는 용서의 실패가 가져오는 비극으로 끝을 맺는다.
이 작품은 마치 마술처럼 관객들 눈앞에서 빈 손을 흔들다가 무언가를 끄집어내어 보여준다. 무대 위에서 직접 연주되는 음악과 노래는 어떤 장면을 극의 전개에서 떼어내어 다른 시간과 장소로 슬쩍 옮겨놓기도 하고, 절제된 소품들은 마치 어린아이들 손에 들려진 나무토막이 인형도 되고 자동차도 되는 것처럼 그 무엇으로든 변하고, 관객들의 상상은 텅빈 배경에 배우들이 그려주는 밑그림을 따라 날아오르게 된다. 함께 상상하게 만드는 그 풍성한 단순함(simplicity)이 가장 큰 매력으로 다가오는 작품이다.

| 하이라이트 - 로베르 르파쥬의 카드게임 1: 스페이드(Playing Cards 1: Spades)
▲ <카드게임 1: 스페이드> 공연 장면이 시대에는 더 이상 비견할 사람이 없다는 극찬과 함께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공연연출가인 로베르 르파쥬(Robert Lepage)의 작업도 만나볼 수 있었다. 로베르 르파쥬는 <태양의 서커스(Cirque du Soleil)>나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공연실황인 <스크린 위의 오페라(Met Opera On Screen)> 등을 통해서 한국에도 잘 알려져 있다.
특히 이번 마드리드 무대는 많은 사람들이 기다려온 그의 신작 <카드게임 1: 스페이드>가 세계에 초연되는 자리였다. 스페이드를 시작으로 하트, 다이아몬드, 클로버로 이어지는 카드게임의 연작으로 게임의 규칙과 신호, 셈법, 카드 종류(suit)가 가진 성격, 그 신화들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칼을 상징하는 스페이드답게 이 작품은 전쟁을 다루고 있다. 360도로 회전되는 원형무대 위에서는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한 2003년을 배경으로 피폐한 바그다드와 흥청거리는 라스베가스가 그려진다. 중동과 서구, 빈과 부가 극단적으로 대비되지만 두 도시 모두 사막 한 가운데 세워졌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주제를 다층적으로 교차시키는 영리한 설정들은 계속되는데, 지금 이 나라가 전쟁을 일으켰다는 걸 인식하는 것조차 어려운 라스베가스에서 이어지는 카드게임이 있는가 하면 전장의 벙커에서 군인들의 소일거리로 벌어지는 카드게임도 있다. 전쟁과 전쟁 속 전쟁에 자신의 운명을 걸고 울고 웃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연출가의 손에서 카드처럼 돌아간다.

| 하이라이트 - 뮤리엘 로메로의 <스토코스(Stocos)>
▲ 뮤리엘 로메로의 스토코스(Stocos)무용에서도 흥미로운 작품들이 여럿 소개되었는데 그중 뮤리엘 로메로(Muriel Romero)의 <스토코스>는 주목할 만한 무대였다. 제네바 그랑떼아트르(Grand Théâtre de Genève)와 바이에른국립발레단(Bayerischen Staatsballetts)의 전임 수석발레리나였던 뮤리엘 로메로는 작곡가이자 심리학자인 파블로 팔라치오(Pablo Palacio)와의 공동작업으로 최근 스페인 현대무용계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 넣고 있다.
스토코스는 인공지능연구자인 다니엘 비지그(Daniel Bisig)와 함께 학제 간 연구로 접근한 프로젝트의 하나로, 앞선 아쿠스매트릭스(Acusmatrix), 카텍시스(Catexis)와 함께 3부작으로 만들어졌다. 인공지능에 기반한 시뮬레이션과 임의결정과정을 응용하여 무용수, 시각적 개체, 소리, 빛이 서로 미학적인 관계 속에서 연동하게 만든 작업이다. 이를테면 무용수의 동작a가 행해지면 소리a와 시각이미지a가 등장하는 식의 단순한 연동이 되지 않도록, 추측통계학(stochastics)과 같은 이론을 도입하여 구성 요소들이 임의적인 관계를 만들고 이를 통해 새로운 움직임을 얻으려는 것이다.
미리 짜여진 안무들이 즉흥적인 배열(sequence)을 갖게 되면서 무대를 만들어 간다는 것이 그 핵심이다. 여러 소리조각들이 (확률)함수를 통해 조합되어 음악으로 만들어지고 이는 무대와 객석을 둥글게 둘러싼 8개의 스피커를 통해 공간적인 움직임까지 얻는다. 시뮬레이션된 시각적 개체들도 마찬가지로 실시간으로 생성되어 무대와 무용수들의 몸 위에서 동적인 연속성을 만들어 낸다. 그 상호관계의 합이 주는 아름다움은 마치 인간 무용수와 가상 무용수가 함께 춤을 추고 있는 무대를 보는 것처럼 느껴지게 한다.

| 알칼라 코미디극장(Corral de Comedias de Alcalá)
올해 가을축제는 라아바디아 극장(수도원 극장, Teatro de La Abadía)이나 라까사엔센디다(이글거리는 집, La Casa Encendida)를 비롯하여 마드리드 커뮤니티 내 10여 곳의 극장들에서 함께 진행되었다. 그 중에서도 알칼라코미디극장은 400년이 넘는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연극사 박물관이라고 할 만한 극장이다.
스페인의 코미디극장, 직역하자면 희극 마당이란 뜻의 코랄데코메디아스(Corral de Comedias)는 16세기무렵 주택이나 여관의 중정(patio)에 만들어진 무대에서 시작되었다. 중정은 물리적으로 에워쌓인 닫힌 공간이라서 특별한 장치 없이도 배우들의 소리가 비교적 잘 전달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붕에 가림막을 쳐서 불필요한 빛을 막고 신분과 성별에 따라 위계를 달리한 관람석이 만들어졌다. 상위 귀족들은 실내에서 중정으로 난 창이나 발코니릍 통해 극을 관람했는데 이러한 형식들은 후에 상설극장을 짓는 데에 반영되었다. 이름은 코메디극장이라고 되어 있으나 비극, 정극을 모두 아우르는 공연들이 올랐고, 로페 데 베가(Lope de Vega)부터 페드로 칼데론 데 라 바르카(Pedro Calderon de la Barca)등의 문인들과 함께 스페인 연극의 황금시대를 함께 한 극장 형식이라고 할 수 있다. 전성기를 지나 대부분이 사라지고 오늘날까지 극장으로 쓰이고 있는 코랄은 두 곳이 남아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알칼라의 코디미극장이다.

▲ 16세기 스페인의 전형적인 코미디극장(왼쪽)과 알칼라코미디극장(오른쪽)

이 극장이 위치한 알칼라 데 에나레스(Alcalá de Henares, ‘에나레스 강가의 성’이라는 뜻)는 마드리드 커뮤니티(지방자치구)에 속한 도시로 마드리드에서 31km 정도 떨어져 있다. 로마제국 이전부터 형성된 유서 깊은 도시로 스페인 역사를 기술할 때 그 굵직한 순간들에 숱하게 등장하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세르반테스(Cervantes)의 고향이기도 하다. 알카라 코미디극장은 1601년 시에서 주관하여 프란시스코 산체스(Francisco Sánchez)의 작업으로 세워졌다. 한 세기를 지날 때마다 각 시대에 맞는 양식으로 조금씩 개조되었고 20세기에는 영화관으로 변용되기도 해서 그 자체로 스페인 극장의 살아 있는 역사인 셈이다. 극장 본연의 공연공간을 되찾는 문제를 두고 알칼라 시는 염격하고 신중한 태도를 취해서 2005년에야 복원완공이 이루어졌다. 그만큼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가져왔고, 그 재개관 무대에는 조르디 사발(Jordi Savall)의 콘서트 ‘키호테의 음악’(Músicas del Quijote)이 올려졌다.

이번 축제에는 세계 각국의 프로덕션 23곳이 참가하여 공동작업까지 도합 24개의 작품을 선보였다. 그 중에서 여섯 작품이 세계 초연, 열한 작품이 스페인 초연이었다. 4주에 걸친 총 공연이 81회로 전체 규모는 예년의 60퍼센트에도 미치지 못할 만큼 축소된 것인데 세계 초연 무대만큼은 오히려 크게 늘어난 셈이다. 여러 악조건 속에서도 축제를 고무시키는 현명한 선택이었다고 보인다. 가을축제가 30주년을 맞이하는 내년에도 봄을 기다려 온 사람들을 실망시키지 않으리라 생각된다.

마드리드 봄날의 가을 축제(the Festival de Otoño en Primavera) http://www.madrid.org/fo/2012/es/index.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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