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 주제사라마구재단(Fundação José Saram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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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angelica 댓글 0건 조회 2,729회 작성일 14-02-15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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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전수현(포르투대학 석사과정)
리스본 구 도심의 중심점이라고 할 수 있는 코메르시우 광장(Praça do Comércio)에서 동쪽으로 3백 미터 정도 걷다보면 기묘한 하얀 석조건물을 만날 수 있다. 그 앞에는 올리브나무가 한 그루 서 있는데, 사랑과 미움을 한 몸에 받았던 포르투갈의 문인이 그 소원대로 올리브나무 그늘 아래 잠들어 있다. 주제 사라마구(José Saramago, 1922~2010). 1998년도 노벨문학상 수상자이며, 영화로도 알려진 <눈먼자들의 도시(Ensaio sobre a cegueira, 1995)>를 비롯한 여러 작품이 이미 오래전부터 세계 각국에서 출판되고 있다.
주제사라마구재단은 올해 유난히 분주한 여름을 보냈다. 아지냐가(Azinhaga)에서 리스본, 바로 올리브나무 뒤편의 저 하얀 석조건물로 본부를 옮기게 된 사라마구재단은 지난 6월 18일, 이전 개관식을 크게 마련했다. 아지냐가는 리스본에서 1백 킬로미터쯤 떨어져 위치한 작은 도시로 사라마구의 고향이다. 2007년에 시작된 사라마구재단은 그간 작가의 생가를 본부 사무실로 쓰면서 ‘까자 두스 비쿠스’(Casa dos Bicos, 뾰족코의 집)의 재건축 완공을 기다려 왔는데, 사라마구가 세상을 뜬 지 이태가 되는 이번 기일에 맞춰 그 문을 제대로 열게 된 것이다.

재단은 또한 처음으로 리스본 ‘침묵의 축제! 2012’(Festival Silêncio! 2012)에 참여했다. ‘단어의 수도 리스본’(Lisboa Capital da Palavra)이라는 슬로건 아래 여름마다 열리고 있는 침묵의 축제는, 문학만이 아니라 음악, 연극, 공연, 영화를 모두 망라하여 예술 본연이 갖는 선언이자 전언(傳言)의 역할에 주목하는 축제이다. 사라마구재단에서 침묵의 축제를 위해 처음으로 준비한 프로그램은 ‘사라마구 읽기’로, ‘뾰족코의 집’ 안팎에서는 사라마구의 시 낭송과 ‘침묵이 얼마나 깊은가’에 대한 대담, 다큐멘터리 필름인 ‘주제와 필라르’(José e Pilar)가 상영되었다.
| 까자 두스 비쿠스: 뾰족코의 집(Casa dos Bicos)
언뜻 보면 어느 시대의 건물인지 판단을 내리기 쉽지 않은 ‘뾰족코의 집’은 1523년에 지어진 귀족 저택이다. 브라스 드 알부케르크(Brás de Albuquerque) 소유로, 그의 아버지가 고아(Goa) 지방을 중심으로 한 포르투갈령 인도의 제독이었던 알폰수 드 알부케르크(Afonso de Albuquerque)라는 사실만으로도 그 집안을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브라스 드 알부케르크는 몇 년 간 이탈리아를 여행하면서 르네상스 건축에 심취했었는데, 자신의 저택을 짓게 되면서는 특히 이탈리아 페라라(Ferrara)에 있는 디아만티 저택(Palazzo dei Diamanti)을 모델로 삼기를 원했다. 건축가 비아지오 로세티(Biagio Rossetti)의 작품인 디아만티 저택은 다이아몬드형(피라미드형)으로 튀어나온 돌장식들로 인해 이름도 디아만티, 즉 다이아몬드라고 불리는 저택이다. 그리하여 입면은 디아만티 저택을 본딴 다이아몬드 형의 돌 부조장식으로 이루어지고, 창문들의 자유로운 배치는 당대의 양식인 마누엘리노 양식(O Estilo manuelino : 포르투갈 후기고딕양식의 하나로, 그 전성기를 이끌었던 왕인 동 마누엘 1세(D. Manuel I, 1469~1521) 이름을 딴 건축양식을 말한다.)을 따르는 저택이 리스본 떼주(Tejo) 강변에 세워지게 되었다. 그러나 알부케르크의 저택은 그 주인의 바람과 달리 다이아몬드 궁이라고 불리지 못했다. 리스본 시민들에게는 입면의 돌 부조장식이 그저 뾰족하게 솟은 코로 보일 뿐이어서 다이아몬드 궁이라는 이름은 시간이 흐르며 사라지고 ‘뾰족코의 집’이라는 이름이 남게 된 것이다.
‘뾰족코의 집’은 1755년 리스본 대지진 때 2, 3층 부분이 무너진 채로 간신히 살아남았다. 본디 정면이 북쪽으로 나 있던 것을 남쪽면으로 돌려 앉히고 단층건물 상태 그대로 약간의 보수만 거친 뒤에 바깔랴우(소금에 절인 대구) 상인들에게 넘겨졌고 그 뒤 긴 시간 동안은 바깔랴우 창고로 쓰이게 되었다. 남쪽 입면이 접하는 길, 즉 오늘날까지도 ‘뾰족코의 집’ 주소는 ‘바깔랴우 상인의 길’(Rua dos Bacalheiro)인데 여기에서도 이 역사의 흔적을 읽을 수 있다.
1960년대에 들어서 리스본시는 역사적 가치를 고려하여 이 창고를 인수한다. 1983년 국제전시를 위해 재건축안이 마련되면서 1755년 대지진 이전 기록을 바탕으로 3개 층을 갖춘 원래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리스본 시유의 건물로 한동안은 포르투갈 대항해시대를 기념하는 국가위원회에서 사용하다가 2008년 주제사라마구재단에 운용을 맡길 것을 결정하게 되면서 건축가 마누엘 빈센트(Manuel Vicente)에 의해 내부공간이 지금의 모습으로 개축되었다.
| 사라마구의 생애
스스로를 무신론자이며 염세주의자로 일컫는 사라마구는 지금까지도 독자층의 호불호가 갈리면서 첨예하게 대립하는 작가로 일컬어지고 있다. ‘사라마기아노 스타일’(o estilo saramaguiano)이라고 불리는 그의 독특한 문체는 한 문장이 한 페이지를 넘겨 이어질 만큼 긴 호흡의 만연체를 특성으로 뽑을 수 있다. 사라마구는 마침표가 도로의 교통신호등처럼 글의 흐름을 막는다고 이야기하곤 했다. 여기에 민화적인 색채와 풍부한 형용사, 18세기 바로크 양식의 기도문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 구어적이고 독백적인 어조 등이 더해지면서 그만의 독특한 문체를 이루고 있다.
가난한 집안 출신으로 학업을 제대로 이어갈 수 없었던 사라마구는 일찌감치 자동차 정비소에서 기능공으로 일을 시작했다. 그대신 밤마다 리스본의 중앙시립도서관에서 책을 읽으며 스스로 문학도의 길을 닦아 나갔다. 1947년에 첫 작품인 소설 <죄의 땅(Terra do Pecado)>을 발표하지만 두 번째 작품 출판이 좌절되면서 그 후 몇 년 간은 시작(詩作)에 집중하기도 한다. 그 무렵 그는 출판사에서 편집과 번역 일을 하고 있었고 나중에는 신문기자로도 일했는데, 열렬한 무정부 공산주의자인 그는 이 시기 문학보다는 살라자르(Salazar)의 독재에 대한 정치비평에 몰두했던 것으로 보인다.
1974년 카네이션 혁명으로 살라자르의 독재체제는 끝이 나지만 포르투갈은 새로운 사회를 정립하는 문제를 놓고 극심한 혼란의 1년여를 보낸다. 이 와중에 새좌파정부와도 대립각을 세우게 된 사라마구는 1975년 신문사 부편집장에서 해임되고, 더 이상은 일을 찾지 않겠다고 결심한다. 이 사건은 그가 저널리스트에서 소설가로 돌아오게 되는 계기가 된 셈인데, 그 후에 쓰여진 사라마구의 작품들은 그에게 본격적으로 작가로서의 명성을 가져다 주었다.
1991년 예수를 새롭게 그려 낸 <예수 그리스도의 두번째 복음(O Evangelho Segundo Jesus Cristo, 한국에서는 ‘예수복음’으로 출판되었다)>이 출판되자 가톨릭 교황청과의 갈등이 심화되는데, 가톨릭 커뮤니티의 영향권 아래 있던 포르투갈 정부는 사라마구의 작품이 유럽 문학상 후보에 선정되지 못하도록 정치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이에 환멸을 느낀 사라마구는 유배라 표현하며 스스로 포르투갈을 떠났다. 사라마구는 그의 아내이자 스페인 저널리스트인 필라르 델 리오(Pilar del Río)와 함께 스페인 카나리아 제도의 란사로테(Lanzarote)에 정착했고, 생의 마지막까지 그곳에 머물렀다. ‘책으로 만들어진 집’이라는 별칭이 붙은 란사로테의 집은 사라마구 생전의 쓰임과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사라마구기념관으로 재단에서 관리하고 있다.
사라마구재단은 마치 오랜 시간 기다려 왔다는 듯이 다채로운 행사를 연이어 쏟아내고 있다. 8월 18일, 사라마구의 90번째 생일을 90일 남겨두고는 ‘90년, 아흔 개의 단어’라는 릴레이를 시작했다. 하루에 하나씩, 사라마구와 관련된 단어에서 이야기를 짤막하게 풀어내면서 90일동안 작가를 기리는 것이다. 또 재단에서는 매월 ‘블리문다(Blimunda, <수도원의 비망록(Memorial do Convento, 1982)>의 여주인공이다.)’라는 디지털 잡지를 발행하고 있는데, 8월호에는 조르지 아마두(Jorge Amado, 1912~2011)를 그 탄생 1백 번째 해를 기념하여 다루고 있다. 동시에 ‘뾰족코의 집’에서는 서점과 도서관을 통해 8월 한 달 내내 그의 작품들로 ‘계피향이 날 것 같은’ 파티를 열고 있다.(조르지 아마두는 브라질 작가로, 그 대표작으로는 <가브리엘라 정향과 계피>가 있다.) 기념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 보게끔 하는 행사들이다.
사라마구의 <포르투갈에서의 여행(Viagem a Portugal, 1981)>이나 <돌뗏목(A Jangada de Pedra, 1986)>을 비롯한 많은 작품들은 판타지문학이면서도 포르투갈의 역사와 그 장소에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어서 종종 그 자체로 하나의 여행에 비견되곤 한다. 이미 여러 해외 언론에서는 사라마구를 통해 포르투갈을 조명하는 기획으로 작가와 관련되었거나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포르투갈의 여러 장소를 소개해 왔다. 이제는 사라마구재단 본부가 위치한 ‘뾰족코의 집’도 그 한 자리를 제대로 차지한 것으로 보인다.
주제사라마구재단은 올해 유난히 분주한 여름을 보냈다. 아지냐가(Azinhaga)에서 리스본, 바로 올리브나무 뒤편의 저 하얀 석조건물로 본부를 옮기게 된 사라마구재단은 지난 6월 18일, 이전 개관식을 크게 마련했다. 아지냐가는 리스본에서 1백 킬로미터쯤 떨어져 위치한 작은 도시로 사라마구의 고향이다. 2007년에 시작된 사라마구재단은 그간 작가의 생가를 본부 사무실로 쓰면서 ‘까자 두스 비쿠스’(Casa dos Bicos, 뾰족코의 집)의 재건축 완공을 기다려 왔는데, 사라마구가 세상을 뜬 지 이태가 되는 이번 기일에 맞춰 그 문을 제대로 열게 된 것이다.

재단은 또한 처음으로 리스본 ‘침묵의 축제! 2012’(Festival Silêncio! 2012)에 참여했다. ‘단어의 수도 리스본’(Lisboa Capital da Palavra)이라는 슬로건 아래 여름마다 열리고 있는 침묵의 축제는, 문학만이 아니라 음악, 연극, 공연, 영화를 모두 망라하여 예술 본연이 갖는 선언이자 전언(傳言)의 역할에 주목하는 축제이다. 사라마구재단에서 침묵의 축제를 위해 처음으로 준비한 프로그램은 ‘사라마구 읽기’로, ‘뾰족코의 집’ 안팎에서는 사라마구의 시 낭송과 ‘침묵이 얼마나 깊은가’에 대한 대담, 다큐멘터리 필름인 ‘주제와 필라르’(José e Pilar)가 상영되었다.
| 까자 두스 비쿠스: 뾰족코의 집(Casa dos Bicos)언뜻 보면 어느 시대의 건물인지 판단을 내리기 쉽지 않은 ‘뾰족코의 집’은 1523년에 지어진 귀족 저택이다. 브라스 드 알부케르크(Brás de Albuquerque) 소유로, 그의 아버지가 고아(Goa) 지방을 중심으로 한 포르투갈령 인도의 제독이었던 알폰수 드 알부케르크(Afonso de Albuquerque)라는 사실만으로도 그 집안을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브라스 드 알부케르크는 몇 년 간 이탈리아를 여행하면서 르네상스 건축에 심취했었는데, 자신의 저택을 짓게 되면서는 특히 이탈리아 페라라(Ferrara)에 있는 디아만티 저택(Palazzo dei Diamanti)을 모델로 삼기를 원했다. 건축가 비아지오 로세티(Biagio Rossetti)의 작품인 디아만티 저택은 다이아몬드형(피라미드형)으로 튀어나온 돌장식들로 인해 이름도 디아만티, 즉 다이아몬드라고 불리는 저택이다. 그리하여 입면은 디아만티 저택을 본딴 다이아몬드 형의 돌 부조장식으로 이루어지고, 창문들의 자유로운 배치는 당대의 양식인 마누엘리노 양식(O Estilo manuelino : 포르투갈 후기고딕양식의 하나로, 그 전성기를 이끌었던 왕인 동 마누엘 1세(D. Manuel I, 1469~1521) 이름을 딴 건축양식을 말한다.)을 따르는 저택이 리스본 떼주(Tejo) 강변에 세워지게 되었다. 그러나 알부케르크의 저택은 그 주인의 바람과 달리 다이아몬드 궁이라고 불리지 못했다. 리스본 시민들에게는 입면의 돌 부조장식이 그저 뾰족하게 솟은 코로 보일 뿐이어서 다이아몬드 궁이라는 이름은 시간이 흐르며 사라지고 ‘뾰족코의 집’이라는 이름이 남게 된 것이다.
‘뾰족코의 집’은 1755년 리스본 대지진 때 2, 3층 부분이 무너진 채로 간신히 살아남았다. 본디 정면이 북쪽으로 나 있던 것을 남쪽면으로 돌려 앉히고 단층건물 상태 그대로 약간의 보수만 거친 뒤에 바깔랴우(소금에 절인 대구) 상인들에게 넘겨졌고 그 뒤 긴 시간 동안은 바깔랴우 창고로 쓰이게 되었다. 남쪽 입면이 접하는 길, 즉 오늘날까지도 ‘뾰족코의 집’ 주소는 ‘바깔랴우 상인의 길’(Rua dos Bacalheiro)인데 여기에서도 이 역사의 흔적을 읽을 수 있다.
1960년대에 들어서 리스본시는 역사적 가치를 고려하여 이 창고를 인수한다. 1983년 국제전시를 위해 재건축안이 마련되면서 1755년 대지진 이전 기록을 바탕으로 3개 층을 갖춘 원래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리스본 시유의 건물로 한동안은 포르투갈 대항해시대를 기념하는 국가위원회에서 사용하다가 2008년 주제사라마구재단에 운용을 맡길 것을 결정하게 되면서 건축가 마누엘 빈센트(Manuel Vicente)에 의해 내부공간이 지금의 모습으로 개축되었다.
| 사라마구의 생애
스스로를 무신론자이며 염세주의자로 일컫는 사라마구는 지금까지도 독자층의 호불호가 갈리면서 첨예하게 대립하는 작가로 일컬어지고 있다. ‘사라마기아노 스타일’(o estilo saramaguiano)이라고 불리는 그의 독특한 문체는 한 문장이 한 페이지를 넘겨 이어질 만큼 긴 호흡의 만연체를 특성으로 뽑을 수 있다. 사라마구는 마침표가 도로의 교통신호등처럼 글의 흐름을 막는다고 이야기하곤 했다. 여기에 민화적인 색채와 풍부한 형용사, 18세기 바로크 양식의 기도문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는 구어적이고 독백적인 어조 등이 더해지면서 그만의 독특한 문체를 이루고 있다.
가난한 집안 출신으로 학업을 제대로 이어갈 수 없었던 사라마구는 일찌감치 자동차 정비소에서 기능공으로 일을 시작했다. 그대신 밤마다 리스본의 중앙시립도서관에서 책을 읽으며 스스로 문학도의 길을 닦아 나갔다. 1947년에 첫 작품인 소설 <죄의 땅(Terra do Pecado)>을 발표하지만 두 번째 작품 출판이 좌절되면서 그 후 몇 년 간은 시작(詩作)에 집중하기도 한다. 그 무렵 그는 출판사에서 편집과 번역 일을 하고 있었고 나중에는 신문기자로도 일했는데, 열렬한 무정부 공산주의자인 그는 이 시기 문학보다는 살라자르(Salazar)의 독재에 대한 정치비평에 몰두했던 것으로 보인다.
1974년 카네이션 혁명으로 살라자르의 독재체제는 끝이 나지만 포르투갈은 새로운 사회를 정립하는 문제를 놓고 극심한 혼란의 1년여를 보낸다. 이 와중에 새좌파정부와도 대립각을 세우게 된 사라마구는 1975년 신문사 부편집장에서 해임되고, 더 이상은 일을 찾지 않겠다고 결심한다. 이 사건은 그가 저널리스트에서 소설가로 돌아오게 되는 계기가 된 셈인데, 그 후에 쓰여진 사라마구의 작품들은 그에게 본격적으로 작가로서의 명성을 가져다 주었다.
1991년 예수를 새롭게 그려 낸 <예수 그리스도의 두번째 복음(O Evangelho Segundo Jesus Cristo, 한국에서는 ‘예수복음’으로 출판되었다)>이 출판되자 가톨릭 교황청과의 갈등이 심화되는데, 가톨릭 커뮤니티의 영향권 아래 있던 포르투갈 정부는 사라마구의 작품이 유럽 문학상 후보에 선정되지 못하도록 정치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이에 환멸을 느낀 사라마구는 유배라 표현하며 스스로 포르투갈을 떠났다. 사라마구는 그의 아내이자 스페인 저널리스트인 필라르 델 리오(Pilar del Río)와 함께 스페인 카나리아 제도의 란사로테(Lanzarote)에 정착했고, 생의 마지막까지 그곳에 머물렀다. ‘책으로 만들어진 집’이라는 별칭이 붙은 란사로테의 집은 사라마구 생전의 쓰임과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사라마구기념관으로 재단에서 관리하고 있다.사라마구재단은 마치 오랜 시간 기다려 왔다는 듯이 다채로운 행사를 연이어 쏟아내고 있다. 8월 18일, 사라마구의 90번째 생일을 90일 남겨두고는 ‘90년, 아흔 개의 단어’라는 릴레이를 시작했다. 하루에 하나씩, 사라마구와 관련된 단어에서 이야기를 짤막하게 풀어내면서 90일동안 작가를 기리는 것이다. 또 재단에서는 매월 ‘블리문다(Blimunda, <수도원의 비망록(Memorial do Convento, 1982)>의 여주인공이다.)’라는 디지털 잡지를 발행하고 있는데, 8월호에는 조르지 아마두(Jorge Amado, 1912~2011)를 그 탄생 1백 번째 해를 기념하여 다루고 있다. 동시에 ‘뾰족코의 집’에서는 서점과 도서관을 통해 8월 한 달 내내 그의 작품들로 ‘계피향이 날 것 같은’ 파티를 열고 있다.(조르지 아마두는 브라질 작가로, 그 대표작으로는 <가브리엘라 정향과 계피>가 있다.) 기념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 보게끔 하는 행사들이다.
사라마구의 <포르투갈에서의 여행(Viagem a Portugal, 1981)>이나 <돌뗏목(A Jangada de Pedra, 1986)>을 비롯한 많은 작품들은 판타지문학이면서도 포르투갈의 역사와 그 장소에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어서 종종 그 자체로 하나의 여행에 비견되곤 한다. 이미 여러 해외 언론에서는 사라마구를 통해 포르투갈을 조명하는 기획으로 작가와 관련되었거나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포르투갈의 여러 장소를 소개해 왔다. 이제는 사라마구재단 본부가 위치한 ‘뾰족코의 집’도 그 한 자리를 제대로 차지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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