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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와 예술: 문화전쟁 속의 미국 국립 초상화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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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angelica 댓글 0건 조회 1,554회 작성일 14-02-15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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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장웅조(오하이오주립대 예술정책경영 박사과정)


지난 12월 4일 토요일, 약 100여명의 군중들이 워싱턴 DC의 트랜스포머 미술관(Transformer Gallery)을 출발해 국립 초상화 미술관(National Portrait Gallery)을 향하여 시위행진을 벌였다.

시위가 진행되던 중, 블레이슨스타인(Mike Blasenstein)씨는 초상화 미술관 입구에서 목에 아이패드를 걸고 미술관측이 전시 도중 철거한 데이비드 보이너로비치(David Wojnarowicz)의 영상작품을 보여주며 침묵시위를 벌였다. 결국 블레이슨스타인 씨와 그의 시위장면을 촬영하고 있던 또 다른 시위자는 경찰에 강제 연행되었고, 초상화 박물관을 포함한 스미소니언 협회(Smithsonian Institution)에 속한 모든 박물관과 미술관에 출입을 불허하는 금지통지서에 사인을 하고서야 훈방될 수 있었다.

| Hide/Seek: Difference and Desire in American Portraiture

이 사건은 지난 10월 30일부터 국립 초상화 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숨기기/찾기: 미국 초상화속의 차이와 욕망(Hide/Seek: Difference and Desire in American Portraiture)’이라는 전시회에서 시작된다. 이번 전시는 현대 미국 초상화의 역사를 '성적 차이에 대한 인식의 변천'이라는 틀거리로 해석하여, 존 싱어 사전트(John Singer Sargent), 앤디 워홀(Andy Warhol), 제스퍼 존스(Jasper Johns), 애니 레이보비츠(Annie Leibovitz), 조지아 오키프(Georgia O’Keeffe) 등 미국 현대 예술 대가들의 105점에 달하는 작품들을 소개하고 있다. 기획의도에 따라 작품들을 '이성애와 동성애에 대한 차이에 사회적 관심이 없었던 시기(Before Difference)'로부터 '논쟁의 시기(Consensus and Conflict)', '새로운 시작(New Beginnings)' 등 총 7개의 소주제로 구분하여 전시하였는데, 이중 특히 '에이즈(AIDS)' 주제관과 '새로운 시작' 주제관에 전시되어 있던 작품들이 사회적 논란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주제의 민감성으로만 따지자면, 동성애는 현재 미국에서 크게 금기시되는 것이 아니어서 전시회에서 논란이 되고 있던 작품들은 일부 시민들의 가십거리로 잊혀질 수도 있었다. 오히려 작년 미스 아메리카 선발대회 당시 동성결혼에 대한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가 큰 비난을 받고 결국 언론의 표적이 되어 곤욕을 치른 전 미스 캘리포니아 케리 프리진의 일화에서 볼 수 있듯이, 동성애에 대하여 공공연한 반대를 표명하는 것은 요즘 미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정작 이번 전시회에 대한 논란이 커지게 된 것은 미국 최대의 가톨릭 시민단체인 가톨릭 리그(Catholic League for Religious and Civil Rights)가 보이너로비치의 영상작품 'A Fire in My Belly'를 신성모독이라는 이유로 공식 비판하기 시작하면서이다. 에이즈 합병증으로 1992년 죽은 데이비드 보이너로비치의 1987년작인 이 4분짜리 자화상적 영상에는 십자가의 피흘리는 예수상 위로 개미들이 기어다니는 장면이 약 11초 정도 나오는데, 바로 이것이 문제가 되었던 것이다. 가톨릭 리그가 이 작품을 들어 이 전시회를 비판하는 성명을 발표하자, 이번에는 지난 11월 중간선거로 다수당의 지위를 확보한 공화당의 의원들도 뒤이어 비판하기 시작하였다. 존 뵈너(John Boehner) 하원의장 내정자와 에릭 캔터(Eric Cantor) 차기 공화당 원내대표가 잇따라 언론을 통하여 "시민세금의 터무니없는 낭비"라며 비판성명을 발표했고, 지난 11월 30일에는 스미소니언 협회의 예산 책정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하원 세출위원회 소속의 잭 킹스턴(Jack Kingston)의원이 "스미소니언 협회의 예산을 다시 고려해 봐야겠다"고 직접적으로 으름장을 놓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 예술의 윤리와 검열

사실 종교계와 정치권의 논쟁에 휩싸인 예술작품 전시회는 이번만은 아니다. 대표적으로 1999년 뉴욕의 브루클린 미술관이 Sensation이라는 전시회에서 선보였던 나이지리아계 영국 미술가 크리스 오필리(Chris Ofili)의 작품 'The Holy Virgin Mary' 때문에 당시 뉴욕시장이었던 루디 줄리아니(Rudy Giuliani)로부터 고소를 당한 사건이 있다. 이 작품이 문제가 되었던 것은 성모 마리아를 흑인 여성으로 묘사하며 코끼리 배설물로 칠하고, 외설잡지에서 오려낸 여성성기 사진을 콜라주하여 케루빔과 세라핌 천사들을 표현하였기 때문이다. 전시회는 종교계의 반발을 불러일으켜, 종교 단체 회원들이 구토용 종이 봉지를 미술관 입구에서 나눠주는 시위까지 벌이게 된다.
당시 줄리아니 시장은 "표현의 자유를 보호하는 수정헌법은 잔혹하고 역겨운 프로젝트를 옹호하지 않는다"는 유명한 말을 남기며 브루클린 미술관을 고소하게 되는데, 정작 작가인 오필리는 코끼리 배설물은 자신의 고향인 나이지리아에서 집을 짓는 도구와 밥을 짓는 연료로 쓰이는 등 대자연의 은혜를 상징하며, 여성의 성기는 생명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 사건은 결국 줄리아니 시장이 고소를 취하하면서 일단락되었지만, 오필리는 미국의 대표적 보수 언론인 버나드 골드버그(Bernard Goldberg)가 발간한 '미국을 망치는 100대 인물'에서 86위에 오르는 등의 수모를 겪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 보이너로비치의 작품이 더 큰 논란을 불러 일으킨 것은 정치권의 비판 이후 불과 3일 만에 미술관 측이 그의 작품을 철거하기로 결정하면서이다. 작품 철거 소식이 알려지자, 우선 예술계에서 정치권력의 예술작품 검열에 굴복한 미술관측을 비판하기 시작했다. 워싱턴 포스트의 예술비평가 블레이크 고프닉(Blake Gopnik)은 "미술관은 검열에 굴복해서는 안된다"며 즉각 비판 기사를 실었고, 뒤이어 많은 비평가들과 예술인들이 국립 초상화 박물관을 성토하기에 이른 것이다. 동성애자 옹호 단체에서도 집단적으로 반발하기 시작하여 12월 4일에는 워싱턴 DC 시내에서 시위를 벌였고, 앞서 언급한 두 명의 시위자들도 이 날 연행되었다 풀려났다.

| 계속되는 문화전쟁

이렇게 복잡하게 전개된 논란의 배경에는 국립 초상화 미술관이 미국 연방정부로부터 재정적 지원을 받는 스미소니언 협회에 소속되어 있다는 사실이 있다. 스미소니언 협회의 1년 예산은 2010년을 기준으로 약 7억 6천만 달러(약 8760억 원)인데, 이중 83%에 달하는 6억 3천만 달러(약 7240억원)를 연방정부로부터 받고있다. 보유 부동산 및 시설물 등의 고정자산을 빼면 사실상 수입의 전체를 연방정부로부터 받는 것이다. 더군다나 이 연방기금은 미국국립예술기금(NEA)에 지원되는 예산과는 별도로 책정된다. 이러한 연유로, 스미소니언 협회 소속의 박물관들과 미술관들은 시민들의 세금으로 운영된다는 시각이 지배적이고, 그래서 스미소니언 협회 소속의 모든 박물관과 미술관은 입장료가 없다.

이렇다 보니 정치적으로 민감한 혹은 사회적으로 지배적이지 않은 관점을 담은 전시회를 열 때마다 스미소니언 협회는 크고 작은 논쟁에 휘말려 왔는데, 그 예로 1994년 우주항공 박물관 (National Air and Space Museum)에서 2차대전 당시 원폭기 에놀라 게이(Enola Gay)의 전시내용 중 일본 원폭피해자들의 입장이 더 크게 부각되었다는 이유로 비판을 받은 후 그 설명이 바뀌었고, 2003년 자연사 박물관 (National Museum of Natural History)의 전시회에서는 서반카 배너지(Subhankar Banerjee)의 북극 생태계에 대한 사진작품이 정치적 논란을 유발한다는 이유로 철거되기도 하였다.

작품 철거에 대한 많은 반발에 직면하여 국립 초상화 박물관장 마틴 설리반(Martin Sullivan)은 12월 6일 해명성 성명을 발표했다. 문제가 된 데이비드 보이너로비치의 작품을 철거한 이유는 이 4분짜리 영상작품에 대한 논란이 전시회의 많은 다른 작품들을 압도하면서 전시회 전체 주제를 흐리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예술계에서는 차이에 대한 관용을 목적으로 한 전시회가 종교권력과 정치권력에 굴복하여 결국 작품을 철거함으로써 도리어 이러한 차이를 다시 소외시키며 차별한다고 비판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공화당은 예술에 대한 국가적 지원에 부정적인 입장을 취해왔기 때문에 내년 예산으로 올해보다 많은 약 8억 달러(약 9100억 원)를 의회에 신청해 놓은 스미소니언 협회와 초상화 미술관 입장에서는 당연히 현재 주도권을 잡은 공화당 의원들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더군다나 1989년 NEA가 지원한 메이플소프(Robert Mapplethorpe)와 시라노(Andres Serrano)의 전시회가 외설과 종교모독 시비로 소위 문화전쟁(Culture War)을 촉발시켜 NEA의 예산이 거의 반토막났던 트라우마가 아직 남아있는 터라, 이번 사건은 앞으로도 한동안 '국가의 예술지원의 범위'와 '공공재로서의 예술에 대한 검열'이라는 큰 주제들 위에 아직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문화전쟁의 중심에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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