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저편, 고즈넉한 산책길-핀란드의 피스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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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yale 댓글 0건 조회 1,507회 작성일 11-01-18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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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만장한 역사 속 핀란드
피스카스는 핀란드의 역사, 자연, 산업을 함께 볼 수 있는 도시다. 일단 피스카스를 둘러보기 전에 핀란드의 역사에 대해 잠깐 이야기해보자. 핀란드는 핀란드 말로 ‘수오미’라고 한다. ‘수오’는 질척질척한 늪지대를, ‘미’는 땅을 의미한다. 쉽게 말하면 핀란드는 물 많은 늪지 같은 땅이었다. 사람 살기가 불편했을 땅이었을 것이다. 겨울에는 4시간 정도밖에 해가 뜨지 않고 여름에는 백야다. 6월에는 거의 해가 지지 않는다. 게다가 힘없는 약소국으로 스웨덴의 통치를 받았다. 후에 러시아가 강국으로 떠오르면서 러시아 통치 아래 있기도 했다. 결국 핀란드는 러시아와 스웨덴이란 강국의 힘의 역학에 따라 이리 휩쓸리고 저리 휩쓸렸던 것이다.
이런 나라는 명분을 앞세우는 것보다 생존이 중요하다. 결국 실용성이 강조된 배경도 여기에 있다. 헬싱키의 대성당 앞에는 아직도 피터대제의 동상이 서 있는데 스웨덴에서 러시아로 넘어간 뒤 러시아가 화폐제조권, 의회설립권, 우표발행권 등 자치를 준 데 감사한다는 의미로 세운 것이다. 러시아와의 전쟁 직후 철거해버릴 수도 있었지만 괜히 러시아를 자극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에서 그대로 놓아두었다. 핀란드 사람들은 그래서 실용성을 중시한다고 볼 수 있다. 피스카스는 스웨덴 지배 시절에 발전하기 시작한 도시라고 할 수 있다. 1649년 네덜란드인 피터 토르뵈스테가 처음 이 나라에 들어와 제련공장을 세운 뒤부터 마을이 마을답게 형성되기 시작했다.
이야기의 시작은 이렇다. 17세기 철강공업이 가장 발달한 나라 중 하나는 스웨덴이었다. 스웨덴 왕은 왕의 소유인 숲을 파헤쳐 석탄을 캐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스웨덴 주변의 섬에서 철광석을 캐내 이것을 핀란드에서 가공했다. 피스카스는 호수를 끼고 있었는데 물이 풍부했고, 석탄도 자체 공급이 가능했다. 호수가 스웨덴과의 교역을 원활하게 하는 교통로 역할도 했다. 게다가 당시 핀란드는 어차피 스웨덴의 영토였다.
하지만 30년 전쟁으로 스웨덴 왕실의 재정이 악화되자 사업권을 네덜란드 사업가에게 넘긴 것이다.
피스카스는 부침도 많았다. 경제가 안 좋을 때는 제련공장이 쇠락의 길을 걸었다가 다시 구리가 발견돼 떼돈을 벌기도 했다. 구리가 무기 제조에 들어가는 필수 합금 재료였기 때문이다. 구리가 발견된 것은 1757년이었고 이후 80년 동안은 구리산업이 피스카스의 주요 산업이었다. 1822년에는 요한 율린이 핀란드 최초의 증기기관차 회사를 세웠다. 1967년에는 세계 최초로 오렌지색 플라스틱 손잡이를 단 가위로 히트를 치기도 했다. 또 서유럽에서는 피스카스의 소가 끄는 피스카스 쟁기가 가장 유명했다고 한다.
고풍스러운 예술인의 마을, 피스카스
피스카스는 전통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이다. 집들은 모두 19세기에 지어졌다. 오래된 벽돌 건물은 세월의 때가 묻어나 고풍스럽다. 집들은 서유럽의 궁궐처럼 웅장하지는 않지만 제법 멋스럽다. 피스카스에서 발견되는 집들은 크게 두 가지다. 벽돌 집들은 귀족들이 머물렀거나 공장 등으로 쓰였던 곳이다. 노동자들이 머무는 집은 대개 특유의 붉은색을 칠한 나무집이다. 왜냐하면 핀란드는 숲이 울창해 나무를 조달하기는 쉬웠지만 대리석이 없어 석조 건물을 만들기는 어려웠다고 한다. 그나마 벽돌집들은 부의 상징이기도 했다.
피스카스에는 자그마한 개울이 흐른다. 이 개울 옆으로 열차가 다녔다. 철로는 호수와 피스카스를 연결했는데 거리는 불과 4km였다. 다만 이 열차를 통해 원료를 들여오고 철광을 날랐던 것이다. 현재 피스카스는 제련공장이 많은 곳이라기보다는 예술인 마을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세계 각국의 아티스트가 모여들고 있다. 그들은 이 마을에 모여 창작을 하고 전시회를 연다. 주민들은 모두 600명인데 이 중 150명이 아티스트라고 한다. 아이들을 빼고 난 나머지 주민은 모두 아티스트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피스카스 재단에 따르면 피스카스는 핀란드의 컨템퍼러리 아트 디자인의 중심지라고 한다.
피스카스의 옛 공장 자리는 미술관으로 바뀌었다. 섬유로 만든 예술품을 전시하고 있었는데 핀란드인뿐 아니라 외국인들도 많았다. 광섬유를 이용한 작품부터 아이들의 우주복을 형상화한 작품도 있었다. 1년에 크게 두 번 전시회를 여는데 5월 말부터 시작되는 전시회는 여름 내내 이어진다고 했다.
산책길을 따라 걷는 여유
피스카스의 옛 건물을 둘러보며 산책을 즐기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개울을 따라 호수까지 이어진 산책로가 잘 조성돼 있다. 나무는 울창하고 빈 터에는 꽃들이 지천으로 피었다. 꽃들 너머 붉은 건물들이 보이는데 제법 운치가 느껴진다. 피스카스 호수까지는 30~40분 정도 걸리는데 이곳 끝자락에는 나무로 지은 사우나가 있다. 과거 핀란드인 노동자들은 임금을 나무나 장작으로 받기도 했다. 그래서 장작을 가지고 가면 사우나를 할 수 있었다고 한다. 피스카스 호수는 피싱, 즉 물고기가 많이 나왔다는 이 호수의 스웨덴식 이름에서 나왔다고 한다.
피스카스에서 쇼핑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제련공장답게 이름난 철제품들이 많다. 복잡한 기계용구라기보다는 가정에서 쓸 수 있는 가위나 냄비, 생활도구들이 널려 있다. 피스카스 가위는 필수품이기도 하다. 스위스에 가면 스위스아미 칼을 기념품으로 사듯이 피스카스 가위와 칼도 유럽에서는 제법 유명하다. 나름 명품이라고 할 수 있다.
피스카스는 2007년 ‘지속 가능한 여행지’로 꼽히기도 했다. 역사와 문화, 자연이 함께 어우러진 곳이기 때문이다.
피스카스, 새로운 핀란드를 발견할 수 있는 곳이다.
피스카스는 핀란드의 역사, 자연, 산업을 함께 볼 수 있는 도시다. 일단 피스카스를 둘러보기 전에 핀란드의 역사에 대해 잠깐 이야기해보자. 핀란드는 핀란드 말로 ‘수오미’라고 한다. ‘수오’는 질척질척한 늪지대를, ‘미’는 땅을 의미한다. 쉽게 말하면 핀란드는 물 많은 늪지 같은 땅이었다. 사람 살기가 불편했을 땅이었을 것이다. 겨울에는 4시간 정도밖에 해가 뜨지 않고 여름에는 백야다. 6월에는 거의 해가 지지 않는다. 게다가 힘없는 약소국으로 스웨덴의 통치를 받았다. 후에 러시아가 강국으로 떠오르면서 러시아 통치 아래 있기도 했다. 결국 핀란드는 러시아와 스웨덴이란 강국의 힘의 역학에 따라 이리 휩쓸리고 저리 휩쓸렸던 것이다.
이야기의 시작은 이렇다. 17세기 철강공업이 가장 발달한 나라 중 하나는 스웨덴이었다. 스웨덴 왕은 왕의 소유인 숲을 파헤쳐 석탄을 캐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스웨덴 주변의 섬에서 철광석을 캐내 이것을 핀란드에서 가공했다. 피스카스는 호수를 끼고 있었는데 물이 풍부했고, 석탄도 자체 공급이 가능했다. 호수가 스웨덴과의 교역을 원활하게 하는 교통로 역할도 했다. 게다가 당시 핀란드는 어차피 스웨덴의 영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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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스카스는 부침도 많았다. 경제가 안 좋을 때는 제련공장이 쇠락의 길을 걸었다가 다시 구리가 발견돼 떼돈을 벌기도 했다. 구리가 무기 제조에 들어가는 필수 합금 재료였기 때문이다. 구리가 발견된 것은 1757년이었고 이후 80년 동안은 구리산업이 피스카스의 주요 산업이었다. 1822년에는 요한 율린이 핀란드 최초의 증기기관차 회사를 세웠다. 1967년에는 세계 최초로 오렌지색 플라스틱 손잡이를 단 가위로 히트를 치기도 했다. 또 서유럽에서는 피스카스의 소가 끄는 피스카스 쟁기가 가장 유명했다고 한다.
고풍스러운 예술인의 마을, 피스카스
피스카스는 전통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이다. 집들은 모두 19세기에 지어졌다. 오래된 벽돌 건물은 세월의 때가 묻어나 고풍스럽다. 집들은 서유럽의 궁궐처럼 웅장하지는 않지만 제법 멋스럽다. 피스카스에서 발견되는 집들은 크게 두 가지다. 벽돌 집들은 귀족들이 머물렀거나 공장 등으로 쓰였던 곳이다. 노동자들이 머무는 집은 대개 특유의 붉은색을 칠한 나무집이다. 왜냐하면 핀란드는 숲이 울창해 나무를 조달하기는 쉬웠지만 대리석이 없어 석조 건물을 만들기는 어려웠다고 한다. 그나마 벽돌집들은 부의 상징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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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스카스의 옛 공장 자리는 미술관으로 바뀌었다. 섬유로 만든 예술품을 전시하고 있었는데 핀란드인뿐 아니라 외국인들도 많았다. 광섬유를 이용한 작품부터 아이들의 우주복을 형상화한 작품도 있었다. 1년에 크게 두 번 전시회를 여는데 5월 말부터 시작되는 전시회는 여름 내내 이어진다고 했다.
산책길을 따라 걷는 여유
피스카스의 옛 건물을 둘러보며 산책을 즐기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개울을 따라 호수까지 이어진 산책로가 잘 조성돼 있다. 나무는 울창하고 빈 터에는 꽃들이 지천으로 피었다. 꽃들 너머 붉은 건물들이 보이는데 제법 운치가 느껴진다. 피스카스 호수까지는 30~40분 정도 걸리는데 이곳 끝자락에는 나무로 지은 사우나가 있다. 과거 핀란드인 노동자들은 임금을 나무나 장작으로 받기도 했다. 그래서 장작을 가지고 가면 사우나를 할 수 있었다고 한다. 피스카스 호수는 피싱, 즉 물고기가 많이 나왔다는 이 호수의 스웨덴식 이름에서 나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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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스카스는 2007년 ‘지속 가능한 여행지’로 꼽히기도 했다. 역사와 문화, 자연이 함께 어우러진 곳이기 때문이다.
피스카스, 새로운 핀란드를 발견할 수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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