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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력적인 문화수도 멜버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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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yale 댓글 0건 조회 1,840회 작성일 11-01-21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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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버른 북쪽 140km 정도의 거리에 있는 벤디고(Bendigo)에서 하루를 묵고 아침 일찍 멜버른으로 출발했다. 멜버른에서 내 첫 번째 목적지는 하이드 현대미술관(Heide Museum of Modern Art)으로, 벤디고에서 접근하기 비교적 가까운 외곽 지역(Bulleen)에 있다. 사립 미술관으로 규모가 크며 조각공원까지 운영하고 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유칼립투스 숲 속에 고즈넉하게 자리 잡고 있는데 마침 ‘큐비즘과 호주현대미술전’을 전시하고 있었다. 개관 시간까지는 1시간이나 기다려야 해서 내부 관람은 단념하고 아래쪽 조각공원만 둘러보았다. 20세기의 기념비적 미니멀 아티스트 안토니 카로, 요즘 주가가 하늘을 찌를 듯한 인도 출신의 영국 조각가 아니쉬 카푸어, 브루스 암스트롱 등 영연방 현대미술 조각가들의 작품들이 갖춰져 있었다. 그렇게 조각공원만 둘러보고 나서 일행들과는 헤어졌다. 자전거 운행의 출발점은 여기부터이기 때문이다. 시내 사우스뱅크의 현대미술센터(ACCA)에서 만나기로 하고 일행의 차량은 떠났다.

야라 강가의 꽃들
하이델버그 가도를 따라 서남 방향으로 10km 정도 진행하다 보면 남북으로 뻗은 니콜슨로를 만나게 되고, 남으로 좌회전을 하여 1km 정도만 가면 칼튼가든 한가운데 마주보고 자리 잡은 그 유명한 멜버른 박물관과 왕립전시관을 만나게 된다. 웅장하고 고풍스러운 왕립전시관과 현대적인 인텔리전트 박물관이 서로 마주해 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왕립전시관은 1880년 멜버른 만국박람회를 위해 지어진 건물로 호주 내에서 가장 먼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가운데 유럽 대륙의 거대 도시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었던 멜버른 시민의 자부심은 바로 이러한 유산들을 통해 전승되고 공유되는 것으로 보인다. 멜버른의 자부심이 유난한 것은 1901년 연방이 결성되고 캔버라로 완전한 천도가 이루어진 기간 동안의 첫 수도였다는 점 때문만은 결코 아니다. 일찍부터 유럽의 도시들 못지않은 도시를 건설하고자 한 초기 이주민들의 의지에 더해, 금광 등의 천연 자원이 넘쳐나면서 멜버른은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번영의 꽃을 피울 수 있게 됐던 것으로 풀이된다.

칼튼가든에서 2km 정도만 더 내려가면 페더레이션 광장이 나온다. 이곳에 진입하기 전에 플린더스로(路) 맞은편에 있는 호지어레인(Hosier Lane)에 잠시 들렀다. 호지어라는 이름으로 봐서는 메리야스 양품점들로 유명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낙서미술이라 할 수 있는 그래피티가 유명한 곳이다. 전에 소지섭이 열연했던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의 도입부 배경으로 나왔던 곳이기도 하다. 이때부터 이곳이 한국인들에게는 ‘미사골목’이라는 이름으로 통하면서 드라마를 기억하는 사람들의 단골 코스가 되었다. 그래피티의 무질서하고 괴기스러운 이미지들이 다소 낯설고 부담스럽기는 하지만 억눌려왔던 미의식이 발산해내는 발랄하고 기발한 이미지들이 그 나름의 눈길을 끌기도 한다.

음습한 호지어레인을 빠져나오면 눈부신 페더레이션 광장이 기다리고 있다. 철로 위로 복개된 땅 위에 조성된 광장으로 건축물들이 아주 특이한 조형성으로 눈길을 끌며, 젊은이들에게 사랑받는 만남의 광장이다. 복개된 자리에 하중을 최소화하기 위한 디자인인지 모르겠지만 방송국, 미술관 등의 건물 전체가 금속 모자이크로 포장되거나 유리와 파이프로만 이루어진 점이 인상적이다. 거대한 현대적인 공공 조형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우리의 SBS와 이름이 같은 방송국이 있고, 더 깊숙이 있는 유리 건물이 ‘국립 빅토리아미술관(NGV)-오스트레일리아(이언 포터센터)’이다. 이언포터(Ian Potter)센터는 분관 역할로 주로 호주의 동시대 미술을 취급하고 있으며, 프린세스교 너머에 위치한 ‘NGV-인터내셔널’은 본관으로 주로 국제적인 현대미술 작품들을 취급한다. 마침 이안포터센터에서는 약관의 호주 현대미술 작가인 리키 스왈로(Ricky Swallow)의 조각전이 열리고 있었다. 전통적 방식의 목조를 이용해 감각적이고 기발한 형상의 브리콜라주 작품이 인상적이다. 조각가 브루스 암스트롱도 그렇지만 호주 작가들이 호주 목재의 물성을 잘 활용하고 있는 느낌이 든다.

광장은 야라 강가에 자리 잡은 명물 플린더스 스트리트 역과 인접해 있어 멜버른의 얼굴과도 같은 곳이다.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운집해 있는데, 이색적인 거리 공연이 많이 펼쳐지고 있어 분위기 자체도 흥겹다. 그러다 보니 세계 각국에서 오는 여행자들의 인종 전시장 같은 느낌을 받는다. 그러나 너무 앞서가는 디자인 때문이었을까, 호주에서 막 돌아왔을 때 접한 어떤 보도에 의하면 세계의 추한 10대 건물에 선정되었다고 한다. 이유는 산만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받고 있으면 족한 것 아닌가. 특히 “천편일률적인 디자인으로 지어진 아파트 풍경에 식상한 우리의 눈에는 더더욱 귀하고 참신해 보인다”며 두둔하고 싶다.

페더레이션에서의 즐거움을 뒤로하고 야라 강 프린세스 다리를 건넜다. 야라 강 주변엔 멜버른을 대표하는 명소들과 유레카 타워나 리알토 타워 같은 마천루들이 병풍처럼 서 있는 멋진 풍경이 연출되고 있다. 또 킬다 로드는 프린세스 다리와 연해 트램과 마차, 자전거 등이 함께 왕래하며 낭만과 여유가 넘친다. 특히 광활한 면적의 알렉산드라 가든, 퀸 빅토리아 가든, 로열 보태닉 가든 등으로 조성되어 멜버른 최대의 공원 녹지이자 최고의 경관을 자랑하고 있다. 바로 이렇게 조성된 공원과 나란히 마주하고 있는 것이 바로 빅토리아 아트센터와 NGV-인터내셔널이다.

멜버른 문화의 심장, 사우스뱅크
빅토리아 아트센터, 건물도 잘 지어져 있지만 115m의 철탑이 유명하다. 발레리나의 자태를 표현한 구조로서 세계적인 아트센터로 손꼽히는 데 일조하고 있는 조형물이다. 그 옆에 있는 것이 바로 빅토리아 국립미술관(NGV-International)이다. 1861년 개관해 운영되다 1968년 현재의 킬다 로드로 이전한 육면체 구조의 중후한 건물의 미술관이다. 아무런 군더더기도 없고 단순 명쾌한 기하학적인 암회색 석조건축물로 페더레이션의 분위기와 아주 대조적이다. 이지적이면서도 과묵하게 감정조차 감추고 있는 듯한 건축…. 하긴 침묵이 더 적극적인 표현일 수도 있겠다. 특히 연출할 작품이 살아야지 미술관 외관만 화려하면 무슨 소용인가.

마침 상설전 외엔 전시가 없었다. 아쉽게도 4월까지 호주가 자랑하는 세계적인 작가, 인체를 징그러울 정도로 정밀하게 재현해내는 론 뮤익(Ron Mueck)의 전시가 예고되고 있었다. 내가 떠나고 나면 열리는 전시다. 유럽의 유명 미술관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뮤익의 작품들을 본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일 것이다. 상실되고 고립되어가는 우리의 초상이 경이로움을 주면서도 해학적인 데가 있는 뮤익의 작품을 잠시 떠올렸다.

NGV 후원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사우스뱅크의 오스트레일리아 현대미술센터로 이동했다. 가는 길에 NGV 뒤쪽에 있는 MRC(멜버른 리사이틀 센터)와 MTC 극장을 잠시 둘러볼 수 있었다. 조형성이 뛰어난 건축물들이 멜버른엔 지천으로 널렸지만 이 센터야말로 조형적 가치를 극대화한 작품으로 손꼽힐 것이다. 사우스뱅크 문화지구 재개발사업에 의해 불과 몇 달 전 개관한 작품이다. 건축그룹 맥더걸(A. R. McDougall)이 설계해 정면과 측면이 전혀 다른 분위기로 두 기관의 동거로 인한 자웅 일체를 절묘하게 보여주고 있다. 정면은 MRC로 육각형이 변형된 유리와 타일들이 벌집과도 같은 모자이크로 독특하게 디자인되어 있으며, 측면으로 가면 MTC로 검은색 벽면을 바탕으로 흰 파이프의 선이 입체감을 주는 구성이 독특하다. 공유와 분리를 유기적으로 조합한 구조와 공간이 건축학도에게는 관심의 대상이 될 듯하다.

MRC에서 좀 더 내려가면 철탑 구조물과 함께 붉은 산화녹이 두드러지는 코르텐이라는 내후성 강판 마감의 작은 성채 같은 건축물이 멀리서도 선명하게 들어온다. 종착지인 호주 현대미술센터(Australian Centre for Contemporary Art)이다. 비로소 기다리고 있는 일행들과 만났다. 일행 중의 한 사람이 물었다. “녹슬어 보이는 것이 과연 무슨 예술적 가치가 있느냐”고. 프랭크 게리 같은 거장들이 즐겨 하는 것이긴 하나 사실 대중에게 친숙한 재료는 아닌 게 분명하다. 저렴한 건축비 외에도 ‘재료 스스로가 말한다’는 담론적 설명을 하려 했지만,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보자”는 말밖에는 전할 게 없었다.

ACCA는 영상이나 설치와 같은 현대미술 속에서도 더욱 실험적인 작품들을 수용하고 있는 곳이다. 우리가 방문하기 바로 전날 영상작가 킷 와이즈(Kit Wise)의 쇼가 시작되었다. 생각보다는 관객들이 적은 것을 보니 이후 열릴 예정인 저명한 영상 설치작가 제니 홀저(Jenny Holzer)의 전시를 더 기다리는 것은 아닌가 생각됐다. 이곳의 명칭이 아트센터인 것은 작품의 수집보다는 기획에 역점을 두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전통과 도전의 아름다운 공존
우리 일행들이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하는 이야기 중에 공통된 주제는 멜버른이 왜 진정한 호주의 중심 도시인지의 문제였다. 시드니와 종종 비교하지만 멜버른은 유독 유럽의 문화와 전통을 강조하고 있는 도시 같았다. 짧은 시간의 경험이지만 감각에 사유를 조화시키고 있는 듯한 문화적 분위기가 충분히 느껴졌다. 중요한 것은 탄탄한 문화 인프라와 시민들의 생활이 얼마나 질적 향유를 누리고 있는가 하는 것인데 멜버른에서는 그것이 피부에 와 닿는 느낌이었다. 시내를 다니면서 보면 접근성이 좋은 중요한 위치는 거의 문화시설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물론 겉으로 보는 것과 이면의 내용은 차이가 분명히 있겠지만, 적어도 멜버른의 문화적 명성이 허명은 아니었다는 것만큼은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 일행은 계속 붉게 산화된 코르텐 건축물을 바라보면서 이야기 꽃을 피웠다. 분명한 것은 멜버른 시민들이 지키고자 하는 전통만큼 미래를 위한 실험과 도전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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