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백태 풍광 속, 이야기가 있는 은둔의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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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레몬 댓글 0건 조회 1,485회 작성일 11-08-23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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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골, 높은 봉마다 사연이 가득하다.
온통 원시림에 덮여 있고, 계곡마다 맑은 물이다. 덩달아 여기저기 천자백태(千姿百態)의 폭포와 물 웅덩이들이 만들어졌다. 기봉이석(奇峰異石)은 시가 되고, 그림이 된다.
한나라 헌제(獻帝)는 더위를 피해 이 곳을 찾았고, 위진(魏晋)시대에는 죽림칠현(竹林七賢)의 은거지요, 당나라의 ‘약왕’ 손사막(孫思邈)은 불로장생 단약을 찾아 온산을 누볐다.
당나라의 시인 왕유(王維)는 ‘9월9일 산동의 형제를 회상하며(九月九日憶山東兄弟)’라는 시에서 운대산의 풍광에 빗대어 고향을 그리워했다.
‘홀로 타향에서 낯선 나그네 되어(獨在異鄕爲異客)
봉우리마다 명절 오면 부모 생각 간절하네(每峰佳節倍思親)
멀리 형제들이 높은 곳에 올랐음을 알거늘(遙知兄第登高處)
수유봉 다 돌아도 여전히 혼자라네(遍揷茱萸少一人)’

백가암에 숨어든 죽림칠현, 중원의 명산 운대산
최고봉인 수유봉(茱萸峰, 1308m)을 따라 봉우리와 계곡이 이어지고, 곳곳에 시인묵객들의 비각이 들어서 있다.
바로 운대산(雲臺山)이다. 중원 땅, 허난(河南)성의 쟈오주오(焦作)시 쉬우(修武)현에 있는 아름다운 세계지질공원으로 1,000 계단을 밟고 정상에 오르면 북으로 멀리 태행산(太行山)이 보이고, 남으로 회천(懷川) 평원이 펼쳐진다.
난세를 만난 선비는 어떻게 살았을까.
위나라 말, 혼란스러웠다. 정치 권력은 부패하고, 백성들의 삶은 갈수록 어려워졌다. 실세였던 사마(司馬) 가문에서 국정을 장악했다. 마음대로였다.
노장(老長) 사상에 빠져 있던 혜강(嵆康) 완적(阮籍) 산도(山濤) 향수(向秀) 유영(劉伶) 완함(阮咸) 왕융(王戎) 등은 방관자적 입장으로 돌아섰다. 세상 풍자를 일삼고, 정치적 문제에 대해 콧방귀 끼기 일쑤였다.
집권층의 회유를 뿌리치고, 하나 둘 깊은 산으로 들어갔다. 운대산이었다.
사마 가문은 어수선한 세상을 평정하고, 진나라를 세웠다. ‘새 시대가 열렸다’며 산 속에 은거 중인 일곱 은자를 다시 설득하고, 회유했다. 하루 이틀 사흘…. 끈질긴 구애가 효과를 나
타냈다. 혜강을 뺀 나머지는 은둔을 끝내고 하나 둘 환속했다. 끝까지 버티던 혜강은 형장의 이슬로 ‘전설’이 된다.
세상 사람들은 이들을 ‘죽림칠현’이라 했고, 지금도 회자되고 있다.

홍석협, 청용협 등 3보1천, 5보1폭, 10보1담
운대산 골짜기에 들어서면 탄성이 절로 나온다. 왜 ‘죽림칠현’이 이 곳을 은둔지로 삼았는지 알 수 있을 듯 하다.
맑은 물과 기암괴석, 짙은 녹음이 함께 어우러진다. ‘세 걸음마다 샘이요, 다섯 걸음이면 폭포요, 열 걸음에 담이로다(三步一泉 五步一瀑 十步一潭)’란 말이 결코 흰소리가 아니다.
‘중화 제1 기협’ 홍석협(紅石峽)과 ‘중원 제1 협곡’ 청용협(靑龍峽), 천폭협(泉瀑峽)과 담폭협(潭瀑峽), 미후협(獼猴峽)과 봉림협(峰林峽)까지 저마다의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특히 아직 개방하지 않는 백가암(百家巖)은 많은 옛 이야기와 연을 맺고 있다. 산중 정원의 발상지로 알려진 백가암은 한나라 헌제 유협(劉協)이 피서를 즐기던 곳이다. 그리고 죽림칠현이 20여년 동안 머물렀을 뿐 아니라 은사인 손등(孫登)과 왕열(王烈)도 이곳을 은신처로 삼았다.
‘손등소대(孫登嘯臺)’, ‘왕열천(王烈泉)’, ‘유영성주대(劉伶醒酒臺)’, ‘혜강쉬검지(嵆康淬劍池)’ 등의 유적이 남아 있다.
당나라 천재 시인 중 한 명인 전기(錢起)는 백가암에서 ‘손등’을 생각하며 시를 남겼다.
‘바위 사이 계류는 우당탕 퉁탕, 대숲 깊이 스며든 햇살(崖石亂流處 竹深斜照歸)
주인은 커다란 바위에 누워 스스로 맑은 마음 수양하네(主人臥巨石 心自滌淸暈)
봄날 번개 번쩍 하니 빈 계곡에 꽃 향기가 흐드러진다.(春雷近作解 空谷半芳菲)‘

운대산의 서대문 홍석협, 구룡담 굽이굽이 푸른 물 텀버덩
‘온반협(溫盤峽)’이라고도 불리는 홍석협은 늘 많은 관광객으로 북적인다.
깊은 계곡을 감고 돌아가는 푸른 물과 기이한 협곡의 분위기가 보는 이의 눈길을 사로 잡는다. 깎아지른 절벽에 띠를 파놓은 듯 만들어진 탐방로를 따라가면 선경(仙境) 속을 거니는 착각에 빠진다. 고개를 내밀어 밑으로 보면 까마득한 절벽이고, 계곡은 꾸불꾸불 이어지며 아홉 개의 담을 만들었다. 수룡(首龍), 흑룡(黑龍), 청룡(靑龍), 황룡(黃龍), 와룡(臥龍), 면룡(眠龍), 성룡(醒龍), 자룡(子龍), 유룡(游龍)까지 ‘구룡담(九龍潭)’이다.
유폭(幽瀑), 천석동(穿石洞), 상문석(相吻石), 쌍사급수(雙獅汲水), 공작개병(孔雀開屛), 기반석(棋盤石) 등도 잘 어울린다. 특히 50여m의 낙차로 떨어지는 백룡(白龍)폭포가 일품이다.
계곡 양쪽에 우뚝 선 고산들은 마치 ‘석궐(石闕)’인 듯 자리 잡고, 운대산의 서대문(西大門) 노릇을 하고 있다.

담폭협은 운대산의 북쪽에서 서쪽으로 치우쳐 흐른다. 총길이 1270m로 ‘대자연의 걸작’임이 분명하다. 천변만화(千變萬化)하는 폭포가 있고, 주천(走泉)과 채담(彩潭)이 어우러지며 담폭천을 이른다.
담폭협(일명 小寨溝)을 걷노라면 마치 12악부로 구성된 산수악장(山水樂章)을 듣고 보는 듯 하다. 제1담에서 손님을 맞이한 뒤 구대정인(九對情人), 비취선자(翡翠仙子), 금담은폭(金潭銀瀑), Y자폭담(Y字瀑潭), 군방경수(群芳竟秀), 수당산채(隋唐山寨), 청의선지(淸漪仙池), 수렴선거(水簾仙居), 벽옥선자(碧玉仙子), 선종검영(仙踪劍影), 용봉정상(龍鳳呈祥)으로 이어지며 각양각색의 풍광을 노래한다.

천폭협(일명 老潭溝)은 총 3km의 긴 협곡이다. 기석과 산천과 꽃향기와 폭포의 물줄기가 어우러져 교향곡을 만든다. 높이가 무려 314m인 운대천폭(云台天瀑)이 있다. 멀리서 보면 마치 파란 하늘과 입 맞추고 있는 듯 하다. 이밖에 오노봉(五老峰), 공작천(孔雀泉), 사어천(私語泉) 등이 원시 자연의 멋을 물씬 풍기고 있다.

수유봉은 소북정(小北頂)이라고도 한다. 진무대제묘(眞武大帝廟)가 있고 천교(天橋), 운제(雲梯) 등이 있다.
아직도 야생 원숭이가 뛰어노는 미후협과 유방을 도와 한나라를 세운 장량(張良)의 은거지였다는 산정호수 자방호(子房湖, 일명 平湖), 십리평호를 끼고 있는 봉림협 등도 빼어난 자연경관을 자랑하고 있다.
속세를 떠난 자들의 땅, 운대산의 계곡과 봉우리에선 아직도 못 다한 이야기들이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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