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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말 황소의 난 때 남방에 정착한 客家族의 전통 가옥 '토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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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레몬 댓글 0건 조회 2,106회 작성일 11-08-23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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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라 말 부패한 관료들의 횡포가 심했다. 곳곳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희종(僖宗)이 권좌에 앉아 있던 건부(乾符) 연간에는 중국 대륙에 극심한 기근까지 겹쳤다. 백성들은 살 길이 막막한데도 관료들은 세금을 더 걷기 위해 혈안이 돼 있었다. 급기야 소금세를 인상하고 강제 징수하려 했다.
참다 참다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던 소금장수의 우두머리 왕선지(王仙之)가 지금의 하남(河南) 지방인 복주에서 난을 일으켜 관군을 물리쳤다. 비슷한 시기, 산동(山東)에서도 소금장수였던 황소(黃巢)가 봉기하더니 왕선지와 합류해 강서(江西) 복건(福建) 광동(廣東) 광서(廣西) 호남(湖南) 호북(湖北)으로 이동하면서 60만 대군으로 세력을 키웠다.
백성들과 뜻을 같이 한 왕선지와 황소의 군대는 승승장구하며 낙양(洛陽)을 차지한데 이어 도읍인 장안(長安)까지 함락시켰다. 겁에 질린 희종은 사천까지 쫓겨 갔다. 중도에 왕선지가 죽고, 대장군이 된 황소는 국호를 ‘대제(大齊)’라 붙인 새로운 정권까지 세운다.
훗날 역사가들은 이 사건을 ‘황소의 난’이라 기록했고, 당나라 멸망의 원인이었다고 평가했다.
당시 황소를 따라 남방으로 이동했던 중원의 ‘객가족(客家族)’들이 그대로 남아 삶의 터전을 일궈 나간다. 복건성에도 그 후예들이 살고 있고, 그들만의 독특한 건축 양식과 생활 습관을 이어간다.
하늘에서 본 용딩의 원루
 하늘에서 본 원형 토루
2008년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토루(土樓)’가 바로 그것이다.
토루는 오늘날 아파트 같은 공동 주택이다. 복층 구조이기에 ‘토옥(土屋)’이 아닌 토루가 됐다. 네모난 모양도 있고, 둥근 모양도 있다. 낮게는 3층에서 높게는 6층 규모다.
푸지엔성 용딩(永定)현에만 무려 2만3,000여채의 토루가 있고, 그 중 원형 토루는 약 3,600채에 이른다. 둥근 모양의 흙집은 하늘에서 내려앉은 ‘비행접시(飛碟)’ 같기도 하고, 땅 속에서 솟아오른 ‘버섯(蘑菇)’ 같기도 하다. 어떤 이는 ‘지상의 UFO'라 부를 정도다.
원루 외에도 방루(方樓), 오봉루(五鳳樓)과 요(凹)자형, 반원형, 팔괘형 등도 있다.  
용딩현 산기슭과 계곡에 들어찬 방형과 원형 토루
 용딩현의 산기슭과 계곡에 들어찬 방형과 원형 토루.
당나라 말부터 남송과 명말, 청초에 이르기까지 대규모로 이동한 뒤 깊은 산속에 정착한 객가족들은 적의 침입을 막고, 야생 동물들로부터 종족을 보존하기 위해 이런 형태의 취락 구조를 선택했다. 유교 사상에 따라 대가족 공동 생활의 이상을 구현한 것이다.
유교 사상을 재현한 대가족 공동 생활의 대표적인 주거 형태, 가문 결속력 강화 
토루에는 많은 사람들이 거주한다. 일반적으로 직경이 약 50m인 원루에는 모두 100여개의 방이 있고, 30~40가구가 지내며, 최대 200~300명까지 함께 살 수 있다. 대대손손 일가족이 독립된 사회를 구성해 공존공영(共存共榮)과 공망공욕(共亡共辱) 하는 것이다. 밖으로 외적을 막고, 안으로 가문의 결속을 다니는데 가장 적합한 취락 구조인 셈이다.
토루에서 생활하고 있는 객가족
 객가족들은 토루 안에선 모든 일상 생활을 처리할 수 있다. 1층 앞 광장에서 취사를 하고 있는 주민들.
겉모습은 거대한 토성이나 다름없는 토루의 안은 어떤 모습일까. 사람들은 어떻게 생활할까.
원루는 두세 겹으로 이루어졌다. 가장 바깥쪽은 거대한 흙벽을 10여m 높이의 4층으로 쌓았다. 두터운 저층부의 두께만 약 1.5m. 토루의 벽은 단단하다. 태풍이나 총알에도 끄떡없다. 단열 기능도 우수하다.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따뜻하다. 잘 계산된, 아주 과학적인 건축물임이 하나하나 증명되고 있다.
1층은 주방과 식당, 2층은 창고, 3층과 4층이 침실이다. 밖에서 보면 1~2층에는 창문이 없다. 주거 공간이 아닌 만큼 방어에 유리하도록 설계했다. 각 층은 4~5개의 공동 계단을 통해 오르내리며, 방들은 주랑(走廊)으로 이어져 있다.
2층 높이의 가운데 원형에는 30~50개 정도의 객방(客房)이고, 중심부에는 조상을 모시는 사당이 있다. 이곳에선 100여명이 동시에 혼례나 상례, 경사스런 일 등을 공동으로 치룰 수 있다. 토루 안에는 우물과 욕실, 방앗간 등이 있어 일상 생활이 가능하다.
세 겹의 원형 토루
 세 겹으로 된 원형 토루
'土樓之王' 승계루는 가장 큰 팔괘토루, 강씨 혈족 300여명 거주
용딩현 까오터우(高頭)진에 있는 사환원루(四環圓樓)인 ‘승계루(承啓樓)’는 중국에서 가장 큰 팔괘토루로서 ‘토루지왕(土樓之王)’이라 불린다.
현재 강(江)씨 성을 지닌 57가구 300여명이 살고 있는 승계루는 정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가다 보면 중심부에서 작은 사당을 만난다. 민국 31년 임삼수(林森手)가 ‘필화로(筆花盧)’라고 쓴 편액이 걸려 있다. 사당을 끼고 4환에 해당하는 회랑이 빙 둘러 서있다.
3환은 1층 높이로 도서관으로 쓰이는 32칸의 방이 있고, 2환은 2층 높이로 각 층 40칸씩 80칸의 방이 있다.
가장 바깥쪽 외환은 4층 높이로 직경이 62.6m, 전체 둘레가 229m로 각 층마다 72칸씩 총 288칸의 방이 들어차 있고, 2층부터 4층까지 회랑의 지붕도 안에서 바깥쪽으로 기울기를 만들어 빗물이 자연스럽게 흘러내리도록 했다.
필화로와 승계루의 환원
 필화로와 승계루의 환원
용딩현의 동남쪽 후캉(湖坑)진의 임(林)씨 집성촌인 홍캉(洪坑)촌에는 숭유루(崇裕樓)와 남창루(南昌樓) 등 서로 다른 방형토루 36채와 ‘흙집의 왕자’라 불리는 원루인 진성루(振成樓)가 유명하다.
유경루(遺經樓)는 대표적인 방형토루다. 외벽의 동서너비는 136m, 남북길이 76m인데 주 건물은 5층으로 되어 있다. 주 건물의 오른쪽과 왼쪽에는 4층 건물이 수직으로 연결되어 커다란 입구(口)자를 형성한다. 입구(口)자형의 건물 안에는 또 작은 입구(口)자의 건물이 들어 있어 돌아올 회(回)자를 이룬다. 문안에 문이 있고, 건물 안에 건물이 겹겹이다.
전라갱(田螺坑) 토루는 5개의 흙집이 모여 있다. 바깥쪽은 원형이고, 가운데 방형이 자리 잡았다. 산 기슭에 층층 만들어진 다락밭과 조화를 이룬다. 600여년 전, 오리를 키우면서 이 곳에 눌러 살던 이들은 어미오리가 산기슭의 우렁이를 잡아 먹더니 알을 많이 낳은 덕에 아주 잘 살았다고 한다. 근사한 집까지 짓게 되자 동네 이름을 ‘전라갱’이라 붙였다.
전라갱의 토루 군락
 전라갱 토루 군락
까오터우진과 후캉진 뿐 아니라 해발 400~500m의 산중턱에 자리잡은 추시(初溪), 현존하는 방형토루 중 가장 오래된 필산루(弼山樓)가 있는 후(胡)씨 마을인 중촨(中川), 청석로와 어우러져 세외도원의 풍광을 연출하는 난시(南溪) 등에도 토루가 산재돼 있다.
난징(南靖)현에는 현존하는 토루 중 가장 오래된 유창루(裕昌樓)와 메이린(梅林)진의 화귀루(和貴樓) 등이 남아 있다. 유창루는 1350년 건립돼 600여년을 지내면서 1972년 지진의 영향으로 약 8도 정도 기울어져 ‘동도서왜루(東倒西歪樓)’란 별칭을 얻었다.
중국 대륙에는 전쟁이 끊이지 않았다. 죽음의 공포 앞에선 사람들은 살기 위해 뭉쳤다. 종족 보존을 위해 집단 거주지를 만들고, 공동 주택을 지었다. 이들의 삶의 흔적은 지금 대륙의 남쪽에 남아 세계문화유산으로 보존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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