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와 함께 시작하는 아침, 아시안게임 개최지 광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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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레몬 댓글 0건 조회 1,511회 작성일 11-08-23 1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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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드셨어요? (喝茶了碼?)”, “예, 당신은 요? (是, 你呢?)”
광조우(廣州)의 아침 풍경이다. ‘밥 먹었냐? ((吃了碼?)’고 인사하지 않는다. 일상의 시작이 다르다. 2010년 11월12일 제16회 아시안게임이 열리는 광조우의 사람들은 무척 차를 즐긴다.

광둥 사람들 300여명 내한, 11월2일 롯데호텔서 광둥-한국 관광 교류전 개최
11월이 시작되자마자 광조우를 비롯한 광둥(廣東)성의 각 도시에서 300여명이 몰려왔다. 그리고 2일 서울의 중심인 소공동 롯데호텔 크리스탈볼룸에서 ‘2009 중국 광둥-한국 관광교류 ․ 초청 만찬회’를 가졌다.
중국 공산당 정치국 위원이자 광둥성 성위원회 서기인 왕양(王洋)이 이끌고 내한한 방문단은 분주했다. 왕양 서기 등 고위급 인사들은 청와대를 예방해 이명박 대통령과 면담을 가졌고, 양룽선(楊榮森) 광둥성 여유국장 등은 국내 관광업 관계자들과 교류 증대를 위한 실질적인 방안을 모색했다.
만찬회는 완칭량(万慶良) 광둥성 인민정부 부성장이 주빈이 돼 문화체육관광부 신재민 차관과 한국관광협회 중앙회 신중묵 회장, 주한 중국대사관 싱하이밍(邢海明) 공사와 허잉(何潁)총영사 등 양국 관계자를 맞이 했다.
완 부성장은 인사말에서 “광둥성은 중국 경제와 여행의 중심지이자 개혁 개방의 선두주자”라며 “광조우 아시안게임이 열리는 2010년은 중국 방문의 해인 만큼 적극적인 홍보와 교류 활성화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신재민 차관은 “한국과 중국이 21세기 동북아 시대를 선도하고 있다”며 “한중일 3국의 개방적인 협력과 교류 증진이 새로운 역사를 만들 것”이라고 답했다.
그리고 관광 교류의 밤은 만찬과 함께 광둥에서 온 마술사, 무용단, 가수 등의 축하 공연으로 이어졌다.

周나라부터 2000년 이야기가 전해지는 '위에(粤)' 땅
광둥의 중심은 성도(省都) 광조우(廣州)다. 야경이 아름다운 주장(珠江) 삼각주의 북쪽에 자리잡고 있다. 표준어인 만다린보다 캔토니스(Cantonese ․ 광둥어)가 더 잘 통하는, 중국에서 3번째로 큰 도시다. 2천여 년의 유구한 역사 속에서 ‘위에(粤)’라 불리는 풍요로운 땅이다.
중산시로(中山西路) 일대에서 발굴된 진한(秦漢) 시대의 배 만들던 곳과 남월국(南越國) 궁터 유적이 긴긴 세월 이 땅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특히 남월 유적은 시신 뿐 아니라 각종 옥 장식과 도자기 등이 출토돼 ‘중국의 10대 고고학 신발견’이라 평가될 정도다.
수(隋)나라 개황(開皇) 14년(594년)에 건설된 남해신묘(南海神廟) 유적은 예로부터 광조우가 해상무역의 거점이었고, 서한 이후 ‘해상 실크로드’의 발원지였음을 말해주고 있다.

풍요의 축복을 내린 다섯 신선과 다섯마리의 양, 벼이삭을 내려준 양들의 석상
주(周)나라 때 대륙의 남쪽에는 몇 년 동안 대기근이 들었다. 먹고 살 방법이 없던 사람들은 하늘만 바라봤다. 그러던 어느 날….
남쪽 바다의 하늘 위로 상서로운 오색 구름이 피어났다. 구름 위엔 선양(仙羊)을 탄 신선들이 있었다. 선양들은 입에 머금고 있던 오색의 벼이삭을 땅 위의 백성에게 뿌려 주었다. 영원히 기근이 들지 않도록 축복을 내리더니 신선들은 바람과 함께 사라졌다. 다섯 마리의 양만 인간 세상에 남아 바람과 비를 다스렸다. 백성들은 다섯 신선을 기리며 ‘오선관(五仙觀)’을 세웠고, 그 안에 신선의 조각상과 오양석상을 모셨다.
지금 위에수이 공원의 ‘오양석상(五羊石像)’은 광조우의 상징으로 남아 있고, 다섯 마리의 양은 아시안게임의 마스코트가 됐다.
광조우가 ‘오양성’ 또는 ‘수성(穗城)’이라 불리는 이유다.

해상 실크로드의 시발점, 근대 혁명의 정신 속에서 발달한 경제
진한(秦漢)시대에 번창했던 광조우는 한나라와 당나라에 이르러 ‘해상 실크로드’의 시발점이 된다. 청나라 때는 쇄국정책을 쓰는 가운데 유일한 대외 교역항이었다. 독점권 교역권을 쥐고 있던 ‘광주13행(廣州十三行)’이란 무역 전문회사는 지금도 회자될 만큼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
다양한 문화가 드나들고 활발한 교역이 이뤄지면서 상업이 발달하고, 교육의 필요성이 높아졌다. 부와 빈곤이 혼재하던 땅은 자연스레 근대 혁명의 발원지가 됐다.
중국의 국부 쑨원(孫文)은 이곳에 문무(文武) 겸비의 중요성을 일깨우기 위해 국립광동대학(현 중산대학)과 지금은 ‘중화민국 육군군관학교’란 이름의 유적지로 남아 있는 황포(黃埔)군관학교를 세웠다.
넘치는 재화는 화려한 서원을 만들었다. 진(陳)씨 사당인 진가사(陳家祠)에 가면 누구나 두 눈이 휘둥그레진다. ‘삼조(三雕), 삼소(三塑), 일주철(一鑄鐵)’이란 표현처럼 곳곳에 조소 예술의 진수를 새겨놓았다. 리쥐린(黎巨林)의 설계로 청나라 광서 16년부터 20년(1890~1894년)까지 건설된 진가사는 삼진(三進) 오간(五間) 구당(九堂) 육원(六院) 등 크고 작은 19개의 건축물로 이루어진 크고 화려한 서원이다.

동산에는 권력 있는 젊은이, 서관에는 아름다운 전통 규수
옛 광조우성의 서문 밖은 서관(西關), 동문 밖은 동산(東山)이다. 동서로 멀리 떨어진 탓에 생활 습관과 문화가 달랐다. 서관은 지대가 낮은 수향(水鄕)으로 인구가 많고 시장이 번성한 반면 동산은 지대가 높고 땅은 넓었지만 사람이 드물었다. 20세기초 미국 선교사들은 이곳을 기독교 포교의 전진 기지로 삼았다. 황량하던 동산에 높은 건물이 들어서는 등 하루가 다르게 변했다. ‘동산소야(東山少爺) 서관소저(西關小姐)’란 말이 세간에 떠돌았다.
동산은 권문세가의 주거지로 관료의 자제들이 많았고, 이곳의 서양식 건축물에는 민국 초 화교나 군정 관료들이 주로 거주했다. 이런 이유로 ‘동산소야’란 말이 나왔다.
반면 서관은 상업이 번성했다. 거상의 딸들은 나비처럼 아름다웠다. 전통 미덕을 알고, 손재주가 있고, 제대로 교육 받은 규수인 ‘서관소저’들은 조용조용 광둥어로 이야기했다.
정원이 있는 서양식 주택과 서관대옥, 권력과 재부, 현대와 전통이 동서로 나눴지만 서로 보완하며 독특한 광조우의 문화를 만들었다.

겨울이 따뜻한 광조우, 2010년 11월12일 아시안게임 성화 올린다
중국 대륙의 남대문인 광조우는 겨울이 따뜻하다. 10월부터 12월까지가 관광의 최적기다.
광조우시의 동쪽 금융상업지구에 조성된 티엔허(天河) 체육센터는 쿤밍체육기지와 함께 중국 국가대표선수들의 겨울훈련장으로 사용되곤 한다.
김응용 감독이 지휘봉을 잡고 해태에서 ‘호랑이’를 조련하던 시절 이곳에 스프링캠프를 차렸고, 국군체육부대(상무)도 상호 방문하며 다양한 인적 물적 교류를 하고 있다.
1987년 제6회 중국전국체전이 열렸던 주경기장 주변에는 실내체육관과 수영장, 야구장, 테니스장, 볼링장 등이 있다. 내년 아시안게임이 열리면 올림픽 경기장과 티엔허 체육센터가 주요 종목의 경연장이 될 것이다.
차와 음식은 함께 한다. 광조우 사람들이 차를 좋아한다는 것은 다양한 요리를 즐긴다는 뜻이다. 광조우는 ‘음식 천국’이다. 중국 4대 요리 중 하나인 ‘위에차이(粤菜)’를 먹고, 전통찻집 ‘타오타오쥐(陶陶居)’ 등에서 차와 딤섬(点心의 광둥어 발음)을 즐기자. 이른 아침 산책길엔 ‘광조우식 훈툰(餛飩)’인 윈툰몐(云呑麵)을 먹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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