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의 문화와 백년의 상공업과 물산이 풍부한 魚米之鄕, 우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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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레몬 댓글 0건 조회 1,503회 작성일 11-08-23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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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년 태백(泰伯)의 전통과 문화를 계승하고, 100년 상공업의 찬란한 발전을 이어간다. 강남의 번영을 상징하고, 덕을 숭상하고, 조화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어 행복과 감동이 함께 하는 도시가 있다.
바로 장쑤성의 ‘어미지향(魚米之鄕)’ 우시(無錫)다.
우시는 2008년 12월 ‘요망동방주간(瞭望東方週刊)’이 중국시장협회와 공동으로 주관하는 ‘중국의 행복도시(中國最具幸福感城市)’ 조사에서 항조우(杭州), 닝퍼(寧波), 쿤밍(昆明), 텐진(天津), 탕산(唐山), 퍼산(佛山), 샤오싱(紹興), 창춘(長春), 창사(長沙)와 함께 10대 도시로 뽑혔다.
자연환경, 교통, 도시발전속도, 문명화, 재테크 기회, 의료위생, 교육, 집값, 치안, 인간미, 취업, 생활의 편이성 등 12개 분야에 걸친 종합 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받은 것이다.

우시는 먼 옛날부터 살기 좋은 땅이었다.
문자로 기록되기 이전인 6000~7000년 전부터 씨족 생활을 했음을 알려주는 유적들이 곳곳에서 발견됐다. 중국에서 3번째로 큰 담수호인 태호(太湖) 유역을 따라 원시 문화가 형성됐고, 3000년 전인 상(商)나라 말에는 주(周) 태왕의 장남인 태백이 매리(梅里, 지금의 우시현 메이촌)에 ‘구오(句吳)’를 세웠다.
태백에서 합려(闔閭)까지 24대의 왕이 집권한 600여년 동안 매리는 특히 오나라의 도성으로 찬란한 옛 문화를 꽃 피워 오늘날까지 영화를 이어오고 있다.

바다처럼 큰 호수 태호, 삶의 젖줄이자 역사의 증인
우시는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강남의 부유한 도시다. 서쪽으로 장쑤성의 성도인 난징까지 183km, 동쪽으로 국제도시 상하이까지 128km 떨어진 도시로서 장강(長江) 삼각주와 태호를 끼고 있어 늘 경제 문화의 중심지이자 시인묵객들의 고향으로 인정받고 있다.
태호와 장강의 수산물과 넓은 삼각지가 만들어내는 곡창 지대는 ‘어미지향’이란 말을 만들어낼 만큼 늘 물산이 풍부한 곳이다.
우시를 품고 있는 태호는 호수가 아니다. 망망대해다. 호숫가에 서면 끝이 보이지 않는다. 큰 강이나 바다에나 다닐 법한 커다란 배들이 오가는 모습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큰 물결이 일면 파도가 치는 듯 하다.
태호의 물줄기는 주변 땅과 종횡으로 이어지고, 운하와 연결된다. 태호에서 잡히는 은어(銀魚)와 백어(白魚)와 백하(白蝦)는 ‘태호삼백(太湖三白)’이란 별미 요리로 유명하다.

삼국성에서 유비와 조조를 만나고, 영산대불에서 부처님의 자비를 빌고
잘 사는 사람들에겐 재미있게 놀 수 있는 공간과 자자손손 부귀영화를 빌 수 있는 기원 공간이 가까이 있으면 금상첨화다.
이런 인간적 욕구를 충족시키려는 것일까. 우시 외곽, 태호 주변에 중국 중앙 TV의 드라마 촬영지였던 ‘삼국성(三國城)’, ‘수호성(水滸城)’, ‘당성(唐城)’과 세계에서 가장 큰 부처 입상인 ‘영산대불(靈山大佛)’이 장관인 ‘영산승경(靈山勝景)’이란 불교문화 테마파크가 있다.
테마 파크로 탈바꿈한 드라마 촬영지에선 날마다 유비와 조조의 병사들이 말을 타고 전쟁을 하고, 태호에 배를 띄운 수군들도 전투 장면을 재현한다. 흙먼지를 일으키며 달려가는 말 위의 장수들은 마치 실전처럼 창을 겨누고, 칼을 다룬다.

영산승경은 1000년전 당나라의 현장법사가 서역으로 가던 중 ‘소영산(小靈山)’이라 불렸던 우시의 마산(馬山) 진리봉(秦履峰) 남쪽, 당송시대의 명사찰 상부사(祥符寺)의 옛 터에 조성됐다. 이 곳에는 영산대불과 구룡관욕(九龍灌浴) 등 다양한 불교 조형물이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영산대불은 무엇보다 크기로 불자들을 압도한다. 약 700톤의 청동으로 만든 총 88m의 석가모니 입상은 79m의 부처 본체가 9m 높이의 연꽃 받침 위에 서있는 모습이다. 현장법사가 ‘소영산’이라 이름 붙인 곳에 세워져 ‘영산대불’이란 이름을 얻었다. 두께 6~8cm의 동판 1560개를 이어 붙였고, 이음의 총 길이가 무려 30여km나 된다.
나지막한 산 아래 우뚝 솟아 있는 영산대불의 구조 설계는 상하이 푸둥에 있는 동방명주를 건설한 팀이 맡아 14급 태풍과 8급 지진에도 전혀 흔들리지 않고, 외곽 조형은 난징의 예술가 우시엔린(吳顯林)이 맡았다.

영산승경은 길이 41.6m, 높이 6.63m의 거대한 영산대조벽(靈山大照壁)을 지나 커다란 부처의 발자국을 본떠서 만든 불족단(佛足壇)과 오지문(五智門)을 거쳐 보살대도를 따라 걸어가면서 이어진다.
넓은 광장 주변으로 전경랑(轉經廊)이 있고, 광장 가운데 석가모니의 탄생을 음악 분수에 맞춰 재현하는 구룡관욕이 자리 잡고 있다. 음악이 흐르고 분수가 치솟으면 청동 연꽃의 봉우리가 서서히 열리면서 아기 부처가 모습을 드러낸다.
광장을 지나면 다시 아육왕주(阿育王柱)와 강마성도(降魔成道), 천하제일장(天下第一掌)과 백자희미륵(百子戱彌勒)을 만들어 놓았다.
이 곳을 찾는 불자들은 세상에서 가장 큰 손바닥을 어루만지며 복을 기원하고, 불룩 나온 배를 100명의 아이들의 놀이터로 내준 달마대사의 웃는 모습에서 자비를 배운다.

대대로 중국인에게 사랑 받는 복덩이 '다아푸'
중국인들은 길흉을 막고, 길상을 기원하는 의미로 통통한 모습의 어린 아이 인형을 좋아한다. 집집마다 진흙으로 만든 인형이 있다. ‘다아푸(大阿福)’다.
먼 옛날, 혜산 일대에는 야수가 출몰해 사람들을 해쳤다. 야수는 야수로 다스리는 법. 깊은 산골에 사람 형상을 한 ‘샤하이얼(沙孩兒)’이라 불리는 커다란 야수 둘이 살고 있었다. 힘이 셌다. 산중의 맹수나 곤충들은 그들을 보기만 해도 도망쳤다. 샤하이얼이 나타난 이후 인근 백성들은 편하게 생업에 종사할 수 있었다.
그러던 겨울 어느 날, 산에 나무를 하러 갔던 동네 사람이 나무 밑에서 놀고 있는 수컷 샤하이얼을 봤다. 그런데 갑자기 나무가 뒤집어지면서 수컷이 압사하고 말았다. 암컷 샤하이얼은 수컷 참혹한 죽음을 보고 슬픔에 잠겨 그 나무 밑에서 따라 죽었다.
훗날, 마을 사람들은 그들을 기리기 위해 진흙으로 한 쌍의 남녀를 만들고 ‘다아푸(大阿福)’ 라 불렀다. 이 때부터 민간에선 다아푸가 재앙과 사악함을 막아주면서 길상을 가져다주는 상징으로 통했다.
중국을 대표하는 수공예품인 ‘혜산니인(惠山泥人)’ 중 ‘다아푸’는 그래서 더 유명하다.
왜 도시 이름이 ‘아닐 무(無)’자가 들어간 ‘우시’일까.
주나라와 진나라 때 이 곳에는 주석이 넘쳐 났지만 한나라에 이르러 더 이상 주석을 캘 수 없었다. 그래서 ‘우시(無錫)’란 이름으로 불렸다.
당나라 때 육우(陸羽)가 ‘혜산사기(惠山寺記)’에다 ‘산동봉(山東峰, 혜산동봉 즉 석산)에서 주나라와 진나라 때 아연과 주석을 많이 캤지만 한나라에 이르러 고갈되자 무석현이 생겼다’고 기록한 것이 지명의 유래로 전해진다.
주석의 유무와 관계없이 ‘우시’는 옛 월나라의 지명 중 하나의 발음을 세월이 흐르면서 그대로 기록하려다 보니 ‘우시’가 됐다는 설도 있다.
지금 우시에는 주석이 없다. 그러나 개혁개방 이후 더욱 경제가 발전하면서 현대적인 모습의 도시로 탈바꿈하면서 돈이 넘쳐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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