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취권Ⅱ’의 촬영지, 100년 전으로의 시간여행 '화교들의 고향(僑鄕)' 츠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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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레몬 댓글 0건 조회 1,684회 작성일 11-08-23 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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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비틀~, 휘청휘청~.
한 손에 술병을 들고, 축 처진 어깨로 갈 지(之)자 걸음을 하는 ‘황비홍’이 상대의 공격을 요리조리 피한다. 피하기 것이 아니라 술에 취해 가눌 수 없는 몸인데도 제대로 맞추지 못하는 것이리라.
홍콩의 액션배우 청룽(成龍)은 영화 ‘취권Ⅱ’를 통해 스타덤에 올랐다. 청나라 황실이 무너지고, 서양 문물이 밀려오던 시절을 배경으로 만든 영화 ‘취권’은 워낙 인기가 좋아 시리즈로 이어갈 정도였다.
1900년대 초반 대륙의 남쪽 풍광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작은 마을 ‘츠칸(赤坎)’이 있어 ‘취권’은 시대적 사실성이 강한 영화로써 강한 이미지를 남길 수 있었다.

사통팔당, 수륙 교통의 요지에 남아 있는 중서합벽의 유럽풍 건물군
츠칸은 ‘구(舊) 홍콩’, ‘작은 광조우’라 불린다. 개항지였던 홍콩이나 광조우의 1920~30년대의 모습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마을을 가로 지르며 흘러가는 담강(潭江)을 따라 유럽풍 건물들이 300여m나 늘어서 있고, 넓적한 돌이 깔려 있는 골목이 사방팔방으로 통한다. 포구에 나가 배를 타면 상류로는 인핑(恩平), 하류로는 장먼(江門)이나 광조우, 홍콩, 마카오로 이어지는 교통의 요지다.
그런 때문일까. 일찍부터 유럽이나 아메리카 대륙으로 일자리를 찾아 떠나간 화교들이 많았다.
광둥성에 있는 장먼(江門)시 직할인 카이핑(開平)시의 중심에서 서남쪽으로 12km 정도 떨어진 츠칸은 ‘화교들의 고향(僑鄕)’이다.
350년 전, 청나라 순치 때 담강 변의 ‘적토고지(赤土高地)’에 하나 둘 모여든 사람들이 해가 바뀔 때마다 늘어나면서 마을을 만들었다. 100여 전부터는 이국 생활에 지친 화교들이 다시 하나 둘 돌아와 서구식 건물을 짓기 시작했다.

화교가 가져온 서양 설계도를 바탕으로 만든 옛 주상복합건물 '기루(騎樓)’
고향에 돌아오는 화교들의 짐 속에는 서양 건축물의 설계도가 섞여 있었다. 이 설계도를 그대로 쓰지 않았다. 아열대 지방의 풍토와 중국의 전통 문화가 녹아든 ‘중서합벽(中西合壁)’이란 새로운 양식을 창조했다.
대륙의 남쪽, 바다와 가까운 지방은 덥고 습기가 많다. 맨땅과 주거 공간에 적당한 간격을 둬야만 살아갈 수 있다. 그래서 1층은 장사하는 곳, 2층은 먹고 자는 곳으로 쓸 수 있도록 기둥 위에 베란다가 있는 건물을 설계했다. 오늘날의 ‘주상복합 건물’인 2~3층짜리 ‘기루(騎樓)’가 강둑을 따라 600여 채나 들어섰다. 강변은 유럽풍 거리로 변했다. 외양은 서양식이지만 공간 활용은 중국의 전통적인 남방식을 따른 형태였다.
지난 100년 동안 숱한 비바람을 겪었지만 츠칸의 건물들은 온전하게 보존돼 홍콩이나 마카오, 광조우의 옛 모습을 재현하고 있다. 영화나 드라마의 촬영지로 인기가 높은 것도 다 이런 이유 때문이다.

츠칸은 영화나 드라마와 함께 더욱 유명해져 이젠 관광 명소가 됐다. 일반적인 드라마 촬영지는 인위적인 조경이 많지만 츠칸은 자연스런 풍광을 지녔다.
지난해 가을에는 총 1200여만 위안을 투자해 유명작가인 어우양산(歐陽山)의 소설 ‘삼가항(三家巷)’을 토대로 1920년대 광조우의 서관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은 ‘츠칸 드라마 세트장’을 새로 만들었다. 서양식 건물인 진가양루(陳家洋樓), 봉건지주였던 하가(何家)의 저택, 소시민 계층이던 주가(周家)의 서민 주택과 거리를 복원했다.
중국의 전통 건축양식이 ‘조화예술(雕花藝術)’과 서양의 ‘부조예술(浮雕藝術)’을 융화시켜 옛 마을을 되살리자 대하 드라마 ‘동산표우서관정(東山飄雨西關情)’과 ‘충천소자강유위(沖天小子康有爲)’ 등을 촬영했다.

사도씨(司徒氏)와 관족(關族), 두 가문의 경쟁과 공존이 만든 전통 문화
츠칸이 ‘화교의 고향’이라 불리는 것은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간 화교들의 지도자인 사도미당(司徒美堂)이 태어났고, 이 곳 출신의 화교들이 홍콩, 마카오, 타이완 등에 약 7만2000여 명이나 살고 있기 때문이다.
1923년, 사도 가문에선 강뚝의 동쪽 길가에 정원이 딸린 3층짜리 중서합벽식 건물로 도서관을 세웠다. 사도씨(司徒氏) 도서관에는 신문과 잡지, 책, 서화 작품, 사도 가문의 명인록 등이 보관돼 있었다.
담강의 서쪽, 선착장 앞에는 이 마을의 또 다른 세력가인 관족(關族)들이 도서관을 열었다. 개관 당시에도 만여권 책과 외국 신문과 잡지 등을 비치해 놓을 정도였다.
멀리 마주보고 있는 두 도서관 첨탑에 걸려 있는 종이 울릴 때면 어느 샌가 관족과 사도씨 두 가문이 오랜 동안 선의의 경쟁 속에 꽃 피운 번영을 깨닫게 된다.

츠칸은 많은 문화 예술인을 배출했다. 월극(粤劇) 예술가 관덕흥(關德興)과 관국화(關國華), 서예가 사도교(司徒喬)와 사도기(司徒奇), 중국의 ‘영남(嶺南) 50대 문화인’으로 선정된 얼후 연주가 여기위(余其偉) 등이 100년의 시간 사이에서 이름을 날렸다.
영화와 드라마로 방방곡곡에 알려진 옛 마을 츠칸에는 홍콩, 마카오, 광조우 등 인근 사람들 뿐 아니라 중국 대륙의 곳곳에서, 심지어 유럽에서도 ‘100년 전으로의 시간 여행’을 위해 많은 이들이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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