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의 작은 베니스’ 통리, 이름부터 풍요로운 '富土'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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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레몬 댓글 0건 조회 1,689회 작성일 11-08-23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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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의 작은 베니스’라 불리는 통리(同里)는 강남의 대표적인 물의 도시다.
8개의 크고 작은 호수가 마을을 둘러쌌고, 동서남북으로 물길이 이어지고, 고(古)운하와도 통한다. 상하이 홍차오 공항에서 서쪽으로 80km, 쑤조우에서 남쪽으로 18km, 우장(吳江)시에서 6km 정도 떨어진 곳에 자리 잡은 작고 아담한 옛 마을이다.
통리는 예로부터 부자 동네였다. 얼마나 잘 살았으면 이름까지 ‘부토(富土)’였을까.
이름 탓에 수난도 겪었다. 당나라 때 이름이 너무 사치스러우니 바꾸라는 엄명이 떨어져 ‘구리 동’자를 쓴 ‘동리(銅里)’로 고쳤다. 송나라 때는 다시 옛 이름 ‘부토’에서 ‘부’ 위의 점 하나를 지우고, 아래쪽 ‘밭 전’은 ‘흙 토’ 위로 옮겨 ‘동리(同里)’란 새 이름을 만들어 지금까지 쓰고 있다.

명청 거리에는 전통 호텔과 상점 즐비, 격년으로 한중 바둑 천원전 열려
통리에선 2003년 이후 격년으로 ‘한∙중 바둑 천원전’이 열리고 있다. 송태곤, 최철환, 조한승등 한국 천원들이 2003년부터 2008년까지 6년 동안 중국 천원의 자리를 지킨 구리(古力)와 진주탑(珍珠塔) 후화원의 특별 대국장에서 맞붙었다.
한국 대표단이 숙소로 사용했던 곳은 명청가에 있는 세덕당 호텔(世德堂賓館). 청나라 때 부자 상인의 집을 지금은 깔끔한 2층짜리 전통 호텔로 개조한 곳이다. 외형은 100년 전 모습이지만 내부는 모두 현대적 시설이다.
세덕당 호텔의 메인 식당은 명청가(明淸街) 쪽 2층에 자리 잡고 있다. 전통 문양이 아름다운 창을 통해 건너편 지붕 위에 피어난 잡풀을 눈에 들어온다. 눈 아래 펼쳐진 상점에 진열된 수공예품을 물끄러미 보노라면 시나브로 청나라로 돌아간 듯 하다.
통리의 명청가는 이 곳 출신의 사회학자이자 인류학자인 페이샤오퉁(費孝通) 전 베이징대 교수가 쓴 ‘명청유풍(明淸遺風)’이란 편액이 걸려 있는 입구부터 약 160m 정도 이어진 돌길. 길 양쪽으로 옛 모습대로 전통 공예점을 복원했다.

‘수향소교다(水鄕小橋多), 명인지사다(名人志士多)’ - 수향에는 작은 다리가 많고, 명인지사도 많다.
동네를 관통하는 15개의 작은 물길은 ‘내 천(川)’자 모양으로 흐르면서 7개의 작은 섬을 만들었다. 섬과 섬 사이, 물길 위로는 49개의 옛 다리가 놓여 있었다.
남송부터 청말까지 통리에선 장원 1명과 진사 42명, 문무 급제자 93명이 배출됐다. 인구 5만8000명 밖에 되지 않는 작은 마을로선 자부심을 가질만한 일이다.
통리 사람들에겐 또 다른 자랑거리가 많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강남의 대표적인 원림 퇴사원 등 一園二堂三橋
2001년 유네스코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강남고전원림의 전형적인 형태를 간직한 ‘퇴사원(退思園)’과 명청 시대의 옛 건축물들이다. 통리는 ‘일원이당삼교(一園二堂三橋)’로 통한다. 퇴사원, 숭본당(崇本堂)과 가음당(嘉蔭堂), 태평교(太平橋) 길리교(吉利橋) 장경교(長慶橋)가 바로 그것이다.

‘퇴사’란 이름은 ‘좌전’에 기록된 ‘진사진충(進思盡忠) 퇴사보과(退思補過) - 관직에 나아가선 충정을 다하는 것만 생각하고, 물러나서는 지난 날의 불충을 채우는 것만 생각한다’에서 따온 것이다. 청나라 광서 10년(1884년) 내각학사를 지낸 뒤 퇴임한 런란셩(任蘭生)이 은화 10만량을 투자해 광서 11년부터 13년(1885~1887년)까지 원림을 만들었다.
퇴사원은 시문서화(詩文書畵)에 두루 능통했던 웬롱(袁龍)이 설계해 2년여의 공사 끝에 완공했다. 정(亭) 대(臺) 루(樓) 각(閣) 랑(廊) 방(坊) 교(橋) 사(榭) 청(廳) 당(堂) 방(房) 헌(軒) 등 모든 건축물을 마치 물 위에 떠있는 것처럼 연못을 중심으로 배치했다.

후원의 소박한 퇴사초당에서 보면 사방으로 금방(琴房), 삼곡교(三曲橋), 면운정(眠雲亭), 고우생량헌(菰雨生凉軒), 천교(天橋), 신대(辛臺), 구곡회랑(九曲回廊), 료홍일가방(鬧紅一舸舫), 수향사(水香榭), 람승각(攬勝閣) 뿐 아니라 가산(假山), 봉석(峰石), 화목(花木)이 한 눈에 들어온다. 마치 수묵화 한 폭을 펼쳐 놓은 듯 하다.
전통 건축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퇴사원은 1994년 첸카이거(陳凱歌)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장궈잉(張國榮)과 공리(鞏俐)가 주연을 맡은 영화 ‘풍월(風月)’을 촬영해 더욱 유명해졌고, 1999년에는 공식 TV드라마 촬영지로 공인 받았다.

숭본당의 주인은 첸요우진(錢幼琴). 전조문에는 덕이 세상 사람들의 안신입명(安身立命)하는 근본이란 뜻의 ‘숭덕사본(崇德思本)’ 네 글자가 새겨져 있다. 숭본당은 문청(門廳), 정청(正廳), 전루(前樓), 후루(後樓), 부엌 등 5진(五進) 구조로서 앞을 낮게 뒤를 높게 만들었다.
물길을 사이에 두고 숭본당과 마주보고 있는 가음당은 예전에 유씨 형제들의 소유였기 때문에 ‘유택(柳宅)’이라 했고, 가음당의 주요 건축은 ‘사모청(紗帽廳)’이라 부른다.
천년의 풍습, 태평교 길리교 장경교 등 삼교를 건너면 복이 와요
숭본당과 가음당 사이로 흐르는 물길은 세 갈래로 나뉘고, 이곳에 태평교 길리교 장경교 등 3개의 돌다리가 놓여 있다. 통리 사람들에게 ‘삼교’는 재난을 물리치는 상징이다. 어린 아이가 건너면 총명해지고, 노인이 건너면 건강해지고, 젊은이가 건너면 청운의 꿈을 이룰 수 있고, 아가씨가 건너면 아름다워진다는 이야기가 천년 전부터 전해오고 있다. 해마다 명절 때면 통리 사람들은 북 치고 장구 치며 ‘삼교’를 건너는 풍속이 생겼다.

삼교 뿐 아니라 남송에 건설돼 700여년 동안 ‘국가는 백성을 근본으로 삼고, 백성은 먹을 것을 하늘로 삼는다(國以民爲本 民以食爲天)’는 뜻을 담고 비바람을 이겨낸 사본교(思本橋), 폭이 3척도 되지 않아 한 사람이 겨우 건널 수 있는 독보교(獨步橋), 쑤조우에서 통리로 들어올 때 반드시 거쳐야 하는 조금교(鳥金橋) 등이 ‘수향’ 통리를 아름답게 지키고 있다.
이른 아침부터 통리는 활력이 넘친다. 썩은 두부를 튀기는 고약한 냄새가 거리를 가득 메워 낯선 이방인의 코를 자극하지만 통리 사람들은 노점 음식으로 간단하게 아침을 해결하고 하루를 맞는다.
장원 급제가 꿈인 선비들의 보양식인 돼지 족발, 장원제(狀元蹄)도 통리를 대표하는 음식이다. 인근 마을 사람들은 백리가 멀다 않고 통리에 와 장원제를 사 간다. 통리에서 잔치를 할 때 반드시 상 위에 있어야 할 음식이 바로 장원제다. 장원제의 유무가 손님 접대의 척도가 될 정도다.
집에서 곧바로 물길로 이어지는 계단을 따라 내려와 생선을 씻고, 세수를 하고, 빨래하는 것이 통리의 일상이다. 물길이 곧 삶의 터전이다.

물길 만큼 많은 길, 좁고 긴 농당 따라 곳곳에 옛 이야기 가득
통리는 좁은 골목으로 이어진다. 돌을 깔아놓은 좁은 길을 ‘농당(弄堂)’이라 한다. 천심롱(穿心弄) 창장롱(倉場弄) 석피롱(石皮弄) 서롱(西弄) 등 좁고 긴 골목이 물길이 닿지 않는 이곳 저곳으로 이어진다.
농당은 아픈 사랑의 이야기를 전해주는 ‘진주탑(珍珠塔)’, 원래 5진(五進) 52칸의 커다란 사저였지만 지금은 3진 41칸만 남아 있는 경락당(耕樂堂), 쑨원의 신뢰가 두터웠던 민국 참의원 비서장이었던 첸취빙(陳去病)의 고택, 통리 호수의 작은 섬 나성주(羅星洲) 등으로 통하면서 사연 많은 옛 이야기를 들려준다.
‘통리는 물로서 이름을 얻어, 물이 없으면 통리도 없다(同里以水名, 無水無同里)’라고 한 통지(同濟) 대학 첸총조우(陳從周) 교수의 말처럼 통리는 물이 있어 더욱 아름다운 옛 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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