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왕국' 서하의 아름다운 후예, 쓰촨 단바에 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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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레몬 댓글 0건 조회 2,258회 작성일 11-08-23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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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바(丹巴) ‘미인곡(美人谷)’은 ‘서하(西夏) 아가씨’들의 ‘에덴 동산’이다.
중국 대륙 남서쪽, 쓰촨(四川)성의 깐즈좡족(甘孜藏族) 자치구의 동쪽 산간 지대는 아름답다. 무슨 사연이 있기에 첩첩산중에 ‘미인곡’이 전해지는 것일까.
대제국을 꿈꾸는 몽골의 제왕 징기스칸이 1227년 남벌에 나섰다. 용맹스런 몽골의 군사들은 거침없이 말을 몰아 승전고를 울렸다. 인접국이던 서하의 운명도 백척간두에 선 꼴이었다.

망국을 눈 앞에 둔 서하 왕은 왕족과 비빈, 후궁, 귀족들에게 피난을 명했다. 내일을 기약할 수 있는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아 떠나라는 것이었다. 목숨만 보존한 망국의 유민들은 ‘고난의 피난길’에 나섰다. 무려 1000km가 넘는 대장정이었다.
지금의 깐수성을 거쳐 쓰촨성까지 내려왔다. 천리 만리, 인적 드문 길을 걷고 또 걸었다. 보다 안전한 곳을 찾아 쓰촨성의 서쪽 고원지대를 넘어 단바의 거스자(革什扎) 일대에 다달았다. 사방에서 계류가 모여들고, 길이 통했다. 여름에 덥지 않고, 겨울에 춥지 않았다. 봄엔 꽃이 만발하고, 가을은 각종 과일로 풍요로웠다.
더 이상 징기스칸 군사들의 추격도 없었다. 1038년 서하 왕국을 세운 당항족(黨項族, 일명 羌族)의 후손들은 이 곳을 피난처이자 기회의 땅으로 삼아 정착했다.
어느 덧 70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女神山 헤이얼두어선산과 東女國, 대대로 강한 여인의 氣
‘슬픈 왕족’이 단바에 흘러들기 전에도 이곳엔 토착민이 존재했다.
여신산인 해발 4820m의 헤이얼두오선(黑尒多神)산을 신성시하는 이들이었다. 산을 중심으로 천리 밖까지 세력을 확대한 토착부족과 영토를 ‘쟈머차와롱(嘉莫査瓦絨)’이라 불렀다. ‘쟈머(嘉莫)’가 여왕, ’차와롱(査瓦絨)’은 계곡이란 의미였다. ‘쟈머차와롱’이란 여왕이 통치하는 계곡이고, 이 곳에 ‘동여국(東女國)’이 있었다는 것이다. 지금은 맨 앞 글자와 맨 뒤 글자만을 따와 ‘쟈롱’이라 부른다.

단바는 태고적부터 ‘여인의 기’가 강한 땅이었다.
단바의 여인들은 해마다 5월21일부터 23일까지 펑칭제(風情節) 행사가 열리면 검은 색이 아름다운 전통 의상으로 한껏 멋을 낸다. 색조는 중후하지만 겉들인 소품들의 화려함이 미녀들의 매력을 더욱 강하게 표현한다. 대대로 이어온 동여국의 ‘상청(尙靑)’ 풍을 전승한 것이다. 조상들이 그랬듯이 위엄 있고 반듯한 명문가의 규수다운 풍치를 물씬 풍긴다.
단바는 아름다운 산의 정기와 좋은 혈통을 이어받은 여인들의 이상향인 셈이다.
미녀가 많고, 여성의 지위도 높다. 이젠 많은 단바의 미녀들이 촌락의 주임이나 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미인곡은 어디일까.
먼저 단바현에서 약 26km 떨어진 바디샹(巴底鄕)이란 산골까지 들어가야 한다. 문명의 이기를 이용하는 것은 여기까지. 다시 10km 가량 골짜기를 따라 올라가야 ‘미인곡’으로 알려진 총산춘(邛山村)이다. 오름 길은 힘겨워도 아름다운 풍광이 금세 피로를 풀어준다. 약 100가구에 천여명이 사는 산골 마을에는 소학교 1곳이 있을 뿐이다.
그런데 미녀가 없다. 보이지 않는다. 곱게 늙은 노파와 귀여운 아이들 밖에 없다. 꼭꼭 숨어사는 것일까,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미인곡의 소녀들은 열일곱, 열여덟만 되면 관습에 따라 짝을 찾아 가정을 이룬다. 결혼 뒤에는 가사에 충실하다보니 불그스레 수줍던 얼굴도 시나브로 사라져 버린다. 그 곱던 모습은 추억이 된다.
조혼하지 않는 소녀들은 ‘미인곡’을 떠난다. 외지의 호텔이나 레스토랑, 가무 예술단에서 미모를 뽐내다가 해마다 봄이 오면 어김없이 고향으로 돌아온다.
펑칭제에 맞춰 ‘에덴 동산’으로 돌아와 화려한 전통 의상으로 갈아입고 축제를 즐긴다. 마침내 단바가 ‘미인 천국’이 되는 것이다.
단바의 여인들은 태생적으로 얼음처럼 맑은 살과 옥처럼 고운 피부를 지닌데다 깨끗한 공기와 물, 부드러운 바람 속에서 ‘자연 미인’으로 성장한다.

천혜의 기후 속 높은 망루인 조루와 푸른 하늘, 초록 숲의 조화
단바는 위도상 아열대지방이지만 고산협곡으로 둘러싸여 전혀 다른 기후를 나타낸다. 일교차가 크고, 연간 변화는 작다. 햇볕이 풍부하고, 계절 변화가 뚜렷하다.
고산지대인지라 수직 변화는 심하다. 강을 따라 여름이 시작돼도 산정엔 여전히 봄이 정절이다.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봄의 빛깔을 볼 수 있고, 영원히 마르지 않는 꽃 향기를 맡을 수 있다.
또 다른 단바의 상징은 하늘을 향해 쭉 뻗어올라간 건축물 ‘조루(碉樓)’. ‘천조지국(千碉之國)’이란 별칭이 생길 만큼 숫자도 많고, 지혜가 걸작이다.
조루는 단바로 모여드는 샤오진촨(小金川), 따진촨(大金川)과 따뚜허(大渡河)의 양안에 고루 퍼져 있다. 한창 때는 3000여개에 달했지만 현존하는 옛 조루는 166개 정도다. 따뚜허 변
인 슈오퍼샹(梭坡鄕)에 84개, 푸꺼딩(蒲各頂)에 29개, 중루샹(中路鄕)에 21개 등이 산재돼 있다.
현재 남아 있는 조루 중 가장 오래된 것은 당나라 때 만들어졌다. 1000년의 풍상을 이겨냈다. 의연하게 서 있다. 이미 기울어졌지만 쓰러지지 않고, 활처럼 휘었지만 그 자체로 기경을 만든 조루들이 많다.
옛 조루는 돌과 진흙을 겹겹이 쌓아올려 모서리를 뚜렷하게 세우고, 위로 갈수록 좁아지지만 아주 반듯하게 올렸다. 보통 20여m지만 높은 것은 50m에 가깝다. 속은 10여층에서 20여층으로 나뉘고, 각 층에 10여명 정도가 들어갈 수 있으며 조루 1개면 족히 약 100~200명이 들어앉아 생활할 수 있다.
주로 사각형이지만 오각형, 육각형, 팔각형, 13각형 등 다양하다. 용도에 따라선 가조(家碉) 계조(界碉) 채조(寨碉) 풍수조(風水碉) 봉화조(烽火碉) 관채조(官寨碉) 군사방어조(軍事防御碉) 통신예경조(通訊預警碉) 등으로 나뉜다.

왜 굴뚝 모양의 조루가 필요했을까.
단바 주변은 온통 높고 험준한 설산과 깊은 계곡이 겹겹이다. 평야지대의 야산처럼 쉽게 오르내릴 수 없다. 협곡도 깊고 길며, 굽이도는 탓에 마을과 마을끼리 소통이 여의치 않다. 자연은 인간을 적응하게 만들었다. 곳곳에 높은 망루를 만들어 활용하도록 이끌었다.
청나라 건륭제 때 따샤진촨 주변에서 전투가 벌어졌다. 관군의 공격은 쉼 없이 이어졌다. 토착민을 몰살할 기세였다. 그러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조루를 중심으로 강력하게 버티자 손은 들었다.
대신 포로와 장인들을 베이징 샹산(香山)으로 압송했다. 치욕을 안겨준 ‘조보(碉堡) 건축’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연구했다. 공격 전술도 찾아냈다. 지금 샹산의 옛 조루들도 당시 포로와 장인들이 살아남아 만든 것이다.
쟈롱좡족의 전통을 이어받은 '하얀 집'이 연출하는 그림 같은 자연
단바의 후손들은 쟈롱좡족 민가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 해마다 12월12일이면 하얀 석회를 집 벽에 바른다.

쟈롱좡족의 민가는 하얀 벽이 눈부시다. 짙푸른 산록과 어우러져 이채로운 풍광을 만든다. 예로부터 전해오는 신비로운 풍수설과 농후한 종교적 색채를 조화시켜 ‘천인합일(天人合一)’의 세상을 만들었다. ‘동화의 세계’라 부를 만큼 그림 같은 경치들이 이어진다.
표고차가 1000m나 되는 산자락을 따라 점점이 박혀 있는 하얀 민가들은 보통 3~4층 구조다. 1층에선 가축을 기르고 2층은 거실, 주방, 남녀가 함께 전통 무용을 추는 공간 등으로 사용한다. 3층은 침실, 맨 위층에는 불공을 드리거나 독서하는 용도로 쓴다. 특히 2층의 주방과 3층의 곡물 건조대는 ‘독목제(獨木梯)’라 불리는 가운데 홈이 파인 나무다리가 이어준다. 홈 파인 사다리를 통해 곡물을 주방으로 직접 내려보냄으로써 사람이 직접 들고 오르내리는 불편함을 덜어주었다. 독목제는 돌 받침대를 사용, 우기에 물에 잠겨 섞는 것을 막고 있다.

봄이 오면 단바 계곡 곳곳에는 하얀 꽃, 분홍 꽃이 흐트러진다. 매화, 배꽃과 복숭아꽃이 파릇한 새싹과 어울리고, 멀리 설산과 함께 한다.
닝샤(寧夏) 후이(回)족 자치구는 오는 4월과 5월, 서하문화의 복원 전문가를 단바에 파견한다. 3명의 미녀와 함께 방문하는 관계자들은 조상의 흔적을 추적하게 된다. 지금도 단바 거스자 강 서안 사람들은 옛 서하 왕국의 풍습을 보존하고 있다.
‘당신이 예쁜 봄의 색깔을 사랑한다면 단바는 당신의 마음을 뛰게 할 것이요, 당신이 아름다운 경치를 원한다면 미인곡은 당신을 취하게 할 것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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