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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약돌로 길을 만든 저장(浙江)성 첸둥(前童)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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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레몬 댓글 0건 조회 1,370회 작성일 11-08-23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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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장성의 첸둥 마을은 좀 색다르다. 다른 옛 마을처럼 넓적한 돌을 깔아놓은 ‘석판가(石板街)’가 아니라 새알 모양의 ‘란석(卵石)’을 촘촘하게 박아놓은 조약돌 길에서 하루를 맞는다.
골목과 골목은 반질반질한 조약돌로 윤이 나고, 조약돌 사이사이 푸른 이끼가 자라난다.
타조 알만한 커다란 조약돌은 한줄 두줄 열병하듯 이어져 옛 집을 떠받치는 축대가 됐다. 푸른 벽돌과 검은 기와가 세월의 흔적을 말해준다.
조약돌 길 옆으론 실개천이 흐른다. 맑은 물은 마을의 젖줄이 되어 졸졸졸 흐른다. 물가 옆 공터는 빨래터가 된다.
봄비라도 내리면 고즈넉함이 더욱 짙게 내려앉는다.
 
첸둥 1
 
 조약돌 길과 실개천
 
첸둥(前童)은 760여년의 역사를 지닌 저장(浙江)성 링퍼(寧波)시 링하이(寧海)현에 있는 옛 마을이다. 주린(竹林)과 첸둥, 두 마을을 합쳐 오늘의 모습을 갖췄다.
지리 환경이 특이한 역사문화 고을이다. 마을의 서북과 동남쪽은 산이 에워싸고 있다. 서북의 끝자락에 양황산(梁皇山)이 솟아 있다. 산과 산 사이로 백계(白溪)와 양황계(梁皇溪)가 흐르는 평지가 펼쳐진다.
마을이 고풍스럽고, 민심은 순박하고, 샘이 신령하고, 산수가  빼어나다.
첸둥에는 명청시대의 고건축물이 1300여채가 남아 있다. 강남 민가의 원형을 한 폭의 그림처럼 보여준다. 
집집마다 조각이 아름다운 대들보가 있고, 가정마다 마르지 않는 물이 흐른다.
백계수는 서쪽에서 갈라져 마을 앞으로 들어와 주린 마을의 동쪽으로 빠져 나간다. 양황계는 양황산의 동남쪽 자락에서 시작돼 마을의 뒤를 거쳐 주린 마을의 뒤로 돌아 백계와 합류한다.
흐르는 물 위로 작은 다리가 골목을 이어준다. 이리저리 흐르는 물길이 이 집 저 집으로 통하는 수향은 아니지만 수향보다 더 빼어난 운치를 풍긴다.
 
첸둥 2
 
 첸둥의 민가
 
첸둥에는 독특한 정월 대보름 축제가 아직도 이어진다.
먼 옛날, 첸둥은 척박한 땅이었다. 농사가 불가능했다. 제 때에 물을 댈 수가 없었다. 마을 사람들은 머리를 맞댔다.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10리 밖에서 흐르는 백계를 마을까지 끌어드리기로 했다. 주민들은 힘을 합쳤다. 불가능할 것 같은 물길을 잡았고, 백계수를 마을까지 끌어들이는데 성공했다.
쓸모없던 모래밭, 아무 것도 재배할 수 없었던 대지가 기름진 논으로 변했다. 삶의 터전이 된 것이다. 조상들의 땀이 오늘을 사는 후손들의 피가 됐다.
첸둥에선 해마다 정월 14일에서 16일까지 풍년을 기원하고, 조상들의 은덕을 기리기 위한 축제를 연다. 징과 북을 두드리고, 꽃을 흔들고, 휘영청 불을 밝히고 성대한 등회(燈會)를 펼친다.
화려한 꽃과 등으로 수놓은 가마가 크고 작은 골목을 누비고, 정교하고 품격있게 만든 고정(鼓亭)에는 동네의 남녀 아이들이 희곡 속의 주인공으로 변해 축제에 동참한다. 불을 밝히고, 폭죽을 쏘며 춤을 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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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보름 축제에 참여해 경극 주인공으로 분장한 어린이들. 
 
첸둥엔 많은 역사 유적이 남아 있다.
남오산(南嶴山) 자락에는 명나라 초의 교육기관인 ‘석경정사(石鏡精舍)’가 있다. 이 곳에선  육경과 수백권의 유교 관련 서적을 모아 후학들을 가르쳤다. 명나라부터 청나라까지 근절당(謹節堂), 취서루(聚書樓), 집현재(集賢齋), 천․ 척목초당(天∙尺木草堂), 록명산방(鹿鳴山房), 덕린서원(德鄰書院) 등 교육 시설을 계속 만들어 유교 교육의 장으로 활용했다. ‘시례명종(詩禮名宗)’란 현판이 걸려 있을 만큼 유가의 가르침에 충실했다. 이 곳에는 명나라 초기의 대유학자로서 석경정사의 훈장으로 초빙된 방샤위(方孝孺)가 직접 심은 여섯 그루의 동백나무가 아직도 자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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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경정사의 제례
 
방샤위는 후학 지도 뿐 아니라 동씨종사(童氏宗祠)까지 설계할 정도로 다방면에서 능력을 발휘했다. 명나라 홍무(洪武) 18년에 건립된 종사는 전각을 중심으로 양쪽에 회랑이 있고, 남쪽에는 공연장을 북쪽에는 사당을 설치했다. 그리고 사방으로 엄사사(儼思祠), 영언사(永言祠), 숭본사(崇本祠) 등 10개의 작은 사당을 만들었다. 
이밖에 명나라의 지리학자이자 유학자인 슈샤꺼(徐霞客)가 자신의 국토 유람기에 처음으로 소개한 양황산 남쪽 자락에는 당나라 무덕(武德) 연간에 세운 양황사(일명 崇福寺)가 있다.
마을의 동서에 아름답게 자리잡고 있는 탑산(塔山)과 록산(鹿山) 사이에는 효녀호(孝女湖), 묘호(廟湖), 치사청(致思廳), 학사교(學士橋), 남궁묘(南宮廟) 등 유적이 있다.
록산에는 혁명열사묘와 비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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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첸둥의 고건축물
 
첸둥의 목공예로 유명하다. 베이징 고궁박물관에 소장된 꽃가마(花轎)와 목조 침대를 모두 이 곳에서 만들었다.
첸둥에선 어느 집이나 청나라에서 민국 초기 사이에 만들어진 꽃무늬가 새겨진 침대, 팔선(八仙) 탁자, 붉은 찬장 등을 갖추고 있었다.
첸둥샹간(前童香干)과 샤꺼빙(霞客餠) 등 특산물 외에도 첸둥에는 세 가지 보물이 있다. 두부(豆腐), 공심부(空心腐), 두부간(豆腐干)이다.
첸둥은 아직 이름 난 옛 마을이 아니다. 그래서 예스러움이 여전하고, 사람들의 마음도 더없이 순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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