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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보세구역, '세금 없는 마을' 저우춘꾸상청(周村古商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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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레몬 댓글 0건 조회 1,417회 작성일 11-08-23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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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둥(山東)성 즈보(淄博)시 저우춘(周村)의 대가(大街) 북쪽 끝에는 육각형 돌비석이 하나 서있다. ‘오늘은 세금이 없는 날’임을 알리는 ‘금일무세비(今日無稅碑)’다. 이 비석에는 청나라 때부터 이 마을에서 시행된 ‘세금 없는 날’에 얽힌 이야기가 새겨져 있다.
 
금일무세 의식
 
 전통 방식으로 열리고 있는 ‘금일무세’ 의식
 
저우춘이 상업도시로 발전하는데 가장 공헌한 인물은 리화시(李化熙)다. 원래 명나라 숭정 7년(1643년) 진사로 급제해 지방 민정과 군정을 순시하는 관직인 순무(巡撫)를 지냈고, 청나라가 들어선 뒤 형부상서(刑部尙書)까지 맡았다.
리화시는 청나라 순치 11년 관직에서 물러나 고향 저우춘으로 돌아왔다. 고향의 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해 스스로 마을의 세금 전부를 책임지면서 저우춘을 중국 역사상 첫 ‘보세구(保稅區)’로 만들었다. 그러자 소문을 듣고 각지의 부자 상인들이 모여들었다. 이 때부터 천하의 재화가 모여드는 교역 중심지 ‘한마터우(旱碼頭)’로써 전국적인 명성을 쌓아나갔다.
‘금일무세비’엔 이런 리화시의 이야기를 새겨 놓았고, 지금도 이곳에선 ‘금일무세’를 알리는 의식을 열리고 있다.
 
금일무세비
 
 대가에 세워진 금일무세비
 
저우촌은 사통팔발, 교통의 요지다. 동으로 칭다오(靑島) 항구까지 300km, 서로는 지난(齊南) 국제공항까지 50km에 불과하다.
저우촌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상품 면세 구역이자 오래된 전통 가게의 발상지이기도 하다. 오래된 우체국이 있고, 잘 보존된 꾸제스(古街市) 박물관 등이 있다.
저우춘은 예로부터 ‘비단의 고향(絲綢之鄕)’, ‘진저우춘(金周村)’ 등으로도 불렸다. 1904년 위안스카이 등 군정 관계자들이 개항을 요청해 산둥 지방에서 가장 먼저 근대화의 문을 열었다. 남방의 퍼산(佛山), 징더전(景德鎭), 주센전(朱仙鎭)과 함께 물길도 없이 사방으로 통하는 ‘4대 한마터우(旱碼頭)’로 자리 잡았다.
 
옛 우체국
 
 저우춘의 오래된 우체국
 
저우춘은 소주, 항주와 함께 비단 마을로 유명하다. 저우춘 비단의 화려함은 양무운동으로 시작된 근대화 시기에 절정에 달했다. 이 때 항싱더(恒興德), 위허우당(裕厚堂), 통펑(同豊), 위앤펑(源豊) 등 4대 잠사 공장과 전문적인 잠사 연구기관이 생겼다.
저우춘의 거리는 이름부터 상업도시의 냄새를 물씬 풍긴다. 스스제(絲市街), 인즈스제(銀子市街), 초우스제(綢市街) 등이 바로 그것이다.
스스제는 명나라 초에 형성된 잠사 시장길이다. 시장통은 약 300m. 명청시대 스스제를 중심으로 수백리 밖까지 잠사 농가가 번창했고, 주변의 뽕나무가 수십만 그루에 달했다. 이 곳에서 생산된 누에고치와 생사의 교역은 모두 저우춘에서 이루어졌다. 허난(河南), 산시(山西), 허베이(河北)은 물론 심지어 일본이나 러시아의 상인까지 몰려 들었다. 그래서 ‘비단 거리’란 이름을 얻었다.
 
대염방과 비단가게
 
 대염방과 비단 가게
 
청나라 초기에 형성된 인즈시제의 북쪽은 스스제가 시작되고, 남쪽은 귀성각에 이른다. 길 양쪽으로 벽돌집들이 길게 늘어 서있다. 이곳은 상업 금융시장이다. 중국에서 유명한 따더퉁(大德通), 따더항(大德恒), 따더촨(大德川), 산전위엔(三晋元) 등이 이곳에 분점을 냈다. 돈이 물 흐르듯 천하와 통했다. 가장 번성했을 때는 사금융업체가 128개 이상이었다.
저우촌은 명청 시대에 발달한 북방의 중요한 상업 도시이다 보니 ‘천하제일촌(天下第一村)’이라고 했다.
저우촌은 명청 시대의 거리 모습과 심택대원(深宅大院)이 잘 보존돼 있어 영화 촬영지로 인기가 높다. ‘제5세대’ 감독의 기수 장이모가 1996년 영화 ‘살아있다는 것(活着)’을 촬영했고, 그 뒤 ‘대염방(大染坊)’과 ‘틈관동(闖關東)’을 찍었다. 인기 TV드라마 ‘한마두(旱碼頭)’도 이곳에서 촬영했다.
 
영화 홍보관
 
 저우춘에서 촬영한 영화 홍보관
 
저우춘은 2001년 산둥성의 중요 관광자원으로 지정돼 ‘수구여고(修舊如古)’의 원칙에 따라 대대적인 유적 보수와 대외 개방을 시작했다. 천불사(千佛寺), 괴성각(魁星閣), 대염방, 금일무세비, 삼익당 인쇄전관, 개인 금융기관인 표호전람관(票號展覽館), 즈보 예술 박물관 등을 보수한 뒤 일반에게 공개했다.
이밖에 당나라 때 세워진 명교사(明敎寺), 청나라 때의 귀성각, 천하에 이름을 떨친 ‘팔대상(八大祥)’ 이란 옛 상점과 ‘동방상인’이라 불리던 멍뤄촨(孟雒川)의 고택 등이 늘어서 있다.
천불사는 저우춘의 북쪽 끝에 있다. 사묘(寺廟), 누각(樓閣), 궁전(宮殿) 등이 27채나 된다. 산시(山陜)회관과 푸젠(福建)회관이 있고, 희대(戱臺) 2곳도 있다.   
저우춘의 상업은 사묘 경제에서 발전한 것이다. 당송 시대부터 저우춘은 종교 건축물과 상업 문화로 멀리까지 소문이 나 있었다. 사묘 경제가 처음 형성된 곳이 천불사 주변이다. 세계 각지의 상인이 모여들다보니 종교가 다양해졌고, 이로 인해 천불사를 비롯한 규모가 큰 사당에는 불교, 유교, 도교가 자연스럽게 공존하고 있다.
 
천불각 목각상
 
 천불각의 목각
 
당나라 때 처음 창건된 천불사는 천불각(千佛閣), 관제사(關帝祠), 삼의전(三義殿), 나한당(羅漢堂), 미륵전(彌勒殿), 관음전(觀音殿) 등 6개의 대전으로 구성돼 있다.
중심 건축물인 천불각은 청나라 강희 48년(1709년)에 창건된 2층 10칸의 구조로서 남쪽을 바라보고 있다. 돌로 축대를 쌓고, 벽돌로 누각을 올렸다. 천불각에는 서로 형태가 다른 불상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다. 1947년 2월 국공내전 당시 이곳을 찾았던 전이(陳毅)가 역사 유물의 훼손을 막기 위한 조치를 취해 지금까지 보존할 수 있었다.
천하의 재화가 모여드는 옛날의 상업 중심지 저우춘, 중국인의 비즈니스 마인드를 엿볼 수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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