굽이굽이 뱃길이 만든 천년상성(千年商城), 양메이(揚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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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레몬 댓글 0건 조회 1,371회 작성일 11-08-23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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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이 흐른다. 마을을 끼고 강이 흐른다.
난닝(南寧)에서 흘러온 옹강(邕江)을 만난 좌강(左江)은 남북에서 천년고성 양메이(揚美)을 품고 동에서 서로 흐른다. 물길을 따라 뱃길이 열렸고, 배가 닿는 곳에 장터가 생겼다. 긴 세월 속에 장터는 마을을 만들었다.
광시(廣西)성 장족(壯族)자치구의 중심도시인 난닝(南寧)에서 약 30여km 떨어진 양메이는 천년 전부터 이렇게 형성된 상업 중심지다. 송나라 때부터 사방 100리 밖에서 생산된 물산들이 물길을 타고 모여 들었다. 뱃길이 분주하면 마을이 번창했고, 뱃길이 뜸하면 마을은 쇠락했다.

처음에는 뤄(羅), 류(劉), 류(陸), 리(李)씨 등 4개 성씨가 모인 작은 집성촌이었다. 가시나무에 백화가 만발해 ‘빠이화춘(白花村)’이라고도 불리다가 각 지방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청계(靑溪, 좌강)의 파도를 일으킨다고 하여 ‘량시춘(揚溪村)’이란 이름을 얻었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이 아름다움을 이야기하면서 ‘량메이춘’이 됐다.
송나라 때 발전을 거듭하다 청나라에 이르러 가장 번창했다. 뱃길이 바쁠 때는 좌강 변에 용선부(龍船埠), 두옥부(杜屋埠) 나만부(那晩埠), 즉대부(卽大埠), 전만부(畑灣埠), 대만부(大灣埠), 신가부(新街埠) 등 무려 8개의 선착장이 활기 찬 모습이었다.
지금은 진마마터우(金馬碼頭)로 이름이 바뀐 즉대부만이 뱃길을 따라 온 상인이나 관광객을 맞고 있다.

진마마터우와 이어진 길이 바로 마을의 남북 중앙통인 진마제(金馬街)다. 이 곳에 오층당과 량리에아 고택 등이 있다.
진마마터우의 오른쪽, 숲 그늘에는 갑문이 서 있고 그 위에 ‘린장제(臨江街)’라 세 글자가 적혀 있다. 이 길이 청나라 도광 14년(1832년)에 강을 따라 건설한 일번가다. 약 300여m, 폭 3.8m의 거리에 하수도를 만들고, 그 위를 모두 청석으로 깔아 놓은 석판가다. 생활용수나 빗물, 오수 등이 모두 하수도를 통해 흘러나갔다. 일찍부터 환경 보호를 신경 썼던 것이다.

양메이은 작지만 아름다운 옛 마을이다. 강가의 풍경은 한 폭의 그림이다.
명나라의 유명한 여행가 쉬샤커(徐霞客)은 난닝(南寧)에서 배를 타고 이 곳을 지나면서 빼어난 풍광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양메이에는 남북으로 흐르는 좌강을 따라 8대 경관이 있다. 마을 북쪽 옛 나루터 주변에 용담석영(龍潭夕影), 청파회고(靑坡懷古), 정대강류(亭對江流), 뇌봉적취(雷峰積翠) 등 4곳과 강 건너 백사장에 강탄월야(江灘月夜) 등이 아름다운 명소이다.
용담석영에 얽힌 이야기는 산제마오(三界廟) 앞 연못에서 시작된다. 강물이 굽이치며 만들어낸 깊은 연못의 쪽빛 물 위로 햇살이 비추면 용의 비늘인 양 잔잔한 은빛 물결이 출렁인다. 연못 옆의 큰 바위는 마치 용 머리 같았다. 그래서 이 곳을 ‘용담’이라 불렀다.
어느 날 과거에 급제한 두위엔춘이 이 곳에 머물며 ‘삼면은 모두 산이요, 노을은 맹렬히 퍼져 가는구나. 삼계묘 위 창공에도 용담의 저녁 그림자가 걸렸구나(三面皆山霞飛孟志, 界空一色夕影龍潭)’라는 시구를 남겨 ‘용담석영’의 경치는 지금도 아㎢牟遲?상징으로 전해지고 있다.
검삽청천(劍揷淸泉), 각망운하(閣望雲霞), 탄송상호(灘松相呼) 등 나머지 3곳은 현재 기차역이 있는 마을 남쪽의 강변을 따라 있다.

양메이의 옛 가옥은 크게 명나라와 청나라 양식으로 나뉜다. 명대 건축물은 목재를 주요 자재로 사용한 전목결구(磚木結構)식으로 7개의 나무 기둥을 세워 ‘칠주옥(七柱屋)’이라 불린다.
반면 청대 건축물은 전목결구식이지만 벽돌을 주로 하고, 나무를 다음 요소로 활용하고 있다. 벽돌은 명대의 것보다 길고, 폭도 넓지만 두께는 얇다. 용마루와 앞쪽 담장의 지붕에는 모두 화조초수화(花鳥草獸畵)나 인물화 등 부조를 새겨 놓았다.
건륭년간에 황후이롱(黃厚龍)이 건축한 사저인 황씨장원(黃氏庄園)이 대표적인 청대 건축물이다.
이밖에 공묘(孔廟), 괴성루(魁星樓), 진사옥(進士屋), 거인옥(擧人屋), 신해혁명에 참여했던 지사 량리에아(梁烈亞) 고택, 봉화대 유적지, 옛 부두, 금약비(禁約碑) 등 유적이 남아 있다.
건륭년간(1736년)에 세운 괴성루는 높이 15.3m, 깊이 11.66m의 3층 구조로 외관은 정방형으로 제왕의 옥새를 닮아 ‘제인(帝印)’이라 부른다. 동치 무술년에는 향시에 수석 합격한 이 고장 출신 량더센(梁德顯)이 괴성루의 대들보에 ‘문명(文明)’이란 두 글자를 썼고, 창가에 앉아 ‘문각에 올라 자각을 바라본다(文閣登臨望紫閣)’이란 시구를 남겼다.
린장제에 있는 거인옥은 두씨(杜氏) 가문의 사저다. 도광 8년(1829년) 15대손인 두위엔춘(杜元春)이 과거에 급제한 뒤 ‘거인(擧人)’이란 편액을 대문에 내건 뒤부터 ‘거인옥’이란 이름으로 불렸다. 그리고 첫 번째 중당 위에는 사방 1.2m로 ‘수(壽)’ 자, 두 번째 문 위에는 ‘길(吉)’를 새겨 놓았다.

명청시대의 건축물과 유적이 잘 보존된 양메이에선 많은 영화나 드라마를 촬영했다. ‘광시에 있는 덩샤오핑(鄧小平在廣西)’, ‘두견이 울다(杜鵑聲聲)’, ‘스따카이(石達開)’ 등 영화와 드라마의 촬영지로 유명하다.

양메이는 인구 3500명의 자그마한 강가 마을이다. 한때 상업의 중심지였고, 강물을 따라 이어진 뱃길은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었다. 그 흔적이 남아 아직도 지난 날을 이야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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