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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지붕으로 열린 차마고도의 옛 장터 스덩제(寺登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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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레몬 댓글 0건 조회 1,721회 작성일 11-08-23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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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마고도(茶馬古道)는 가장 높고, 험하고, 아름다운 길이다. 평균 해발 4000m 이상의 히말라야 영봉을 바라보며 끝없이 간다.
멀고 먼 5000km, 윈난(雲南)에서 시작해 협곡을 지나, 설산을 넘어 이어진다. 따리(大理), 리장(麗江), 중덴(中甸)을 거쳐 티벳 라샤(拉薩)에 이른다. 여기서 다시 인도로 가는 유일한 육로가 바로 차마고도다. 기원전 6세기 말에서 7세기 초에 형성된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교역로다.
윈난의 차와 소금은 하늘 길을 따라 퍼져 나가 티벳의 말과 모피, 약초와 맞바꾼다.
따리 지엔촨(劍川)현의 남부 사시(沙溪)향의 스덩제(寺登街)는 차마고도의 교통 중심이자 각지의 물산이 한 곳에 모여 거래되는 시장통이다. 날마다 여러 마방(馬幇)이 이 곳을 거쳐 가면서 경제와 문화가 번성했다. 북으론 쓰촨과 티벳으로 통하고, 남으론 중원 뿐 아니라 동남아 각국과 이어지는 교역 요충지였다.
남북을 오가는 쫭(藏)족, 한(漢)족, 나시(納西)족 상인으로 구성된 마방들이 이곳에 잠시 머물러 쉬는 동안 각자 가져온 물건을 교환하면서 시장이 번창했다.

스덩제의 고희대
 
 스덩제의 고희대

차마고도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는 옛 장터인 스덩제엔 지금도 그 옛날의 찬란한 문화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이 곳의 유적들은 2002년 만리장성, 산시(陝西)성의 대진보탑(大秦寶塔)과 수도원, 상하이의 오헬 래첼(Ohel Rachel)성당과 함께 세계적인 기념비적 건축 유산으로 등재됐다.
스덩제에는 청나라 때 민가와 널빤지에 물건을 내놓고 팔던 가게가 있고, 말발굽의 흔적이 남아 있는 명나라 석판가가 있고, 천년의 향기가 배어 있는 고목이 있다.
이젠 시끌벅적하고 번화한 옛 모습은 볼 수 없지만 바이(白)족의 민가와 상점, 여관 등이 전 세계 배낭족들을 맞이하고 있다.

스덩제의 거리의 바이족들
 
 스덩제에서 문물 교환을 하고 있는 바이족 주민들

스덩제는 원나라 말부터 명나라 초에 형성되기 시작됐다. 그러나 사시촌은 춘추전국시대부터 사람들이 모여들어 만들어진 촌락이다. 마을의 남쪽 아오펑산(鰲峰山) 고분에선 주조로 만든 청동기가 출토돼 유구한 역사를 증명하고 있다.
스덩제의 중심인 사방가(四方街)는 전점후원(前店後院) 양식의 상점이 줄지어 있다. 큰 길 위에 두 그루의 고목이 서있고, 동쪽에는 삼중첨누각(三重檐樓閣)인 고희대(古戱臺), 서쪽에는 일진삼원(一進三院)식으로 건축한 흥교사(興敎寺)가 있다.
흥교사는 바이족의 아자리 불교 사원으로 명나라 영락제 13년(1415년) 때 건립됐고, 20여폭의 벽화가 남아 있다. 이 벽화는 바이족 화상 장바오(張寶)가 그린 ‘장승온화권(張勝溫畵卷)’가 일맥상통한다. 600여년의 풍상에도 의연한 모습을 자랑하고 있는 흥교사의 기둥과 대들보도 그대로 남아 있다.
흥교사와 마주보고 있는 고희대는 청나라 때 만든 것이다. 전대후각(前臺後閣) 형식으로 무대 뒤쪽이 괴성각(魁星閣)과 이어진 독특한 구조다.
 
스덩제 상점에서 후원으로 이어지는 문
 
 스덩제 상점에서 후원으로 이어지는 문 

스덩제에는 바이족 민가의 전형적인 건축 양식이 잘 보존돼 있다. 어우양(歐陽)씨 집안의 삼방일조벽(三坊一照壁)식 상점과 자오(趙)씨 가문의 사합오천정(四合五天井)식 가옥에선 옛  부상들의 모습을 고스란히 읽어낼 수 있다. 특히 어우양 대원은 호화 주택과 상점, 숙박시설인 마방을 두루 갖춰 ‘차마고도의 오성급 마방’이라 불릴 정도다.  
스덩제는 3개의 문으로 통하게 돼 있다. 남에서 북으로 가는 상인들이 드나들던 동채문(東寨門) 앞 석판가에는 말발굽의 흔적이 또렷하게 남아 있다.

동채문을 오가는 주민들
 
 동채문을 오가는 주민들

사시 마을에는 옥진교(玉津橋), 고오교(古鰲橋), 서지교(西地橋), 문풍교(文風橋) 등 4개의 옛 다리가 남아 있다. 옥진교는 사덩제에서 가장 가까운 다리로 동채문에서 100여m 떨어진 헤이후이장(黑惠江)을 가로 지르며 고풍어린 모습으로 옛 이야기를 하고 있다.

헤이후이장의 옥진교
 
 헤이후이장에 있는 옥진교

북에 돈황이 있다면 남에는 스바오산(石寶山)이 있다.
붉은 사암으로 이뤄진 스바오산은 전형적인 단하(丹霞) 지형의 풍모를 잘 보여준다. 다른 지역의 단하 지형과 크게 다를 게 없지만 석굴과 마애 조각상이 아주 독특하다.
지엔촨에서 서남쪽으로 25km 떨어진 스바오산 풍경구는 보상사(寶相寺) 뿐 아니라 석종산(石鐘山) 석굴 등 16개의 석굴과 139개의 조각상이 널리 퍼져 있다.  ‘석종’이란 이름은 산록에 커다란 종 모양의 바위가 있어 붙여진 것이다. 석종산 석굴에는 남조(南詔, 649~902년) 시대 바이족들의 창조적인 예술 감각이 배어 있는 석종사(石鐘寺), 사자관(獅子關), 사등청(沙登菁) 등이 있다.

스바오산의 종 모양 바위
 
 스바오산의 종 모양의 바위

이 곳의 조각은 부처와 보살, 제왕, 외국의 고승은 물론 여성의 생식기 모양을 파 놓은 제8굴 ‘아앙바이(阿央白)’까지 아주 다양하다. ‘아앙’은 바이족의 언어로서 ‘꾸냥(姑娘, 아가씨)’, ‘바이(白)’는 쪼갠다는 뜻을 지닌 ‘배(掰)’에서 음을 가져와 합성한 것이다. 
이밖에 스바오산의 절벽에 만든 현공(懸空)사찰 보상사는 원나라, 해운거(海雲居)는 청나라 때 건축물이다.
스바오산에선 남조 대리국 시대부터 가회(歌會)란 잔치를 열었다. 청춘남녀들이 아름다운 산에 모여 노래하고, 춤추던 ‘정인절(情人節)’이 전통으로 내려오고 있다.
홍콩의 유명한 무협작가 김용(金庸)은 스바오산을 ‘남천괴보(南天瑰寶)’라 칭송할 정도다.
  
바오상스
 스바오산의 보상사
   
스덩제는 옛날 남아시아로 통하는 유일한 국제적 연결 도로였기 때문에 남방 실크로드와 같은 역사적 지위와 가치를 갖고 있다. 평원에 자리 잡아 경제와 문화의 중심이었고, 예로부터 문물의 집산지가 될 수 있었다.
지금도 스덩제 시장통엔 차마고도 ‘천년의 소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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