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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멍구 - 국제 외교의 무기로 쓰이는 희토(稀土)의 보고(寶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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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레몬 댓글 0건 조회 1,363회 작성일 11-08-23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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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들판으로, 산으로 달린다.
크고, 작은 다리로 이어진다. 그러나 다리 밑을 흐르는 내에는, 강에는 물이 흐르지 않는다. 거의 다 흙먼지 날리는 마른 하천이다.
산은 능선으로, 골짜기로, 구릉으로 넘어간다. 나무가 듬성듬성, 풀밭이 군데군데. 벌거숭이도 수두룩하다. ‘사슴의 도시’란 뜻인 바오터우(包頭)시의 변두리엔 민둥산뿐이다. 그 푸른 숲은, 숲에서 뛰놀던 사슴은 언제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네이멍구(內蒙古)는 시나브로 사막화되고 있다. 물이 마르기 시작하더니 숲이 사라지고, 초원이 타들어간 자리에 맨 땅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도시를 벗어나면 마을도 드문드문. 늙은이만 한둘 남아 있다. 젊은이는 도시로 떠난 지 오래다. 물길을 낼 기력이 없으니 농사짓기 어렵고, 황무지만 늘어간다. 그래도 최첨단 전자기기의 필수 원료를 쓰이는 ‘산업계의 비타민’ 희토(稀土)류 광물과 석탄, 구리, 천연가스 등 수많은 자원이 묻혀 있어 광산의 일손은 바쁘다.
네이멍구 자치구는 지하자원의 보고(寶庫)이기에 무지하게 귀한 땅이다.
 
네이멍구 최대의 공업도시 바오터우가 가는 길가의 민둥산
 
 네이멍구 최대의 공업도시 바오터우로 가는 길 옆으로 온통 민둥산이다. 그러나 수많은 지하자원이 묻혀 있는 귀한 땅들이다. 
 
후허하오터는 네이멍구 최대 도시다. 고층 빌딩 사이로 이른 아침부터 많은 사람들이 분주하게 하루를 시작한다.
도시 외곽으로 너른 밭이 펼쳐진다. 유채와 감자, 밀을 함께 심어놓았다. 대륙의 남쪽 윈난(雲南)이나 구이저우(貴州)에선 3월에 피는 샛노란 유채꽃이 네이멍구에선 7월이나 8월에 핀다. 유채 꽃 옆엔 하얀 감자 꽃이 피고, 푸른 밀이 돋아난다.
그나마 땅의 기운이 왕성한 홍토지(紅土地)에서나 볼 수 있는 시골 풍경이다. 홍토의 지력이 떨어지면 누런 황토(黃土)로 변하고, 그마저 허약해지면 어떤 작물도 생명의 뿌리를 내릴 수 없는 잿빛 땅이 된다.
후허하오터은 따칭(大靑)산을 중심으로 이어진 인산(陰山) 산맥을 끼고 있다. 산맥의 협곡을 따라 이어진 고속도로 변에 세워둔 ‘조림은 1000일 동안의 노력(造林千日功)’이란 푯말이 상징하듯 산에는 나무보다 풀이 많다.
어쩌다 나타나는 작은 마을엔 마치 토굴 같은 황토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사람의 모습은 좀체 찾아보기 힘들어도 사람 사는 곳임은 분명하다.
나무가 있으면 마을이 있고, 사람이 있다.
 
유채밭
 
 네이멍구의 후허하오터시는 인산 산맥을 끼고 있다. 높은 구릉지대에는 유채와 감자를 심어 놓았다. 8월에 피는 노란 유채꽃 옆에 하얀 감자 꽃이 보인다.
 
예로부터 대륙의 북방에는 몽골족 뿐 아니라 흉노족, 선비족 등 여러 소수 민족이 살았다.
흉노족은 중원의 한족 국가들을 위협하기도 하고, 때론 화친 관계를 유지하며 공존했다. 
전한(前漢)시대 원제가 통치하던 시절, 흉노의 호한야(呼韓耶) 선우(單于)는 한족 여인 왕소군(王昭君)를 아내로 맞았다. 뇌물에 놀아난 궁중 화가 덕이었다.
원제는 흉노의 군주가 궁녀를 원하자 궁중 화가에게 궁녀들의 인물화를 그리도록 했다. 화원은 뇌물을 받고 궁녀들의 얼굴을 자기 멋대로 그렸다. 뇌물을 주면 미녀, 그렇지 않으면 추녀로 만들었다. 왕소군은 화원에게 뇌물을 주지 않았다. 실물과 달리 추녀로 그려졌고, 원제는 그림만 보고 왕소군을 흉노의 땅으로 보내기로 결정했다. 왕소군을 보내던 날, 원제는 뒤늦게 그녀의 미모를 알게 됐다. 어찌하리오.
왕소군은 유목민인 흉노족에게 옷감을 만들고, 옷을 만드는 법을 가르쳤다. 비록 몸은 북방에 와 있어도 늘 중원을 그리워하며 ‘봄은 왔지만 봄 같지 않다(春來不似春)’는 싯구도 남겼다.
지금 후허하오터 남쪽엔 ‘소군묘’, ‘청총(靑塚)’이라 불리는 유적지가 남아 있다.
왕소군은 양귀비, 서시, 초선과 함께 중국의 4대 미녀로 꼽히는 미인 중에 미인이다.
 
우당자오
 
 바오터우 인근의 아오바오 산자락에 있는 티베트 불교 사원 우당자오.
 
네이멍구는 넓지만 수확이 적은 곳이다. 7~8월에 집중적으로 쏟아지는 비의 양이 연 평균 450mm 정도다. 늘 물이 부족해 밭농사를 주로 한다. 귀리의 생산량은 세계 최다지만 다른 작물들의 생산량은 적다.
몽골족에겐 문자가 없었다. 그러나 칭기즈 칸이 정복 전쟁으로 세력을 확장하면서 라마 불교가 전래 됐고, 티베트 문자를 바탕으로 고대 몽골문자인 파스파(八思巴) 문자를 만든다.
바오터우시 동북쪽 아오바오산 우당 계곡에는 티베트 불교 사원인 우당자오(五當昭)가 자리 잡고 있다. 원래 이름은 ‘흰 연꽃’이란 뜻의 ‘바다가얼(巴達嘎尔)’이었지만 청나라 때는 황제가 내려준 이름인 ‘광줴사(廣覺寺)’라고 불렸다. 지금은 '동방의 작은 포탈라궁‘이라 일컬어지는 사원이다.
1756년 청나라 건륭제 때, 전형적인 티베트 건축 양식으로 6개의 전각과 3개의 관저, 1개의 능을 만들었다. 사다리꼴 모양의 건축물은 하얀 벽과 지붕 쪽에 붉은 띠 벽을 둘러놓았다.
한 때 우당자오에는 1200여명의 라마승들이 수도하면서 불경과 천문학 등을 공부하는 고등 학부 역할을 했다.
우당자오 주변도 척박하다. 듬성듬성 남아 있는 나무들이 황량함을 더해준다.
 
황토집과 노부부
 
 바오터우로 가는 길가의 시골 농촌에는 젊은이가 없다.  전형적인 황토 가옥을 지키는 이들은 노부부 뿐이다. 
 
네이멍구의 몽골족들은 꽃 피는 봄이면 어머니의 품 같은 초원을 보고, 햇살이 따가운 여름날엔 말을 타고 격정을 즐긴다. 가을이 오면 금빛으로 물든 신비로운 풍광에 흠뻑 취하고, 겨울에는 동화 같은 설원에서 살아간다.
세월이 가고, 세상은 변하고 있다. 사슴이 뛰어놀던 푸른 숲은 사라졌고, 자연 속에서 사계절을 함께 하던 농촌도 줄어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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