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넓은 칭기즈 칸 역사 유적지, 간더리 초원의 능원 > 이색도시 문화탐방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이색도시 문화탐방


 

세계에서 가장 넓은 칭기즈 칸 역사 유적지, 간더리 초원의 능원

페이지 정보

작성자 레몬 댓글 0건 조회 1,542회 작성일 11-08-23 16:01

본문

일망무제(一望無際), 고개 들어 먼 곳을 바라보니 끝이 없다. 작은 구릉 정도만이 가로 막는다. 초원이나 사막이나 똑같다. ‘광야’란 이런 곳이구나.
‘까마득한 날에 / 하늘이 처음 열리고 / 어디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다시 천고의 뒤에 /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 이 광야에서 목 놓아 부르게 하리라’
시인 이육사에게 ‘광야’는 희망의 시작이었다.
1226년 늦가을, 칭기즈 칸은 몽골의 용감한 병사들을 이끌고 광야를 거쳐 서하(西夏) 정벌에 나섰다. 대제국의 꿈을 안고 이진후어뤄를 지나고 있었다. 아름다운 푸른 초원이 펼쳐졌다. 말 위에 앉아 꽃이 피고, 맑은 물이 흐르는 풍광에 푹 빠져 들었다. 순간 채찍을 놓치고 말았다. 곧바로 부장(部將)이 집어주려 하자 칭기즈 칸은 이를 막아서며 오히려 막 떠오른 시를 읊조렸다.
‘매화 피고 어린 사슴 뛰노는 곳, 후투티가 둥지 튼 보금자리, 무너진 왕조 부흥하는 땅, 나 백발노인 편히 쉴 곳이로다.(梅花幼鹿栖息之所 戴勝鳥儿孵化之鄕 衰亡之朝復興之地 白髮吾翁安息之邦)’
이 곳이 바로 지금 칭기즈 칸 능원(陵園)이 있는 어얼뚜어스(鄂尔多斯)시 이진후어뤄치(伊金霍洛旗)의 간더리(甘德利) 초원이다.
칭기즈 칸은 자신의 앞날을 예견한 것일까. 이것이 육순을 넘긴 칭기즈 칸의 마지막 출정이 되고 말았다. 천하를 호령하던 칭기즈 칸은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서하 원정에서 퐁토병을 얻어 이듬해인 1227년 여름, 영원히 눈을 감았다.
 
징기즈칸 능원의 산 모양 입구, 몽골의 특색을 가장 잘 보여주는 조형물이다.
 
 칭기즈 칸 능원 입구의 산 모양 조형물. 몽골의 특색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다. 
 
칭기즈 칸 능원은 규모부터 엄청나다. 총 5.5헥타르의 드넓은 초원에 각종 조형물과 박물관, 능궁전(陵宮殿) 등을 배치해 놓았다.
입구부터 위압적이다. 넓은 광장을 지나 거대한 산 같은 조형물이 좌우에서 칭기즈 칸의 기마상을 감싸고 있다. 붉은 기운이 감도는 좌우 조형물에는 몽골어로 칭기즈 칸의 업적을 써놓았고, 초원에서의 활약상 등을 부조로 새겨 놓았다.
산 모양의 문 위에 올라서면 탁 트윈 초원이 펼쳐진다. 그 곳에 세계 정벌에 나서던 칭기즈 칸 군대의 군진을 그대로 옮겨 놓았다. 전통적인 이동식 빠오를 중심으로 앞 뒤에 철조로 만든 기마병과 평민들의 모습을 재현해 놓았다.
각종 병기를 들고 말 위에서 호령하는 병사, 빠오를 끄는 황소, 군수 장비를 이동하는 낙타, 양 치는 소년과 물 깃는 아낙네까지 드넓은 초지를 가득 채웠다.
칭기즈 칸이 막 병사를 이끌고 전장으로 나서는 듯하다.
 
전통 빠오와 철기군
 
 철조로 만든 칭기즈 칸의 군진과 이동식 빠오
 
 
과연 칭기즈 칸의 묘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몽골 황족들에겐 ‘밀장(密葬)’의 풍속이 있었다. 어느 곳이 장지인지 아무도 모르게 했다. 이런 까닭에 칭기즈 칸의 묘에 대한 논쟁이 끊이지 않는 것이다.
많은 전문가들이 추정하는 묘지는 네 곳. 첫째 몽골 국경 지대의 껑터산(肯特山) 남쪽과 커누룬허(克魯倫河)의 북쪽 지방, 둘째 몽골의 항아이산(杭愛山), 셋째 닝하의 리우반산(六盤山), 넷째 네이멍구 어얼뚜오스의 치엔리산(千里山) 등이다
간더리 초원에 자리 잡은 칭기즈 칸 능원은 1954년 4월1일 몽골 각지에 흩어져 있던 유물을 모아 건립한 의관총(衣冠塚)이다. 그러나 몽골인들은 민족의 성지가 떠받들고 있다. 위대한 제국을 만든 영혼을 숭배하기 때문이다.
 
'칸'의 몽골어 표기
 
 역사문화 박물관 입구에는 한자  ‘칸(汗)’ 을 몽골어로 써놓았다. 박물관을 이 모양으로 설계했다. 
 
초원의 철마상을 지나면 바닥을 세계 지도로 만든 또 다른 광장을 만난다.
칭기즈 칸이 서정(西征)에 나서 중앙아시아를 거쳐 유럽까지 세력을 떨치고, 남벌(南伐)을 통해 인도차이나 반도까지 위용을 떨치던 때의 모습을 새겨 놓았다.
이것이 바로 세계에서 가장 큰 몽골 제국의 지도다.
칭기즈 칸은 정복 전쟁을 통해 많은 문물을 접한다. 티베트의 라마 불교도 이 때 전파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몽골족들은 대부분 라마교 신자들이고, 티베트과 비슷한 풍습을 많이 보존하고 있다.
칭기즈칸 능원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지도 광장을 나서면 ‘칸(汗)’이란 뜻의 몽골어의 형상대로 건축한 역사문화 박물관이다.
이곳에 세계에서 가장 긴 역사문화 기록화가 설치돼 있다. 총 길이 206m인 몽골 역사 기록화가 박물관의 입구부터 출구까지 계속 이어진다. 중국 대륙을 206년 동안 지배했던 원나라의 이야기를 유화로 그려 놓았다.
 
   
역사문화 박물관의 206m 기록화
 
 
 역사문화 박물관에 설치된 206m짜리 기록화. 206년 동안의 원나라의 역사를 그림의 길이로 정했다.  
 
전통적으로 몽골인들은 인간이 생명을 다하는 순간, 마지막 한숨에 실린 영혼이 인근에 있는 낙타의 털에 옮겨간다고 믿는다. 칭기즈 칸의 마지막 한숨도 영혼이 깃든 낙타의 털이 됐다고 믿는다.
수백년 동안 내려온 이 깃털이 지금 어얼뚜어스 칭기즈 칸 능원에 보존돼 있다.
칭기즈 칸은 멀리 서하 땅에서 세상을 떠났지만 왕족과 신하들은 생전에 그가 남긴 말을 거역할 수 없었다. 왕자와 장수들은 먼저 시신을 서하의 사리촨(薩里川)에 안장한 뒤 칭기즈 칸의 유언에 따라 의관만이라도 이진후어뤄에 모시기고 했다.
전설에 따르면 이진후어뤄를 지날 때 칭기즈 칸의 의관을 옮기던 마차가 갑자기 진흙 구덩이에 빠졌다. 그러나 다섯 마리의 말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의관을 옮기던 신하들은 칭기즈 찬의 유언이 떠올랐다. 아, 이 곳이구나. 여기에 의관총을 만들라는 뜻이구나. 그래서 그 자리에 칭기즈 칸 능원을 건설했다.
지금의 어얼뚜오스(鄂尔多斯) 고원이 바로 그 곳이다. 어얼뚜어스는 원래 이커자오멍(伊克昭盟)이었다. 이커자오는 ‘대묘(大廟)’란 뜻이다.
 
출구쪽의 백마상
 
 칭기즈 칸 능원 출구 쪽의 백마상
 
역사 기록화 뿐 아니라 원나라 유물과 몽골족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박물관을 나오면 칭기즈 칸 능원 관광구의 출구다. 족히 2~3km를 걸어온 듯 하다.
넓은 돌길 끝에는 당장이라도 들판으로 달려 나가 하늘로 올라갈 것 같은 두 마리의 백마상이 좌우에 우뚝 서 있다. 이 곳에 서면 멀리 또 다른 구릉 위, 몽골식 전통 제단인 아오바오(敖包)가 있는 터에 칭기즈 칸의 능궁전이 보인다.
몽골족의 성역으로 여기는 이 곳에는 한 때 8개의 흰색 몽고식 전통 빠오가 있어 ‘빠바이스(八白室)’라 불렸다. 그리고 원나라 태조 오가타이 칸은 13세기 들어 이 곳에 4개의 빠오를 짓고 개국 공신 가문의 후손들은 능원 관리원인 ‘따얼후터(達尔扈特)’로 삼았다. 따얼후터 현재까지 800여년 동안 능지기로서 강한 자부심을 갖고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중국은 지금도 이들에게 공무원에 준하는 대우를 하고 있다.
 
칭기즈 칸 능원
 
 칭기즈 칸 능 궁전
 
칭기즈 칸 능 궁전은 3개의 몽골식 빠오를 일자로 이어놓은 형식으로 건축해 정전(正殿), 침궁(寢宮), 동전(東殿), 서전(西殿), 동랑(東廊), 서랑(西廊) 등 6개 부분으로 나뉜다.
칭기즈 칸 능이란 현판이 걸려 있는 가운데 정전은 높이 26m로써 팔각형 평면 위에 건설했다. 이중 지붕을 가진 몽골식 빠오의 형식으로 둥근 모자를 쓰고 있는 모양이다. 둥근 모자는 황색 유리 기와를 바탕으로 남색 유리 기와를 섞어놓았다.
동전과 서전은 부등변 팔각 평면 위에 단층 지붕으로 만들었다. 높이는 23m이고, 모양은 정전과 비슷하다.
정전에 들어서면 높이 5m의 칭기즈 칸 좌상이 한 눈에 들어온다. 금빛 기둥과 좌상 뒤로 ‘4대 칸국’의 지도를 배경으로 삼았다. 정전 뒤는 침궁이다. 4개의 황금 비단으로 만든 빠오에는 칭기즈 칸과 3명의 부인들의 영구를 모시고 있다. 칭기즈 칸이 생전에 사용하던 말 안장 등 유물도 보존돼 있다.
침궁 앞 제단에는 향과 함께 800여년 동안 칭기즈 칸 능원을 지켜온 ‘영원히 꺼지는 않는 불’이 타오르고 있다. ‘따얼후터’들이 하루 3교대로 침궁을 지키고 있다.
동전에는 칭기즈 칸의 넷째 아들인 투오레이(拖雷)와 그의 부인 영구, 서전에는 정벌의 상징인 아홉 장수의 깃발과 창 등을 보존하고 있다.
정전의 동랑과 서랑 복도는 작은 유물 전시관으로 꾸며 놓았다.
칭기즈 칸 능 궁전은 신성한 곳이다. 사진 촬영은 절대 금지다. 카메라 불빛이 성군의 영혼을 해친다는 것이다.
 
정전의 칭기즈 칸 좌상
 
 칭기즈 칸 능 정전의 좌상
 
‘몽골 비사’에 따르면 몽골 황족이 사망하면 시신을 묻고 난 뒤 먼저 수 백 마리의 말로 묘의 지표를 평편하게 다지고, 다시 그 위에 각종 수목을 심었다. 그리고 오랫동안 능원을 지키게 한 뒤 묘의 흔적을 알아 볼 수 없을 때 이 곳을 알고 있는 모든 사람을 처형했다.
몽골의 평민들도 조장(鳥葬)이나 토장(土葬)을 통해 묘지의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
삶을 위해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광활한 초원을 떠도는 유목민인 탓이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