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불가사의 장성(長城), 2000년의 대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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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레몬 댓글 0건 조회 1,796회 작성일 11-08-23 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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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은 대개 기원전 220년, 진시황 때부터 건설됐다. 북방에서의 침범을 방어하기 위한 것이었다. 명나라에 이르러 장성은 세계 최대의 군사시설로 모습을 갖췄다. 장성의 역사와 전략적 의의, 건축학적 가치는 온 세상에서 으뜸이다.

위치 ; 중국의 서부, 북부, 중부의 광활한 대지에 조성됐다. 서로는 신장의 카쓰(喀什)에서 동으로는 요녕성의 야루장(鸭绿江)에 이른다. 신장(新疆), 깐쑤(甘肃), 산시(陕西), 샨시(山西), 네이멍쿠(内蒙古), 허베이(河北), 베이징(北京), 톈진(天津)과 야오닝(遥宁) 등 많은 성과 시, 자치구를 지난다.
역사 배경 ; 장성의 보수는 기원전 7~6세기의 춘추시대에 시작돼 17세기 명나라 말까지 2000여년 동안 계속됐다. 원래 춘추전국시대의 제후국들은 적을 방어하기 위해 자신이 다스리는 지역에 장성을 쌓았다.

초나라의 장성이 가장 먼저 건설됐고, 그 후 제(齊), 한(韓), 위(魏), 조(趙), 연(燕), 진(秦) 등 제후국의 장성이 잇달아 만들어졌다. 이같은 장성들이 하나의 체계를 만들었고, 사학자들은 ‘선진장성(先秦長城)’이라 불렀다.
기원전 221년 진시황이 6국을 병합하여 천하통일을 한 뒤 북방의 강력한 흉노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 연, 조, 진나라 장성을 기초로 대대적인 보수를 하면서 많은 부분을 더 쌓았다. 이로써 중원 지역을 통치하는 왕조의 장성이 모습을 갖추게 됐다.
규모 ; 총길이가 5만여km로써 지구의 적도 주위를 한 바퀴를 돌고도 남을만한 거리다. 그 규모가 워낙 방대해 공정을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다. 이런 까닭에 세계 7대 기적의 하나로 불린다.

2000여년의 세월 중 진, 한(漢), 명나라 때의 장성 규모가 비교적 컸다. 진나라 때는 동으로 야오닝성의 야루장에서 서로 깐쑤까지 총 5000여km였고, 한나라 때는 깐쑤의 용덩(永登)에서 서쪽으로 신장의 로푸퍼(罗布泊)까지 증축해 1만km로 늘었다. 명나라 때는 야오닝성의 야루장 강변에서 칭하이성의 치롄산(祁连山)까지 전체가 7300km였다.
주요 관광지
빠다링(八达岭) 장성 - 명나라 장성의 대표적 성곽
베이징시 서북쪽 연경현에 있다. 베이징시에서 약 70km 거리이며, 명나라 홍치 18년(1505년)에 세워진 만리장성의 정화이자 명나라 장성의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성곽이다.
장성은 무톈위(慕田峪)을 지나면서 내성과 외성으로 나뉜다. 외성은 산시성의 안북(雁北) 지구로, 내성은 빠다링으로 이어진다. 이 곳은 베이징으로 가는 길로써 연경과 선화의 갈림길이다.

전체 길이는 3741m이고, 웅장한 모습으로 험준한 산악을 조망할 수 있는 19개의 누각이 서있다. 장성 외에도 끝없이 이어지는 봉우리와 멀리 평야 지대의 풍광도 볼 수 있다.
빠다링의 성문은 사다리꼴 모양으로 동서에 2개가 있다 동관문에는 ‘거용외진(居庸外鎭), 서관문에는 ’북문소약(北門銷鑰)‘이란 글이 걸려 있다. 장성은 이 곳을 경계로 남북으로 갈라지며, 연산(燕山)의 연봉을 따라 높낮이의 기복이 심하다.
성곽의 기초는 화강암을 이용해 띠를 두른 듯 석축을 했고, 한 개의 덩어리가 0.5톤 이상이다. 평균 높이는 8.5m, 아래 폭은 6.6m, 위 폭은 5.7m로 병사 10명의 보행과 마차 5필이 나란히 달릴 수 있다.
성곽의 맨 위 바깥쪽으론 총안(銃眼)을 만들어 사격과 조망이 가능하게 했다. 안쪽은 낮은 벽을 쌓았다. 아래쪽에는 동굴이 있어 무기를 보관하거나 숙영을 할 수 있다.
평균 250~500m 간격으로 공심적루(空心敵樓)나 봉화대를 설치해 통신 시설로 사용했다.
‘거용외진’ 관성의 남쪽에는 ‘망경석(望京石)’이란 글이 새겨진 높이 2m, 길이 7m의 커다란 돌이 있다. 맑은 날 해가 뜰 때 이 곳에 서면 아스라이 베이징성을 볼 수 있다.
관성의 서문 밖 곤천구(滾天溝) 남쪽 구릉 위에는 장성 박물관이 있다. 4개의 전시실로 나눠 장성의 역사와 풍모를 소개하고 있다. 영화관에선 장성의 기록 영화를 상영한다.
이밖에 관성 서문 외에도 경장(京張)국도 북쪽에는 첨천우(詹天佑) 기념관이 있다. 빠다링 도로 정상에 세워진 것이다. 첨천우(1861~1919년)는 중국 철도사업을 위해 일생을 바친 인물로서 중국에서 최초로 직접 설계한 도면으로 경장(북경-장가구) 철도를 건설, 존경 받는 기술인의 한 명이다. 기념관은 첨앙청(瞻仰廳)과 3개의 전시관으로 구성돼 첨천우의 평생 업적을 기리고 있고, 정원에는 화강암으로 만든 대형 부조가 있다.
쥐융관(居庸關) 장성 - 아름다운 석조가 있는 연경 8경 중 하나
베이징시에서 60km 떨어진 창평현(昌平縣)에 있다. 장성의 주요 관문으로써 옛 베이징 서북쪽 장벽이다. 산과 언덕의 형세가 험준하다. 관광의 중요 포인트는 웅장한 관성과 연이어 오르내리는 성곽의 총안(銃眼), 운대(雲台)라 불리는 곳의 아름다운 석조 등이다.
명나라 쥐융관은 남북을 가르는 관문이었다. 남쪽은 남구(南口), 북쪽은 팔달령구(八達嶺口) 또는 북구(北口)라 불렸다. 관성은 남구 북쪽의 협곡(關溝)에 세웠다. 성곽에는 남북문이 있다. 남문은 옹성으로 건축, 남북문의 요충지로 삼았다. 관성의 양쪽은 커다란 봉우리들이 연이어 솟아 있고, 울창한 수목에 쌓여 있다. 800여년 전 금나라 때는 ‘연경(燕京) 8경’의 하나로써 ‘거용첩취(居庸疊翠)’라 했다.
관성의 중심에는 정교한 조각을 새긴 ‘운대’라 불리는 아름답고 커다란 백옥 석대가 있다. 원나라 지정(至正) 5년(1345년) 건축물의 기단으로 삼았던 것으로 원래 라마탑(喇磨塔), 태안불사(泰安佛寺)가 있었지만 현재는 대좌(台座)만 남아 있다. 운대의 조각은 권문(券門)과 권동(券洞)에 집중돼 있다. 권문 양쪽에는 금강역사와 각종 동물이 부조돼 있는데 정중앙에는 금시조왕(金翅鳥王)이 새겨져 있다. 권동의 내벽에는 사대천왕 부조와 한(漢), 장(藏), 위구르, 파스파몽(蒙), 범(梵), 서하(西夏) 등 여섯 종류의 문자로 ‘다라니경’과 조탑공덕기(造塔功德記)‘가 있다. 권정에는 만다라꽃과 작은 불상이 정교하게 조각돼 있다.
무톈위(慕田峪) 장성 - 요(凹)자 모양으로 만든 소뿔 같은 3개의 망루
베이징 교외 회유현(懷柔縣) 삼도하(三渡河) 마을의 북쪽에 있다. 명나라 때 경사(京師) 장성의 방어 성곽 중 최고 수준 중 하나다. 무톈위는 원래 산맥 가운데 있는 좁은 입구(隘口) 중 하나였다. 그러나 명나라 성조 때 영락 2년(1404년) 베이징으로 환도한 뒤 무톈위가 쥐융관과 옛 북구 사이에 있고, 베이징에서 50km 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곳이기 때문에 전략적 가치를 높게 평가했다. 바깥쪽 성벽은 절벽 능선의 기복에 따라 쌓아 망루를 집중시켰다.

볼만한 것은 장성 동쪽의 정관대(正關台)로 양쪽 봉우리 사이가 요(凹)자 모양으로 들어간 곳이다. 3개의 망루를 잇달아 만들었다. 가운데가 가장 높고 웅장하며, 양쪽에 작은 망루를 세웠다. 그리고 관문은 동쪽에 설치했다. 이렇게 3개의 망루를 나란히 만든 형식은 보기 드문 경우다.
정관대의 서북쪽에는 해발 1039m 산정에 성을 쌓았다. 산허리에서 꼭대기까지 성을 쌓고, 정상에 망루를 세운 뒤 다시 산허리 쪽으로 계속 이어간 것이 소뿔을 닮았다 하여 ‘우의각변(牛犄角邊)’이라 부른다.
서쪽은 ‘응비도앙(鷹飛倒仰)’이라 한다. 성곽 전체가 깎아지른 절벽을 따라 굽이 돌고, 경사가 무려 50도 안팎이다. 그 중 어느 곳은 거의 90도의 직벽에 계단을 만들기도 했다. 담력이 약한 사람은 감히 걷을 수 없는 상태다. 당시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날렵한 매가 이 곳에 날아왔다가 다시 부리를 치켜들고 올라갔다고 한다. 이곳은 이렇듯 험하지만 많은 관광객을 끌어들이고 있다.
총안(銃眼)도 뛰어나다. 일반적인 성곽의 총안(수성하는 장수들의 엄호용)은 바깥쪽에 설치하고, 안쪽에는 1m 정도의 높이로 여장을 만들지만 무톈위 장성은 쌍총안이다. 전략적 중요성을 알 수 있는 형태다. 총안의 길이는 약 5m, 폭은 약 1m, 높이는 약 2m다. 총안의 아래쪽에는 사격 구멍을 설치했고, 중요한 곳에는 포 구멍도 있다.
쓰마타이(司馬台) 장성 - 가장 험준한 지형에 세운 천하의 절경
베이징의 밀운현(密雲縣) 동북부와 허베이(河北)성 란평현(灤平縣)의 경계선에 있다. 베이징에서 약 120km 떨어진 곳이다. 방어를 목적으로 한 시설로써 복잡하고 특이하다. 성루를 변화무쌍하게 만들어 유명하다. 명나라 홍무(洪武) 원년에 건설을 시작해 만력(萬歷) 연간에 중수했다. 산세가 험준한 연산의 봉우리와 고개를 따라 건축, ‘장성 중 가장 험하고 천하의 절경’이라 불리는 대표적인 장성이다.

동으로 망경루(望京樓)에서 시작해 서로는 장군루(將軍樓), 금산령(金山嶺) 장성과 접해 있다. 총 길이는 7.5km이고, 모두 34개의 망루가 동서로 나눠 있다. 동쪽이 장성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는 곳이다. 원래 깊은 계곡으로 들어가야 했는데 저수지 때문에 수몰됐고, 지금은 저수지의 양쪽으로 망루만 남아 있다.
이 곳의 망루는 모두 공심적루(空心敵樓)이다. 망루 간 거리는 100m를 넘지 않고 50~60m 정도로 다른 장성보다 간격이 좁은 구조가 독특하다. 수많은 망루 중에서 망경루와 서쪽의 선녀루(仙女樓)가 일품이다. 루의 정상에는 돌을 쌓고 사면에 벽돌 기둥을 만든 팔각조정(八角藻井)이 하나 있다. 누문(樓門)의 석주에는 아름다운 조각이 새겨져 선경의 누각을 방불케 한다.
이 곳에는 정상 봉우리로 향하는 길에는 길이 50m, 경사도 70도의 절벽에 돌로 만든 총 230여 계단이 있다. 양쪽으로 천길 호수가 있다. 난간도 없는 돌계단을 따라 장성으로 올라야 하기 때문에 마치 하늘로 등산하는 것 같다 하여 이 길을 ‘구름 계단(雲梯)’라 이름 붙였다. 해발 900m의 산 위에 길이 100m, 최대 폭 50여cm 최소 폭 30cm의 다리가 있다. 이 다리를 걷다보면 아찔한 느낌이 절로 든다.
진샨링(金山嶺) 장성 - 제2의 빠다링, 가을 단풍이 최고
베이징 밀운현(密雲縣)과 허베이성 란평현(灤平縣)의 경계선에 있다. 잘 알려진 고북구(古北口)에서 동쪽으로 약 7.5km 거리다. 이 장성은 명나라 륭경(隆慶) 4년(1570년)에 축조한 것으로 서로는 고북구에서 시작하고, 동으로는 장군루까지 총 15km다. 산성을 따라 70여개의 망루가 있다. 연산산맥에 축조한 성이라 지세가 험준하고, 주봉인 무영산(霧靈山)은 웅장하며 침봉이 많다. 장성의 모양은 커다란 용이 승천하는 것 같아 기암고봉의 기복이 잇달아 이어진다. 성의 쌓는데 사용된 벽돌들이 빠다링 장성처럼 아름다워 ‘제2의 빠다링’이라 불린다. 가을 단풍 때 사진 촬영을 많이 하는 곳이다.

또다른 특징은 잘 갖춰진 방어 체계다. 장성의 바깥쪽의 산허리에 큰 돌을 이용해 ‘각마장(擱馬牆)’을 축조했을 뿐 아니라 부분적으로 높이 약 2.5m의 '장장(障牆)‘으로 보강해 사격 구멍까지 설치했다. 성벽에 오른 적들을 방어하기 유리한 방식이다.
쟈위관(嘉峪關) 장성 - 가장 서쪽의 명나라 장성, 천하제일웅문이 있는 곳
깐슈(甘肅)성 쟈위관시 서남쪽 기연산맥(祁連山脈)의 문수산(文殊山)과 합여산맥(合黎山脈)의 흑산(黑山) 사이 협곡 지대에 있다. 명나라 장성 중 가장 서쪽에 있는 관구이다. 명나라 홍무 5년(1372년)에 축조를 시작해 168년의 공사 기간이 걸렸다. 명나라 장성 중 아주 중요한 곳이며 지금도 보존이 잘 돼있다.
관성은 동쪽에 자리잡고 서쪽을 향해 있으며 사다리꼴 형태로 내성, 옹성(甕城), 나성(羅城, 책문을 설치한 성), 외성, 성호(城壕, 해자)와 성장(城牆)으로 이루어 졌다. 내성은 둘레가 640m와 면적 2만5000㎡이다. 동성문은 광화문(光化門), 서성문은 유원문(柔遠門)이라 한다. 문 위에는 똑같이 성루가 있다. 성루의 높이는 약 17m, 3층3첨(檐)의 목조로 헐산정(歇山頂)식 건축이다. 1층은 세칸으로 나눠 가운데에 문을 냈다. 1층과 2층에는 삥 둘러 회랑이 있고, 3층은 목격화창(木格花窗)으로 만들었다. 층과 층 사이는 사다리꼴로 나무 기둥을 세웠고 비천(飛天), 산수(山水), 화초(花草) 등 그림을 볼 수 있다.
동서의 성문은 모두 옹성이 보호하고 있고, 내성의 벽은 높다. 양쪽 옹성문 위에는 건각루(建閣樓)가 북쪽에 자리잡고 남쪽을 향해 세워져 있다. 서옹성의 서벽 밖에는 철자 모양의 성벽이 있다. 이 성벽의 남북 양쪽은 외성벽과 이어졌다. 서쪽의 외성은 나성으로써 동서성루처럼 관루가 있다.
청나라 때 좌종당(左宗棠)이 쓴 ‘천하제일웅문(天下弟一雄門)’이란 편액이 있었는데 당시에는 누각 위에 걸려 있었다. 성의 남북 양쪽에는 각각 조망이 좋은 전루(箭樓)가 있다. 전루에는 서쪽에 담을 쌓지 않았다.
관성의 동남북 삼면은 황토로 쌓은 구릉 같은 벽(圍牆)이 외성을 이루고 있는데 총 길이는 1263m이고, 남아 있는 높이는 3.8m이다. 서쪽 끝과 나성의 서북 양쪽이 이어졌고, 나란히 장성과도 연결돼 있다. 동쪽의 위장(圍牆)을 따라 돌로 띠를 두른 곳엔 광장을 만들었고, 현재 문창각(文昌閣), 희루(戱樓), 관제묘비루(關帝廟碑樓), 돈대(墩臺) 등이 남아 있다.
샨하이관(山海關) 장성 - 천하제일관이 있는 난공불락의 동쪽 성
친황다오시의 동쪽 10km에 있고, 만리장성 동부의 중요한 관애(關隘)이다. 명나라 홍무(홍무) 14년(1381년)에 축조했다. 관성의 북쪽은 연산산맥, 남쪽은 발해만과 접하고 있어 지형이 험준해 ‘경도소약(京都銷鑰)’이라 불린다.
샨하이관성은 저수지와 만리장성이 이어졌고, 둘레 4.6km 높이 14m, 두께 7m이다.
샨하이관은 견고한 관성이다. 관성을 에워싼 연못 외에도 성의 동남, 서남, 서북에 서 장성을 넘어가는 삼우성호(三隅城壕)에는 수관(水關)이 설치돼 있다. 또한 동문과 서문 밖에는 나성을 쌓았고, 남과 북에는 익성(翼城), 동문 밖에는 다시 봉화대와 여러 곳의 성보(城堡)를 만들었다. 이런 축성은 샨하이관을 난공불락으로 만들었다.
샨하이관에는 4곳의 중요한 성문이 있다. 동문은 진동문(鎭東門), 서문은 영은문(迎恩門), 남문은 망양문(望洋門), 북문은 위원문(威遠門)이라 부른다. 4곳의 성문 에는 모두 전루(箭樓)를 세웠지만 지금은 동문 쪽에 하나만 남아 있다. 이 곳은 ‘천하제일관(天下第一關)’ 성루로도 불린다. 높이는 12m이고, 헐산중첨정(歇山重檐頂) 식 2층이며, 서쪽에 ‘천하제일관’이란 편액이 걸려 있다. 동쪽 성곽 쪽에 있는 임여루(臨閭樓), 위원당(威遠堂), 목영루(牧營樓), 정변루(靖邊樓)는 ‘천하제일관’ 성루와 함께 ‘오호진동(五虎鎭東)’이란 명예를 얻었다.
관성 남쪽 발해 해변에는 유명한 노용두(老龍頭)가 있다. 이곳에 영해성(寧海城)을 쌓았다. 청나라 강희, 건륭 등 황제들은 이 성의 징해루(澄海樓)에 올라 술을 마시고, 시를 지었다. 이 관성의 동쪽에는 연산산맥의 지맥인 환희령(歡喜嶺)이 있고, 고개 위의 위원성(威遠城)은 샨하이관의 일차 방어선 역할을 했다.
지우먼커우(九門口) 장성 - 9개의 수문이 있는 중원으로 통하는 길목
야오닝성 수중현(綏中縣) 이가향(李家鄕)에 있다. 동으로 수중현까지 62.5km, 남으로 샨하이관까지 15km 떨어져 있다.
지우먼커우 장성은 북제(北齊 479~502년) 때 축조를 시작했고, 현존하는 부분은 명초 홍무 14년(1381년)에 샨하이관 장성과 같이 확장 공사한 것이다. 명나라 때의 계진(薊鎭) 장성의 중요한 관애로써 동북지역에서 중원지방으로 들어오는 길목이었다.

지우먼커우 장성의 총 길이는 1704m이고, 남단은 기암절벽 사이에 있고 샨하이관 방향의 장성과 접해 있다. 성교(城橋)의 길이는 97.4m로 지우쟝허(九江河)를 가로지른다. 장성은 만리장성의 체계를 따르고 있기 때문에 내성과 호성과 물이 흐르도록 아홉 개의 수성문(水城門)을 만들었다. 내성의 둘레는 1km이고, 성벽의 높이는 8m이다. 성벽은 전석(磚石) 구조이다. 위 폭은 5m, 아래 폭은 6m, 높이는 8m로 바깥쪽으로 구멍이 있고, 여장을 만들었다.
지우먼커우 장성에는 12개의 망루, 2개의 전대(戰台), 2개와 초루(哨樓), 2개의 봉화대와 외장(外牆)과 외호(外壕)까지 만들어 전형적인 군사 방어용임을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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