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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자연이 함께 있는 곳, 장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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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레몬 댓글 0건 조회 1,552회 작성일 11-08-23 2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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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호남성의 서쪽에 세계자연유산 ‘장가계(張家界)’가 있다. 한국 관광객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이다. 수억의 세월 속에 빚어낸 조물주의 예술품. 그 곳 이야기를 ‘하나, 신이 빚은 대자연’, ‘둘, 전설이 있는 민속 공연’으로 나눠 연재한다. <편집자주>
인간과 자연이 함께 있는 곳,  장가계 
日與月長相隨 山與水長相伴  
天與地長相守 花與蝶長相戀
藍天與白雲長相依 人類與大自然共生共榮
‘해와 달이 오래오래 같이 하고,
산과 물이 영원히 동반하고,
하늘과 땅이 긴긴 세월 서로를 지켜주고,
꽃과 나비는 변함없이 사랑하고,
푸른 하늘과 흰 구름은 어우러져 의지하고,
인간과 대자연은 함께 살고 함께 빛나라’
 장가계 사람들은 노래한다. 조물주가 내린 축복인 아름다운 산천을 모든 인류의 이상대로 지켜나가자고.
만년의 신비와 천년의 이야기를 품고 있는 예술품 
신은 장가계(張家界)에 위대한 예술품을 남겼다. 인간의 능력으론 도저히 창조할 수 없는 작품을 만들었다. 돌 하나, 나무 한그루, 맑은 시냇물. 따로 또 같이 한 폭의 동양화가 된다. 
파노라마로 이어지는 봉우리에는 만년의 신비가 숨어 있고, 천년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비바람에 깎이고 쓰러지며 그 자리에 그대로다.
골짜기에 들어서는 순간, 동공이 커지고 입이 벌어진다. ‘와-’하는 탄성 밖에 지를 수 없다. 할 말을 잊는다. 어떻게 저런 모습이 생겼을까.
먼 옛날 바다였던 곳,   비 바람이 일궈낸 기암괴석
3억8000만년 전, 이 곳은 바다였다. 해저 생물들의 낙원이었다. 모래가 쌓이고 쌓이다 어느 날 바다가 솟아올라 육지가 됐다.  
2억8000만년 전 이첩기(二疊期) 초 지각 운동이 시작됐고, 평지나 다름없던 육지에 금이 간다. 균열이 생기면서 벌어진 틈 사이로 물이 흘러 들었다. 연약한 지반을 떠받치고 있던 암반이 떨어져 나갔다. 점점 틈새가 커졌고, 물의 유입량도 늘었다.
석영사암층은 뗏장처럼 덩어리 채 뚝뚝 떨어졌고, 수많은 시간을 흘러온 바람과 비와 눈은 기기묘묘한 형상을 만들었다.
돌 기둥이 되고, 석벽이 되고, 석림이 되었다.
자연의 힘에 따라 평평한 대지 위에 산이 생기더니, 봉장(峰墻)이 되고, 봉총(峰叢)과 봉림(峰林)이 되고, 마침내 잔림(殘林)까지.
장가계의 기암괴석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그리고 해양 생물의 화석 등 세월의 흔적을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
세계자연유산, 자자손손 지켜야 할 인류의 보물 
이러기에 유네스코는 1992년 장가계시 무릉원 풍경구를 전 인류가 자자손손 지켜나가야 할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했다.
 장가계시 무릉원 풍경구는 크게 장가계 국가산림공원, 천자산(天子山) 자연보호구, 색계욕(索溪峪) 풍경구로 나뉜다.
장가계 산림공원은 다시 원가계(袁家界), 금편계(金鞭溪), 황석채(黃石寨), 비파계(琵琶溪), 요자채(腰子寨) 등을 품고 있다.
색계욕엔 십리화랑(十里畵廊), 백장협(百丈峽), 황용동(黃龍洞), 보봉호(寶峰湖)가 있다. 그리고 천자산에는 하룡(賀龍)공원과 천자각을 중심으로 좌우에 어필봉(御筆峰) 선녀산화(仙女散花) 등 수많은 기암 봉우리와 함께 황룡천(黃龍泉) 등이 자리하고 있다.
장량의 고사가 널리 퍼져 있는 은둔의 땅
장가계에는 한(韓)나라의 귀족 장량(張良)의 고사가 전해진다.
한(漢) 혜제(惠帝) 7년(BC 188년) 10월, 고황후 여치가 조정 공신들을 살해할 음모를 꾸미고 있었다. 장량은 한신(韓信), 팽월(彭越), 영포(英布) 등 개국 공신들이 날조된 죄명으로 죽음의 위기를 맞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장량은 월나라의 충신 범려가 왕 구천에게 했던 ‘새 잡는 일이 끝났으면 활은 창고에 넣고, 토끼를 잡았으니 개는 버리려 한다(飛鳥盡, 良弓藏 狡兎死, 走狗烹)’는 말이 떠올랐다. 정녕 어려움은 함께 했지만 안락함은 같이 할 수 없단 말인가.
장량도 범려가 강호로 은둔했던 것처럼 속세를 떠나기로 했다. 그리고 대자연 속에서 유유자적하며 살다간 적송자(赤松子)의 발자취를 따라가기로 결심하곤 어느 날 소리 소문 없이 증발해 버렸다. 그리고 찾아온 곳이 바로 ‘천문(天門)’ 이었다.
‘풍주부지(灃州府誌)’, ‘영정현지(永定縣誌)’에는 ‘장량은 적송자처럼 떠돌았다. 천문, 청애산 등지에 많은 유적이 남아 있다(張良從赤松子游, 天門 靑崖諸山 多存遺迹)“’고 쓰여 있다.
청애산은 지금의 장가계 국가산림공원 일대를 말하며 이 곳에 장량의 무덤이 있다는 것이다.
장량은 장가계의 선경 속에 은둔한 뒤 수행의 길을 걸었다. 부귀영화를 탐하지 않고, 어떤 구속도 받지 않고, 소요하며 자신을 갈고 닦았다.
장가계의 산과 계곡에는 장량의 고사가 곳곳에 남아 있다. 장가계란 지명도 장량의 성씨에서 따온 것이다.
원가계, 엘리베이터 타고 오르는 하늘의 조각 공원 
원가계에 오르자. 당나라 황소(黃巢)의 난 때 피난 온 원씨 집안 삶의 터전이었다.
거대한 석주의 바깥쪽으로 매달려 있는 엘리베이터가 눈길을 끈다. ‘세계제일제(世界第一梯)’, 세상에서 가장 긴 백룡 엘리베이터다. 총 길이가 300m는 족히 넘는다.
전망 엘리베이터가 위로 올라간다. 자꾸 이 곳은 산이 아니란 생각이 든다. 우리의 관념 속 산이 아니기 때문이리라. 평지 위에 봉우리가 삐죽삐죽 솟아 있는 것이 아니라 군데 군데 산이 갈라지며 골만 깊게 패였다.
높이 200~300m짜리 돌 기둥들이 탄성을 자아내게 하지만 건너편 산정은 평탄하고 능선 역시 여느 뒷산처럼 완만하다.
간간히 가옥이 보인다. 이 곳의 소수민족 토가족의 집이다.
산정의 길은 공원 산책로 같다. 버스가 오간다. 총 면적이 ‘사십팔리’라 하니 차 없이 다니기란 어려울 듯 하다.
후화원(后花園)에 서면 병풍처럼 펼쳐진 원가계의 기암들이 한 눈에 들어온다. 발 아래는 천길 낭떠러지. 길은 미혼대(迷魂臺), 건곤일주(乾坤一柱), 천하제일교(天下第一橋)로 이어진다.
바로 아래는 사도구(砂刀溝) 풍경구이고, 저 멀리 왼쪽 능선 밑은 금편계곡으로 이어진다.
사람의 얼굴인 듯 하고, 등 굽은 노인의 형상인 듯 하고, 어린 아이의 해맑은 미소인 듯 하고. 제각각 보는 이에 따라 서로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
“저 바위는 강아지 모습 같아요.”
“엄마가 아기를 엎고 있는 것 같지 않아요.”
“용맹스런 장군이 열병식을 가는 것 같은데요.”
“저 쪽 바위 위에 거북이가 앉아 있는 모습이 보이지요. 잘 보세요.”
누군가 ‘신구문천(神龜問天)’이란 이름이 붙어 있는 봉우리를 가르친다.
봉우리 사이로 햇살이 들어온다. 눈이 부시다. 순간 뿌연 막을 드리운 듯 시야가 탁해진다. 가랑비 내리는 날 골안개가 피워 오르면 또 다른 느낌일텐데…. 구슬땀을 닦아내며 엉뚱한 상상을 해본다.
어느덧 천하제일교다. 전망대의 난간은 온통 자물쇠다.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려고 자물쇠를 걸고, 열쇠는 그 밑으로 던져 버렸다.
천하제일교. 두 개의 돌기둥을 자연이 이어놓았다. 아니다. 하나였던 것을 비바람이 둘로 갈라놓으려 했으나 윗부분만 남아 다리가 됐다.
계곡 길이 보인다. 물이 흘러간 흔적인지, 사람이 지나다닌 자취인지 분간할 수 없지만 분명 돌기둥 사이로 길이 보인다.
지금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버스를 타고 올라오는 곳이지만 이 곳의 토가족들은 저 골짜기를 천년 동안 걸어서 걸어서 다녔을 게다.
 40리 맑은 금편 계류, 깎아지른 절벽은 병풍 
계곡 양쪽으로 온통 깎아지른 절벽이다. 이 길이 무려 5700m. 
맑은 계류가 흐르고, 나무가 있고, 목을 뒤로 제쳐야 올려볼 수 있는 봉우리 50여개가 펼쳐진 곳이 금편계다.
물길은 ‘느림보’다. 낙차가 거의 없는 탓이다. 금편암, 자초담(紫草潭), 천리상회(千里相會), 도어담(跳魚潭)을 타고 흐른다.
설악의 천불동 계곡이나, 지리의 칠선 계곡과는 사뭇 다르다. 수량도 적고, 물살의 속도감이 떨어진다.
그래도 계곡은 계곡이다. 시원한 골 바람이 분다.
황석채를 봐야 장가계를 제대로 안다 
‘황석채에 오르지 않고, 어찌 장가계를 다녀갔다 하겠는가.(不上黃石寨 枉到張家界)’
해발 1100여m의 황석채는 노란 케이블카를 타야 한다. 세 칸이 쌍둥이처럼 나란히 붙어 다닌다.
한 칸에 열 명 정도 타면 된다. 사방으로 주변 풍광을 감상할 수 있다.
정상 부근에 가면 가파른 경사를 ‘휙’ 오른다. 기분이 묘하다. 이 곳도 정상 주변은 작은 공원같다. 돌을 깔아 놓은 길 옆으로 커다란 가로수가 있고, 차밭도 있다. 그 앞이 오지봉(五指峰) 전망대다.
엄지와 검지를 한쪽으로, 중지와 약지와 식지를 다른 한쪽으로 모아놓은 모양이다.
무해금구(霧海金龜), 선녀헌화(仙女獻花), 천교유돈(天橋遺墩), 남천일주(南天一柱) 남천문(南天門), 천서보갑(天書寶匣), 용두봉(龍頭峰) 등 저마다 사연 깊은 이름을 달고 있는 봉우리가 사방으로 빙 둘러 서있다.
신은 장가계에 축복을 내렸다.
신비로운 자연을 선사했다. 수억 년의 전설을 이제 후손에게 전해줘야 한다. 고스란히 보존해 축복을 축복으로 이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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