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전통 기법을 이어온 장인의 숨결, 조화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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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레몬 댓글 0건 조회 1,445회 작성일 11-08-23 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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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귀영화(富貴榮華)는 누구나의 바람이다.
돈을 거머쥐고, 권력을 잡고, 영예롭고도 화려하게 살고 싶은 것이 인류의 염원이리라.
중국 대륙 동남연해의 풍요로운 땅, 강소성 소주에는 이런 마음을 고스란히 담아 놓은 집이 있다. 태호의 동쪽, 뭍에서 호수 속으로 반도처럼 길게 뻗은 곳에 있는 역사문화 고을 동산(東山)의 조화루(雕花樓).
조화루(雕花樓) - 중국 근대 조각 예술의 극치
집 이름에선 돈 냄새를 맡을 수 없다. 오히려 조각과의 연관성만 떠오른다.
그렇다. 이 집은 문지방부터 문고리, 대들보, 기둥까지 어느 하나 그냥 만든 것이 없다. 벽돌이든, 나무든, 금속이든, 돌이든 일일이 손으로 자르고, 깎고, 뚫고, 다듬었다. 그러니 돈이 들 수 밖에.
무려 황금 3741량에 해당하는 은화 17만원을 쏟아 붓고 엄청난 공을 들였다. 2242㎡의 3층 누각을 짓는데 약 55억3000여 만원을 투자하는 등 돈을 물처럼 써서 만든 건축물이다.
전조(磚雕), 목조(木雕), 금조(金雕), 석조(石雕) 등 온갖 건축 공예를 최고의 장인들이 부조(浮雕), 원조(圓雕), 투조(透雕), 음양조(陰陽雕)의 기법으로 집 전체를 수놓은 예술품이기에 그 가치를 수치로 나타낼 수 없다는 것이 더욱 놀랍다.
그래서 ‘강남제일루(江南弟一樓)’라 불리며, 동산의 제1경으로 꼽힌다.
밖에선 안이 보이지 않는다. 꽉 막혀 있다. 집안의 가산(假山)과 수석, 분재와 하얀 벽, 검은 기와, 그 뒤로 나무 뿐이다.
향산방(香山幇) 장인의 예술품
‘조각대루(雕刻大樓)’란 글을 새긴 하얀 벽을 돌아서도 좀체 본 모습을 가늠할 수 없다. 전형적인 중국식의 돌로 만든 좁은 문루만 나타난다. 위로 보이는 석조 정도가 눈길을 끈다.
웬걸. 이 곳에서 다시 한번 180도 머리를 돌려 안벽을 봐야 비로소 진짜 조화루가 시작된다.
손님은 볼 수 없지만 집 사람들은 대문을 나설 때마다 볼 수 있도록 큰 담벼락에다 ‘홍복(鴻福)’이란 두자를 아주 힘차게 위에서 아래로 내려썼다. 구운 벽돌 위에 글자만 도드라지게 만든 전각이다. 조화루를 상징하는 6개의 사자성어 중 하나인 ‘출문유희(出門有喜)’다.
문루는 석조의 미를 한껏 뽐낸다.
밖에서 본 석고문(石庫門)의 편액은 ‘천석순하(天錫純嘏)’. 하늘이 내린 큰 복이란 뜻이다. 안에서 보면 정중앙에는 수행을 통해 덕을 쌓는다는 의미로 ‘율수궐덕(聿修厥德)’이란 네 글자를 써놓았다. 이를 중심으로 위쪽에 두 칸, 아래쪽에 한 칸을 나눠 새겨놓은 석조가 일품이다.
맨 위 칸은 ‘팔선상수(八仙上壽)’, 이것이 ‘습두유수(拾頭有壽)’. 장수를 기원하는 것이다.
그 바로 아래 칸은 ‘녹십경(鹿十景)’의 내용을 바탕으로 조각했다. 편액의 왼쪽은 ‘요순선양(堯舜禪讓)’, 오른쪽은 ‘문왕방현(文王訪賢)’의 고사를 조각으로 옮겨 놓았다. 맨 아래 칸은 ‘곽자의배수(郭子儀拜壽)’로 장식했다.
이밖에 대문의 측면에도 각가지 조각을 새겨 놓았다.
‘사물을 빌어 마음을 의탁하고, 형태를 빌어 정신을 전한다’는 중국 고건축의 발상지인 오나라 향산방(香山幇) 장인들의 높은 예술 정신을 구현한 것이다.
원래 이름은 춘재루
조화루의 본래 이름은 ‘춘재루(春在樓)’로 동산 출신의 상해 거상이었던 김석지(金錫之), 식지(植之) 형제의 집이었다. ‘꽃은 떨어져도 아직 봄 이구나(花落春仍在)’ 라고 노래한 청나라 때 소주 시인 유월(兪樾)의 싯구에서 집 이름을 따온 것이었다.
민국 11년(1922년), 소주 향산방의 명장 진계방(陳桂芳)에게 설계와 건축을 의뢰해 3년의 공사 끝에 완공했다. ‘조각이 아닌 곳이 없고, 깎지 않은 곳이 없다(無處不雕 無處不刻)’ 고 ‘조화루’라 불리기 시작했다.
조화루는 전루(前樓)와 후루(後樓)로 나뉘지만 회랑으로 이어진다.
전루로 들어서기 전 고개를 들면 2층 회랑을 떠받치고 있는 들보에 반짝이는 물체가 눈길을 사로 잡는다. ‘취보분(聚寶盆)’이다. 이를 ‘진문유보(進門有寶)’라 한다. 문으로 들어서면 보물이 있다나.
문고리에도 사연이 있다. 옛 동전 모양으로 만들었다. ‘신수유전(伸手有錢)’이다.
문지방에는 박쥐 모양의 금속이 박혀 있다. 이는 ‘각답유복(脚踏有福)’.
대청에 들어서기 전부터 재화를 나타내는 상징물로 장식하고, 저마다 의미를 부여했다.
이와 함께 문틀과 문짝, 기둥과 들보에도 고사를 바탕으로 깎고 다듬어서 모양을 내는 등 온갖 정성을 쏟았다. 특히 커다란 문짝의 사이 사이에 효감동천(孝感動天), 부친도난(負親逃難), 단의순모(單衣順母) 등 24가지의 효행 장면을 그린 ‘24효(二十四孝)’와 ‘28현(二十八賢)’을 아로새겨 후손들을 교육했다.
전루의 대청인 봉황청에 들어서면 대들보가 특이하다. 양 옆을 벼슬아치의 관모처럼 툭 삐져나오게 만들었다. 이 역시 조화루를 상징하는 6개의 사자성어 중 하나인 ‘회두유관(回頭有官)’이다. 권력 있는 자손을 두고픈 바람을 나타냈다.
전루와 후루 사이엔 화원이 있다. 작지만 있을 것은 두루 갖춰 놓았다.
정자가 있고, 연못이 있고, 다리가 있고, 꽃과 나무가 있다. 화원의 바닥에도 채색석을 이용해 부귀를 상징하는 박쥐 모양 등을 수놓을 정도다.
얼핏 봐선 보이지 않는 3층은 보물 창고
내실격인 후루는 전루와 똑같이 2층처럼 보이지만 실제는 3층이다. 2층의 후미진 쪽 천정을 뚫고 계단을 만들었다. 3층은 이 집의 보물 창고다. 좌우 양쪽 벽을 4개로 분할해 ‘복(福) 록(祿) 재(財) 희(禧)’를 큼지막하게 써놓았다. 통로는 희와 록자가 붙어 있는 암문을 지나 집안 어른의 침실과 이어지도록 설계했다. 3층 벽의 한 켠에는 손바닥 만한 미닫이 창이 뚫려 있다. 바깥 사람들의 침범이 있을 때 망을 보기 위한 것이다. 창을 닫아 놓으면 그냥 벽의 일부처럼 보인다.
조각 장식은 지붕까지 이어진다. 용마루의 중간 중간, 잉어나 용 등을 새겨 놓았다.
조화루는 비록 역사가 짧은 근대 문화 유산이지만 오나라부터 중국 고건축을 이끌어온 장인들의 혼과 숨결이 고스란히 남아 있기에 ‘강남제일루’로서 손색이 없다. <浩>
<사진설명> 조화루는 전형적인 사합원 형태의 건축물이다. 뜰에서 보면 보이지 않는 3층에서 내려다 본 지붕의 모습은 정확히 직사각형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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