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옛 정원 예술의 극치 - 소주 원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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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레몬 댓글 0건 조회 2,233회 작성일 11-08-23 2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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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원림갑천하(江南園林甲天下), 소주원림갑강남(蘇州園林甲江南) - 강남의 정원이 천하의 으뜸이고, 소주의 정원이 강남의 으뜸이라.’
중국인들은 장강(長江, 일명 양자장) 이남을 ‘강남’이라 부른다. 특히 장강 하구의 남쪽부터 태호(太湖) 북쪽 사이의 남경(南京)-진강(鎭江)-상주(常州)-무석(無錫)-소주(蘇州)로 이어지는 너른 땅을 일컫는다.
예로부터 이 곳은 기후가 온난하고, 물자가 풍부하고, 교통이 편리해 상공업이 발달했다. 산수가 아름답고, 풍광이 뛰어나 많은 시인과 묵객들이 모여 들어 찬란한 문화를 만들었다.
그 곳에 가면, 빼어난 운치를 뽐내는 정원은 물론 유구한 세월을 따라 흘러온 중국인의 정서를 느낄 수 있다.
강소성에는 소주의 4대 고전 원림으로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유원(留園)과 졸정원(拙政園), 사자림(獅子林), 창랑정(滄浪亭) 뿐 아니라 무석의 기창원(寄暢園), 양주의 하원(何園)과 개원(个園) 등 크고 작은 옛 정원이 무수히 많다.
‘소주부기(蘇州府記)’에 따르면 소주에만 명나라 때 271개, 청나라 때 130개의 개인 정원이 있었다고 한다. 그 중 비교적 잘 보존된 옛 정원은 현재 70여개 정도 남아 있다.
소주 유원(留園, www.gardenly.com)
유원은 명나라 말(1593년) 서태시(徐泰時)가 벼슬을 버리고 낙향해 만들었다가 청나라 건륭 59년(1794년)부터 소주 동산 사람 유서(劉恕)의 소유였던 개인 정원이다.
그러나 청나라 동치 12년(1873년) 상주사람 성강(盛康)이 사들여 ‘유원(劉園)’이라 불리던 이름을 음이 같은 ‘유원(留園)’이라 바꿔 오늘에 이른다.
‘장유천지간(長留天地間)’이라.
하늘과 땅 사이에서 영원히 남으라는 뜻이다.
400여년의 풍상을 이겨낸 유원은 4개의 풍경구로 나뉜다.
중원에 연못과 정자, 동원에 주로 누각과 회랑, 서원에 산림, 북원에 대나무 숲과 작은 방을 배치하고 곳곳에 꽃과 돌로 장식했다.
대문을 들어서면 명필 원정룡(願廷龍)이 85세 때 쓴 ‘오하명원(吳下名園)’이란 현판과 커다란 옥석에 새겨 놓은 유원 전경도가 눈길을 사로 잡는다. 바로 뒤로 돌아가면 청나라의 경학대사인 유월(兪樾)이 일필휘지, 써내려 간 ‘유원기(留園記)’가 철망으로 이루어진 둥근 창에 걸려 있다.
좁은 입구를 들어설 때 ‘이게 뭐냐’던 느낌도 ‘유원기’가 걸려 있는 작은 공간을 지나면 곧바로 확 바뀐다. 봄꽃이 화사하게 피어난 연못과 정자, 가산(假山)이 시나브로 닫힌 마음을 활짝 열어 놓는다.
녹음(綠蔭), 명슬루(明瑟樓), 함벽산방(涵碧山房), 문목서향헌(聞木樨香軒), 가정(可亭), 호복정(濠濮亭)이 한눈에 들어온다. 푸른 잎과 붉은 매화, 맑은 물과 하얀 벽이 정자와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을 만든다.
강소 사람들에게 검은 기와는 먹이요, 하얀 벽은 화선지라 했던가. 그 위에 다시 초록과 빨강이 자연 그대로 스며든 모습이다.
주인과 손님은 봄 여름 가을 겨울, 이 모든 풍광을 그저 한 눈에 휙 보려 하지 않았다. 각기 다른 모양의 수많은 화창(花窓)을 통해 저마다의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하나의 꽃과 나무가 수십 수백의 그림으로 다가와 시심(詩心)을 불러 일으켰다.
창은 안팎을 이어준다. 인간과 자연을 잇고, 속세(俗世)과 선경(仙景)을 구분한다. 창은 마음이 오가는 곳이다.
‘이왕법첩(二王法帖)’ 등 갖가지 비문이 액자 속에 보관된 문목서향헌을 따라 길게 이어진 약 700여m의 회랑을 걷다보면 동원을 만난다.
유원 안에 가장 큰 건축물로서 연회장이었던 ‘오봉선관(五峰仙館)’을 시작으로, 서창을 바라보며 금(琴)을 타며 마음 속 정감을 노래하는 곳이란 ‘읍봉헌(揖峰軒)’, 덕이 높은 노인들의 휴식 공간으로 만들었다는 ‘임천기석지관(林泉耆碩之館)’이 이어진다.
지금도 오봉선관에선 관광객을 위한 전통극이 공연되고, 유원의 첫째 보물이라는 ‘대리석 삽병(大理石 揷屛)’도 볼 수 있다.
임천기석지관엔 홍목 가구가 가득하다. 청나라 말 소주의 화가 육염부(陸廉夫) 등 4명이 공동 작업한 ‘관운봉도(冠云峰圖)’를 중심으로 양쪽에 놓여 있는 둥근 목재 문이 화려하기 그지없다. 이 곳의 북문은 관운봉과 일직선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관운봉 서쪽 ‘우일촌(又一村)’이란 현판이 뚜렷한 원형 문을 지나면 전원 풍경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북원이다.
임천기석기관의 남동쪽으론 ‘역불이(亦不二)’란 글이 붙어 있는 또 다른 원형 문이 있다. 이 문을 나서면 잘 정돈된 동원의 정원이 자리 잡고 있다.
정원을 지나 동원일각(東園一角) 문을 지나 곡계루(曲溪樓) 회랑을 따라 돌면 중원을 만난다.
중원 서쪽, ‘활발발지(活潑潑地)’ 앞 너른 잔디밭과 숲은 ‘서포(西圃)’라 불리는 곳이다.
소주 유원은 중국 선비들의 ‘은둔 사상’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전형적인 개인 정원이다. 처음 건축된 뒤 몇 차례 주인이 바뀌었지만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것이 천만다행이다.
속세에서 물러나 유유자적 살고픈 선비들의 마음이 곳곳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어느 곳에선가 옛 선비가 나타나 시 한수를 읊조릴 듯 하다.
산(山), 수(水), 석(石), 화(花), 목(木)을 자연 그대로 옮겨 놓고 루(樓), 대(臺), 정(亭), 각(閣), 랑(廊), 교(橋), 탑(塔)을 조화시키는 전통 기법을 충실히 반영했다. 그리고 시(詩), 서(書), 화(畵)를 활용해 중국의 고전 원림 예술의 극치를 완성했다.
유원에 가면 빼놓지 말고 창을 통해 나무와 꽃과 돌과 연못을 보자. 또 다른 마음의 창이 생기리라.
‘청천세심(淸泉洗心), 백운이의(白雲怡意) - 맑은 샘으로 마음을 씻고, 하얀 구름으로 뜻을 화합하다.’
유원의 회랑 어딘가에 이런 글이 붙어 있었다.
양주 하원(何園, www.he-gaden.net)
양주(揚州)는 강남이 아니다. 장강 남쪽의 진강(鎭江)에서 윤양대교(潤揚大橋)로 이어지는 강북의 도시다. 약 2500년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고성(古城)으로 한나라 때 흥성하기 시작해 당나라 때 번영했고, 청나라 때 황금기를 맞았다.
양주는 ‘성재원중 원재성중(城在園中 園在城中) - 성 안에 정원이 있고, 정원 안에 성이 있다’란 말로 알려질 만큼 옛 원림이 많다.
그 중 호북성(湖北城) 한황덕도(漢黃德道)의 관리였던 하지도(何芷舠)가 청나라 광서 9년(1883년)에 건립한 ‘기소산장(寄嘯山莊)’이라 불리는 하원이 으뜸이다.
동(東), 서화원(西花園)과 사당(祠堂), 편석산방(片石山房)으로 구성된 하원은 아담하다.
이 곳은 ‘천하제일 회랑’으로 유명하다.
복도의 길이만 총 1500m다. 사통팔달 이어지는 회랑은 중국 최초의 입체 교차교 형식으로 평가되고 있다.
서화원의 수심정(水心亭)은 ‘천하제일 누각’, 수심정 주변의 꽃 무늬 창은 ‘천하제일 창’, 편석산방은 ‘천하제일 산’으로 불린다.
길고 긴 회랑을 따라 돌다보면 어느 한 곳 그냥 스쳐갈 수 없다. 꽃 창으로 보이는 풍경, 옥수루(玉繡樓)의 깔끔하게 정돈된 내실이 참 매력적이다.
편석산방의 한 켠, ‘근월(近月)’이란 누각은 주인의 풍류를 읽게 한다.
하원은 중체서용(中體西用), 중서합벽(中西合璧)의 양식을 채용해 인간을 근본으로 삼아 자연을 융화시킨 정원이다.
주인 하지도의 후손들은 선친의 유언에 따라 1924년 상해에 지지대학(持志大學)을 설립하는 등 중국 근현대사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런 때문일까. 하원은 ‘만청제일원(晩淸弟一園)’이라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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