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뉴먼의 푸는 눈이 생각나는 도시-샌프란시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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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harvard 댓글 0건 조회 1,693회 작성일 10-10-11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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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의 도시 샌프란시스코
샌프란시스코는 미국 내 인기 도시 투표에서 항상 상위를 차지하는 아름다운 항구 도시이다.
우리에게는 <샌프란시스코에서는 머리에 꽃을 꽂으세요>라는 팝송으로 잘 알려진 낭만의 도시이기도 하다.
샌프란시스코
특히,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의 하나인 금문교는 샌프란시스코를 더욱 친근하고 다정하게 한다.
금문교는 조류가 빠르고 안개가 많이 끼며, 지형이 복잡하여 건설이 불가능한 다리로 여겨졌으나 4년에 걸친 노력 끝에 1937년 완성되었다.
총 길이 2.7㎞로 시속 100마일의 풍속에도 견딜 수 있게 설계된 이 다리는 기술적으로도 뛰어날 뿐 아니라 가히 예술 작품이라 할 만큼 아름다워 전 세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샌프란시스코는 원래 스페인 탐험대에 의해 발견되었고, 1846년 멕시코 전쟁 후에 미국 영토로 귀속될 당시까지만 해도 인구라고는 인디언과 군인을 합쳐 500여명밖에 안되는 조그만 어촌에 불과하였다.
그러나, 1848년 부근에서 금이 발견되면서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하였다.
당시 뉴욕에서만 한 해에 8백여 척의 배가 샌프란시스코를 향해 출발하였는데, 그들은 남아메리카의 케이프타운을 지나 3개월이나 걸려 이곳에 도착하였다.
당시 뉴욕의 일꾼 한 사람의 일당이 1달러였는데 샌프란시스코 금광 일꾼의 일당은 15달러였다.
따라서, 물가도 비싸서 뉴욕에서 4센트하는 아침 샌드위치가 샌프란시스코에서는 50센트, 달걀 한 개가 6달러였으며 방값이 월 1천 달러나 했다고 한다.
이러한 골드 러쉬로 아시아의 중국을 비롯한 각양각색의 인종이 모여 오늘날의 샌프란시스코를 건설하였으며, 캘리포니아라는 신생주가 생겨나게 되었다.
현재 샌프란시스코의 인구는 약 75만 명으로 미국에서 13번째의 큰 도시이며, 4만 5천명의 교민이 거주하고 있는 태평양의 주요 관문이다.
연중 기온은 25∼5℃ 사이로 온화하나 환태평양 지진대에 위치하여 1906년과 1989년에는 진도 7의 강진이 발생한 바 있다.
특히, 1906년의 대지진으로 도시 전체가 완전히 파괴되었으며, 현재의 건물들은 거의 모두가 그 이후에 다시 지은 것이다.
또한 1945년 국제연합(UN) 창설회의를 개최하고, 1951년 미·일 강화조약을 체결함으로써 세계인의 주목을 받았었다.
▼소마(SOMA,South of Market)
샌프란시스코 금문교(Golden Gate)▲
●샌프란시스코시 행정조직 특성
샌프란시스코시는 1850년 개청하였으며, 시 조직은 크게 나누어 선거에 의한 선거직 공무원과 임명직 공무원으로 나누어진다.
선거직은 시장과 시의원격인 11명의 슈퍼바이저 위원회(Board of Supervisors), 재무관, 시 법무관(변호업무), 시 지방법원, 시 고등법원, 검찰관, 보안관(법정 및 교도관), 징세 사정관 등 9가지이다.
임명직 공무원은 최고 행정장과 출납관이 있는데 임기가 10년이며, 임명직으로는 최고 상위직이다.
각 국의 책임자격인 커미셔너는 각 국마다 5명 내외인데 실질적으로 각 국 업무의 행정적인 책임을 진다.
커미셔너는 비상근 명예직이므로 실무운영을 맡을 매니저, 디렉터 등 행정실무책임자를 추천하여 시장이 임명하고 있다.
샌프란시스코시는 총 93개의 부서에서 약 2만9천5백여 명의 공무원이 일하고 있다.
시의 행정은 행정, 입법, 사법이 완전 분리되어 있지 않으며 시의원격인 슈퍼바이저도 입법권 이외에 도시계획, 사적(史蹟) 지정, 예산 심의 등 모든 주요사항에 깊이 참여하도록 되어 있다.
판사도 주차 위반과 같은 재판은 교통국에서 직접 재판을 하게 배속되어 있으며, 일반 공무원과 똑같이 임명하고 있다.
서울시는 1976년 5월 샌프란시스코시와 자매결연을 체결하였다.
양 도시는 자매결연 체결 이후 양 도시 시장의 상호 방문을 비롯하여 다양한 분야에서 많은 교류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교류사업 중 가장 관심을 끈 사업은 1994년부터 1996년까지 매년 하계방학 기간 중 흑인 장학생 5명 내외를 초청하여 연세대학교와 서울시립대학교에서 실시한 연수 프로그램이다.
연수내용은 주로 한국 및 서울시 소개, 한국전통문화 소개, 한국 학생과의 교제 및 문화 유적지 시찰 등이었으며, 이 사업은 미국 대학생들에게 한국 문화 및 전통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 한·흑 갈등 해소에 기여하는 등 상호 우의 증진에 커다란 기여를 하였다.
또한, 서울시에서는 1992년부터 1997년까지 선진 도시정보와 자료수집 등을 위하여 샌프란시스코 시청에 주재관을 파견하였었다.
이러한 주재관 제도는 시정 홍보 외에도 시정에 필요한 외국도시의 행정기법 및 경험과 정 보의 신속한 수집 제공으로 자료 수집 등을 위한 시 공무원의 현지 출장을 대체하는 효과가 있었다.
아울러 샌프란시스코시에는 양 도시간 자매결연 체결 이후부터 서울과 샌프란시스코시와의 상호 이해와 우호증진을 위하여 70명의 위원으로 자매도시위원회가 구성되어, 양 도시간의 교류사업을 지원하고 한인 사회의 지위 향상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윌리브라운 샌프란시스코 시장의 서울시 방문(97년 10월24일)
양 도시간 교류의 전환점이 된 것은 자매결연 20주년을 맞이하여 1996년 4월 민선 시장인 조 순 시장의 샌프란시스코 방문이었다.
조 순 시장은 윌리 브라운 시장과의 면담 이외에 미국 서부지역 최대의 명문대학으로 15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시킨 버클리대학에서 강의를 하는 등 서울시의 위상을 제고하였다.
또한, 윌리 브라운 샌프란시스코 시장도 1997년 10월 서울을 방문하여 상호 우호 협력증진 방안에 대하여 폭넓은 의견을 교환하였다.
이러한 양 도시 정상의 상호 방문은 자매 도시 교류사업 활성화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샌프란시스코시의 시 마크를 보면 가운데에는 배를 타고 오는 탐험가의 모습, 측량을 하고 도시건설을 하는 기술자의 모습, 금을 캐는 광부의 모습이 그려져 있으며, 위쪽에는 죽지 않는 불사조가 그려져 있다.
이는 1906년 대지진으로 도시 전체가 완전히 잿더미가 된 샌프란시스코가 다시 살아나는 것을 상징하고 있다.
죽음을 무릅쓰고 바다를 건너 이 곳으로 이민을 와서 금을 캐고 돈을 벌어 아름답고 살기 좋은 도시를 건설하였으나, 대지진으로 인하여 하루아침에 잿더미처럼 무너져 버린 도시를 다시 일으켜 세운 정신이 바로 샌프란시스칸의 정신이다.
서울시는 샌프란시스코시와의 상호 교류와 협력을 통하여 이러한 샌프란시스칸의 정신을 시정에 반영함으로서 오늘의 경제적 난국을 슬기롭게 극복하고, 보다 아름답고 풍요로운 서울을 창조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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