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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 폴란드의 크라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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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타라곤 댓글 0건 조회 1,789회 작성일 12-06-08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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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약 75만(1994). 비스와강이 구릉지에서 평지로 흘러나오는 넓은 분지에 있는 하항(河港)으로, 구시가지는 좌안, 신시가지는 구시가지 주위와 우안에 자리한다.
산업은 전통적 공업인 축산가공업과 함께 철도차량 ·전화교환기 제작 및 소다 화학 등의 공업이 활발하다.
도시의 기원은 8세기로 추정되는데, 10세기 중엽에 요새였다는 사실(史實)이 남아 있다. 1320년부터 1609년까지는 폴란드의 수도가 되었으며, 특히 카지미에시 3세 시대에는 상업 ·수공업의 중심지로서 중부 유럽에서는 가장 세력이 큰 도시의 하나가 되었다.

비스와강 연변의 언덕에 바벨 왕궁이 건설(16세기에 재건)되고, 1364년에는 중부 유럽에서 두 번째로 역사가 긴 야기엘로대학이 창설되었다. 수도가 바르샤바로 옮겨간 뒤에 시세(市勢)가 위축되고, 1759년에는 오스트리아령이 되었다.
1815년 빈회의에 의해 크라쿠프 공화국이 성립되자 그 수도가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독일군에게 점령되어 그 군정청(軍政廳) 소재지가 되었으나 사적(史蹟) 등의 파괴는 면할 수 있었다. 구시가지 중앙의 리네크(市場) 광장, 13세기에 건립된 성모(聖母) 마리아 성당, 직물(織物) 길드관(館:스키엔니체), 바벨 왕궁 안에 있는 왕의 묘소 등 사적이 많다. 세계유산목록에 등록되어 있다.

크라쿠프는 폴란드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로 체코 근처에 국경을 두고 있으며 여러 곳의 명소가 있다. 크라쿠프는 옛날에 폴란드의 수도였고 폴란드 문화의 중심지였으며 많은 문화유물이 남아 있다.
폴란드왕국이 가장 번성 하였던 시기는 14세기부터 16세기까지인데 이기간에 크라쿠프는 중유럽의 문화중심지로 번성하였다.
크라쿠프는 교통의 중심지이며 여러 지역으로 여행하기에 편리하다. 크라쿠프는 급속도로 공업화가 되어서 공해가 심각한 편이다.

크라쿠프의 중심지에는 중앙광장이 있는데 이곳에는 상점과 레스토랑이 길게 늘어져 있고 많은 사람들이 오고가고 있다.
중앙광장에는 100m에 달하는 직물시장이 늘어서 있는데 흰색의 건물로 되어 있다. 이곳에서는 민속인형, 레이스, 테이블보, 가죽제품, 나무 조각품 등을 팔고 있다.
직물시장옆에는 구시청사옥이 있고 이곳은 개조되어 박물관으로 꾸며져 있고 지하에는 술집이 마련되어 있다.
성 마리아 교회는 중앙광장에 위치하고 있고 고딕 양식 의 교회로 아름다운 내부장식을 가지고 있으며 교회탑 위에서 나팔소리가 1시간마다 울리게 된다.

플로리안스카문은 중앙광장에서 시가로 들어가는 곳에 위치하고 있는데 구시가를 둘러싸고 있으며 바르바칸이라는 방호벽이 있다.
차르코리스키 박물관은 플로리안스카문 오른쪽에 있고 폴란드의 문화재와 민예품 등이 전시 되어 있으며 이곳에는 다빈치의 「흰천을 안은 귀부인」도 전시되어 있다.

1364년에는 폴란드의 최초의 대학인 크라쿠프 대학을 이곳에 세우게 되었 고 훗날 야기엘로 대학으로 이름을 변경하였다. 이 대학은 지동설을 주창한 코페르니쿠스가 공부하기도 하였다. 야기엘로 대학의 건물 중에 하나인 크라쿠프 아카데미는 유럽에서도 유명한 건축물 중의 하나로 고딕 양식이다.

바벨성은 비스와강 상류에 위치하고 있다. 바벨성주변에는 녹지공원이 조성되어 있어 경관이 무척 수려하다. 바벨성은 16세기에 세워졌으며 고딕 양식으로 되어 있고 현재는 박물관으로 개조되어 있다.

비스와강 유역에는 14세기에 바로크양식으로 지어진 벽돌로 된 대사원이 있는데 중세의 칼과 장신구, 초상화가 있고 왕들의 대관식이 이곳에서 이루 어졌다.
비스와강 북쪽에는 지그문트탑이 있고 폴란 최대의 종이 달려 있으나 종은 특별한 때 외에는 울리지 않는다고 한다.
언덕에는 용의 동굴이 있는데 전설이 내려오고 있는데 크라쿠프의 아가씨들을 잡아먹는 용을 한 젊은이가 타르와 황으로 만들어진 양고기를 먹게 하였고 용은 목이 너무 아파서 비스와강의 물을 계속 마시고 용의 몸이 갈기갈기 찢어져서 죽었고 젊은이는 크라쿠프의 공주와 결혼하게 되었다고 한다.

크라쿠프 근교에는 쳉스토호바라는 마을이 있는데 야스나고라 수도원은 가톨릭 성지이고 「검은 마돈나」는 성모 마리아의 성화로 기적의 힘이 있다고 믿어지고 있으며 폴란드를 지키는 수호신이라고 여겨지고 있다.
폴란드에 타타르인들이 침입하였을 때 성모 마리아가 그려진 성화를 훔쳐 가려고 하였으나 이 그림이 너무 무거워져서 가져 나갈 수 없게 자칼로 얼굴을 그어 버리고 그 흔적이 두 빰에 남아 있다.
한편 스웨덴에서 침략하였을 때는 마돈나상이 눈물을 흘렸고 스웨덴군을 격퇴할 수 있게 폴란드인들에 힘을 주었다고 한다.
검은 마돈나 성화는 하루에 두 번씩 일반에게 공개되게 된다. 부활절에는 야스나고라 수도원에는 수십만 명이 순례객들이 몰려 오고 있으며 박물관이 있고 이곳에는 요한 바오로 2세의 초상화와 자유노조의 바웬사 의장의 노벨평화상 상장과 메달이 전시되어 있다.


크라코프에서 서쪽으로 60㎞ 정도 떨어져 있는 아우슈비츠에는 제 2차 세 계대전을 일으킨 독일의 히틀러의 악명 높은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세워졌으며 유태인들의 학살이 자행되었고 이곳은 아직도 아픈 과거를 간직하고 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 입구에는 독일어로 '일하면 자유로워진다.'라는 구호가 적혀 있는데 이것은 말도 안되는 구호로 히틀러의 기만적인 태도를 엿볼 수 있다. 아우슈비츠 수용소는 전체가 28동으로 되어 있는데 빨간 벽돌 건물들로 되어 있으며 현재는 박물관과 전시관으로 꾸며져 있다.
아우슈비츠에는 티트론 가스실과 시체소각로와 2만 명을 총살한 벽, 환기 가 안되는 방, 수용소에 있던 사람들의 구두, 모자, 의복, 식기, 편지 등이 전시되어 있고 그 당시의 끔찍한 흔적들이 생생히 남아 있다.
시체는 머리 카락은 카펫트를 만들었고 살로는 비누를 만들고 뼈로는 재떨이와 나이프를 만들었다. 독일나치는 의학실험을 행하기도 하였고 상상할 수도 없는 참혹 함이 있었고 수용소 철조망에는 220V의 전류가 항상 흐르고 있었다.
박물관에는 13세 이하의 어린이는 관람할 수 없다. 이곳에서는 기록영화를 상영하고 있다. 이곳에는「안네의 일기」로 유명한 안네의 어머니가 숨졌고 안네와 안네의 언니는 아우슈비츠에 수용되었다가 베르젠 수용소로 옮겨진 후 티푸스에 걸려 죽었다.
유태인들과 폴란드인들을 대량 학살한 이곳은 폴란 드를 방문하면 꼭 들러 보아야 할 역사의 현장이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3㎞ 떨어진 에는 비르케누프 수용소가 있다.
이 곳은 아우슈비츠보다는 덜 알려져 있지만 규모는 10배 이상으로 큰 살인공 장이라고 할 수 있고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죽어 갔다. 비르케누프 수용소 입구에는 희생자들의 위령비가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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