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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카와, 사미센 가락에 밤이 저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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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진저 댓글 0건 조회 2,042회 작성일 12-02-23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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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하성란은 일본 이시카와에서 사미센 소리와, 게이꼬들의 나막신,
노천탕에 앉아 듣는 바람소리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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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는 방파제를 넘어 발을 적실 듯 바싹 따라붙다가도 키 작은 숲과 겹겹의 차선들 너머로 온데간데없이 자취를 감춰버린다. 눈에서 멀어지지만 바다는 여전히 가까운 곳에서 일렁거리고 있다. 노토 반도에서 시작되어 남쪽의 가가 시(市)에 다다를 때까지, 해안선의 길이가 581킬로미터나 된다. 사라졌다 불쑥 나타나기를 반복하는 끝없이 긴 해안선. 그것이 이시카와의 첫인상이었다.
해질녘 가자나와 시의 히가시차야 거리를 걸었다. 기자나와 역에서 도보로 10분 정도 걸어들어가면 고즈넉하게 펼쳐지는 히가시차야 거리는 2001년에 일본의 중요 전통건물 보존지구로 선정된 유서 깊은 곳이다. 큰 돌들이 깔린 뒤얽힌 골목길. 골목길 양쪽으로 격자문이 달린 목조 가옥들이 어깨동무를 하듯 늘어서 있다. 촘촘히 박힌 나뭇살 너머로 작은 정원이 얼핏설핏 들여다보일 뿐 집의 구조는커녕 살림살이를 좀처럼 엿볼 수 없는 집들이다. 수종을 짐작할 수 없는 목재들은 오랜 세월 동안 거무스름하게 변색되었다. 이 많은 목조 건물들이 오랜 시간 보존될 수 있었던 것은 가나자와가 전쟁으로부터 살짝 벗어나 있었기 때문이었다.
저녁 산책을 나온 사람들 뒤를 따라 개 몇 마리가 골목길을 지나갔다. 갑자기 골목이 비좁아졌다. 어둠이 연기처럼 골목 끝에서부터 꾸역꾸역 밀려들어왔다. 구부러진 골목길 어디선가 두런대던 사람들의 말소리와 개 짖는 소리가 잦아들었다. 어느 순간 어둠과 함께 거리는 텅 비었다. 골목이 어두워지자 하나, 둘 집들의 불이 켜지기 시작했다. 돌 바닥에 격자무늬의 그림자들이 졌다. 꿈결처럼 어느 집에선가 사미센 연주 가락이 몇 가락 튄다. 격자문이 조용히 열리고 기모노로 성장한 게이꼬가 종종걸음으로 골목길을 걸어 사라진다. 골목에 머문 시간은 해질녘 한 시간 남짓이었을 것이다. 그 시간 동안 짧은 꿈은 꾼 듯했다. 골목길을 걸어가는 게이꼬의 왜나막신이 돌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가 아니었으면 모든 것이 잠깐 졸면서 꾸는 꿈인 줄 알았을 것이다. 오래된 것들 앞에서는 이상하게도 한없이 무력해진다.
이 거리의 집들 거개가 찻집과 음식점들이다. 차야(茶室)란 게이샤를 불러 놀면서 연회를 하는 곳이다. 호타루야란 음식점에서 저녁을 먹었다. 가옥의 실내는 현대식으로 개조를 했지만 옛 목조 가옥의 구조는 그대로 남아 있는 듯싶었다. 집안 어디에서도 정원을 내려다볼 수 있다. 몇 겹의 덧창들로 집안은 집밖과 철저히 분리되는 한편 어지러운 세상사로부터 한 발짝 물러설 수 있었을 것이다.
이층의 다타미 방으로 올라갔다. 가이세키(會席) 요리는 우리의 한정식과 비슷한데 개인상에 1 인분씩 따로따로 올라온다는 점이 조금 다르다. 음식은 눈으로 즐긴다는 말이 새삼스러울 정도였다. 각양각색의 접시와 그 위에 놓인 회 한 점, 무 한 조각을 들여다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늙은 게이샤는 사미센 연주에 맞춰 노래를 불렀다. 버드나무 아래의 춘심을 담은 노랫가락에 맞춰 젊고 아름다운 게이샤가 춤을 추었다. 춤 동작은 간결하고 단순했다. 늙은 게이샤의 목소리가 버드나무 가지 끝처럼 꺾일 때마다 젊은 게이샤가 손에 쥔 부채를 펼쳐 들었다. 게이샤가 발끝을 치켜올리자 발가락이 갈린 일본 버선 끝이 드러났다.
기모노 깃 위로 드러난 뒷목이 무척이나 매혹적인 게이샤는 노련하다. 십수 년이나 그 일에 종사했다고 한다. 그의 표정을 보고 있노라면 자신의 일에 대한 자긍심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몇 잔 술이 오가자 넌즈시 아이 둘의 엄마라고 귀띔해준다. 이 일에 대한 어려움도 슬쩍 내비쳤다. 교토의 게이샤에 뒤질 것 없는 예능인들이지만 지금은 그 수가 점차 줄어들고 있다고 했다. 그가 혀끝으로 내뱉는 아이아또라는 말은 감미롭다. 아이아또는 아리가또의 그곳 방언이다.
우리가 식사를 했던 호타루야의 회석 요리는 1인당 6천 엔. 게이샤는 두 사람이 팀을 이루는데 가격은 상당히 비싸 6만 엔 정도였다. 식사에는 일본의 공무원들도 참석했는데 그들에게도 이런 식사 자리는 아주 드문 자리인 듯했다. 뜻밖의 호사를 누린 셈이다.
교토나 오사카, 도쿄가 익숙한 이들에게 이시카와란 다소 생소한 곳일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여행에서 나는 그 점이 제일 마음에 들었다. 교토와 오사카 여행에서는 쉴새없이 한국인 관광객들과 마주쳤다. 명승지에 즐비하게 늘어선 관광기념품도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곳에서 왁자한 모국어를 만날 때면 반가워 뒤를 돌아보았다가 한편으로는 씁쓸해졌다.
객창한등(客窓寒燈). 밤이 깊어지고 골목길은 인적이 끊겼다. 격자문 안의 불빛만이 더욱 짙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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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곳곳에서 료칸(旅館)이라 불리는 일본식 전통 여관을 볼 수 있다. 우리가 묵었던 온천 요금이 1인당 1만 8천 엔이었으니 부담스러울만도 하다. 하지만 일본의 전통을 그대로 맛볼 수 있는 온천에다 식사가 함께 제공된다는 점에서 보자면 그 호사스러움에 비해 저렴하다는 느낌조차 든다.
가가의 야마시로 온천에는 22개의 료칸이 있다. 료칸이 발달한 것은 17세기 에도 시대였다. 여행은 귀족의 전유물이었고 귀족들의 여독을 풀고자 온천을 겸비한 료칸들이 세워지기 시작했다. 귀족들을 상대하던 오카미상들의 몸에 밴 친절을 경험하는 것도 료칸의 매력 가운데 하나이다. 공동 욕실이 아닌 부부나 연인을 위해 마련된 작은 노천탕 역시 료칸에서만 누릴 수 있는 즐거움이다.
03.jpg우리가 머문 곳은 루리코 온천이었다. 들어서면 우선 유카타로 갈아입는다. 걸을 때 발가락이 좀 아프지만 왜나막신을 신어보는 경험도 이색적이다. 료칸 곳곳에서 유카타 차림의 여행객들과 마주친다. 수시로 온천을 하기 때문에 한쪽 손에는 간단한 세면도구가 든 비닐 주머니를 하나씩 들고 있다.
객실문은 ‘후스마’라고 불리는 장지문으로 되어 있다. 문을 열고 방안으로 들어서자 다타미 특유의 짚 냄새가 물씬 풍겨왔다. 오카미상의 서비스는 모든 식사 때는 물론 잠자리까지 이어진다. 저녁 식사는 주로 방안에서 하는데 회석 요리를 편안히 방안에서 즐길 수 있다. 작은 화로에 불을 피어 전골을 데우는 일부터 빈 그릇을 치우는 일까지 상 한 켠에 지키고 앉은 오카미상이 직접 해준다. 차림표가 있어 음식의 이름은 물론 재료까지 알아볼 수 있다.
에도 시대가 되면서 서민들의 여행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코쿠미’라는 계조직을 만들어 온천 여행을 즐겼다. 지금도 일본에서는 무리로 온천을 찾는 이들이 많다. 일상사에서 벗어나 일 년에 한두 번 귀족이 되어보는 것이다.
04.jpg뭐니뭐니 해도 일본 온천의 매력은 노천탕에 있다. 봄밤의 서늘한 공기가 욕탕 밖에 내놓은 두 팔과 목에 선득선득 소름을 돋게 한다. 조용한 숲 건너편에서 알싸한 숲의 냄새가 실려오고 바람에 나무들이 후드득 움직인다. 그때마다 불안해져서 숲을 응시한다. 이시카와는 눈이 많은 곳이다. 한겨울의 노천탕은 생각만으로도 아름답다. 눈 쌓인 곳에서의 노천 온천.
물 속에 담긴 두 발이 퉁퉁 부었다. 겐로쿠엔과 무사의 집, 가나자와 성 등으로 분주히 움직인 기억이 발끝에 남아 있다. 역대 가가 영주가 조영한 임천 회유식의 대정원인 겐로쿠엔은 오카야마의 고라쿠엔, 미토의 가라이쿠엔과 더불어 일본의 3대 정원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산, 강, 연못, 폭포 등의 경치에 봄의 벚꽃, 여름의 철쭉, 가을의 단풍, 겨울의 설경 등 사계절마다 다른 모습이 녹아들어 변화무쌍한 정원은 그 자체로 완벽한 하나의 세상이 된다.
상춘객들의 울긋불긋한 옷차림이 때마침 만개한 꽃들과 더불어 섞였다. 겐로쿠엔 키쿠라자. 벚꽃이 만개하면 3백 장이 넘는 벚꽃잎이 부풀어오른다. 커다란 못에 다리를 걸친 우치하시테이는 금방이라도 신을 벗고 올라가 차를 마시고 싶은 곳이었다.
겐로쿠엔 앞의 가나자와 성의 매력은 텅 빈 공간이다. 해자였을 강은 오래 전에 없어지고 도로가 그 자리를 채웠다. 다리를 건너 성 안으로 들어서면 메이지 시대 이후 세워진 목조 성곽 건축물로는 일본 최대 규모인 가나자와 성이 한눈에 들어온다. 넓은 공터 한가득 햇살이 다글거린다. 가끔 바람이 불면서 텅 빈 곳을 가로질러 간다. 그때 이곳에는 무슨 일이 있었나. 상상으로 시간을 보내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다. 성밖으로 나서면 성하(城下) 도시로 번성한 가나자와 시가 내려다보인다.
교토가 귀족문화의 번성지였고 오사카가 상인들의 도시였다면 가나자와는 무사들의 도시다. 05.jpg무사 노무라 집의 정원은 뜨거운 햇살을 피해 잠시 쉬어가기에 좋은 곳이었다. 가지런히 늘어선 다타미 방을 지나면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보인다. 계단은 크고 작은 돌을 옮겨다 그대로 툭툭 놓은 듯한데 다시 한번 들여다보면 치밀한 계산이 엿보인다. 맨 발바닥에 닿는 돌의 차디찬 감촉이 좋아 몇 번이나 계단을 오르내렸다. 집 뒤뜰은 인공 연못으로 마루에 앉아 발을 내려뜨리면 연못 속의 잉어에 발이 닿을 듯하다. 크고 작은 나무들 사이에 놓인 석등과 대나무로 만든 수로가 인상적이다. 무사의 방에 전시된 잘 벼린 칼들과 아름답고 고요한 정원 사이에서 일본 무사의 정신을 느낄 수 있었다.
걸을 때마다 유카타 자락이 젖은 두 다리 사이에 감긴다. 여독이 밀려와 노곤하다. 방에 도착하니 오카미상이 흰 요를 깔아두었다. 낯선 곳에서 잠은 더디게 온다. 이시카와에서의 여정이 순서 없이 머릿속을 헤집는다. 나는 가나자와 성에 앉아 있다가 무사의 집에 전시된 날 푸른 칼들을 들여다보기도 한다. 루리코에서 상연된 도깨비 북춤도 떠올려본다. 밤 공기 속에서 퍼져나가는 북소리와 현란한 도깨비 가면의 강렬함. 문득 잠이 들었던가.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것은 다타미의 향긋한 짚 냄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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