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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의 도시 앙코르 와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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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진저 댓글 0건 조회 1,621회 작성일 12-02-23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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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이맘때쯤 앙코르 와트 작품전을 목적으로 나는 화가, 소설가, 기자, 전시기획자 등과 함께 방콕을 경유해 캄보디아 씨엠립을 답사했다. 턱하니 숨이 막히는 5월의 씨엠립 날씨는 가히 살인적이다. 닥치는 대로 녹여 삼킬 것 같은 강렬한 태양의 열기는 신의 도시 앙코르 와트에 온 나를 제일 먼저 맞이한다. 뜨거운 열기만큼이나 이국의 묘한 낯선 향기는 앞으로 전개될 문화적 충격과 좌절을 살며시 예고한다. 모자를 눌러쓰고 운동화끈 단단히 묶은 나는 5월의 작열하는 태양 아래 침묵으로 시공을 초월한 세계 7대 불가사의, 미지의 세계 앙코르 유적군, 그 속으로 빠져 들어간다.
앙코르는 9~15세기 인도차이나 반도에서 가장 강성했던 크메르제국의 수도였고, 다양한 형태의 유적군은 지금의 씨엠립을 중심으로 외곽도시에 1천여 개의 사원이 밀집되어 자리하고 있다. 크메르 왕들은 왕권 지배이념을 강화하고 자신의 업적을 남기기 위해서 사원건축에 열중하였고 민중들은 신에게 자신을 맡김으로써 현실의 어려움을 잊으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위대한 제국의 영화는 오래가지 못했다. 타일랜드의 침략을 받아 크메르인은 죽임을 당하고 노예로 끌려갔다. 모든 역사는 말살됐으며 1432년 이후 그렇게 세상과 격리된 채 아무도 살지 않는 자연의 또 다른 일부가 되어갔다. 그 깊은 잠에서 깨어난 것은 1860년 프랑스의 학자 앙리무오에 의해 발견되고부터다.
1867년 파리 만국박람회에 거대한 사원모형이 제작되어 전시됨으로써 세상에 알려지고 앙코르 와트붐은 조성되었다. 앙코르 와트에 대한 기록은 13세기 원나라 사신 주달관이 기록한 진랍풍토기에 조금 남아 있지만 유적의 엄청난 규모와 화려함, 신화적 의미, 제국의 탄생과 멸망에 대해 어느 누구도 명확한 답을 내리지 못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더욱 열광하고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는 불가사의란 이름으로 남아 회자되고 있는지 모르겠다.
여행은 자기 일상의 삶에서 벗어나 또 다른 인간의 삶, 자연, 역사유물을 직접 체험함으로써 얻는 통찰의 즐거움을 그 목적으로 하고 있는 데 여행의 특성상 그 체험의 방향은 목적지에 따라 다를 것이다. 앙코르의 여행은 역사유물체험에 많은 시간이 할애됐으며 그 시각경험을 통해 현재 그들의 삶을 유추해 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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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권력의 위압에 가슴이 저리다
우리가 통칭해서 부르는 앙코르 와트는 앙코르 와트(Angkor Wat), 앙코르 톰(Angkor Thom), 타 프롬(Ta Prom), 프놈 바켕(Phnom Bakheng), 반테아이 스레이(Banteay Srei ) 등 수많은 사원으로 이루어진 왕도(王都)를 말하며 실제로 ‘앙코르’는 왕도를,‘와트’는 사원을 의미한다. 모든 여행객들이 앙코르 톰을 먼저 답사하지만 여기서는 연대순으로 앙코르 와트를 먼저 소개한다.
앙코르 와트는 수리야바르만 2세 (1113~1150)가 비슈뉴신에게 바치기 위해 지은 사원인데, 성곽외부 한 변의 길이가 1500m에 도달하고, 내부 중심부 사원은 한 변이 200~300m에 이르는 거대한 석조 건축물이다. 앙코르 건축예술의 정수를 보여준 앙코르 와트는 서쪽을 향해 지어졌기 때문에 해가 넘어가는 늦은 오후에 그 위용은 더욱 빛을 발한다. 돌로 만들어진 3층의 긴 회랑으로 구성되어 있는 사원은 신과 인간, 천국과 지옥의 이야기를 온갖 조각기술을 동원해 형상화한 거대한 조형물이다. 정확히 그 의미를 알 수 없지만 화가의 직관으로 천천히 회랑을 걸으며 음미해 본다. 아직도 태양은 작열하지만 그늘진 회랑의 서늘함은 부조의 의미를 더해 나의 간담을 오싹하게 한다.
앙코르 톰은 앙코르 와트보다 약 반세기 뒤에 지어진 사원으로 앙코르시대 최대의 성군인 자야바르만 7세 (1181~1219)가 건설했다. 앙코르 톰은 한 변의 길이가 3km의 직사각형의 성벽으로 이루어졌으며 그 중심에 바이욘 사원, 바푸온, 코끼리테라스, 피에아나카스 등의 유적들이 있다. 그 중 단연 돋보이는 바이욘 사원은 세계 중심의 의미를 담고 있으며 그곳으로 가기 위해서는 넘쳐나는 여행객과 이들을 상대로 기념상품을 파는 원주민들로 북새통을 이루는 앙코르 톰의 남문을 통과해야 한다. 일행을 실은 중형버스가 좁은 남문을 겨우 빠져 나올 때 운전사의 노련한 운전솜씨에 우리는 박수로 답례했지만 유네스코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유적들이 다칠까 한편으로는 마음을 쓸어내린다.
바이욘 사원에 들어서자 사암으로 만들어졌다고는 믿기 어려운 총 49체의 거대한 사면불이 조성되어 있다. 자야바르만 7세는 왕위에 오르면서 국교를 불교로 바꾸고 재위 21년 동안 동서남북 사면을 바라보고 있는 관세음보살상을 모셔놓았다. ‘크메르의 미소’라 이름지워진 관세음보살은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우리 중생들을 바라보고 있다. 여기서 나는 필설로는 다하기 힘든 장대한 규모에, 중생 구제를 위한 성군의 위대함보다 절대권력의 위압이 먼저 느껴져 가슴이 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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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장인들이 한평생을 바쳐 만든 것
나는 그동안 여행을 통해 여러 곳에서 형용하기 어려운 장면을 보았다. 중국 운남성의 토림과 석림, 네팔의 히말라야, 아프리카의 초원, 몽골의 고비사막 등은 천혜의 자연이었으며 중국의 만리장성, 그리스의 델피, 터키의 카파도키아, 로마의 신전, 인도의 아그라, 파키스탄의 카라코롬 하이웨이 등은 기원전 일이거나 적의 외침으로부터 인간의 생존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그러나 여기 모셔진 이 불상들은 민중을 위한 불사가 아니라 위대한 성군 자이바르만 7세의 업적을 더욱 빛나게 하기 위해, 동원된 수많은 장인들이 한평생을 바쳐 만든 것이다. 도대체 누굴 위한 관세음보살인가.
앙코르 톰 동쪽 옆에는 타프롬 사원이 있다. 허물어진 사원의 좁은 문을 통과하며 또 한번 경악한다. 수십 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반얀나무는 지상 밖으로 나온 문어발처럼 생긴 뿌리로 타프롬 사원을 휘어감고 있다. 수백 년 동안 인간의 손이 닿지 않아 스스로 인공 조형물에 적응하며 자란 반얀나무는 세상사의 덧없음을 말없이 웅변하고 있다. 나는 그늘에 앉았다. 스케치고 뭐고 다 귀찮아졌다. 물끄러미 나무를 보다가 문뜩 이런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사라져간 수십만 명의 장인의 원혼이 저 반얀나무를 통해 환생한 것은 아닐까. 이 그로데스크한 풍경은 여전사 안젤리나 졸리가 활약한 ‘툼레이더’라는 영화 속의 주 활동무대로 등장해 또 하나의 색다른 볼거리를 제공했다. 일행이 부르는 소리에 정신을 차리니 주변엔 아무도 없었다. 모두 다음 목적지로 출발한 것이다.
앙코르 유적군 중 가장 여성스럽다는 반테아이 스레이 사원에서 본 천상의 무희 압살라의 육감적인 자태는 매혹적이다. 서양에 미로의 비너스가 있다면 동양에는 앙코르의 압살라가 있다. 남자 일행들은 압살라를 보며 가벼운 신음소리를 낸다. 풍만한 가슴과 우아한 손의 모습에서 넋을 잃은 것이다. 우리는 서둘러 프놈 바켕으로 향한다. 3일간의 앙코르 와트 여행의 대미를 장식하기 위해서이다. 앙코르 유적 전체를 내려다보며 일몰의 아름다움에 취해야 한다. 다른 유적들 보다 약 300년 앞서 지어진 힌두사원이다. 규모는 작았다. 신들이 사는 천상의 산인 메루산을 본뜬 형태로 앙코르 왕조의 부침을 모두 함께 했을 것이다. 70도 정도의 가파른 돌계단을 두 팔, 두 발로 기어 정상에 올라가면 신의 세계에 도달하고 밀림 속에 자리한 앙코르 와트의 전체 모습도 한눈에 들어온다.
신들의 도시 앙코르 와트. 불꽃같이 문명은 타올랐지만 지금은 박제되어 전세계 여행객들의 발품을 팔게 하는 곳. 유적지마다 경이와 회한을 안겨주지만 돌아서면 아직도 이 민족의 질곡의 현대사가 삶속에 켜켜이 묻어 있어 가슴 아린 곳. 신화는 있지만 민중은 존재하지 않는 곳. 이제는 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캄보디아는 발전을 모색하고 있다. 인류공동의 자산인 앙코르 와트는 유네스코의 주관으로 전세계 선진국들이 복원과 발굴에 동참하고 있으며 이를 계기로 오랜 겨울잠에서 깨어나야 한다. 해는 뉘엿뉘엿 서산에 지고 하늘은 붉게 물들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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