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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의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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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진저 댓글 0건 조회 1,340회 작성일 12-02-22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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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곰파는 스피티의 중심도시 카자에서 약 14km 떨어진 곳에 있습니다.
해발 4,000m가 넘는 이곳은 여름이 짧습니다. 팔을 드러내놓고 다니던 라마승들이 ‘아추추’ 하며 두르고 다니던 숄로 팔을 감쌉니다. 양 팔을 부르르 떨면서 하는 행동이 우리의 ‘아추워’와 발음과 행동이 비슷했습니다. 이곳의 언어들 중 우리와 비슷한 것이 많습니다. 엄마, 아빠도 우리와 같습니다. 곰파 아궁이에 불이 지펴지고 라마승들은 둘러앉아 차를 마셨습니다. 세찬 바람이 불어 와 곰파지붕을 날려버릴 듯 우우 거렸습니다. 이곳에 가을이 빨리 찾아 오려나 봅니다.
마을과 떨어져 있는 이곳 곰파에는 다섯 개의 게스트를 위한 방이 있었습니다. 러시아에서 중학생 아들과 함께 여행 온 옐레나, 티베트 불교에 심취해 있다는 체코 아가씨 루씨, 막 군대를 마치고 여행 온 이스라엘 아가씨, 이들이 다함께 곰파 식구가 되었습니다.


키곰파에 방 하나 잡아 두고 산길을 걸어 마을로 내려갔습니다.
마을은 보리추수와 건초 만들기가 한창입니다. 지붕 옥상에는 건초들이 쌓여가고, 완두콩 넝쿨들은 말려서 모두 건물 옥상으로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추운 겨울을 동물들과 나기 위해서는 많은 건초들이 필요합니다. 추수가 끝난 밭은 소와 염소들, 그리고 아이들 차지입니다. 아이들은 빈 들판에서 크리켓 경기를 즐기고, 염소와 소들은 그동안 들어 갈 수 없었던 울타리를 넘어 마음대로 밭을 돌아다닐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름 내내 신선한 풀을 먹은 염소와 소들은 토실토실 살이 올랐습니다. 이 정도면 추운 겨울을 나기에 문제가 없을 것 같습니다. 키곰파의 많은 라마승들도 각 마을을 돌며 ‘부자’라는 기도회를 엽니다. 겨울이 오기 전, 이들은 기도회를 열어주고 받아 오는 약간의 돈으로 겨울 준비를 합니다.
곰파로 올라가는 버스를 기다려도 오지 않고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추적추적 내렸습니다. 마을 처마 밑에 쭈그리고 앉아 있자니 온몸이 떨려왔습니다. 한 꼽추 여자가 내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보온 주전자를 들고 와 차를 따라 주었습니다. 따끈한 차 한 잔을 마시자 그녀의 따스한 마음이 전해져 왔습니다. 어제는 버스 안에서 나와 얼굴이 닮았다는 이유로 이곳 여자가 살구를 듬뿍 집어 주었습니다. 이들로부터 받은 사랑 크게 키워서 남들에게 베풀 수 있다면 여행의 절반은 성공한 것일 겁니다.
버스 불빛이 산굽이를 돌아 비추이자 꼽추 여자가 더 좋아하였습니다. 키곰파 버스 정류장에서는 밤늦게 돌아오지 않는 나를 위해 두 라마승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주방에 불이 지펴지고 우리는 늦은 저녁을 함께 먹었습니다.


키곰파의 법당문은 잘 열어두지 않았습니다.
부처는 법당에만 있지 않다던 어느 조사의 말처럼 나는 법당 대신 뒷산에 올랐습니다. 스피티 강이 만들어 낸 강변 단애에는 수많은 보살상들이 입시해 있었습니다. 앞산은 구름을 기도수건인 카타처럼 목에 두르고 부처가 되어 앉아 있었습니다. 추수가 끝나가는 마을 들판은 아름다운 만다라가 되어 펼쳐져 있었습니다. 키곰파 부처들이 모두 밖에 나와 있었습니다.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천혜의 성소입니다. 산마루에 걸려있는 기도 깃발인 타루초가 바람에게 기도의 말을 전하고 있었습니다. 나도 그 바람에 기원을 실어 보냅니다. ‘옴 마니 팟메훔, 옴 마니 파드메 훔’
스피티의 중심 도시인 카자에서 축제가 열린다고 하였습니다. 하루 종일 새 불상 속에 들어 갈 만트라를 만드느랴 바빴던 라마승들이 저녁을 먹고 축제장으로 가겠다며 술렁거렸습니다.
젊은 라마승들이 곰파의 트랙터를 몰고 축제장으로 떠났습니다. 그 중 몇 명은 승복을 벗고 청바지 차림으로 합세했습니다. 옐레나의 아들도 호기심 천국인 이스라엘 아가씨도, 함께 축제장으로 떠났습니다. 옐레나와 나는 곰파 옥상에서 털털거리며 어두운 산길을 돌아가는 트랙터의 불빛을 지켜보았습니다.


라마승과 축제, 나는 얼마 전 보았던 영화 ‘삼사라’를 떠올렸습니다.
동굴 속에서 오랫동안 수행한 끝에 구루가 되어 돌아 온 주인공은 많은 사람들의 추앙을 받으며 사원에서 수행하며 지냅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을에서 축제가 열리고 축제장에서 한 아가씨와 사랑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몇 년 동안의 동굴 수행은 허사가 되었고, 주인공은 사원을 나와 여자와 가정을 이루고 살게 됩니다. 그러나 그는 끝내 가정에 안주하지 못하고 다시 수행자의 길로 돌아간다는 줄거리입니다.
오늘밤 트랙터를 타고 축제장으로 떠난 라마승들 중 돌아오지 않을 라마승은 몇이나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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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의 아잔타라 불리는 타보곰파에 왔습니다.
이곳에는 천년이 넘는 아름다운 벽화들과 불상들이 있습니다. 타보곰파 메인 홀 서쪽 벽은 순례자들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저 벽화들은 1046년에 그려진 것이라고 합니다. 천년 가까이 된 순례자들 틈에 나도 끼어 앉아 순례자가 되어 보았습니다. 이곳에서는 천년 전의 시간들이 고스란히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타보곰파에서 축제가 열렸습니다. 라마승들의 춤 사이사이 민속 무용이 펼쳐졌습니다. 스피티 농요에 따라 아낙들의 춤이 시작되었습니다. 농삿일하던 투박한 손으로 춤사위를 만들어가려 하니 거칠고 단조롭기 그지없습니다. 그러나 수줍어하며 춤추는 그 순박한 모습이 어떤 세련된 공연보다도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목에 주렁주렁 매단 목걸이는 라다크와 티베트와 같았지만 주름치마와 어깨에 두른 망토는 달랐습니다. 아낙들의 춤이 끝나자 소녀들의 춤이 시작되었습니다. 나는 그들의 춤동작하나하나가 마치 내 유전자처럼 익숙하게 다가왔습니다.
나도 춤추는 저 소녀처럼 한 때 이곳 소녀였던 적이 있었을까?
나도 춤추는 저 아낙처럼 한 때 이곳 아낙이었던 적이 있었을까?
여자들의 춤이 끝나자 이번에는 스피티 남자들의 춤이 시작되었습니다. 여덟 명의 남자들이 진양조 가락으로 한없이 느리게 춤을 추었습니다. 우리의 학춤을 연상시켰습니다. 엇박자의 북소리까지 우리네와 닮아 있었습니다. 이곳에서는 시간이 천천히 흘러갔습니다.

타보곰파에 린포체가 온다고 주변 마을 사람들이 성장을 하고
손에는 주전자와 꽃을 들고 곰파로 몰려왔습니다. 카자에서 노점상을 하던 카르마도 어머니와 함께 좌판을 이곳으로 옮겼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어릴 적 티베트 시가체에서 망명길에 올랐다고 합니다. 카자 버스 정류장 입구에서 완구 몇 가지를 벌여놓고 팔던 툽텐도 보따리를 싸 들고 왔습니다. 그도 티베트에서 망명해 온 사람입니다. 기후와 풍습이 고향 티베트와 비슷해 많은 티베트 망명자들이 이곳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이곳에서 수틀레지 강을 따라 조금만 거슬러 올라가면 티베트 서쪽 땅입니다.
린포체가 도착하고 마을 사람들은 린포체에게 축복을 받기 위해 마을 끝까지 줄을 섰습니다. 수많은 동네 개들도 축복의 대열에 끼어들었습니다. 린포체란 환생한 부처로 티베트 불교에서 그들의 지위는 곧 생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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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보곰파 라마승이 써 준 편지 한 통을 들고 단카르곰파로 향했습니다
스피티 강변 길 위에서 바라 본 곰파는 까마득한 절벽에 세워져 있었습니다. 단카르 마을 계단식 밭에는 보리가 누렇게 익어 있었고 군데군데 밭에서는 소와 말들이 빙빙 돌면서 보리타작을 하고 있었습니다. 내가 들고 간 편지의 주인공 ‘페마’ 라마승은 출타 중이었고 대신 다른 라마승이 티베트어로 쓰여진 편지를 읽었습니다. 나는 얼굴도 모르는 페마를 꼭 만나야 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다만 그 편지를 써 준 타보의 라마승 정성 하나면 충분했습니다.
천 년 전에 세워졌다는 곰파는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 같은 벼랑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었습니다. 건너편에 새 곰파가 지어져 대부분의 라마승들이 옮겨가 있었고 ‘곰보’ 라는 라마승 혼자서 그 오래된 곰파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계단을 통해 올라 간 곰파 마당에는 강아지 한 마리 묶여 있었고 구멍 난 냄비에 심어진 코스모스가 몇 송이 꽃을 피웠습니다.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는 곰파이지만 사방이 막혀서인지 막상 안에 들어 가보니 아늑하기까지 하였습니다. 여자의 출입을 금한다는 글씨가 기도실 앞에 쓰여 있었습니다. 곰파 법당에는 오래된 벽화가 창문으로 들어온 빛을 받아 되살아나고 있었습니다. 천년 넘게 어떻게 이 벼랑에서 버틸 수 있었는지 참 불가사의한 일입니다.

악단을 대동한 공연단이 단카르곰파를 찾았습니다.
엄숙한 곰파 마당에서 네 명의 남녀들이 춤을 추고 노래를 하였습니다. 내가 보기에는 단조롭기 그지없는 공연에 온 라마승들이 열광하였습니다. 오전 내내 엄숙하게 기도하던 라마승들이 마치 학예회장에 온 소년들처럼 좋아하였습니다. 며칠 전에는 키곰파에도 라다크 공연단이 찾아왔습니다. 북 대신 석유통을 두드리며 하는 공연이었는데도 라마승들은 앙코르를 부르짖으며 열광했었습니다.
이런 공연들은 열심히 기도하며 생활하는 라마승들에 대한 이곳 사람들의 선물인 것 같았습니다.
오후가 되자 산마루에서 수백 마리의 염소와 양떼들이 마을로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산에서 내려온 양떼들은 몰고 가는 사람 없는데도, 하나 둘 각자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돌아 갈 곳 없는 여행자만이 우두커니 서서 단카르곰파 석양을 바라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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