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사상 최초의 극장 형식의 완성 그리스 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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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진저 댓글 0건 조회 2,286회 작성일 12-02-22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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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사상 최초의 극장 형식의 완성 그리스 극장
![]() ![]() 다른 한편, 희극 역시 디오니소스 신에게 존경을 표시하기 위해 시민들이 조직한 자발적인 행렬로부터
시작되어 남근숭배의 노래로 끝나는 형식으로부터 발원했다고 전해지고 있는데, 이는 코무스라고
불리었다. 이와 같이 그리스 비극과 희극은 디오니소스 신에게 복종을 맹세하는 주술적 색채를 강하게
지니고 있으면서, 신을 모시는 코러스의 형식으로 일찍부터 예능화되어 왔다.
그리스 비극의 초기 단계에 관해서는 자료가 거의 남아있지 않아 오늘날 이를 추측하는 것은 아주
곤란한 일이지만, 당초에는 배우라는 기능은 분리되지 않은 채 코러스가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했다고
생각된다.
그러다가 기원전 6세기, 테스피스라는 인물이 등장하여 처음으로 코러스에 더해 한 명의 배우를 쓰게
된다. 이후 1세기가 지나 아이스킬로스(B.C. 448~406년), 소포클레스(B.C. 495~406년), 유리피데스
B.C. 480~406년)라는 3대 비극시인이 등장하여 비극을 완성시킨다. 다른 한편, 희극은 아리스토파네스
(B.C. 448~388년)에 의한 초기 희극과 기원전 4세기 중반의 중기 희극, 그리고 메탄드로스(B.C. 342
~291년)에 의한 후기 희극이라는 시대 구분이 가능해질 정도로 다양한 창조활동이 성행했다.
이와 같은 양상은 건축양식으로서의 그리스 극장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3대 비극시인이 활동하던 대의 극장 양식은 고전 아테네 형식이라고 불리는데, 불행히도 이 시대의 극장은 주춧돌만 남아있을
뿐이다. 그 다음 시대의 형식은 헬레니즘 형식이라고 불리는데, 기원전 4세기부터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대표하는 그리스 문화의 주변 전파시대의 형식이다. 따라서 이 시대의 극장은 대체로 그리스
본토 밖의 토지에 건축되었던바, 그 최후의 것은 로마와의 교류가 성행하게 됨에 따라 형성된 것으로서,
그레코 로마 형식이라고 불린다.
이 세 가지 형식 중에 후세에 가장 아름답다고 이름을 남긴 에피다우루스 극장을 비롯하여 현재 남아있는 극장들은 모두 앞에서 말한 고전 아테네 형식 이후의 시대에 속하면서 비극과 희극의
전성시대와는 다소간 시대를 달리한다는 것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이처럼 고전 아테네 형식은 확인이 불가능하지만 후대의 건축을 참조하는 동시에 그것이 종교 및 대중과 밀접한 연관 속에 탄생되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제사의 중심적 존재였던 코러스의 연기가
펼쳐지는 오케스트라를 많은 관객들이 쉽게 볼 수 있도록 자연적인 언덕 경사를 이용하여 객석이
만들어졌으리라는 것은 넉넉히 짐작할 수 있다.
오케스트라의 한가운데에는 신께 제사 드리는 제단이 설치되었음직하다. 객석은 처음에는 언덕의
경사를 그대로 이용했다가 후에 나무로 만든 의자가 등장하지만, 그것이 너무나 많은 관객의 무게를
지탱하지 못해 무너졌다는 기록이 남아있다(B.C. 449년, 아테네). 그 후 이와 같은 참사를 피하기
위해 돌로 만든 장의자가 설치됨으로써 오늘날 남아있는 그리스 극장, 예컨대 아테네의 리카르고스
극장의 원형이 완성된다.
이 극장의 조금 남쪽 지하에 고전형식의 오케스트라로 추정되는 유적이 있는데, 그 직경이 약 78피트에
달한다. 이로써 아크로폴리스 언덕의 자연스러운 경사를 이용하여 객석이 만들어졌으리라는 것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오늘날 남아있는 그리스 극장의 뒷면에는 ‘스케네’라고 불리는 축조물이 있는데,
3대 비극시인 중 가장 먼저 태어난 아이스퀼로스의 「페르시아사람들」, 「묶여진 프로메테우스」
등의 희곡에 사원과 궁전 등의 큰 축조물을 배경으로 필요로 하는 장면묘사가 있는 것으로 보아,
고전형식 극장에도 이 ‘스케네’가 존재했으리라고 짐작하는 사람들이 없지 않다. 그러나 그와 같은 배경이 실제로 존재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상상작용을 자극하기 위한 기술일 뿐이라는 반론도 녹록하지 않다.
![]() 시간의 경과와 함께, 특히 배우의 등장과 함께, 이 ‘스케네’와 오케스트라 중간에 오케스트라와는 분리된 또 하나의 무대, 즉 ‘로케이온’이 설치된다. 헬레니즘시대의 극장, 예컨대 에피다우루스 극장을
참고로 한다면, ‘스케네’ 앞 공간에 기둥들이 세워지고 그 위에 배우들의 연기공간이 설치되는
방식이다. 그 좌우로 출입구 ‘파론도스’가 만들어짐에 따라 오늘날 우리가 극장이라고 하면 떠올리는
무대와 거의 비슷한 구조가 확립된다. ‘스케네’ 전면에 위치한다 하여 이것을 ‘프로스케니온’이라고도
했는데, 이것이 로마시대에는 라틴어로 ‘프로스카이니움(proscaenium)’이라고 명명되면서, 오늘날
까지 이어지게 된다.
이러한 극장 구조의 변화는 극 자체의 변화와 밀접하게 연관된다. 앞에서 기원전 6세기에 한 명의 배우가 등장했다고 썼는데, 이때만 해도 극은 코러스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즉, 전체가 그리스의
서사시적 소재를 이야기하는 식의 가창에 의해 진행되다가 아이스퀼로스 시대에 배우가 두 사람으로
늘면서 오늘날과 같은 대화구조의 극형식이 발전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아이스퀼로스의
작품에서는 아직 코러스의 역할이 차지하는 비중이 대단했다. 그러나 이미 잘 알려진 채 정해진
결말을 향해 나아가는 극 형식은 소포클레스에 의해 제3의 배우가 첨가되면서 코러스보다는 배우를
중심축으로 삼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이처럼 이야기의 낭송에서부터 대화 중심으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코러스의 역할은 차츰 왜소화될
수밖에 없었고, 자연히 주역에서 조역으로 물러서게 된다. 대화를 중심으로 극의 복잡한 진행이
가능해지면서 코러스의 존재는 기원전 3세기에서 2세기에 이르러 사실상 소멸되고 만다.
그리스 건축의 걸작품, 에피다우루스 극장
수년전에 나는 아테네에서 개최된 세계미학회집행위원회에 참석하기 위해 그리스로 가서 일행들과
함께 아테네와 코린트에 있는 고대 극장들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 언덕에 있는 극장도 그랬지만, 코린트의 에피다우루스 극장이 더욱 인상적이었다.
오케스트라는 완전 원형으로서 지름이 20m에 달하고, 객석은 원래 6,700명이 앉을 수 있게 설계되었다가 B.C. 2세기에 윗부분이 추가되어 12,300석이 되었다.
객석 반대편 오케스트라 뒤쪽에 ‘스케네’가 조금 낮은 ‘프로스케니온’과 그 뒤로 조금 높은 주 무대로 꾸며져 있다. 오케스트라 중앙에서 동전 하나를 떨어뜨려 보았는데, 그 울림이 너무도 커서 말로만
듣던 음향에 크게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객석 밑에 빈 진흙 항아리들을 묻어 그와 같은 효과가 난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이 극장 역시 제사와 깊은 연관이 있었던바, 기원전 6세기에 시작된 아스클레피우스 제전이 곧 그것이다. 아폴로의 아들 아스클레피우스는 반신반인이자 영웅으로서, 지하세력들에 의해 사로잡혀
치료기술을 익혔다고 한다. 그가 죽은 히폴리투스 등을 죽음에서 되살려 내려 하자, 제우스가
번갯불로 그를 쳐 죽인다. 그러나 그는 지하에서 계속해서 사람들을 치유했다. 시간이 지나 그는
신이 되었지만, 그의 지하적 성격은 잃지 않았다. 극장으로부터 남쪽에 옛날 유적들과 박물관이
있는데, 그 유적 지하에 정신이상이 있는 환자를 치료하는 시설이 있었다고 한다. 그 속에는 수없이
많은 뱀들이 우글대고 있어 환자들이 물리지 않으려고 조심하는 중에 정신병이 치유되었다는 것이다. 극장과 지하병동이 다 함께 건전한 인간정신의 유지를 위해 협업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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