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최고 리조트 뉴포트에서 느끼는 부러움과 아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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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harvard 댓글 0건 조회 1,678회 작성일 10-10-09 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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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지만 큰 요트의 도시
바다는 인간에게 도전이자 휴식이다. 미국 동부 로드아일랜드 주에 있는 해양도시 뉴포트에 들어서면 바다에 대한 인간의 경외심에 저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이곳에 서면 바다에 대한 인간의 도전과 함께 안락한 휴식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미국 최초의 리조트인 뉴포트 시를 찾아가는 길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연방고속도로 95번을 타고 뉴욕에서 2시간 30분, 교육의 도시 보스턴에서는 1시간 30분 거리에 있다. 육지와 연결된 제임스타운 섬을 지나 마주치는 곳이 거대한 뉴포트 다리. 미국의 여느 연륙교와 같이 뉴포트 다리도 반타원형을 이루고 있다. 운전자나 탑승자가 차 안에서 푸른 바다를 보면서 지나갈 수 있도록 한 배려라고 한다.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긴 연륙교를 지나 시내로 들어가는 우측 편에는 짙푸른 바다가 펼쳐지고, 흰색 돛을 단 요트가 무리지어 떠다닌다. 매년 국제 요트대회가 열리고 ‘국제요트복원학교’가 있는 이곳을 미국인들은 흔히 ‘요트의 도시’라 부른다.
뉴포트가 속한 로드아일랜드는 미국 51개 주 가운데 면적이 가장 작지만, 초기 이민이나 건국과 역사를 같이한, 깊은 유서를 지닌 곳이다. 1620년 영국 청교도들이 종교적 박해를 피해 매사추세츠 주 플리머스로 이주해오고, 10여 년 만에 이 가운데 일부 신도들이 이 지역으로 건너왔다. 그리고 1671년 12월에는 제칠일침례교가 미국에서는 처음으로 뉴포트에 세워졌다.
독립심이 강한 종교인들이 주축이 되어 도시를 설립한 탓에 로드아일랜드는 당시 미국 13개 주 가운데 가장 먼저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한다.
결코 길지 않은 미국의 역사를 이처럼 장황하게 설명하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로드아일랜드 뉴포트의 탄생이 바로 미국 역사의 축소판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미국 ‘해군전쟁대학’이 뉴포트에 자리 잡고 있는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닌 듯싶다.
뉴포트는 104만 8,000명의 로드아일랜드 인구 가운데 8만 5,000명이 거주하는 면적 317㎢의 섬으로, 우리나라 창원보다 조금 작다. 그러나 여름철 두세 달 동안 아예 이곳으로 주소를 옮겨 거주하는 시민만도 5,000명이 넘는다.
뉴포트를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시내에 있는 버스터미널 1층 관광안내소를 찾아가야 한다. 안내소에서는 여행에 대한 각종 정보는 물론 숙박, 유람선 할인권을 구할 수 있다. 친절한 안내원이 방문객의 질문을 귀 기울여 들어주고, 지도에 연필로 방문 포인트를 그려준다. 영어 소통에 능숙하지 않다 해도 크게 문제될 게 없다.
안내센터를 나서면 힐튼, 라마다, 쉐라톤, 매리어트 등 눈에 익은 호텔들이 해안길을 따라 길게 자리 잡고 있다. 이것만 봐도 뉴포트가 얼마나 큰 휴양도시인지를 한눈에 알 수 있다.

다른 물건, 특색 있는 물건을 판다
뉴포트에서는 두 가지를 타봐야 한다. 녹색 지붕에 원목으로 장식한 순환 버스와 인근 고스트 섬을 돌아오는 유람선이 그것이다.
인근에 있는 요트장과 선착장을 따라 걷노라면 크고 작은 예쁜 상가들이 줄지어 서 있다. 이곳을 대표하는 특산품인 에메랄드빛 문양을 담은 도자기나, 유명 브랜드 의류와 샌들을 진열해놓고 있다. 가게에 진열된 물건들을 유심히 보면 하나같이 특색이 있는 제품들이다. ‘다른 곳과 다른 물건, 특색 있는 물건을 판다’는 것이 이곳 상인들의 보이지 않는 약속이다. 이것이 뉴포트에 있는 가게들이 오랫동안 관광객들에게 사랑을 받아온 이유이기도 하다.
부두에 다다르면 어김없이 ‘클램 차우더’의 고소한 냄새가 허기진 관광객을 유혹한다. 가재를 쪄내거나 감자를 튀겨, 고기 위에 얹어주는 요리는 저렴하고 맛이 있다. 길거리를 활보하면서 수프를 먹는 모습은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광경이다. 테이크아웃 클램차우더가 이곳에선 인기 있는 점심메뉴로 자리 잡았다.
‘더포인트’로 불리는 구시가지에 이르면 식민지시대 상인들의 집과 좁은 도로를 만나게 되는데, 마치 유럽의 중세 도시를 보는 것만 같다.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있는 투로 공원에는 고대 스칸디나비아 사람이 설립한 것으로 알려진 ‘올드 스톤 밀’ 유적이 남아 있다. 이 불가사의한 석재 구조물은 미국에서 가장 오랫동안 밝혀지지 않은 ‘건축적 퍼즐’이다. 흔히 ‘바이킹 타워’, ‘미스터리 타워’로 불린다. 이 구조물을 누가, 언제, 왜 만들어졌는지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채 논란거리로 남아 있다.
시멘 교회 안에 있는 ‘로드아일랜드 피셔맨과 웨일박물관’은 개인적으로 꼭 권하고 싶은 곳이다. 로드아일랜드인들이 바다를 개척했던 기록과 대서양 해안에 서식하는 생물체를 관람할 수 있다.
스포츠·축제를 즐긴다, 재즈가 흐른다
뉴포트가 이처럼 명성을 더해가는 것은 청명한 하늘과 대서양의 푸른 바다, 그리고 풍부한 해산물 등 천혜의 자연조건뿐만 아니라 다양한 스포츠 경기와 축제 덕분이기도 하다.
매년 4월 초 보스턴에 본거지를 둔 아메리칸리그 레드삭스 야구팀의 시즌 개막식이 뉴포트에서 열린다. 그리고 도심 한가운데 있는 테니스코트에서는 미국을 대표하는 각종 테니스 대회가 개최된다. 세계 4대 그랜드슬램 대회에 속하는 US오픈이 1881년 이곳에서 시작돼 34년간 계속됐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이를 기념해 뉴포트에는 1955년 ‘테니스 명예의 전당’이 문을 열었다. 역대 테니스 스타 등 186명이 헌액된 명예의 전당은 기념관이자 박물관의 역할을 하고 있다. 명예의 전당은 15개 관으로 구성돼 있고, 그 옆에 13개의 테니스 코트를 갖춘 경기장이 있다. 우리나라 여자선수들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US오픈 골프대회도 1895년 뉴포트 컨트리클럽에서 출발했다.
뉴포트는 축제의 도시이기도 하다. 가장 대표적인 축제인 ‘뉴포트 재즈페스티벌’은 지난 1954년부터 매년 여름에 뉴포트에서 개최되던 대규모의 세계적 재즈 행사로 알려져 있다. 1972년부터 뉴욕으로 옮겨갔으나 명칭은 지금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매년 6월부터 10월까지 ‘뉴포트 워터 프런트 축제’가 이어진다. 6월 초에 열리는 요리축제를 시작으로 6월 말과 7월 초 10일간 선셋뮤직페스티벌이 개최된다. 8월 두 번째 주에 열리는 ‘섬머페스트 프로비던스’에는 로드아일랜드 인근에서 활동하는 음악인, 예술인들이 대거 참가한다. 특히 음식축제도 곁들여져 축제의 분위기를 돋운다. 9월 뉴포트 부두에서 열리는 ‘아일랜드 축제’는 이민 조상을 기리기 위한 것이다. 9월 말에서 10월 사이에는 옥토버페스트가 열려 거대한 맥주 파티가 계속된다. 이 밖에도 생선요리, 노예선, 추수감사, 겨울축제 등이 관광객을 기다리고 있다.
개인 별장도 관광상품으로 지켜내
뉴포트에 있는 대부호들의 별장 투어는 많은 관광객들의 여행 목적으로 자리 잡았다. 250여 년 전에 지어진 이들 별장 가운데 10개가 일반에게 공개되고 있어 ‘백만장자 안방 엿보기’가 가능하다(16달러 가량의 입장료를 내야 한다).
유럽 궁전을 미국에 옮겨온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하는 이들 개인 별장을 둘러보기 위해서는 많은 인내가 필요하다. 내부를 보려면 긴 줄을 서야 하고, 별장 주변을 구경하는 데도 적잖게 힘이 들게 마련이다. 축구장 서너 개는 족히 됨직한 앞마당 잔디밭과 바다로 향해 나 있는 ‘절벽 산책로’를 걸을 수 있다. 산책로 입구에는 “이 길은 개인재산이니 조용하게 걸어다니라”는 명령조의 문구가 쓰여 있다.
이곳에서 가장 큰 여름별장인 브레이커즈는 ‘코넬리어스 밴더빌트’가 지은 것이다. 그가 83세를 일기로 1877년에 사망했을 때 남긴 유산은 1억 달러. 1880년 통계에서 미국 전체 국립은행의 총 예금액이 8억 3,400만 달러였음을 감안하면 그는 그 중 10% 이상을 보유한 거부였던 셈이다. 밴더빌트는 이탈리아 제노바와 토리노의 16세기 궁전을 참고해 이 별장을 지었는데, 이 별장은 7명의 자녀 가운데 막내딸에게 주어졌다가 국가에 헌납됐다. 방이 무려 70개나 된다.
우아한 대리석과 청동 조각품, 잘 가꾸어진 정원 덕에 가장 아름다운 별장으로 꼽히는 엘름스는 펜실베이니아 석탄 산업가인 에드워드 J. 버윈드가 여름별장으로 사용하기 위해 1898년에 짓기 시작, 3년 만에 완공했다. 프랑스 귀족의 대저택을 벤치마킹한 이 별장을 짓는 데 당시 돈으로 1,400만 달러를 투자했다. 실내에 있는 가구와 장식물들도 모두 프랑스에서 가져왔다고 한다.
이처럼 뉴포트가 오랫동안 가장 가고 싶은 리조트로 남아 있을 수 있는 것은, 이를 지키고 가꾸려는 주민들의 노력과 정부의 안목 있는 투자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곳을 방문한 관광객들은 이 날도 “이 큰 집을 누가 청소할까?”라거나 “난방비가 많이 나오겠다”는 등의 현실성 없는 대화를 나누며 소박한 마음으로 귀갓길을 서두른다. 주말에 가족과 함께 가벼운 마음으로 방문할 만한 해양 리조트가 우리 주변에 없다는 사실만으로도 뉴포트에 대한 부러움과 함께 아쉬움은 더욱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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