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수감사절 시작된 미국인의 영원한 고향 플리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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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harvard 댓글 0건 조회 1,776회 작성일 10-10-09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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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동부지역을 방문하면 이 지역 역사와 도시들에 대한 설명을 귀가 따가울 정도로 듣게 된다. ‘보스턴 차 사건’(Boston Tea Party)에서 시작해 미국의 독립전쟁 그리고 집회와 연설의 장이 된 코먼(Common) 등에 대한 이야기까지…. 매력적인 도시 보스턴 관광이 끝날 때 즈음 안내원들은 이구동성으로 미국 역사를 더 알고 싶거든 플리머스(Plymouth)에 가보라고 권한다. 그래서 관광객 대부분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플리머스를 찾는 기회를 갖게 된다.
고향 그리는 마음 안은 ‘뉴잉글랜드’
보스턴에서 40마일, 자동차로 50분 거리 바닷가에 있는 인구 4만5천 명의 작은 도시 플리머스에는 미국 근대사의 자취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곳은 자랑스러운 미국 역사의 시작이자 부끄러운 인디언 수난사의 시발점이라 할 수 있다. 현지인들은 살아 있는 역사의 현장이라 누누이 강조하지만, 유구한 역사를 간직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그저 소소한 기록에 불과한 것들이 여기저기에 널려 있을 뿐이다. 그래도 플리머스는 미국에 정착한 기독교를 이해하고 이민 초기 생활을 엿보는 데는 아주 유용한 살아 있는 박물관 구실을 하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이곳 역사는 1620년 9월 영국 잉글랜드 남서쪽에 있는 항구도시에서 102명의 청교도가 종교적 박해를 피해 신대륙을 찾아 나서면서 시작됐다. 무게 180톤, 길이 27.5m에 돛 3개를 가진 작은 상선 메이플라워호는 폭풍우를 이겨내고 그해 11월 미국 프로빈스타운(Provincetown)에 상륙한다. 여기서 선박 수리와 식량 보급을 마치고 또다시 한 달간의 긴 항해 끝에 매사추세츠 연안 바닷가에 정박했다. 그해 12월 21일 드디어 청교도들은 신대륙에 첫발을 내딛게 된다.
이들이 도착한 곳은 애초 영국에서 출발하면서 생각했던 따뜻한 ‘남쪽 나라’ 버지니아가 아닌 겨울이 몹시도 길고 추운 매사추세츠, 이름 없는 항구였다. 그들은 고향을 그리며 출발지와 똑같이 이곳을 플리머스라고 명명했다. 그리고 이 일대를 새로운 조국 ‘뉴잉글랜드’라 지칭했다.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신대륙에 도착한 이들은 필그림파더스(Pilgrim Fathers, 巡禮始祖)로 불리며 오늘날까지 존경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미국의 근대사는 최근에 와서 수정해야만 했다. ‘최초의 영국 식민지’가 미국에 건설된 것은 메이플라워호가 도착하기 13년이나 전인 1607년이라는 사실이 새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최초의 영국 식민지는 버지니아 주에 있는 제임스타운이고, 인디언 처녀 포카혼타스가 영국인 존 롤프(John Rolfe)를 만나 결혼한 곳도 바로 그곳이다. 그래도 많은 미국인들은 아직도 이 같은 새로운 사실보다는 플리머스를 최초 정착지로 기억하고 싶어 한다. 미국 동부 여러 도시와 플리머스 사람들은 더욱더 그런 생각이 강하다.

소박한 전시장이지만 당시 생활상 엿볼 수 있어
방문객이 플리머스에 도착하면 바닷가에서 초라하기 그지없는 범선을 발견하게 된다. 이곳에 전시된 범선은 사실 필그림파더스가 타고 온 당시의 메이플라워호가 아니다. 1957년 엄격한 고증을 거쳐 영국산 목재로 원형을 복원한 것이다. 이렇게 만든 범선은 시험항해를 마친 뒤 이곳에 영구 전시하게 됐다. 그래서 ‘메이플라워호 Ⅱ’라고 부르는데 배 안에는 밀랍인형으로 당시의 상황을 재현해놨다. 어떻게 이처럼 좁은 배 안에서 100명이 넘는 사람들이 그토록 긴 항해를 할 수 있었을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볼품없고 초라한 모습에 당시의 어려웠던 상황이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그곳에서 200m쯤 떨어진 바닷가에는 열여섯 개의 대리석 기둥이 하늘을 떠받치고 서 있는 그리스 신전 같은 건축물이 있다. 그 아래 바다와 만나는 지점에는 ‘1620’이라고 쓰인 큼직한 바위가 놓여 있다. 플리머스 록(Plymouth Rock)이라 불리는 이 바위는 영국인들이 신대륙에 첫발을 내디뎠던 상륙 지점을 의미한다. 바위 주변에는 오늘도 행운을 비는 방문객들이 던져놓은 은색 동전이 수북이 쌓여 있다.
바다를 등지고 언덕 위로 조금만 올라가면 플리머스 플랜테이션(Plymouth Plantation)이 있다. 과거 농원이었던 이곳은 플리머스 식민지 시절의 생활을 재현한 미국식 민속촌으로 운영되고 있다. 플랜테이션 안에 있는 필그림 빌리지(Pilgrim Village)에 들어서면 식민지 주민으로 분장한 사람들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가죽치마를 두르고 어깨에 문신을 한 그들은 손바느질로 가죽가방을 손수 만들어 방문객에게 판다. 황토를 물에 풀고 나뭇잎을 돌 위에 으깨서 만든 천연물감으로 그림을 그리고, 손도끼를 들고 같이 사진을 찍어주기도 한다. 방문객을 과거로 안내하는 그들은 왐파노아그(Wampanoag) 족의 후예로 17세기 영국인이 오기 전 이곳에 살았던 아메리칸인디언의 후손이다.
그리고 인근에는 1824년에 세워진 필그림 홀 박물관과 백인 선조가 안장되어 있는 베리얼 힐(Burial Hill) 묘지가 있다. 17세기 여성들의 가사활동을 묘사한 할로올드 포트 하우스와 초기 식민지시대의 모습을 복원한 에드워드 윈즐로 저택 등도 볼거리다. 플리머스 국립밀랍박물관(Plymouth National Wax Museum)은 실물 크기로 만든 밀랍인형을 통해 당시 생활상을 재현했다. 그 시절 복식과 농기구 등이 눈길을 끈다.

역사 속 진실까지 보라
특히 플리머스 록 바로 위 언덕에는 마사소이트(Massasoit) 동상이 바다를 바라보며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아래 세워진 기념판은 의식 있는 여행객이라면 놓치지 말고 꼭 봐야 할 것 가운데 하나다. 역사 속에 감춰진 진실을 보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더욱더 그렇다. 마사소이트는 원주민 왐파노아그 족 추장으로 이곳에 온 백인에게 옥수수 농사를 짓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정착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서 백인은 이곳의 주인인 인디언에게서 토지를 빼앗고 수많은 사람을 학살했다. 네이티브아메리칸(인디언)협회는 이런 내용을 마사소이트 동상 아래에 새겨놓았다. 또 미국인이 최대 명절로 삼는 추수감사절(Thanksgiving Day)을 비판하는 문구도 찾아볼 수 있다. ‘백인들이 추수감사절로 삼아 기념하는 날이지만 인디언 편에 서서 보면 비탄의 날(National Day of Mourning)이다’라고 적어놓았다. 정복자가 축제를 벌이고 감사하는 마음을 얘기할 때 원주민들은 애통하고 비통한 날을 맞이하고 있다는 뜻이다. 플리머스를 방문한 사람들이라면 추수감사절에 대해서도 자주 듣게 된다. 추수감사절은 영국을 떠나 이곳에 도착해 원주민의 도움으로 겨우겨우 살아남은 백인들이 이듬해 열었다는 조촐한 축제에서부터 시작된다. 애초에는 백인 이주민들이 원주민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날 축제에는 어렵게 살아남은 청교도 50명이 옥수수와 대구, 거위 고기를 준비했고, 마사소이트 추장과 원주민 90명이 사슴 다섯 마리를 가지고 와 서로 나누어 먹었다고 미국 역사는 기록한다. 추수감사절은 지역에 따라 간헐적으로 기념되다가 1863년 링컨 대통령 재임 때 국경일로 정해졌다. 그리고 제32대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크리스마스 쇼핑 기간을 늘리기 위해 11월 셋째 목요일로 날짜를 옮겼다. 그 뒤 1941년에는 연방의회 의결을 통해 최종적으로 11월 넷째 목요일을 추수감사절로 하기로 법률로 정했다. 비로소 오늘날의 추수감사절 날짜가 확정된 것이다. 추수감사절은 거창하고 거룩한 날이 아니라 이처럼 아주 작은 동기에서 시작된 소박한 기념일이었다. 추수감사절이 다가오면 플리머스에서는 멀리 떠나 있는 가족들이 모두 모여 즐거운 휴가를 보낸다. 또 온 가족이 칠면조 고기를 굽고 호박파이를 만들어 푸짐한 저녁을 즐기는 것이 미국의 전통이 되었다. 이때에 맞춰 대형 백화점과 마트에서는 일제히 세일에 들어간다. 추수감사절부터 크리스마스까지 대목 시장이 열리는 것이다. 심지어 메이시, JC페니, 로드&테일러 등 대형 백화점들은 오전 6시부터 밤 11시까지 영업을 하기도 하고, 할인에 추가 할인을 하는 빅 세일도 한 달 이상 계속된다. 이처럼 추수감사절은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나눔을 실천하는 진정한 의미는 퇴색하고 쇼핑의 즐거움을 만끽하는 날로 변질되고 있다. 다행스럽게도 추수감사절의 의미를 되새기고 가난한 이웃을 돌보자는 운동이 종교계를 중심으로 점차 확산되고 있다. 역사적인 도시 플리머스에서 이 같은 자성의 목소리가 더욱 크게 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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