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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 깃든 항구도시에서 산업도시를 꿈꾼다-미국 모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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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harvard 댓글 0건 조회 1,730회 작성일 10-10-09 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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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고 먼 앨라배마 나의 고향은 그곳
밴조를 메고 나는 너를 찾아왔노라
떠나온 고향 하늘가에 구름은 일어
비끼는 저녁 햇빛 그윽하게 비치네
오! 수재너 이 노래 부르자
멀고 먼 앨라배마 나의 고향은 그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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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앨라배마에 대해 물어보면 십중팔구는 <오! 수재너>라는 노래부터 떠올린다고 한다. 중학교 음악교과서에 나오는 이 노래 덕택에 일찌감치 미국 남부에 있는, 우리나라보다 1.4배나 큰 면적의 앨라배마 주를 알게 된 셈이다. 사실 이 노래를 작곡한 ‘미국 민요의 아버지’로 불리는 포스터는 앨라배마에서 멀리 떨어진 펜실베이니아 주 출신이다. 1848년 이 곡을 100달러에 팔면서부터 본격적인 전업 작곡가로 나서게 됐다고 하니, 포스터 입장에서는 큰 의미가 있는 작품인 셈이다.
그러나 앨라배마에 가서 밴조(Banjo)라는 현악기에 대해 묻거나, <오! 수재너>를 흥얼거려도 알아보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왜냐하면 이 노래가 이곳에서는 그다지 유명하지도, 더욱이 학교 음악시간에 배우지도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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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단지 조성, 휴양지로 각광 받으며 도시 가치 상승
뉴욕을 출발해 앨라배마 주 항구도시 모빌(Mobile)로 가는 길은 참으로 험하고 멀었다. 뉴욕을 시작으로 뉴저지, 펜실베이니아, 버지니아, 노스캐롤라이나 등 애팔래치아 산맥을 따라 무려 2,000㎞나 되는 거리를 꼬박 이틀 동안 달려야 했다. 자동차에서 선잠을 자며 15시간을 달려 도착한 곳이 앨라배마 주도(州都)인 몽고메리. 현대자동차 미국 공장이 들어서면서 우리나라 신문에도 가끔 등장하는 몽고메리에서도 280㎞를 더 가야만 모빌 시가 나온다.
인구 50만 명이 조금 넘는 모빌은 앨라배마와 조지아 주에서 생산된 목화를 나르고, 흑인 노예를 운송하기 위해 생긴 항구도시다. 미국의 10대 항구도시에 속하고 앨라배마 주의 유일한 항구도시라는 점만 빼면 특별할 것이 없는 모빌 시는 산업적인 측면에서는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멕시코 만 연안에 인접한 모빌 항의 역사는 3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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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을 가장 먼저 점령한 것은 프랑스인들이다. 모빌의 시청 건물 벽에는 1702년 프랑스인들이 최초로 이곳에 도시를 세웠고, 61년 만에 영국령이 됐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미국 독립전쟁이 일어난 지 7년이 지나 미국인들이 점령하게 됐다. 미국 독립 초기에 면화와 석탄, 시멘트 생산기지로 이름을 날렸던 이곳은 조선업과 자동차, 제지, 화학제품을 생산하고 멕시코나 남미로 운송하는 화물선의 기착지로 변모했다.
최근에 앨라배마의 가장 큰 도시 몽고메리 인근에 크고 작은 산업단지가 생기면서 모빌 시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졌다. 그리고 아름다운 항구 주변 해안가는 도시민의 휴양지로 각광을 받게 됐다. 특히 현대자동차와 벤츠 등 세계 굴지의 자동차 회사 생산시설이 인근에 들어서면서, 최근 몇 년 사이 항만 물동량이 몇 배로 늘어났다고 미국 <산업연감>은 기록하고 있다. 한편, 파나마 운하를 이용해 모빌 항으로 들어오는 선박이 빈번해, 현재 제2부두를 만드는 공사가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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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조와 2개월간 계속되는 축제는 꼭 보라
모빌 항을 찾는 사람들은 두 가지를 꼭 보고 돌아와야 한다는 말이 있다. 하나는 해변을 붉게 물들인 낙조이고, 또 하나는 지칠 줄 모르고 계속되는 이색적인 축제라고 한다. 모빌 항은 아프리카에서 미국으로 팔려온 흑인 노예들이 목화농장에서 힘든 일을 마친 뒤 시름과 설움을 달래려고 찾던 곳이다. 그들의 후세들은 인종차별이 줄어든─사실 미국 남부는 아직도 인종차별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말할 수 없지만─이곳에서 자유를 만끽하는 흑인 젊은이들이 모빌 항 인근 공원에 모여 애잔한 선율과 강한 리듬이 섞인 영가풍 랩을 흥얼거리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아름다운 일몰과 줄지어 늘어선 아름드리 소나무, 그리고 한없이 평온하게 보이는 수평선이 모빌이 자랑하는 풍경이다.
지난 3년 동안 여름 내내 관광객 없이 보내야 했던 이곳에도 올겨울 들어서부터 서서히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다. 크리스마스 축제를 보려고 멀리서는 프랑스와 영국, 이탈리아와 같은 유럽에서, 가깝게는 앨라배마 주요 도시들과 조지아 주에서 오는 사람들이다. 이곳 겨울축제는 크리스마스에 이어 ‘마르디 그라스(Mardi Gras)’페스티벌이 이어져 2개월 동안 계속된다. ‘광적인 페스티벌’이라는 말을 듣는 이곳의 크리스마스 축제는 12월 둘째 주 토요일 퍼레이드에서 시작된다. 미국 남부를 방문한 사람이라면 한번쯤 봐야 하는 종교문화 상품으로 자리 잡은 이 페스티벌은 기독교 초기와 현대의 문물이 잘 조화된 모습을 보여 준다. 이색적인 거대한 풍선으로 장식한 중세시대 마차를 타고 산타크로스가 등장하고, 참가자들이 괴성을 지르면서 오색종이 가루를 날리면 축제는 절정에 이른다. 12월 둘째 주 토요일 오후 2시에 시작된 퍼레이드는 모빌 시 시민회관을 출발해 도심을 한 바퀴 돌고, 다시 시민회관 뒤편에 도착한다. 그러기까지 꼬박 12시간이 걸린다.
모빌의 겨울축제는 크리스마스로 끝나지 않는다. 그 뒤에 더 큰 퍼레이드가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다음해 1월 6일 ‘참회의 화요일’로 불리는 마르디 그라스 페스티벌이 연이어 2주간 계속된다. 축제 기간 내내 항구는 300만 개의 갖가지 색상의 전구로 장식되어 불야성을 이룬다. 프랑스 식민지였던 탓에 지금도 곳곳에서 프랑스의 향기가 느껴지는 모빌 시는, 미국에서 처음으로 마르디 그라스 행사가 열린 곳이기도 한다. 퍼레이드 참가자들은 정의와 믿음, 권력을 상징하는 보라색과 녹색, 황금색 옷을 입고 마차를 타고 가면서 군중을 향해 가짜 진주목걸이, 옛 스페인의 금화, 사탕 등을 마구 던져준다. 도로변에 줄지어 선 관광객들은 마차를 향해 “하나만 던져주세요(Throw me something, Mister)”라고 외친다. 이런 모습이 마르디 그라스를 오랫동안 가슴속에 간직하고, 기억하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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