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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필원고 대신 작가의 취향을…칠레 파블로 네루다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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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harvard 댓글 0건 조회 1,370회 작성일 10-10-08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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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블로 네루다는 20세기 중남미를 대표하는 저항시인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특히 영화 <일 포스티노>에서 이탈리아 망명 당시의 그의 생활을 보여주고 있어 우리에게 낯설지 않다. 1904년 칠레에서 태어난 그의 본명은 ‘리카르도 엘리에세르 네프탈리 레예스 바소알토(Ricardo Eliecer Neftali Reyes Basoalto)’이고 ‘파블로 네루다(Pablo Neruda)’는 그의 필명이다. 그는 칠레 공산당 의원으로서 외교관으로 일하였으며 또 말년에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였다. 그는 인생 후반 대부분을 고국에서 지냈으며 그가 거처하던 집들은 모두 현재 박물관으로 되어 있다.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 해안의 이슬라 네그라,항구도시 발파라이소 세 곳에 그의 박물관이 있고 현재 파블로 네루다 재단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바닷속 항해하듯 박물관 관람
처음 방문한 곳은 산티아고에 있는 ‘라 차스코나(La Chascona)’. ‘차스코나’는 빗지 않은 헝클어진 머리를 의미하며 네루다가 세 번째 부인인 ‘마틸데우루티아’를 기리기 위해 이름 지었다고 한다. 시내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있었고 집 건너편 담벼락에는 그의 집에 왔음을 알리는 듯 두 부부의 초상화가 그려져 있었다. 실내는 가이드를 동반하여야만 볼 수 있었고 스페인어, 불어, 독어, 영어로 설명하는 투어가 시간별로 진행되고 있었다. 기다리는 시간 동안 카페에 들러 엽서를 쓰거나 아트 숍에서 그에 관한 책이나 기념품을 볼 수 있었다.
2204.jpg 이 집은 1953년에서 1955년 사이 건축되었고 마치 바닷속을 항해하듯 선박의 느낌이 나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곳곳에 원형의 창문이 있고 식당도 선실 내부처럼 꾸며져 있었다. 본채와 떨어진 별실에는 그가 평소에 좋아하였던 작가들의 사진이 진열되어 있었는데 ‘에드거 앨렌 포’의 초상화도 눈에 띄었다. 또 한쪽 옆에는 특이한 소품들과 함께 동화 속에서나 나올 듯한 거대한 구두도 놓여 있었다. 파블로와 마틸데의 첫 글자인 P와 M을 연결하여 문을 장식하는 등 집 곳곳에서 부인에 대한 그의 깊은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지하에서 지상으로 오르락내리락하게끔 계단으로 동선이 연결되어 있었고, 공간마다 서로 다른 느낌을 주어 이야기 속에서 나오는 집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독특한 취향의 소유자라는 것이 느껴졌고 이 집을 보니 다른 두 집도 궁금해졌다. 며칠 뒤 아침부터 서둘러서 서쪽의 항구 발파라이소를 향했다.
발파라이소에서 다시 버스를 타고 2시간 정도 남쪽으로 내려가 도착한 곳은 ‘이슬라 네그라(Isla Negra)’. 작가의 얼굴이 그려진 안내판을 보니 안심이 되었다. 스페인어로 ‘이슬라 네그라’는 ‘검은 섬’을 뜻하지만, 이곳은 섬이 아닌 해안이다. 해안 암벽의 어두운 색에서 수마트라 섬을 연계하여 네루다가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도로에서 해안쪽으로 한참을 걸어 들어가니 그의 집이 나온다. 그의 집 아래로 바다를 향해서 걸어 내려가니 그대로 태평양이 맞닿아 있었다.
한쪽에는 그의 묘도 있었다.
그가 유럽에서 돌아온 직후인 1938년에 이 해안의 땅 일부분을 구입하였고 1943년에서 1945년 사이에 이곳에 집을 지었다고 한다. 이 집 에선 더욱 그의 개성을 느낄 수 있었다.

2205.jpg 선실 같은 원형 창으로 보이는 푸른 바다
그가 디자인하였다는 바다를 상징하는 구형의 조형물이 마당에 세워져 있었고 난데없이 증기 기관차가 있었다. 기관사였던 아버지를 추억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외에도 거대한 닻을 비롯하여 곳곳에 세워진 독특한 조형물들은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물씬 풍겼다. 또 뒷마당에는 우체통이 눈에 띄었는데 한쪽에서는 이곳 방문을 기념하는 박물관 고무도장을 우편물에 찍어주고 있었다.
실내에 들어서니 공간이 선박의 통로처럼 길게 이어져 있었고 지도와 지구본, 각종 유리병들,여러 지역의 조각들, 선박 모형과 뱃머리를 장식하 는 대형 여신상 등 그의 다양한 수집품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끝에 있는 방은 파란 벽으로 바닷속처럼 꾸며놓았고 수많은 바다조개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특히 중앙에 분홍빛의 거대 조개에서 유니콘의 뿔처럼 흰색의 가는 뿔이 길게 솟아나와 있어 방 전체가 신비롭게 보였다. 이층 침실에서는 전망 자체가 그대로 시가 될 정도로 푸른 바다와 하늘이 한눈에 들어왔다. 비록 실내 촬영 금지였지만 여기서는 안내인이 사진을 찍어도 좋다고 살짝 눈짓을 한다. 작가는 이 집을 가장 좋아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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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7.jpg 시원한 경관의 박물관을 뒤로하고 다시 발파라이소로 향했다. 이 지역은 해안에서부터 급경사를 이루고 있는 지형으로 버스와 함께 상하로 움직 이는 엘리베이터 케이블카가 운행되고 있었다. 이곳 높은 지역에 네루다의 세 번째 집인 ‘라 세바스티아나(La Sebastiana)’가 있었다. 이 이름 또한 작가가 이 집을 건축한 집주인 이름을 따서 붙였다고 한다. 그는 친구 커플과 공동으로 이 집을 구입하였고, 1959년에서 1961년 사이 재건축하였다. 네루다는 전망이 좋은 맨 위층인 3, 4층을 사용하였다고 한다.
이 박물관 역시 선실의 창처럼 층계마다 원형의 창문이 있었다. 거실 공간 한쪽에는 분홍 철문을 한 화장실과 바의 테이블이 있어 마치 연극 세트장에 온 느낌도 들었다. 그의 서재 창문 너머 언덕에는 성냥갑 같은 집들이 빽빽이 들어서 있었다. 집들은 석양과 함께 다양한 색의 모자이크를 보여주고 있었다.





2208.jpg 사적 공간의 자취를 느끼다
1973년 네루다의 임종 이후 피노체트 군사 정권하에 작가의 집들은 대부분 손상되었다고 한다. 다행스럽게도 민주화 이후 1991년경부터 그의 옛집이 박물관으로 복원되면서 현재 많은 관광객들이 방문하고 있다.
작가의 집 박물관들을 둘러보니 바다와 조망에 대한 그의 열정과 자유로운 사고가 가장 먼저 느껴졌다. 다른 문필가의 박물관처럼 작가의 시집이 나 자필원고가 아닌 작가의 예술적 취향과 수집품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파블로 네루다의 사적 공간의 자취는 그의 시와 국가, 나아가 중남미 근현대사에 대한 관심을 심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이처럼 박물관과 미술관은 개개인의 마음바다에 관심의 물방울을 튕겨주고 그 관심자리에서부터 이해의 파장을 점차 넓혀나가게 해주는 곳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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