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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경에서 중심으로…동북아 중심 꿈꾸는 연변 조선족 자치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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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harvard 댓글 0건 조회 1,332회 작성일 10-10-07 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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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저, 우리 연변에서는?
예전에 TV 개그 프로그램에서 연변(延邊) 총각을 소재로 하는 코너가 유행한 적이 있었다.
“고저, 우리 연변에서는…” 이라는 말로 시작하면서 연변 총각으로 분한 개그맨이 일종의 허풍개그를 선보이는 것이었다. 이 프로그램은 웃음을 안겨주기도 했지만 연변동포(조선족)들을 비하한다고 하여 문제가 되기도 했었다. 그 후 그 프로그램은 여느 개그 프로그램처럼 시간 이 흐르면서 사라져버렸지만, 연변과 우리나라와의 관계는 더욱더 가까워지고 있다.
연변 조선족 자치주의 주도(州都)인 연길 시에 있는 연길국제공항은, 이름은 국제공항이지만 실제로 국제선은 한국 인천과 중국 연길을 오 가는 항공노선뿐인데, 이 노선에 무려 4개 항공사가 취항하고 있다. 그만큼 연변과 우리나라를 오가는 물적, 인적 교류가 잦다는 이야기다. 지난 8월, 행정안전부의 발표에 의하면 현재 우리나라에 거주하고 있는 90만 외국인의 약 40%가 조선족이다. 2007년 방문취업제 실시 이후 그 숫자가 급증한 것이다. 굳이 숫자를 따지지 않아도 식당에 가면 우리말이 약간 서툰 조선족 종업원을 우리는 쉽게 마주칠 수 있다. 하지만, 조금만 더 생각해 보면 우리가 연변에 대해 알고 있는 건 그게 거의 전부다. 개그의 소재인 연변 총각과 식당에서 마주치는 조선족 종업원들. 과연 우리는 연변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 것일까?

한민족의 아픈 근대사, 연변
연변 지역에 한민족(韓民族)의 이주는 19세기 중엽, 즉 조선 말기부터 시작되었다. 생계의 위협을 느낀 농민들이 중국 동북 지역으로 이 주하여 개간을 하게 된 것이다. 이후 경술국치로 일제 강점이 시작되면서는 항일투쟁을 하기 위한 애국지사와 일제의 핍박을 피하기 위한 이 주가 이루어졌고, 일본이 만주사변을 일으킨 후에는 이 지역의 개발을 위한 일본의 강제 이주가 진행되었다. 기록에 따르면 해방을 앞둔 1945 년에 만주를 비롯한 중국에 약 200만 명의 한인(韓人)이 살고 있었다 한다. 그러나 일본이 패망한 후, 실제로 한국으로 귀국한 한인은 70여 만명에 불과했다.
한국으로 귀국하지 않고 중국에 남아 있던 한인들은 대부분 가난한 농민들이었고 이들은 중국 공산당과 국민당의 내전에서 공산당을 지 지하게 된다. 이후 중국 내전이 공산당의 승리로 끝난 후, 중국 공산당은 이러한 한인들의 공헌을 인정하여 길림성 동부에 한인들의 자치 지역의 성립을 허용하였다. 그 결과 1952년 9월 3일에 연변 조선족 자치구가 성립되었고 이후 자치구는 1955년에 자치주로 승격되었다. 이것이 연변 조선족 자치주의 시작이었던 것이다. 한마디로 배고픔과 일제의 탄압,강제 이주, 유랑의 한민족 근대사를 보여주는 곳이 연변 조선족 자치주 라 하겠다.

변화하는 연변, 하나의 시각으로 이해할 수 없다
연변 조선족 자치주는 길림성의 1/4 면적(약 4만3,000m2)으로 남한의 절반 정도 크기에 달한다. 1952년 자치주로 성립될 당시 2시 6현으로 이루어졌으나 그후 행정구역이 바뀌어 현재는 6시 2현(연길(延吉)·도문(圖們)·돈화(敦化)·화룡(和龍)·용정(龍井)·훈춘(琿春)의 6개 시와 왕청(汪淸)·안도(安圖)의 2개 현)으로 구성되어 있다. 1952년 자치주가 성립될 당시 연변 조선족 자치주는 다른 20여 개의 소수민족을 포함하여 약 92 만 명이 거주하였으며, 그 가운데 조선족이 55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60% 이상을 점하였다. 이후 전체 인구는 늘어서 오늘날 217만 명에 이르렀지만, 조선족의 수는 급속히 감소하여 37%대인 81만 명 수준으로 떨어져 이제 연변자치주에서 인구가 가장 많은 민족은 중국 한 족(漢族)이다.
조선족의 비율이 이렇게 자꾸 감소하는 이유는 출산율이 떨어지는 이유도 있지만, 무엇보다 외지로 일자리를 찾아 떠나는 조선족들 이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한중 수교 이후 한국으로의 인구 유출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조선족 자치주의 미래를 걱정하는 소리가 나온다. 인구가 일정 비율 이하로 떨어지면 자치주의 지위를 잃게될 것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중국의 자치주는 특정 민족이 차지하는 인구 수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러한 걱정은 기우에 불과하다. 다만, 조선족 숫자가 줄면서 연변에 서 조선족의 색채가 조금씩 옅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일례로 자치주에서는 모든 간판을 중국어와 조선어로 병기하게 법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이 규정을 어기고 중국어만 적은 간판들이 보인다. 조선족 가정에서도 잘사는 집들은 아이들을 한족 학교에 보낸다. 주류 사회로 편입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시대의 흐름이라는 주장도 있으며 이미 중국에서 100년이 넘게 살고 있는 조선족들에게 무조건적으로 ‘한국적인 것’을 강요하는 것은 무리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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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미국이나 일본에 거주하고 있는 재외동포들의 현지화처럼 연변 조선족들의 변화도 자연스러운 것인데, 유독 연변에만 엄격한 ‘한국적인 잣대’를 적용하는 것도 지나치다는 얘기다. 얼마 전 우리나라 언론에서 이슈가 되었던 이른바 ‘백두산 공정’을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도 비슷한 맥락이다. 2005년 백두산(중국 이름은 장백산)의 관리권이 연변 조선족 자치주에서 길림성 직할로 넘어가면서 국내 언론에서는 이러한 움직임을 중국의 동북공정처럼 백두산도 중국의 장백산으로 만들려는 움직임으로 바라보았다. 실제로 연변에서도 이러한 시각이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반대로 이러한 조치를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 또한 존재한다. 백두산의 관리가 자치주에서 길림성 단위로 넘어가면서 좀 더 체계적 이고 종합적인 관리와 친환경적인 개발이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실제로 길림성 ‘장백산보호개발구 관리위원회’가 백두산의 관리를 맡으면서 일 체의 자가용 출입을 산문까지만 허용하고 산문부터는 관리위에서 운영하는 셔틀버스에 의한 통행만 허락하여 대기오염을 줄이고, 환경보전이 향상된 점이 있다. 물론 이러한 조치도 궁극적으로는 중국 관광지에서 백두산의 관광자원 가치를 높이려고 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연변의 변화에 대해서 다양한 시각이나 입장이 존재한다는 것이며, 결국 연변의 미래를 결정하는 것은 연변에 살고 있는 연변 주민들이지 그들의 갈길에 대해 한국이 한국의 입장에서 이래라 저래라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연변, 동북아 중심으로의 비상을 꿈꾼다
연변의 산업 구조는 임업, 광업, 농업 등의 1차 산업 구조로 이뤄져 있다. 특히 풍부한 삼림자원을 바탕으로 한 임업은 연변의 으뜸산업으로, 연변은 중국의 중요한 목재 생산 기지 중 하나다. 하지만 연변 조선족 자치주는 이러한 자원에 의존한 1차 산업 위주의 산업 구조를 탈피하려 하고 있는데 그 핵심에 ‘두만강지역개발계획(Greater Tumen Initiative)’이 있다. 두만강지역개발계획은 UNDP의 주도하에 시작된 중국, 한국, 북한, 러시아, 몽골 5개국이 참여하는 국제 프로젝트다. 이 프로젝트는 동북아 지역의 경제협력을 강화하기 위하여 두만강 지역에 대규모 자유무역지대와 공단, 배후도시 등을 건설하고 에너지, 관광, 무역, 환경 등의 분야에서 회원국 간의 협력사업이 주된 골자인데, 1991년 발족 이후로 회원국 간의 입장 차이와 경제적 수준 차이로 오랫동안 지지부진한 흐름을 보여 왔다. 그러나 최근 중국의 경제 발전과 함께 동북 지역 개발, 동해로의 진출 계획 등과 맞물려서 중국이 이 두만강지역개발계획에 부쩍 관심을 보이고 있는데, 연변 조선족 자치주가 이 계획의 가장 큰 수혜 지역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이러한 이유는 무엇보다 연변의 천혜의 지리적 조건에 기인한다. 연변은 중국, 러시아, 북한의 3국 접경 지역에 위치하고 있으며 러시아, 북한과는 육로로 접해 있고, 두만강을 거쳐 동해를 통해서는 한국, 일본과도 연결될 수 있는 교통의 요지다. 중국은 장춘에서 훈춘을 거친 연길 까지의 고속도로를 이미 완성시켰고, 훈춘에서 북한의 나진을 통한 국제 해상로를 개척하고 있다. 연변은 국제투자를 유치시키기 위하여 연변 신 흥공업 집중구를 건설하여 투자 기업에 소득세 및 임대비 경감과 각종 행정절차 간소화 등을 제공하고 있을 뿐 아니라 매년 ‘연길 국제투자무역 박람회’ 와 ‘두만강 지역 국제투자무역 박람회’를 개최하고 있다. 또한 연변지역의 관광산업 발전을 위하여 스키 리조트 및 고급 호텔 등의 건설도 추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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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이유는 무엇보다 연변의 천혜의 지리적 조건에 기인한다. 연변은 중국, 러시아, 북한의 3국 접경 지역에 위치하고 있으며 러시아, 북한과는 육로로 접해 있고, 두만강을 거쳐 동해를 통해서는 한국, 일본과도 연결될 수 있는 교통의 요지다. 중국은 장춘에서 훈춘을 거친 연길 까지의 고속도로를 이미 완성시켰고, 훈춘에서 북한의 나진을 통한 국제 해상로를 개척하고 있다. 연변은 국제투자를 유치시키기 위하여 연변 신 흥공업 집중구를 건설하여 투자 기업에 소득세 및 임대비 경감과 각종 행정절차 간소화 등을 제공하고 있을 뿐 아니라 매년 ‘연길 국제투자무역 박람회’ 와 ‘두만강 지역 국제투자무역 박람회’를 개최하고 있다. 또한 연변지역의 관광산업 발전을 위하여 스키 리조트 및 고급 호텔 등의 건설도 추진 중이다

흔히 중국인들은 실용적이라는 말을 한다. 공리공론을 따지기보다는 실속을 챙기는 데 관심이 있다는 말이다. 덩샤오핑의 “쥐를 잘 잡기만 하면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상관없다”는 소위 ‘흑묘백묘’론도 같은 맥락이다. 지금 연변을 바라보면 비슷

한 느낌이 든다. 동북아 중심으로 나아가기 위해서 그들에게 는 연변의 발전이 중요하지, 조선족의 연변이 냐, 한족의 연변이냐를 따지는 건 우선순위가 아니다. 연변의 앞으로의 행보가 더욱 궁금해 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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