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을 향한 인간의 욕망을 보다_볼리비아 포토시의 조폐박물관
페이지 정보
작성자 harvard 댓글 0건 조회 1,561회 작성일 10-10-08 00:35
본문

볼리비아의 포토시(Potosi)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도시(해발 4,070m)이며, 광산으로 유명하다. 포토시의 어원은 광산에서 나는 소리를 연상시키듯 원주민 언어로 천둥이나 폭발의 의미를 갖는다고 한다. 포토시에서 광산 개발은 스페인 식민 시절인 16세기 중반에 원주민이 은 광맥을 찾아낸 이후부터 시작되었다. 이후로 이 산은 ‘아름다운 산(Sumaj Orcko)’에서 ‘부의 산(Cerro Rico)’이라는 스페인식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고, 이름처럼 스페인과 유럽에 부를 가져다준 아메리카 최대의 은 생산지였다. 이곳의 막대한 은을 제련하고 은화를 제작하였던 조폐국이 현재 박물관으로 공개되고 있었다. 이곳 조폐박물관(Museo de la Casa Nacional de Moneda, 홈페이지 www.casanacionaldemoneda.org.bo)에서는 식민지 시대의 회화 작품, 은전 제조 및 그 발달 단계, 은의 제련 과정에 사용된 기구를 볼 수 있었고, 이 밖에도 가톨릭과 관련된 제단 및 조각, 이 지역의 고고학적 유물 등 다양한 소장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우선 입구에 들어서면 너른 안마당과 발코니가 있는 스페인식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맞은편 돌 아치에는 포도 관을 쓴 독특한 두상이 방문자를 반긴다. 이 두상은 조폐국의 조각 수장이었던 프랑스 예술가가 제작한 것이라 한다. 바쿠스(Bacchus)신의 형상이라고도 하고, 조각가와 사이가 좋지 않았던 이곳의 책임자의 얼굴이라는 등 여러 이야기가 있지만 그 웃음이 왠지 오싹하다. 마치 인간의 끝없는 탐욕을 경고하는 냉소적인 표정이 느껴진다. 한번 보면 잊히지 않을 이 얼굴의 상은 포토시의 상징처럼 홍보물마다 사용되고 있었다. 건물 2층에는 식민지 시대의 회화가 전시되어 있다. 그 중 ‘산의 성모(Virgin Cerro)’가 돋보인다. 성모상은 안데스의 대지의 여신 파차마마(Pachamama)를 상징하듯 이곳 광산과 하나가 되어 있고, 치마폭 하단에는 교황과 스페인 국왕이 있다. 그 사이로 잉카의 마지막 황제 와이나 카팍의 모습이 아주 작게 그려져 있으며, 산등성이 곳곳에서 주민의 생활상을 볼 수 있다. 중남미에서는 이처럼 성화가 그 지역에 융화되어 있는 것이 특징적이다.
다른 공간에서는 시대별로 은화를 보여주고 있었다. 은화의 앞면과 뒷면의 문양을 볼 수 있게 전시되어 있고, 은을 운송하던 선박의 모형도 전시되어 있다. 그 방을 지나면 세계에서 유일하게 이 박물관에서만 볼 수 있다는 예전 조폐 기구와 마주친다. 나무로 된 커다란 바퀴가 맞물려 돌아가게 되어 있는데, 이 기구를 통하여 은이 납작하게 눌려져 나온다고 한다. 놀랍게도 이 기구는 아래층의 기둥과 연결되어 돌아갈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아래층의 넓은 공간에는 위층과 연결된 수직 기둥과 이 기둥이 수평으로 연결된 막대가 있었다. 네 마리의 노새가 이곳에서 막대를 회전시켜 그 힘이 위층의 바퀴에 전해지는 것이었다. 이후에 개발된 증기와 전기로 작동하는 조폐 기구들이 조형작품처럼 다른 공간에 세련되게 전시되어 있었다.
또 다른 쪽 건물에는 은을 제련하는 공간들이 있었다. 이곳에는 은을 녹여 내리는 데 필요한 여러 가지 도구들이 있었다. 또 은전에 문양을 새기는 기구들도 전시되어 있는데 시대별로 그 방법이 달랐다. 문양이 새겨진 금속판을 손 망치로 두드리거나 기구를 돌려 압착시켜서 은전의 문양을 만들어내었다. 은을 추출하는 공간은 고가 높고 천장과 벽에 검은 그을림이 있어 세월이 담긴 멋이 있었다. 돔의 천장에는 원형의 창문이 아름답게 있었고 높은 벽에도 자그마한 사각형의 창이 있었다. 하지만 환기가 안 되고 제련 과정에서 발생하는 수은 때문에 원주민 작업자들 대부분이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그로 인해 아프리카에서 들여온 노예가 3만여 명에 이른다고 한다. 가이드에 의하면 이곳에서 생산되었던 은화를 이어나가면 볼리비아에서 스페인까지 왕복 거리가 될 정도라고 한다. 또한 이 은화를 만드느라 광산과 조폐 건물에서 생명을 잃은 사람들로 다리를 놓으면 마찬가지로 볼리비아와 스페인을 걸어서 오고 갈 수 있을 정도로 무수한 사람이 희생당했다고 한다. 포토시의 식민 기간 동안 3세기에 걸쳐 800만 명의 작업자들이 죽었다고 하니 현재 이 도시에 인디오들이 생존해 있다는 것만도 기적이라 할 수 있다.
이 조폐국이 처음 창설된 것은 1575년이다. 이후 200여 년이 지나 은 생산량이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스페인은 전쟁으로 인한 경제난을 완화시키기 위해 1773년 새로이 조폐국을 건축했다.
현재의 박물관인 이 건물은 5개의 중정과 200여 개의 방이 있는 바로크식 건물로 15년 동안 건축되었으며, 150억 원 상당의 비용이 들었다고 한다. 이곳에서는 스페인의 은화뿐 아니라 독립전쟁 이후 아르헨티나와 볼리비아 은전도 제작되었으며 1953년까지 운영되었다.
세르반테스의 소설 《돈키호테》에서 포토시는 부와 영광을 의미한다고 한다. 실제로 포토시는 17세기 중반에 20만 명의 인구에 달하는 남미의 대도시 중 하나였다고 한다. 하지만 오늘날 이 도시는 황량하고 근심이 가득해 보인다. 대다수의 주민들이 광산에 의지하여 삶을 살고 있으며 이들의 작업 환경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열악하였다. 성벽 안에 요새와 같은 조폐박물관을 통하여 스페인의 라틴아메리카 수탈의 진면목을 목격할 수 있었고, 황금에 대한 인간의 욕망과 그로 인해 현재까지도 피폐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을 생각하게 한 역사적인 공간이었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