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의 계절'이 있는 독일 쾰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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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harvard 댓글 0건 조회 1,840회 작성일 10-10-08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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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관문으로 통하는 암스테르담에서 독일로 가기 위해 국제열차인 EC에 오르면 차창 밖으로 서너 시간이 계속되도록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는 양떼와 젖소 무리를 볼 수 있다. 펑퍼짐한 구릉 지역에 펼쳐진 풀밭 사이로 기차가 달리고, 사이사이에 빨간 기와를 머리에 이고 있는 크고 작은 집들을 지나치게 된다. 대여섯 시간이 지나면 높은 공장 굴뚝들과 함께 어느새 기찻길을 따라온 강물 위를 떠가는, 컨테이너 화물을 가득 실은 배들을 만나게 된다. 무리 지어 늘어선 공장 굴뚝과 육지 깊숙한 곳까지 떠다니는 화물선 풍경에서 이곳이 독일의 대표적인 공장 지대인 루르 지방임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프랑스와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를 연결하는 기차가 정차하는 쾰른은 철도·수로·고속도로가 한데 만나는 몇 안 되는 독일의 교통 요충지다. 그래서 독일의 서쪽 관문으로 불린다. 북유럽 최대의 성당이 있고, 세계적인 축제가 열리고, 음악을 공부하려는 학도들이 각국에서 몰려드는 곳이다.
라인란트의 문화·경제적 중심지 역할
쾰른에 도착한 여행객은 중앙역을 걸어나오면 엄청난 크기의 건물에 압도당하고 만다. 고개를 완전히 뒤로 쳐들어야 건물 꼭대기를 확인할 수 있고, 땅바닥에 드러누워야 첨탑 끝까지 보이는 사진을 찍을 수 있을 정도로 높고 큰 건물이, 다름 아닌 쾰른 성당(Kolner Dom)이다. 현존하는 대표적인 고딕 건축물로 꼽히는 쾰른 성당은 높이 솟아오른 두 개의 첨탑을 중심으로 수많은 작은 첨탑과 십자가로 이루어져 있다. 성당 정면에 솟아 있는 두 개의 종탑 높이는 무려 157m로 50층 건물 이상에 해당된다. 무려 509개 계단을 걸어서 올라가야 종탑의 꼭대기에 다다를 수 있고, 무게가 24톤에 이르는 커다란 피터벨(종)을 볼 수도 있다.

축제를 이끌게 된 3인의 리더
쾰른 성당은 날카로운 첨탑, 날렵한 플라잉 버트레스(Flying Buttress),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가 특히 아름답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쾰른의 랜드마크인 이 건물은 고딕양식 교회 건축물 가운데 세계 세 번째 규모이고, 북유럽에서 가장 큰 중세 성당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 성당은 1248년에 착공돼 도중에 건설이 중단되는 우여곡절을 겪다가 1880년에야 완공됐다. 공사 기간 280년을 포함해 착공 후 642년 만에 완성된 것이다.
쾰른 성당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건물 내부에서 찾아볼 수 있다. 성당 초기에 만들어진 동방박사 제단을 비롯해 정교한 조각품들이 줄지어 서 있다. 성모 마리아와 성 베드로의 삶을 표현한 다섯 개의 스테인드글라스는 아름다움의 결정체라 할 수 있다. 이 건물은 중세 건축사에 소중한 사료로 보존되는 것은 물론 1996년에는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으로도 등재됐다.
쾰른 시내에는 중세의 종교적 색채가 강하게 남아 있다. 사실 쾰른이라는 이름도 로마 시대 식민지를 뜻하는 콜로니아(Colonia)에서 유래했다. 795년 카를 대제(大帝)가 대주교구를 이곳에 설치한 뒤 10~15세기에는 독일 최대의 도시로 번창할 정도였다고 한다. 라인강 기슭에 자리 잡은 탓에 유럽에 있는 주요 교역로의 교착점이 됐다. 중세에는 상업·제조업 중심지로 명성을 얻었으며, 현대에 와서는 라인강을 중심으로 펼쳐져 있는 지역을 뜻하는 라인란트의 문화적, 경제적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다.
제5의 계절 라인 카니발… 3개월간 계속돼
쾰른은 세계에서 가장 볼 만한 축제라 일컫는 브라질의 리오 카니발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라인 카니발이 열리는 곳이다. 라인 카니발 즉 쾰른 축제는 매년 11월 11일 오전 11시 11분 시작된다. 카니발의 명칭은 ‘제5의 계절(Funfte Jahreszeit)’. 봄·여름·가을·겨울 4계절에 또 하나의 계절이 있다는 뜻이다. 쾰른 구시장 터에 몰려든 시민들의 카운트다운으로 시작되는 이 축제는 다음해 2월까지 3개월 동안 계속된다.
‘광란의 월요일(Rosenmontag)’ 행렬과 앞서 펼쳐지는 ‘여성 카니발(Weiberfastnacht)’ 행사에 수만 명이 몰려드는데 이때가 축제의 클라이맥스가 된다. 이 시기의 6일간은 관공서는 공휴일로 선포되며 상점들은 완전히 철시한다. 광란의 월요일 퍼레이드에는 1만 명이 넘는 100여 개의 퍼레이드 팀이 참가해 3시간 동안 6.5 km 코스를 행진한다.
축제를 즐기는 시민들
이 축제의 특이한 모습 중의 하나는 개막과 동시에 ‘3인의 리더(Dreigestrin)’를 선출한다는 것이다. 사육제의 왕자와 농부, 그리고 처녀로 구성되는 ‘3인의 리더’에 선발되면 150년 전 프러시아 군대를 풍자하는 군복을 입은 근위병을 거느리게 된다. 이들은 로코코 양식의 가운을 걸치고 근위병들의 호위를 받으며 축제를 주관한다.
쾰른 축제에는 종교적 색채가 무척 강하다. 그도 그럴 것이 로마가톨릭교회에서 사순절(四旬節) 이전 3일간 벌이는 카니발, 즉 사육제(謝肉祭, Fasching)가 이 행사의 기원이기 때문이다. 쾰른 축제는 지배계층에 도전하는 대중의 억압된 기분을 발산하는 시간이라 할 수 있다. 이 축제가 시작된 것은 1815년으로, 나폴레옹 군대의 패전 결과로 쾰른 지방이 프러시아의 지배 아래 놓이게 되면서부터라 할 수 있다. 프러시아는 사육제 기간만이라도 지배계층을 조롱하는 것과 제도에 대한 일탈을 허용했다.
이 축제는 특히 여자들의 해방일로 불리기도 한다. 그동안 집안에서 억눌렸던 여자들은 대낮부터 술을 마시고 거리를 떼 지어 다닌다. 그리고 축제 기간 중 ‘여인들의 목요일(Weiberdonnerstag)’로 지정된 날에는 가위로 남근(男根)의 상징인 넥타이를 보는 대로 자른다. 넥타이를 잘린 남자들은 여자들의 키스를 받게 된다. 그 넥타이는 여자들의 치마에 장식품으로 매달리게 된다. 또 축제가 시작되면 쾰른의 많은 술집은 가장 의상을 입힌 마네킹인 ‘누벨(Nubbel)’을 창문에 내걸어놓는다. 봉제 수요일이 다가오면 이 ‘누벨’을 땅에 내려놓고 축제 기간 동안의 방탕과 죄에 대한 희생양으로 불태운다.
노예나 지배자가 없는 오늘날 쾰른 축제는 추수로 힘들었던 농부들을 위로하고, 억눌려 살아야 하는 여인네들이 자유를 만끽하는 기간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 같은 쾰른 축제는 여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소수자에 대한 특별한 배려가 숨어 있다. 축제가 모든 사람들에게 환영받지 못한다는 뜻에서 마련한 ‘비참가자(Karnevalsmuffeln)’라는 지역이 그것이다. 시내 외곽에 마련된 ‘비축제 지역’에는 떠들썩한 축제를 거부하는 사람들을 위해 조용한 선술집들이 표식을 하고 손님을 기다린다.
척박한 자연환경 뛰어넘은 시민들의 문화도시 만들기
쾰른을 말할 때 향수 ‘오드콜롱(Eau de Cologne)’을 빼놓을 수 없다. 오드콜롱이란 프랑스어로 ‘쾰른의 물(Koelnisches Wasser)’이라는 의미가 있다. 이 화장수의 유래는 1794년 프랑스군이 쾰른을 점령하였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곳에 온 당시 병사들은 고향에 갈 때 아내나 연인에게 선물로 주기 위해 쾰른의 물이라는 향수를 가지고 갔고, 프랑스어로 오드콜롱으로 불리며 유명세를 타게 됐다. 오드콜롱 중에서도 ‘No 4711’이 특히 유명하다. 이는 프랑스군이 점령지의 담당 구역을 분할하면서 집집이 숫자를 붙이도록 했는데, 유서 깊은 향수를 만들던 뮐러의 집은 4711에 해당된 데서 비롯됐다.
원조 오드콜롱을 생산하는 이 회사는 지금도 같은 자리에서 손님을 맞이하고 있다. 물론 이 건물은 전쟁으로 소실된 후 다시 지은 것이다. 쾰른은 라인강을 경계로 구시가지와 신시가지가 구분된다.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를 연결하는 라인강 위에는 호엔촐레른과 도이치 다리가 놓여 있다.
신시가지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 이후에 새로 조성되어서인지 구시가지가 중세풍의 고전미가 흐르는 데 반해 현대적인 세련미가 풍긴다.
쾰른을 돌아보는 데는 서서히 걷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중앙역을 빠져나와 쾰른 대성당을 둘러보고 뒤편 광장으로 가면 라인강이 보인다. 강가에 늘어선 큰 건물 중에는 로마 게르만 박물관이 있다. 박물관 자리에서 발굴됐다는 로마 시대의 ‘디오니소스 모자이크’가 전시되어 있고 1~5세기 유물들도 있다. 발라프 리하르트 박물관에는 독일 미술계에 생겨난 ‘쾰른파’라는 회화학파와 인상파 화가들의 14~16세기 말 작품이 전시돼 있다. 이곳에서는 알브레히트 뒤러와 렘브란트의 그림도 만날 수 있다.
쾰른은 독일의 다른 도시보다 자연환경이 뛰어난 곳이라 할 수 없다. 하지만 다녀온 사람이라면 척박한 환경을 이겨내고 아름다운 삶의 보금자리를 만들어낸 과거의 시민들에게 찬사를 보내게 된다. 200년이 넘는 고유의 축제를 가지고 있고, 이를 통해 자랑스러운 도시를 가꾸어나가는 쾰른이 우리에겐 한없는 부러움의 대상이다
프랑스와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를 연결하는 기차가 정차하는 쾰른은 철도·수로·고속도로가 한데 만나는 몇 안 되는 독일의 교통 요충지다. 그래서 독일의 서쪽 관문으로 불린다. 북유럽 최대의 성당이 있고, 세계적인 축제가 열리고, 음악을 공부하려는 학도들이 각국에서 몰려드는 곳이다.
라인란트의 문화·경제적 중심지 역할
쾰른에 도착한 여행객은 중앙역을 걸어나오면 엄청난 크기의 건물에 압도당하고 만다. 고개를 완전히 뒤로 쳐들어야 건물 꼭대기를 확인할 수 있고, 땅바닥에 드러누워야 첨탑 끝까지 보이는 사진을 찍을 수 있을 정도로 높고 큰 건물이, 다름 아닌 쾰른 성당(Kolner Dom)이다. 현존하는 대표적인 고딕 건축물로 꼽히는 쾰른 성당은 높이 솟아오른 두 개의 첨탑을 중심으로 수많은 작은 첨탑과 십자가로 이루어져 있다. 성당 정면에 솟아 있는 두 개의 종탑 높이는 무려 157m로 50층 건물 이상에 해당된다. 무려 509개 계단을 걸어서 올라가야 종탑의 꼭대기에 다다를 수 있고, 무게가 24톤에 이르는 커다란 피터벨(종)을 볼 수도 있다.

축제를 이끌게 된 3인의 리더 쾰른 성당은 날카로운 첨탑, 날렵한 플라잉 버트레스(Flying Buttress),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가 특히 아름답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쾰른의 랜드마크인 이 건물은 고딕양식 교회 건축물 가운데 세계 세 번째 규모이고, 북유럽에서 가장 큰 중세 성당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 성당은 1248년에 착공돼 도중에 건설이 중단되는 우여곡절을 겪다가 1880년에야 완공됐다. 공사 기간 280년을 포함해 착공 후 642년 만에 완성된 것이다.
쾰른 성당의 진정한 아름다움은 건물 내부에서 찾아볼 수 있다. 성당 초기에 만들어진 동방박사 제단을 비롯해 정교한 조각품들이 줄지어 서 있다. 성모 마리아와 성 베드로의 삶을 표현한 다섯 개의 스테인드글라스는 아름다움의 결정체라 할 수 있다. 이 건물은 중세 건축사에 소중한 사료로 보존되는 것은 물론 1996년에는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으로도 등재됐다.
쾰른 시내에는 중세의 종교적 색채가 강하게 남아 있다. 사실 쾰른이라는 이름도 로마 시대 식민지를 뜻하는 콜로니아(Colonia)에서 유래했다. 795년 카를 대제(大帝)가 대주교구를 이곳에 설치한 뒤 10~15세기에는 독일 최대의 도시로 번창할 정도였다고 한다. 라인강 기슭에 자리 잡은 탓에 유럽에 있는 주요 교역로의 교착점이 됐다. 중세에는 상업·제조업 중심지로 명성을 얻었으며, 현대에 와서는 라인강을 중심으로 펼쳐져 있는 지역을 뜻하는 라인란트의 문화적, 경제적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다.
제5의 계절 라인 카니발… 3개월간 계속돼
쾰른은 세계에서 가장 볼 만한 축제라 일컫는 브라질의 리오 카니발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라인 카니발이 열리는 곳이다. 라인 카니발 즉 쾰른 축제는 매년 11월 11일 오전 11시 11분 시작된다. 카니발의 명칭은 ‘제5의 계절(Funfte Jahreszeit)’. 봄·여름·가을·겨울 4계절에 또 하나의 계절이 있다는 뜻이다. 쾰른 구시장 터에 몰려든 시민들의 카운트다운으로 시작되는 이 축제는 다음해 2월까지 3개월 동안 계속된다.
‘광란의 월요일(Rosenmontag)’ 행렬과 앞서 펼쳐지는 ‘여성 카니발(Weiberfastnacht)’ 행사에 수만 명이 몰려드는데 이때가 축제의 클라이맥스가 된다. 이 시기의 6일간은 관공서는 공휴일로 선포되며 상점들은 완전히 철시한다. 광란의 월요일 퍼레이드에는 1만 명이 넘는 100여 개의 퍼레이드 팀이 참가해 3시간 동안 6.5 km 코스를 행진한다.
축제를 즐기는 시민들이 축제의 특이한 모습 중의 하나는 개막과 동시에 ‘3인의 리더(Dreigestrin)’를 선출한다는 것이다. 사육제의 왕자와 농부, 그리고 처녀로 구성되는 ‘3인의 리더’에 선발되면 150년 전 프러시아 군대를 풍자하는 군복을 입은 근위병을 거느리게 된다. 이들은 로코코 양식의 가운을 걸치고 근위병들의 호위를 받으며 축제를 주관한다.
쾰른 축제에는 종교적 색채가 무척 강하다. 그도 그럴 것이 로마가톨릭교회에서 사순절(四旬節) 이전 3일간 벌이는 카니발, 즉 사육제(謝肉祭, Fasching)가 이 행사의 기원이기 때문이다. 쾰른 축제는 지배계층에 도전하는 대중의 억압된 기분을 발산하는 시간이라 할 수 있다. 이 축제가 시작된 것은 1815년으로, 나폴레옹 군대의 패전 결과로 쾰른 지방이 프러시아의 지배 아래 놓이게 되면서부터라 할 수 있다. 프러시아는 사육제 기간만이라도 지배계층을 조롱하는 것과 제도에 대한 일탈을 허용했다.
이 축제는 특히 여자들의 해방일로 불리기도 한다. 그동안 집안에서 억눌렸던 여자들은 대낮부터 술을 마시고 거리를 떼 지어 다닌다. 그리고 축제 기간 중 ‘여인들의 목요일(Weiberdonnerstag)’로 지정된 날에는 가위로 남근(男根)의 상징인 넥타이를 보는 대로 자른다. 넥타이를 잘린 남자들은 여자들의 키스를 받게 된다. 그 넥타이는 여자들의 치마에 장식품으로 매달리게 된다. 또 축제가 시작되면 쾰른의 많은 술집은 가장 의상을 입힌 마네킹인 ‘누벨(Nubbel)’을 창문에 내걸어놓는다. 봉제 수요일이 다가오면 이 ‘누벨’을 땅에 내려놓고 축제 기간 동안의 방탕과 죄에 대한 희생양으로 불태운다.
노예나 지배자가 없는 오늘날 쾰른 축제는 추수로 힘들었던 농부들을 위로하고, 억눌려 살아야 하는 여인네들이 자유를 만끽하는 기간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 같은 쾰른 축제는 여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소수자에 대한 특별한 배려가 숨어 있다. 축제가 모든 사람들에게 환영받지 못한다는 뜻에서 마련한 ‘비참가자(Karnevalsmuffeln)’라는 지역이 그것이다. 시내 외곽에 마련된 ‘비축제 지역’에는 떠들썩한 축제를 거부하는 사람들을 위해 조용한 선술집들이 표식을 하고 손님을 기다린다.
척박한 자연환경 뛰어넘은 시민들의 문화도시 만들기
쾰른을 말할 때 향수 ‘오드콜롱(Eau de Cologne)’을 빼놓을 수 없다. 오드콜롱이란 프랑스어로 ‘쾰른의 물(Koelnisches Wasser)’이라는 의미가 있다. 이 화장수의 유래는 1794년 프랑스군이 쾰른을 점령하였을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곳에 온 당시 병사들은 고향에 갈 때 아내나 연인에게 선물로 주기 위해 쾰른의 물이라는 향수를 가지고 갔고, 프랑스어로 오드콜롱으로 불리며 유명세를 타게 됐다. 오드콜롱 중에서도 ‘No 4711’이 특히 유명하다. 이는 프랑스군이 점령지의 담당 구역을 분할하면서 집집이 숫자를 붙이도록 했는데, 유서 깊은 향수를 만들던 뮐러의 집은 4711에 해당된 데서 비롯됐다.
원조 오드콜롱을 생산하는 이 회사는 지금도 같은 자리에서 손님을 맞이하고 있다. 물론 이 건물은 전쟁으로 소실된 후 다시 지은 것이다. 쾰른은 라인강을 경계로 구시가지와 신시가지가 구분된다.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를 연결하는 라인강 위에는 호엔촐레른과 도이치 다리가 놓여 있다.
신시가지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 이후에 새로 조성되어서인지 구시가지가 중세풍의 고전미가 흐르는 데 반해 현대적인 세련미가 풍긴다.
쾰른을 돌아보는 데는 서서히 걷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중앙역을 빠져나와 쾰른 대성당을 둘러보고 뒤편 광장으로 가면 라인강이 보인다. 강가에 늘어선 큰 건물 중에는 로마 게르만 박물관이 있다. 박물관 자리에서 발굴됐다는 로마 시대의 ‘디오니소스 모자이크’가 전시되어 있고 1~5세기 유물들도 있다. 발라프 리하르트 박물관에는 독일 미술계에 생겨난 ‘쾰른파’라는 회화학파와 인상파 화가들의 14~16세기 말 작품이 전시돼 있다. 이곳에서는 알브레히트 뒤러와 렘브란트의 그림도 만날 수 있다.
쾰른은 독일의 다른 도시보다 자연환경이 뛰어난 곳이라 할 수 없다. 하지만 다녀온 사람이라면 척박한 환경을 이겨내고 아름다운 삶의 보금자리를 만들어낸 과거의 시민들에게 찬사를 보내게 된다. 200년이 넘는 고유의 축제를 가지고 있고, 이를 통해 자랑스러운 도시를 가꾸어나가는 쾰른이 우리에겐 한없는 부러움의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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