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잠 깨우는 자본의 입맞춤_헝가리 관광의 빛과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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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harvard 댓글 0건 조회 1,359회 작성일 10-10-09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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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도시 부다페스트라는 간이역
다뉴브 강에 살얼음이 지는 동구(東歐)의 첫 겨울
가로수 잎이 하나 둘 떨어져 뒹구는 황혼 무렵
느닷없이 날아온 수 발의 쏘련제(製) 탄환은
땅바닥에
쥐새끼보다도 초라한 모양으로 너를 쓰러뜨렸다.
.........
.너는 열세 살이라고 그랬다.
네 죽음에서는 한 송이 꽃도
흰 깃의 한 마리 비둘기도 날지 않았다.
네 죽음을 보듬고 부다페스트의 밤은
목놓아 울 수도 없었다.
죽어서 한결 가비여운 네 영혼은
감시의 일만(一萬)의 눈초리도 미칠 수 없는
다뉴브 강 푸른 물결 위에 와서
오히려 죽지 못한 사람들을 위하여 소리 높이 울었다
.........
김춘수,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 부분
1956년 구소련이 헝가리 시민항쟁을 무력으로 잔인하게 짓밟으면서 헝가리라는 생소한 나라가 우리에게 짙게 각인되었다. 이듬해인 1957년 <사상계>에 발표된 이 시를 통해 부다페스트라는 낯선 도시 이름이 주는 묘한 이국적 취향과 함께 헝가리 사람들의 저항정신과 파란만장한 역사의 부침 속, 그들의 도도한 민족적 자존심을 간접적으로나마 느끼게 되었다.그로부터 30여 년이 지난 1980년대 말이 되어서야 동유럽 여러 나라의 사회주의체제가 무너지면서 자유화와 개방이 시작되었고 헝가리는 앞장서 베일을 벗고 다가왔다. 1956년 부다페스트 봉기와 ‘프라하의 봄’으로 기억되는 체코 국민의 저항이 구소련의 무력진압으로 무산되었던 몇 가지 사건을 제외하고는 동서 냉전 이데올로기 시대 ‘철의 장막’ 인근 지역이라는 특수성으로 그다지 관심을 끄는 이슈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올해 우리 국적기의 부다페스트 취항을 추진 중이라는 보도가 있었다. 이를 계기로 헝가리에 관심이 높아지겠지만, 아직 헝가리는 여행사의 동유럽 여러 나라 패키지 상품에 포함되어 수도 부다페스트 시내관광과 1박 뒤 이웃 나라로 떠나가는 간이역 정도의 비중밖에 차지하지 못하고 있다.
문화와 예술로 이룬 보석 같은 자존심
상징 동물 말(馬)이 보여주듯 기마민족 헝가리 국민의 기동성과 진취성은 그들의 건국역사와 함께 굴곡 많았던 동유럽 왕조사로 연결된다. 학비와 의료비의 국가 부담 같은 선진국형 사회보장제도, 리스트와 버르토크 등 유명한 예술가와 유대인 다음으로 많은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명석하고 섬세한 국민정서는 헝가리의 자부심이다. 동시에 빈번한 외세의 침략으로 고통의 세월을 지내는 동안 성취한 독특한 문화와 문물은 오스트리아.슬로베니아·크로아티아·유고·루마니아·우크라이나슬로바키아 같은 인접 국가와 차별된다.
좁은 땅덩어리에서 문화와 말을 달리하는 수많은 민족이 어깨를 맞대며 살아온 유럽 역사가 그러하듯 헝가리는 피침(被侵)과 수탈, 합병의 역사를 거치면서 응전과 생존전략으로 단련되었고, 그 자체가 다른 유럽 국가 문화와 구분되는 특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산유국이면서 농·목축업, 기계 공업, 생화학 공업에 치중하는 산업구조 특성상 아직 관광에 크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그에 필요한 국가적 지원도 충분하지 않은 편이다. 과거 사회주의체제의 영향으로 복지 부문 지출이 과다하여 사회간접자본과 관광 인프라 구축에는 상대적으로 민첩하게 반응하지 못하는 듯하다. 비근한 예로 호텔을 예약할 때 관광업체에 선금을 요구하는 행태나 관광 종사자의 서비스 마인드 부족, 관광의 높은 효용성 발현에 대한 구체적 대응 미흡 등이 헝가리 관광 활성화의 걸림돌로 작용한다.
1866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 제국 성립 이후 1차 세계대전의 패전국으로 몰려 또다시 많은 것을 잃기까지 50여 년간 이룬 번성과 그에 따른 자긍심은 아직 헝가리 곳곳에서 다듬지 않은 보석처럼 박혀 있다. 바로 이 자원과 현장을 꿰고 다듬어 부가가치를 높이는 작업이 필요한 것도 그 때문이다. 전신전화 개통, 유럽 ‘대륙’(섬나라 영국이 최초였으므로) 최초의 지하철 건설, 건축공법상 금자탑을 세운 도나우(다뉴브) 강의 체인 브리지 가설, 미학적 차원과 규모 면에서 위용을 과시하는 국회의사당 완공, 영웅광장과 인공 스케이트장과 학술원 조성,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부다페스트 사회·문화사를 압축해 보여주는 동유럽의 샹젤리제 언드라시 거리 조성 등이 모두 1896년 건국 1천 년 기념의 해를 전후하여 마무리되었다. 그 뒤 헝가리는 잠에 빠졌다. 1989년 동유럽 최초의 개방 국가가 되기까지 문을 닫아건 채 독특한 문화를 발효, 숙성시켜온 것이다.

자본주의, 헝가리의 깊은 잠 깨우다
우리가 일제강점 35년 동안 겪은 고초를 기억하듯 헝가리인은 외국의 지배를 받은 500년에 이르는 세월에도 모국어를 지켜낸 자존심과 불굴의 민족정기를 자랑한다. 특히 오스트리아의 언어 말살 시도에도 헝가리 민족의 마자르어는 유럽 소수 희귀 언어로 그자체가 무형문화재로 꼽힌다. 20세기를 시종하여 빗장을 걸어놓은 은둔과 내성의 한 세기가 끝나갈 무렵 자본주의의 감미롭고 도도한 물결이 헝가리인의 잠을 깨웠다.
그렇다고 다른 나라들처럼 화들짝 놀라 황급히 옷을 갈아입고 손님을 맞으러 부랴부랴 나서지는 않았다. 특히 관광개발과 이를 통한 수입 창출 면에서 헝가리는 아직 소극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들이 보유한 천혜의 자원과 독특한 문화유산, 한 세기 가까이 개발의 소용돌이에서 한 걸음 비껴나 앞선 세기의 전통과 문화를 보존해온 잠재력 등에서 우선 헝가리 관광의 가능성은 담보된다. 인근 체코나 오스트리아 등이 국가 차원의 총력전을 펼치며 적극적으로 관광객 유치에 힘을 쏟는 동안 그들은 젖줄 도나우 강 연안의 관광자원 보수에 주력하는 등 정중동(靜中動), 허허실실(虛虛實實)의 행보로 나름대로 21세기 관광 패러다임을 짜고 있는 듯했다.
올해 3월 중순 프랑스 파리 포르트 드 베르사유 전시장에서는 제1회 국제관광전(정식 명칭은 MAP, Le Monde a Paris, ‘파리에서 세계를’이라는 뜻)이 열렸다. 21세기 관광의 주요 관심사로 장애인 관광 여건의 개선, 즉 장애인 편의시설을 갖춘 관광시설 사이트 등록 활성화와 공정무역 등과 연계된 지속 가능한 관광 등을 표방한 부스가 몇 군데 눈에 띄었을 따름이다. 이란, 시리아를 비롯한 중동지역 국가들의 관광상품 판촉활동이 괄목할 만했고 상대적으로 낮은 국력에도 튀니지·모로코·말리·카메룬·부르키나파소 같은 아프리카 국가들의 적극적인 홍보 또한 눈길을 끌었다. 유럽과 미주, 아시아지역 국가의 참가가 저조하여 국제행사의 의미는 반감했지만 관광 홍보에 총력을 기울이는 개발도상국들의 열기는 자못 진지했다. 동유럽 국가로 유일하게 참가한 크로아티아는 관광 차원을 넘어 자국의 문화와 예술, 산업과 사회적 관심사의 핵심을 소개하는 대규모 부스를 설치하고 관심 끌기에 전력을 기울였다. 요컨대 관광의 높은 부가가치를 인식하고 국가 차원의 노력을 전개하는 나라는 전반적으로 역동성과 진취성이 돋보이고, 그렇지 않은 경우 국가 이미지 자체의 폐쇄성과 고립성이 배가하는 오늘의 현실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현장이었다.
관광의 힘 발견 그러나 느리게 느리게
국가 위상과 국제사회에서의 신인도 등의 척도로서 관광 인식과 개발 수준은 유효한 지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중국, 베트남 등 아시아권 사회주의국가들의 변신과 개혁개방이 그러하고, 역사를 통해 느려 보이지만 빠를 때는 더없이 재빨랐던 헝가리의 실사구시 전략은 또 다른 사례연구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사회주의체제 퇴장과 개방에 즈음하여, 다른 나라에 비하여 헝가리는 한 걸음 앞서 자유경제체제를 도입했다. 그 결과 동유럽에서 손꼽힐 만큼 경제가 안정된 국가가 된 저력을 보여주고 있다. 그에 앞서 19세기 후반 도나우 강을 사이에 두고 좌우에 위치한 부다와 페스트 그리고 오부다 세 도시를 물리적·화학적으로 묶어 도시 발전을 이룩한 사례며, 편리한 교통망, 센 강과 유사하게 도나우 강 주변을 따라 집중 포진한 관광지 등은 부다페스트 관광의 힘이 되기에 충분하다.
그런데도 헝가리 관광의 현실은 아직 총체적으로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인근 오스트리아와 체코, 특히 크로아티아가 관광 입국을 표방하며 관광 진흥에 명운을 거는 데 비추어 헝가리는 민족과 언어, 자부심 강한 국민 개성만큼이나 독특한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다. 말하자면 개발 가능하고 변별력과 경쟁력이 풍부한 관광자원과 여건을 갖추고도 느린 걸음을 걷는 것이다. 다른 나라들이 성급하게 문을 활짝 열고 부산하게 움직이는 동안 어느새 하향평준화, 획일화의 길로 접어드는 듯한 사례를 나름대로 분석하며 신중한 독자 전략을 구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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