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수공장이 예술촌으로_베이징 다산쯔 798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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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harvard 댓글 0건 조회 1,730회 작성일 10-10-09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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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미술 시장 3위 배경에는 다산쯔가 있다
1957년 대약진운동이 시작될 때부터 개발된 공장 지대인 이곳은, 무기를 만들던 군수공장 지대였으나 중국의 개방과 함께 20여 년을 폐허나 다름없이 버려져 있었다. 1996년 인근 중앙미술대학의 조소과 작업실로 쓰이기 시작하면서 싸고 넓은 공간으로 소문이 났고, 가난한 예술인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단 한 명으로 시작한 이 지역의 예술활동은 프랑스·독일·일본·이탈리아·한국 등의 국제적인 갤러리와 카페·레스토랑·사진 스튜디오·의상점 등의 입성으로 종합적이고 국제적인 예술촌의 모습을 갖추어갔다. 중국정부가 3년 전 국가정책에 따라 이곳을 아파트촌으로 만들려 했으나, 2004년부터 시작된 다산쯔 페스티벌, 798비엔날레 등으로 그곳을 지키며 가꿔온 예술인들 때문에 아파트 단지 대신 ‘문화창의산업특구’로 지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는 민간 798에서 정부 주도의 예술구 관리를 받는 계기가 되었으며, 버려진 군수공장이자 도시 빈민촌이었던 이곳이 중국정부의 11차 5개년 경제사회발전계획의 ‘성장의 질’에 부합하는 핵심적 관광 명소로 명실상부 자리 잡게 되었다.
게다가 8월에 열리는 베이징올림픽은 이런 다산쯔 예술구 지원에 더욱 박차를 가하게 만들었다. 그 덕분에 부실했던 하수공사와 영역 확장으로 현재 다산쯔는 공사가 한창이다. 불과 몇 년 만에 중국이 세계 미술 시장 3위라는 기염을 토하게 된 배경엔 다산쯔 예술구가 있다는 사실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또 여행가들에게 여행지로서는 최악의 평가를 받던 베이징이 어느새 전 세계 예술인들이 사랑하는 여행지가 된 것도 당연한 순서다.
그러나 이런 성장의 환호는 여전히 가난한 예술가들의 뒷모습과 겹친다. 한참 성장하는 중국의 집값과 땅값은 마치 고무줄 같고, 땅 투기, 집 투기가 판을 치는 마당에 성업 중인 다산쯔를 피해갈 리는 만무하다. 1m2에 하루 70원(100위안=약 1,500원)도 안 하던 임대료가 지난해에만 300원을 넘어섰다. 이마저도 1년 단위로 다시 계약하기 때문에 줄을 서도 장소를 잡기가 어렵게 되었다. 이에 환티에, 쒀자춘, 차오창디, 지우창 등 새로운 예술구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지만, 이 예술구들조차 눈치 빠른 ‘있는’ 사람들 차지다. 한국의 거대 상업 갤러리인 아라리오 베이징, 표 갤러리 등은 술공장을 개조한 지우창 예술구에, 현대그룹의 두아트갤러리 등은 차오칭디 예술구 등에 자리를 잡았다. 그 덕분에 이 새로운 예술구들의 땅값과 임대료 역시 고공행진을 계속한다. 뉴욕의 예술가인 알렉산드라 에스포지토의 말처럼 “미생물처럼 가장 더럽고 후미진 곳에 들어가 땅값을 올리고 다시 더러운 곳을 찾아 떠나야”하는 운명이 된 가난한 예술가들은 물론 이곳을 떠야 하는 이들이지만, 이 공간을 채울 예술가들을 찾기 위해 갤러리들과 기획자들은 다시 그들의 뒤를 쫓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건물에서 뿜어져 나오는 역사와 예술
임대료가 싼 넓은 부지만으로 다산쯔가 이렇게까지 매력적인 존재가 된 것은 아닐 것이다. 798 공장은 전형적인 바우하우스 양식의 건축물로 1950년대 러시아의 지원으로 구동독의 건축가들이 지었다고 한다. 아시아에선 보기 드문 이런 건축양식을 일찌감치 알아본 다산쯔의 초기 예술가 집단은 건축물을 허물지 않고 활용하는 방식을 택했다. 내가 다산쯔를 잊지 못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뉴욕을 다녀온 여행자들이 뉴욕이 현대 도시의 핵심인 듯 보이지만, 건물들의 수령이 100년이 넘었고 그 건물들에서 뿜어져 나오는 오라가 뉴욕이라는 도시를 각인했다는 건 수없이 들어온 증언이다.
다산쯔 798번지를 들어서면 높은 굴뚝과 공장들보다 배쯤 자란 나무들이 눈에 띈다. 100년은 족히 살았을 법한 이 나무들은 먼지 많은 베이징의 공기가 범하지 못하도록 이 공장 지대를 에워싸고 있다. 중간 중간 가동된다는 것을 증명하듯이 거리를 가로지르는 거미줄 같은 관에선 증기가 새어 나오고, 젊은 작가들이 그렸음 직한 그래피티(graffiti)와 마오쩌둥 시대부터 그 자리를 지켰을 법한 붉은색의 ‘마오쩌둥은 우리 마음속의 붉은 태양’이라는 커다란 글자가 공존한다.
군수공장의 커다란 기계들은 갤러리로 변신했음에도 자리를 옮기지 않고 제자리를 지키는 곳이 많다. 바닥조차 유행을 멀리한 시멘트 바닥이 대부분이다. 공장 특유의 높은 천장도 한몫한다. 높은 천장을 가진 갤러리의 규모는 작가들의 작업을 확대시켰고, 지켜보는 방문자는 그 크기에 우선 압도되게 마련이다. 게다가 공사하는 인부들은 어떤가. 중국 유명 현대 회화에 등장하는 제복을 작업복으로 걸치고 무표정한 얼굴로 일사분란하게 공장의 일을 하거나, 도로를 정비한다. 이들은 사람이 아무리 다녀도 눈길을 주지 않는다. 밥벌이의 고단함, 수억 원의 작품들이 거래되는 이곳에서 한 달에 10만 원을 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그네들의 일상을 묵묵히 이어간다.
이 시대를 알 수 없고 정체성이 의심스러운 공간에서 혹여 길을 잃고 카페라고 적힌 곳으로 들어가게 된다면, 세련된 인테리어에 눈이 휘둥그레진다. 다산쯔 내 갤러리 중 반 이상이 다국적 갤러리이며, 카페와 레스토랑 역시 마찬가지다. 전통적이거나 현대적이거나 바우하우스 양식을 접목한 세련된 공간이 재탄생하는 이 창의적인 공간은 전 세계의 아트 마케터들 손에 아직도 끊임없이 커지고 있다.

기존 도시 자원 활용해 문화예술 발전시켜야
이런 다산쯔가 폭발적인 에너지를 발산할 수 있게 된 것은 역사적·문화적인 이유도 있지만, 일찌감치 젊은 예술가들을 지원한 몇몇 기획자들도 한몫했다. 다산쯔 페스티벌을 처음 시작하고 지켜온 다산쯔 페스티벌 총책임자 황루이(黃銳)는 상업적으로만 치우치는 미술을 경계해야 하며,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이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기존에 형성된 도시자원을 이용해 문화예술을 발전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난해 대구를 방문한 황루이가 남긴 말이다. 애초에 무분별한 개발을 막고 축제로 승화해 아파트촌에 밀리는 것을 막아낸 의식 있는 소수 인사들의 활동은 두고두고 칭송되어야 할 것이다. 황루이가 2년 전과 다름없이 다산쯔의 대부로 페스티벌 기획을 총괄하는 사실만으로 어쩐지 안심이 된다.
베이징올림픽을 맞아 매년 5월에 열리던 다산쯔 페스티벌은 9월로 옮기고 어느 때보다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 축제를 기다리는 것은 비단 필자만은 아닐 것이다. 7,000만 명(남북한 인구보다 많은!)에 달하는 중국 내의 컬렉터들과 세계의 미술계가 이들을 주목한다. 이러한 흐름이 향후 중국의 문화예술계뿐만 아니라 디자인, 상품에 이르는 산업에까지 어떤 영향을 끼칠지 예견해보면 올림픽보다 더욱 큰 문화예술의 힘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나라 문화예술계가 다산쯔 예술구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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