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흐르는 일상의 가나자와, 골목길이 만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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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harvard 댓글 0건 조회 1,380회 작성일 10-10-09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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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항상 작은 것에서 큰 것을 읽어내려 한다고 한다. 큰 공간에 그 공간이 가지는 가치가 있듯, 작은 공간에는 그 나름대로 무시하지 못할 매력이 존재한다.
달리는 차량과 바쁜 발걸음의 사람들로 가득 찬 가로와 연결되는 작은 공간 골목은 우리에게 아련한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1970~80년대, 공원이나 운동장 등 탁 트인 공간이 적었던 그 시절 유년기를 보낸 우리는 대부분 골목에 삼삼오오 모여 딱지치기, 구슬치기, 인형놀이에 몰두하고 또 수다를 떨며 지냈다. 조금 커서는 조촐하고 소박한 명물 ‘먹자골목’에서 술잔을 기울이며 정열을 쏟아 내곤 했다. 조촐하고 소박한 그곳에는 우리의 이야기와 정서가 그대로 녹아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현재 우리나라의 많은 도시에서는 양적 성장에 맞춘 도시정책, 즉 경제성장을 우선시하는 일률적인 도시계획을 추진하면서 예전에 우리가 가졌던 골목 정서가 점점 더 자취를 잃어가고 있다.
도시 발전을 성장이라 지칭하며 스스로 가치를 매기고 주창해야 하는 처절한 경쟁 시대에 작은 가로문화를 주민과 함께 해석하고 지역의 발전으로 연계한 일본 가나자와(金澤) 시에서 한국 골목의 새로운 정비 방향을 모색하려 한다.
‘걸으면서 문화를 느끼는’ 품격 있는 골목
가나자와 시는 ‘고마치나미’(小町竝み)라는 이름의 사업을 통해 역사적으로 가치를 지니는 사무라이 가옥, 옛 가옥, 사원 등 건축물이나 유사 양식을 계승한 건축물이 모여 있어 역사적 가치가 높은 골목은 물론, 생활과 경제활동의 장소로서 가나자와만의 분위기를 자아내는 골목을 선정해 경관을 정비했다. ‘고마치나미’의 ‘고’는 ‘역사적 경관과 정서를 지닌 가로’를 뜻하는 ‘古’와 ‘작다’는 의미의 ‘小’를 모두 포함하는 말이다. 고마치나미 사업은 ①보존이 필요한 가로를 ‘고마치나미 보전구역’으로 지정하여, ②지역 특성에 맞는 ‘보전 기준’을 정하고, ③보전구역에서는 신축이나 개축이 필요할 경우 사전 협의를 통해, ④시가 개축과 수리 비용의 최대 70%까지 보조금을 지원하는 형태로 진행되었다. 구역 내의 역사적으로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건물은 소유주의 동의를 얻어 ‘고마치나미 보전 건조물’로 등록하고, 시와 소유주가 보전계약을 체결하고, 구역 지정과 보전 기준은 주민과 전문가(대부분 가나자와 내부 전문가)로 구성된 ‘고마치나미 보전위원회’를 중심으로 합의를 이끌어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문화가 일상에 흐르는 가나자와를 만들기 위한 성숙한 주민의식을 높일 수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골목에 문화의 손길이 닿아 골목이 다시 활기를 띠고, 진정한 의미의 공간으로 자리 잡은 고마치나미 사업의 가장 대표적인 곳이 히가시차야 도오리(東茶屋通り)다. 에도시대 밤마다 일본 전통 기생인 게이샤와 무사들의 웃음소리가 흘러나오던 게이샤의 거리, 히가시차야 도오리는 이제 가나자와의 대표적인 관광지이자 이미지 공간으로 각광받는다. 이 거리는 에도시대부터 작은 교토라 불려온 가나자와의 이미지에 어울리는 공간으로, 일본 전통차, 가가유젠(加賀友禪, 일본 전통의상 염색법), 금박(金箔), 구타니 자기(九谷燒) 등 지역특산물을 파는 멋들어진 거리로 재정비되었다.
이 과정에서 건축·조경·마케팅 전문가가 투입되어 건축물의 높이, 지붕의 형태와 재질, 외벽의 색채와 재질, 외벽의 위치, 식재(植栽)와 문이나 울타리 등의 조성, 외부로 드러나는 설비기기 지침, 옥외 광고물과 차양 등의 설치 지침을 마련하고, 업종 선정과 인테리어, 마케팅 관련 노하우를 전달했다. 또 간판·안내판·안내지도 등의 공공 사인 디자인 등의 경관을 정비해 전체 경관의 조화를 추구하고, ‘걸으면서 문화를 느끼는’ 골목을 만들고자 애썼다.
그 결과 40대 이상의 성숙한 여성이 친구들과 함께 찾아 고즈넉하게 산책, 맛난 음식, 쇼핑을 즐기는 품격 있는 문화공간으로 각광받고 있다.

문화와 역사가 있는 골목길, 관광객 끌어들이다
현재 가나자와 시의 인구는 계속 줄고 있다. 가나자와를 찾는 관광객 역시 답보 상태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일본 3대 명원 가운데 하나이자 가나자와 최대의 관광자원이었던 겐로쿠엔(兼六園) 방문객 수가 계속 감소하는 추세인데 반해, 히가시차야를 찾는 방문객은 매년 10% 이상 늘어, 2008년 현재 약 670만 명에 이른다. 겐로쿠엔에 의존하던 기존의 관광 형태가 이 작은 골목을 정비함으로써 이제야 분산된 것이다.
가나자와 시는 주민이 많이 이용하고 생활과 밀접한 골목에 문화와 역사적 가치를 더해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조성하고, 그 가치를 주민에게 전달하는 과정을 소중히 함으로써 성공적으로 창조도시를 이룩할 수 있었다.
이렇듯, 21세기 골목에는 가치와 문화가 배어나야 할 것이다.
요즘 많은 디자이너들이 주창하듯, 정말로 가로공간의 기능성·시각성·기호성·무대성만이 중요할까? 더욱 중요한 것은 우리의 문화생활을 반영하고 우리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다. 인프라 정비, 환경미화 차원에서 아름다운 골목을 수동적으로 향유하기보다는 많은 주민과 방문객에게 쾌감과 감동을 주고, 그것이 생활 향상, 문화예술 기회 창출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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